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다마이 미사오(玉井 操Tamai Misao일본어, 1903년 12월 16일 ~ 1978년 12월 23일)는 일본의 사업가이자 축구 선수였다. 그는 와세다 대학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으며, 1927년에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극동 선수권 대회에서 두 경기에 출전하고 한 골을 기록했다. 축구 경력을 마친 후에는 고베 해상화재보험에 입사했으며, 이후 부친이 설립한 다마이 상선의 사장을 역임하며 해운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그는 일본 선주 협회 부회장, 고베 상공회의소 부회장, 효고현 공안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공공 서비스 직책을 맡았다. 축구 행정 분야에서는 일본 축구 협회 부회장과 고베 풋볼 클럽의 초대 회장을 지내는 등 일본 축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업적을 기려 2006년에는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Early life and education
다마이 미사오는 1903년 12월 16일 효고현에서 다마이 상선의 창립자이자 선구적인 사업가인 다마이 슈키치(玉井 周吉Tamai Shūkichi일본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메이지 가쿠인 중등부 재학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1922년에는 제1와세다 고등학원에 입학하여 와세다 대학 아식 축구부에 가입했다. 1923년에는 미얀마 출신 유학생인 초우 딘(ကျော်ဒင်Chou Din버마어)으로부터 직접 축구 지도를 받기도 했다. 1924년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한 후에도 아식 축구부에서 활동하며 간토 대학 축구 리그전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1927년까지 와세다 대학 선수로 활동했다.
3. Football career
다마이 미사오는 일본 축구 선수로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으며,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3.1. Club career
다마이 미사오는 자신의 모교인 와세다 대학의 선수들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와세다 WMW에서 활약했다. 그는 이 팀에서 스즈키 시게요시, 아리마 하루오, 아사쿠라 다모쓰, 다카하시 시게루, 스기무라 쇼지로, 혼다 나가야스, 다카모로 고, 다키 미치요 등 다수의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간토 대학 축구 리그전 우승에 기여했다.
3.2. National team career
1927년 8월,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다마이 미사오는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8회 극동 선수권 대회에 출전할 일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이 대회에서 그는 1927년 8월 27일 중화민국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이 경기에서 한 골을 기록했다. 비록 경기는 1대5로 패배했지만, 그의 데뷔골은 기록에 남았다. 이어서 그는 8월 29일 필리핀과의 경기에 출전했으며, 일본은 이 경기에서 2대1로 승리했다. 이 승리는 일본의 국제 A 매치 역사상 첫 승리였다. 다마이 미사오는 1927년 한 해 동안 일본 국가대표팀에서 총 2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3.3. Career statistics
다음은 다마이 미사오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및 득점 통계이다.
일본 국가대표팀 | ||
---|---|---|
연도 | 출전 | 골 |
1927 | 2 | 1 |
총합 | 2 | 1 |
4. Business career
다마이 미사오는 축구 선수 경력 외에도 해운업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사업가로서 활동하며 여러 기업과 협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4.1. Early business activities
대학 졸업 후인 1928년, 다마이 미사오는 고베 해상화재보험(현재 아이오이 닛세이 도와 손해보험의 전신)에 입사하여 근무했다. 1935년 4월, 그의 아버지이자 다마이 상선의 창립자인 다마이 슈키치가 사망하자, 그는 같은 달 고베 해상화재보험에서 퇴사했다. 이후 1935년 5월 다마이 상선에 입사함과 동시에 다마이 상선의 제2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4.2. Executive and leadership roles
다마이 미사오는 1947년 10월 다마이 상선 사장직에서 물러났으나, 1951년 1월 다시 사장으로 재취임했다. 1955년 11월에는 다이도 기센의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1978년 6월부터는 회장직을 맡았다. 1958년 11월, 그는 일본 선주 협회의 한신 지구 선주 회의 의장으로 선임되었고, 같은 해 1958년 12월부터 일본 선주 협회의 부회장 겸 상임 이사를 역임했다. 이 두 직책은 1970년 5월에 퇴임했다. 또한, 1959년 2월에는 해운 조선 합리화 심의 위원으로 취임하여 1970년 5월까지 활동했다.
5. Public and administrative roles
다마이 미사오는 축구계는 물론 다양한 공공 부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5.1. General public service
다마이 미사오는 1964년 11월부터 고베 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1966년 12월부터 1972년 12월까지 효고현 공안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71년 5월부터는 고베 국제 회관의 사장을 맡는 등 다양한 공공 서비스 직책을 수행했다.
5.2. Football administration
축구 행정 분야에서 다마이 미사오는 1931년부터 간사이 축구 협회 효고 지부장을 맡았다. 1939년부터는 효고현 축구 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1957년부터는 간사이 축구 협회 회장과 일본 축구 협회 부회장을 동시에 맡았다. 그는 1976년까지 일본 축구 협회 부회장직을 유지했다. 특히, 1970년에는 일본에서 법인격을 가진 최초의 축구 단체로 설립된 고베 풋볼 클럽의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일본 축구 행정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6. Awards and honours
다마이 미사오는 그의 폭넓은 활동과 기여를 인정받아 여러 상과 훈장을 수여받았다.
- 남수포장: 1966년
- 훈삼등 욱일중수장: 1974년
- 정사위 추서: 1979년 (사후 추서)
-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6년
7. Death
q=고베시|position=right
다마이 미사오는 1978년 12월 23일 고베시 이쿠타구(현재 중앙구)에 위치한 고베 에키사이카이 병원에서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75세였다.
8. Legacy
다마이 미사오는 축구, 사업, 그리고 공공 서비스의 세 가지 주요 분야에서 일본 사회에 중요한 기여를 남겼다. 그는 일본 국가대표팀의 초기 멤버로서 일본 축구의 기반을 다지는 데 일조했으며, 은퇴 후에는 일본 축구 협회 부회장과 고베 풋볼 클럽의 초대 회장으로서 축구 행정의 선진화를 이끌었다. 특히 법인격을 갖춘 축구 단체 설립에 기여함으로써 일본 축구 발전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업적으로는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다마이 상선과 다이도 기센의 사장을 역임하며 일본의 해운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일본 선주 협회 부회장, 고베 상공회의소 부회장 등 공공 부문에서도 폭넓게 활동하며 지역 사회와 국가 발전에 헌신했다. 그의 다방면에서의 업적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과 여러 훈장 수여를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