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education
다케모토 마사오는 1919년 9월 29일 일본 시마네현 하마다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구제 하마다 중학교(현재의 시마네현립 하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체육대학의 전신인 일본체육회 체조학교 고등사범과를 졸업하며 체육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그의 고향인 하마다시는 훗날 그를 명예 시민으로 선정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2. Athletic career
다케모토 마사오의 선수 경력은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며 일본 체조의 기틀을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국내외 대회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수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2.1. Early career and national championships
다케모토 마사오는 1947년 개최된 제1회 전일본 체조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남자 개인 종합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이 대회에서 개인 종합 5연패를 달성했으며, 선수 경력 동안 총 7번의 개인 종합 우승을 기록하며 국내 최강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그의 이러한 국내에서의 지배적인 성과는 국제 무대에서의 성공적인 활약의 기반이 되었다.
2.2. Olympic Games
다케모토 마사오는 세 차례의 하계 올림픽에 출전하여 일본 체조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올림픽에서 1개의 금메달, 2개의 은메달, 4개의 동메달 등 총 7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2.2.1. 1952 Helsinki Olympics
1952년 헬싱키 올림픽은 다케모토 마사오가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그는 뜀틀 종목에서 19.150점을 기록하며 소비에트 연방의 빅토르 추카린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금메달과의 점수 차이는 불과 0.050점으로 매우 근소했다. 그의 첫 올림픽 메달은 일본 체조의 잠재력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2.2. 1956 Melbourne Olympics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다케모토 마사오는 일본 선수단의 주장을 맡았으며, 여러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며 다재다능함을 과시했다. 그는 남자 단체 종합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철봉, 평행봉, 링 종목에서 각각 동메달을 추가하며 총 4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평행봉, 링, 철봉 세 종목에서 모두 동메달을 획득한 것은 그의 뛰어난 개인 기량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2.2.3. 1960 Rome Olympics
1960년 로마 올림픽은 다케모토 마사오 선수 경력의 정점이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아이하라 노부유키, 엔도 유키오, 미쓰쿠리 다카시, 오노 다카시, 쓰루미 슈지와 함께 남자 단체 종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일본 체조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로, 일본이 세계 체조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철봉 종목에서 오노 다카시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하며 개인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2.3. World Championships
다케모토 마사오는 두 차례의 세계 체조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2개의 금메달을 포함해 총 7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2.3.1. 1954 World Championships
1954년 세계 체조 선수권 대회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되었으며, 다케모토 마사오는 이 대회에서 마루 운동 종목에서 발렌틴 무라토프와 함께 19.250점의 동점으로 금메달을 공동 획득했다. 또한 그는 남자 단체 종합에서 은메달을, 평행봉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총 3개의 메달을 따냈다.
2.3.2. 1958 World Championships
1958년 세계 체조 선수권 대회는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다. 다케모토 마사오는 이 대회에서 마루 운동 종목에서 다시 한번 금메달을 획득하며 1954년 대회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 이는 그의 마루 운동 기량에 대한 확고한 증명이었다. 이 외에도 그는 뜀틀과 남자 단체 종합에서 은메달을, 철봉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총 4개의 메달을 추가했다.
3. Post-retirement career and public service
다케모토 마사오는 1960년 로마 올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후에도 체조계에 대한 헌신을 이어갔다. 그는 후진 양성과 체조 행정 분야에서 다양한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일본 체조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3.1. Coaching and academic roles
선수 은퇴 후 다케모토 마사오는 일본체육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을 지도하고 체조 연구에 매진했다. 그는 한때 일본체육대학의 부학장과 명예 교수를 역임했으며, 이사직도 겸임했다. 또한 일본 체조 협회의 부회장 및 고문 등 여러 요직을 거치며 체조 행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일본 체조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도 활동하며 여러 차례 올림픽에 참가했다.
- 1964년 도쿄 올림픽: 남자 체조 감독
- 1972년 뮌헨 올림픽: 남자 체조 감독
-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남자 체조 감독
3.2. Awards and honors
다케모토 마사오는 그의 뛰어난 업적과 체조계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수많은 상과 명예를 얻었다.
- 1980년: 자수포장을 수훈했다.
- 1993년: 훈삼등 서보장을 수훈했다.
- 1997년: 국제 체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국제 체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안았다.
3.3. Contributions to gymnastics
다케모토 마사오는 단순히 뛰어난 선수와 감독을 넘어 체조 기술과 용어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특히 그는 '월면 공중제비'(月面宙返り겟쓰멘추가에리일본어)라는 용어를 고안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용어는 달 착륙 직후 체조 기술에 공중제비가 추가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체조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명칭이 되었다. 이러한 기여는 그가 단순한 선수로서가 아니라 체조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력을 보여준다.
4. Personal life and death
다케모토 마사오의 개인적인 삶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은 그의 고향과 관련이 있었다.
4.1. Death
다케모토 마사오는 2007년 2월 2일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87세였다. 그의 사망 후 일본 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정오위를 추서했다.
5. Legacy and reception
다케모토 마사오는 일본 체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그는 체조의 신(体操の神様타이소노 카미사마일본어)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일본 체조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의 고향인 시마네현 하마다시는 그를 명예 시민으로 선정하여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고 있다. 그는 일본 체조가 세계 정상에 우뚝 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의 영향력은 후대의 많은 체조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