1. 유년기
q=Ocumare de la Costa, Aragua State, Venezuela|position=left
콘셉시온은 1948년 6월 17일 베네수엘라 아라과 주 오쿠마레 데 라 코스타에서 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와 어머니 에르네스티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구스틴 코다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지역 야구팀인 티그레스 데 아라과에서 파트타임으로 야구를 했다. 당시 그의 코치였던 윌프레도 칼비뇨는 신시내티 레즈의 스카우트이기도 했으며, 1967년 콘셉시온은 칼비뇨에 의해 레즈와 계약했다. 그는 원래 투수로 지명되었으나, 곧 내야수로 전향했다.
2. 메이저리그 경력
콘셉시온은 19년 동안 신시내티 레즈의 주요 선수로 활약하며 빅 레드 머신 시대를 이끌고 여러 개인적, 팀적 업적을 달성했다.
2.1. 데뷔와 초기 시즌
데이비드 콘셉시온은 1970년 4월 6일, 21세의 나이로 몬트리올 엑스포스를 상대로 유격수로 선발 출전하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4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이틀 뒤인 4월 8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투수이자 훗날 레즈 팀 동료가 되는 프레드 노먼을 상대로 7회에 첫 안타인 2루타를 때려냈다. 메이저리그 승격 초기에 그의 등번호는 '50'번이었으나, 시즌 중 영구 결번이 되는 '13'번으로 변경했다.
데뷔 후 세 시즌 동안 레즈의 감독 스파키 앤더슨은 콘셉시온을 우디 우드워드, 대럴 채니 등과 함께 파트타임으로 기용했다. 1971년, 그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릭 와이즈가 노히트 경기를 펼치던 중 6회에 볼넷으로 출루하여 유일하게 베이스에 진루한 레즈 선수였다. 이는 퍼펙트 게임을 막는 유일한 출루였다.
1973년, 콘셉시온은 타격과 수비 양면에서 기량이 만개하며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았다. 5월 9일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9대 7로 승리한 경기에서, 조니 벤치는 스티브 칼턴을 상대로 홈런 3개와 7타점을 기록했지만, 9회초 배리 러시로부터 터져 나온 콘셉시온의 2점 역전 홈런이 결승타가 되었다. 그는 그해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에 선정되었으나, 올스타전 이틀 전인 7월 22일 엑스포스와의 경기에서 3루 슬라이딩 도중 무릎이 탈골되고 왼쪽 다리의 비골이 골절되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 시즌 후반기를 결장했다. 부상 당시 그는 타율 .287, 8홈런, 46타점, 39득점, 182루타, 33루타, 22도루를 기록하고 있었다.
1974년, 콘셉시온은 부상에서 복귀하여 160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타율 .281, 14홈런, 82타점, 41도루를 기록하며 개인적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그 해 첫 번째 골드 글러브 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4년 연속 포함 총 5번의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2.2. 빅 레드 머신 시대
1975년, 콘셉시온은 피트 로즈, 조니 벤치, 조 모건, 토니 페레즈, 켄 그리피 시니어, 조지 포스터, 세자르 헤로니모 등 유명한 "그레이트 에이트(Great Eight)"의 일원이 되어 신시내티 레즈가 1975년과 1976년 두 해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기의 레즈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로 '빅 레드 머신'으로 불렸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스타 유격수로 자리 잡은 이후에도 베네수엘라에서 윈터리그에 계속 참여하며 타격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그는 조 모건과 함께 견고한 키스톤 콤비를 이루며 1974년부터 1977년까지 4년 연속 골드 글러브를 동시에 수상했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이자 최장 타이 기록이다.
2.3. 올스타 인정과 말년
q=Riverfront Stadium, Cincinnati|position=right
1982년 7월 13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미국 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개최되었다. 이 경기에서 콘셉시온은 2점 홈런을 터뜨려 내셔널리그의 4대 1 승리(내셔널리그의 11연승이자 최근 20경기 중 19번째 승리)에 기여했으며, 경기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었다. 그는 또한 1981년과 1982년에 걸쳐 2년 연속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하며 공수 겸장 유격수로서의 면모를 입증했다.
경력 후반에 콘셉시온은 토니 페레즈와 함께 인조 잔디 구장(특히 리버프런트 스타디움)의 특성을 활용한 '원바운드 1루 송구' 기술을 완성했다. 그는 이 방법을 사용하여 내셔널리그의 다른 구장에서도 수비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 최초의 유격수로 알려져 있다.
1982년에 입은 팔꿈치 부상과 어깨 수술, 그리고 나이로 인해 1983년과 1984년 연속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그는 배리 라킨이 그의 후계자로 성장하는 동안, 모든 내야 포지션을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1986년에는 라킨에게 주전 유격수 자리를 내주었으며, 이는 래리 보와가 세운 내셔널리그 유격수 최다 출장 기록(2222경기)에 44경기 모자란 시점이었다.
1988년은 그가 레즈에서 뛰는 19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이었다. 그 해 6월 3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크게 뒤지고 있는 경기에서, 감독 피트 로즈는 콘셉시온을 투수로 등판시켰다. 그는 1.1이닝을 던져 2안타를 허용했지만 무실점이었고, 1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1988 시즌 후 레즈는 콘셉시온을 방출했다. 그는 1989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20번째 메이저리그 시즌을 시도했으나 로스터에 합류하지 못했고, 40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콘셉시온은 메이저리그 경력 전체를 신시내티 레즈에서만 보낸 프랜차이즈 선수이다.
2.4. 경력 통계 및 주요 업적
데이비드 콘셉시온은 메이저리그 19시즌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기록과 영예를 남겼다.
- 주요 개인 수상 내역
- 실버 슬러거 상: 2회 (1981년, 1982년)
- 골드 글러브 상: 5회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1979년)
- 올스타 게임 MVP: 1회 (1982년)
- 이달의 선수상: 1회 (1981년 4월)
- 이주의 선수상: 2회 (1977년 8월 28일, 1979년 5월 13일)
-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 선정: 9회 (1973년, 1975년,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 신시내티 레즈 구단 기록 (주요 순위)
- 통산 경기 출장: 2위
- 통산 타석: 2위
- 통산 안타: 3위
- 통산 2루타: 3위
- 통산 도루: 3위
- 통산 득점: 5위
- 통산 총 루타: 5위
- 신시내티 레즈 유니폼으로 19시즌을 뛴 구단 기록을 배리 라킨과 공유한다.
- 연도별 타격 성적
연도 팀 경기 타석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총루타 타점 도루 도루실패 볼넷 사구 삼진 병살타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970 CIN 101 296 265 38 69 6 3 1 84 19 10 2 3 2 23 5 .260 .324 .317 .641 1971 130 354 327 24 67 4 4 1 82 20 9 3 8 1 18 2 .205 .246 .251 .497 1972 119 421 378 40 79 13 2 2 102 29 13 6 5 4 32 8 .209 .272 .270 .542 1973 89 357 328 39 94 18 3 8 142 46 22 5 2 5 21 3 .287 .327 .433 .760 1974 160 653 594 70 167 25 1 14 236 82 41 6 5 4 44 10 .281 .335 .397 .732 1975 140 558 507 62 139 23 1 5 179 49 33 6 6 4 39 4 .274 .326 .353 .679 1976 152 636 576 74 162 28 7 9 231 69 21 10 4 6 49 11 .281 .335 .401 .736 1977 156 630 572 59 155 26 3 8 211 64 29 7 6 6 46 6 .271 .322 .369 .691 1978 153 624 565 75 170 33 4 6 229 67 23 10 3 4 51 4 .301 .357 .405 .762 1979 149 666 590 91 166 25 3 16 245 84 19 7 6 6 64 5 .281 .348 .415 .763 1980 156 668 622 72 162 31 8 5 224 77 12 2 2 6 37 2 .260 .300 .360 .660 1981 106 468 421 57 129 28 0 5 172 67 4 5 2 7 37 1 .306 .358 .409 .767 1982 147 623 572 48 164 25 4 5 212 53 13 6 2 4 45 4 .287 .337 .371 .708 1983 143 593 528 54 123 22 0 1 148 47 14 9 2 7 56 9 .233 .303 .280 .583 1984 154 600 531 46 130 26 1 4 170 58 22 6 8 9 52 5 .245 .307 .320 .627 1985 155 620 560 59 141 19 2 7 185 48 16 12 3 4 50 3 .252 .314 .330 .644 1986 90 346 311 42 81 13 2 3 107 30 13 2 5 4 26 1 .260 .314 .344 .658 1987 104 311 279 32 89 15 0 1 107 33 4 3 1 3 28 5 .319 .377 .384 .761 1988 84 216 197 11 39 9 0 0 48 8 3 2 1 0 18 5 .198 .265 .244 .509 MLB 총계 (19년) 2488 9640 8723 993 2326 389 48 101 3114 950 321 109 74 86 736 93 .267 .322 .357 .679 - 연도별 투구 성적
연도 팀 경기 승 패 세이브 홀드 완투 완봉 무자책 블론세이브 탈삼진률 이닝 피안타 자책점 홈런 볼넷 사구 삼진 폭투 보크 WHIP 방어율 피OPS 1988 CIN 1 0 0 0 0 0 0 0 0 ---- 1.1 2 0 0 0 0 1 0 0 1.50 0.00 ---- MLB 총계 (1년) 1 0 0 0 0 0 0 0 0 ---- 1.1 2 0 0 0 0 1 0 0 1.50 0.00 ---- - 연도별 수비 성적
- 투수 수비
연도 구단 투수 (P) 경기 자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1988 CIN 1 0 0 0 0 ---- MLB 총계 1 0 0 0 0 ---- - 내야수 수비

1980년 캔들스틱 파크에서 윌리 맥코비가 1루에서 콘셉시온에게 태그를 시도하는 모습. 이 경기는 맥코비의 마지막 캔들스틱 파크 출전 경기였다. 연도 구단 유격수 (SS) 2루수 (2B) 3루수 (3B) 1루수 (1B) 경기 자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경기 자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경기 자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경기 자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1970 CIN 93 137 244 22 51 .945 3 7 3 0 0 1.000 - - 1971 112 160 294 12 62 .974 10 8 13 1 3 .955 7 0 3 0 0 1.000 - 1972 114 194 365 18 75 .969 1 0 1 0 1 1.000 9 3 6 1 0 .900 - 1973 88 165 292 12 56 .974 - - - 1974 160 239 536 30 99 .963 - - - 1975 130 238 445 16 102 .977 - 6 3 1 0 0 1.000 - 1976 150 304 506 27 93 .968 - - - 1977 156 280 490 11 101 .986 - - - 1978 152 255 459 23 72 .969 - - - 1979 148 284 495 27 102 .967 - - - 1980 155 265 451 16 98 .978 1 0 0 0 0 ---- - - 1981 106 208 322 22 71 .960 - - - 1982 145 262 459 17 94 .977 - 1 0 0 0 0 ---- 1 9 0 0 1 1.000 1983 139 225 376 13 67 .979 - 6 2 11 0 0 1.000 1 0 0 0 0 ---- 1984 104 156 247 9 41 .978 - 54 28 74 6 3 .944 6 29 3 2 2 .941 1985 151 212 404 24 64 .963 - 5 2 1 0 0 1.000 - 1986 60 74 174 9 32 .965 10 25 28 1 12 .981 10 9 17 0 3 1.000 12 45 4 0 6 1.000 1987 2 2 6 3 2 .727 59 125 133 2 36 .992 13 5 20 0 2 1.000 26 118 10 0 3 1.000 1988 13 10 29 0 8 1.000 46 80 92 1 24 .994 9 8 5 0 0 1.000 16 53 5 1 4 .983 MLB 총계 2178 3670 6594 311 1290 .971 130 245 270 5 76 .990 120 60 138 7 8 .966 62 254 22 3 16 .989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기록
- 각 연도의 굵은 글씨 연도는 골드 글러브 상 수상 연도
- 외야수 수비
연도 구단 중견수 (CF) 경기 자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1971 CIN 5 14 0 0 0 1.000 1973 2 2 0 0 0 1.000 1974 1 1 0 0 0 1.000 MLB 총계 8 17 0 0 0 1.000
3. 플레이 스타일 및 특징
데이비드 콘셉시온은 공격 능력도 준수했지만, 특히 유격수로서의 뛰어난 수비 능력이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이었다. 그는 강력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 능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동료 내야수 토니 페레즈와 함께 인조 잔디 구장의 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원바운드 1루 송구' 기술을 개발하고 완벽하게 구사했다. 이는 타구 속도가 빠른 인조 잔디 구장에서 효율적인 수비를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그의 안정적인 수비는 신시내티 레즈의 강력한 수비진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5차례의 골드 글러브 상 수상은 그의 수비적 기여도를 입증한다. 또한 조 모건과 함께 형성한 미들 인필드 콤비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견고하고 효율적인 조합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4. 선수 은퇴 후 경력 및 개인 생활
데이비드 콘셉시온은 1989년 메이저리그 은퇴 후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고향 팀인 티그레스 데 아라과의 감독을 역임했다. 또한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베네수엘라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활동했다. 2014년에는 티그레스 데 아라과의 부회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현재 아내 델리아와 함께 베네수엘라 마라카이의 우르바니사시온 엘 카스타뇨(Urbanizacion El Castaño)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곳은 앙리 피티에르 국립공원 인근 산기슭에 위치한다. 콘셉시온 부부는 데이비드 알레한드로, 데이비드 에두아르도라는 두 아들과 다네스카라는 딸을 두고 있다. 그는 또한 개인적으로 농장과 트럭 운송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5. 유산과 영예
5.1. 신시내티 레즈 명예의 전당
2000년에 신시내티 레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5.2. 등번호 13번 영구 결번

2007년 8월 25일, 신시내티 레즈는 홈구장에서 경기 전 시상식을 열고 그의 등번호 13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이 행사에는 전 동료인 토니 페레즈, 조니 벤치, 조 모건, 켄 그리피 시니어, 조지 포스터 그리고 전 감독 스파키 앤더슨 등 레즈의 여러 전설적인 선수들이 참석했다.
콘셉시온은 자신의 어머니 에르네스티나 여사가 1913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등번호 13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등번호 13번이 영구 결번된 것은 데이비드 콘셉시온이 최초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13번은 불길한 숫자가 아니다. 행운의 숫자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20년간 윈터리그에서 뛰었던 베네수엘라의 티그레스 데 아라과 팀 또한 그의 등번호 13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5.3. 기타 영예
캐리비안 시리즈 명예의 전당 회원이다.
2014년에는 신시내티로 돌아와 매년 열리는 오프닝 데이 파인들레이 마켓 퍼레이드의 그랜드 마셜을 맡았으며, 이후 그의 후계자였던 배리 라킨과 함께 레즈 시즌 개막전의 시구자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