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나람신은 아카드 제국의 통치자로서 그의 혈통과 자녀들은 제국의 통치 및 종교적 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1. 초기 생애 및 가족 관계
나람신은 마니슈투슈의 아들이며, 리무슈 왕의 조카이자 사르곤과 타슐툴룸의 손자이다. 그의 고모는 대제사장 엔헤두안나였다. 수메르 왕 목록의 대부분 기록은 그가 마니슈투슈를 이었다고 하지만, 우르 제3왕조 시기 왕 목록은 리무슈와 마니슈투슈의 순서를 뒤집어 놓기도 한다. 고대 아카드어에서는 나람신 또는 나람수엔이라는 이름이 더 정확하게는 "나람-수이인" 또는 "나람-수아인"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나람신의 자녀로는 후계자였던 샤르-칼리-샤리를 포함하여 여러 명이 있었다. 투투브의 총독을 지낸 나비-울마슈, 우킨-울마슈 등이 아들로 알려져 있다. 고대 우르케시였던 텔 모잔의 발굴에서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나람신의 딸 타르암-아가데의 인장이 발견되었는데, 그녀는 우르케시의 한 엔단(통치자)과 결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최근 우라사그리그에서 약탈된 원통 인장에서는 그곳의 총독이었던 샤라티구비신이 나람신의 아들이었음이 밝혀졌다.
다른 자녀로는 난나 신의 "지르루 제사장"이자 "우르의 신의 엔투 제사장"이었던 엔메나나, 시파르의 샤마슈 신의 엔투 제사장 슈므샤니, 마라드의 총독이었던 아들, 니푸르의 엔투 제사장이었던 이름 없는 딸, 빈-칼리-샤르레, 리피트-일레(마라드의 총독), 리그무슈-알수, 메-울마슈, 우켄-울마슈 등이 있으며, 그의 손녀로는 리푸스-이아-움이 있었다. 특히 딸 투타납숨(투다납숨)은 니푸르에서 엔릴 신의 대제사장이라는 제국 내 가장 중요한 종교적 직책을 맡았다. 그녀는 또한 신으로 추앙받았는데, 이는 왕이 아닌 여성으로서 신이 된 유일한 인물이었다.

2. 재위 기간 및 업적
나람신의 재위 기간은 제국의 확장과 행정 개혁, 그리고 주요 반란의 진압으로 특징지어진다.
나람신의 재위 기간은 수메르 왕 목록에 따르면 56년이었다. 그의 재위 기간 중 알려진 20개 이상의 연도명은 주로 우루크와 수바르투 등 여러 지역에 대한 군사적 행동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미지의 연도는 "나람신이 키라셰니웨에서 시무룸을 물리치고 시무룸의 총독 바바와 아라메의 엔시 두불을 포로로 잡은 해"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연도명 중 가장 먼저 알려진 것은 "나람신이 엔릴 신전에서 하늘의 무기/안(An)을 받은 해"이다. 일반적으로 나람신의 연도명 순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신격화 시점을 기준으로 (아마도 "대반란" 직후로 추정) 신격화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재위 중 나람신은 아카드, 니푸르, 자발라에 있는 신전의 건축 사업을 벌였고, 나가르와 니네베에도 행정 중심지를 건설했다. 그는 도시 국가들에 대한 직접적인 왕실 통제를 강화했다. 그는 여러 아들들을 주요 지방 총독으로, 딸들을 고위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다양한 도시 국가들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했다. 또한 서기관 시스템을 개혁하기도 했다.
일부 충성스러운 지역 총독들은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켰다. 여기에는 아답 도시 국가의 총독이었던 메스키갈과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않은 니쿰의 총독 카르숨이 포함된다. 라가시의 루갈-우슘갈도 충성스러운 총독 중 한 명이었다. 나람신의 후계자 샤르-칼리-샤리를 섬기기도 한 루갈-우슘갈의 여러 비문, 특히 인장 기록은 그가 라가시의 총독이자 당시 나람신의 봉신(𒀵아카드어, 아라드, "종" 또는 "노예")이었음을 보여준다.
: 나람신, 위대한 아가데의 신, 세계의 네 분국의 왕이시여, 루갈-우슘갈, 서기관, 라가시의 엔시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 나람신의 봉신으로서 루갈-우슘갈의 인장
2.1. 영토 확장과 통합
나람신은 마간의 마니움을 물리쳤고, 자그로스 산맥, 타우루스 산맥, 아마누스 산맥 등 북부 산악 지역의 여러 부족들을 정복하여 제국을 지중해까지 확장했다. 그의 "승전비"는 자그로스 산맥의 룰루비 족장 사투니에 대한 그의 승리를 묘사하고 있다.
그는 아르마눔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탈 바지로 제안됨)의 통치자 리드-아다드와 에블라 (현대 알레포에서 남서쪽으로 55 km 떨어진 곳, 그의 할아버지 사르곤에 의해서도 패배했음)를 정복했다. 이 정복은 그의 연도명 중 하나인 "왕이 아마르눔으로 원정을 떠난 해"와 우르에서 발견된 한 조각상 비문(IM 85461)의 고대 바빌로니아 복사본을 통해 알려져 있다. 또한 "나람신, 위대한 자, 네 분국의 왕, 아르마눔과 에블라의 정복자"라고 새겨진 대리석 램프, 석판, 구리 그릇 등 세 가지 유물이 있다. 2010년에는 이 원정을 묘사하는 새로운 비석 조각(IM 221139)이 툴룰 알-바카라트(고대 케시로 추정됨)에서 발견되었다.
: 인류가 창조된 이래로 어느 왕도 아르마눔과 에블라를 파괴하지 못하였으나, 신 네르갈이 (자신의) 무기를 통해 위대한 나람신에게 길을 열어주어 그에게 아르마눔과 에블라를 넘겨주었노라. 또한 그는 그에게 아마누스, 삼나무 산, 그리고 상부 바다를 주었노라. 그의 왕권을 드높이는 신 다간의 무기를 통해 위대한 나람신은 아르마눔과 에블라를 정복하였노라.
2.2. 행정 및 통치 개혁
나람신은 도시 국가들에 대한 왕실의 직접적인 통제를 강화했다. 그는 여러 아들들을 주요 지방 총독으로, 딸들을 고위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다양한 도시 국가들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했다. 또한 서기관 시스템을 개혁하기도 했다.
일부 충성스러운 지역 총독들은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켰다. 여기에는 아답 도시 국가의 총독이었던 메스키갈과 위치가 파악되지 않은 니쿰의 총독 카르숨이 포함된다. 라가시의 루갈-우슘갈도 충성스러운 총독 중 한 명이었다. 나람신의 후계자 샤르-칼리-샤리를 섬기기도 한 루갈-우슘갈의 여러 비문, 특히 인장 기록은 그가 라가시의 총독이자 당시 나람신의 봉신(𒀵아카드어, 아라드, "종" 또는 "노예")이었음을 보여준다.
: 나람신, 위대한 아가데의 신, 세계의 네 분국의 왕이시여, 루갈-우슘갈, 서기관, 라가시의 엔시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 나람신의 봉신으로서 루갈-우슘갈의 인장
2.3. 대반란과 신격화
나람신 치세의 중요한 사건은 아카드 제국에 대항한 광범위한 반란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사르곤이 세운 제국은 서쪽으로 텔 브라크와 텔 레일란 같은 시리아 지역부터 동쪽의 엘람 및 관련 지역, 북쪽의 남부 아나톨리아, 남쪽의 "하부 바다"까지 뻗어 있었으며, 우루크, 우르, 라가시 같은 모든 전통적인 수메르 세력들을 포함했다. 이러한 정치적 실체들은 오랫동안 독립적인 권력을 유지해왔으며, 아카드 제국의 존속 기간 내내 주기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다시 주장하곤 했다.


나람신 재위 중 어느 시점에 광범위한 봉기가 발생했다. 키시의 이푸르-키스와 우루크의 아마르-기리드가 이끄는 대규모 도시 국가 연합에 니푸르의 엔릴-니주를 비롯하여 "쿠타, 티와, 시파르, 카잘루, 키리탑, [아피]아크, 그리고 GN"의 도시 국가들, 그리고 "아모리트 [고지대인]"이 합류했다. 보르시파 등의 도시도 이 반란에 가담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들을 여러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의 복사본 비문과 고대 아카드 시대의 동시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1974년에 발견된 바세트키 석상은 나람신 실물 크기 구리 동상의 받침대였다. 이 석상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 "위대한 아가데의 왕 나람신에게 네 분국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을 때, 여신 아스타르가 그에게 보여준 사랑을 통해 그는 1년 안에 아홉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그들이 (반군들이?) 일으켰던 왕들을 포로로 잡았노라. 그가 자신의 도시의 기반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도시 시민들은 에안나의 아스타르, 니푸르의 엔릴, 투툴의 다간, 케시의 닌후르쌍, 에리두의 엔키, 우르의 신, 시파르의 샤마슈, 그리고 쿠타의 네르갈에게 (나람신이) 그들의 도시의 신이 되도록 요청하였고, 그들은 아가데 안에 그를 위한 신전을 지었노라. 이 비문을 제거하는 자에게 샤마슈, 아스타르, 네르갈, 왕의 집행관, 즉 위에 언급된 모든 신들이 그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그의 후손을 멸망시킬지어다."
이후 나람신은 스스로를 신격화했으며, 사후에는 사르곤과 마니슈투슈도 신으로 추앙했지만 삼촌 리무슈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러한 반란의 흔적은 후대의 수메르 문학 작품인 "나람신에 대한 대반란", "나람신과 적대 무리", "굴라-안과 나람신에 대항한 17왕"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2.4. 엘람 통제 및 대외 관계
엘람은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 시대부터 아카드 지배하에 있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아카드의 두 번째 통치자인 리무슈는 이후 엘람을 상대로 원정을 벌여 자신의 왕실 칭호에 "엘람과 파라흐숨의 정복자"를 추가했다. 세 번째 통치자 마니슈투슈는 엘람의 안샨 시와 파시메 시를 정복하고 그곳에 제국 총독을 임명했다.
나람신은 자신의 왕실 칭호에 "파라흐숨까지의 모든 엘람 지역의 사령관"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리-이슈마니나 에피르무피와 같이 전형적인 아카드식 이름을 가진 엘람 지역의 "군사 총독"(샤카나쿠)들이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들이 아카드 제국의 관리였음을 시사한다. 나람신은 재위 기간 동안 수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신전을 짓고 자신의 이름으로 비문을 세웠으며, 공식 문서에서 엘람어를 아카드어로 대체하게 했다.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한 엘람 왕(때로는 히타로 추정됨)은 나람신(텍스트에서 신격화되지 않음)과 평화 조약을 체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조약은 고대 아카드어 양식으로 쓰인 고대 엘람어 문서로, "나람신의 적은 나의 적이며, 나람신의 친구는 나의 친구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고대 엘람어는 아직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다른 모든 텍스트는 매우 짧음) 텍스트 해석이 어렵다. 이 텍스트에는 인슈시나크, 훔반, 나히티, 시무트, 피니키르 등 주로 엘람 신들이지만 일부 수메르 및 아카드 신들을 포함하여 약 20명의 신이 언급되어 있다. 이 공식 조약이 나람신으로 하여금 동부 국경에서 평화를 유지하여 구티족의 위협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라고 제안된다.
2.5. 주요 칭호와 상징
나람신은 메소포타미아 역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신임을 주장한 왕이다. 그는 자신을 "아카드의 신"이라고 칭했으며, 그의 이름 앞에 신을 의미하는 무음 한정사(쐐기 문자 𒀭)를 붙이도록 했다. 이는 그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루갈-안네-문두에 이어 "세계의 왕"(수메르어: Lugal kiš ki) 대신에 "네 분국의 왕"(수메르어: Lugal kibratim arbaim)이라는 새로운 칭호를 사용했다. 이는 그의 지배 영토가 크게 확장되었음을 반영하여 새로 만들어진 칭호로 해석된다. 나람신의 승전비에 묘사된 그의 뿔 달린 투구는 그의 신성한 왕의 지위를 상징한다.
3. 유산 및 후대 평가
나람신의 통치는 후대에 다양한 전설과 역사적 평가를 낳았으며, 특히 '아카드 저주 전설'은 그의 치세에 발생한 사건들과 연결되어 제국의 쇠퇴를 설명하는 중요한 서사시가 되었다.
3.1. 아카드 저주 전설

"아카드 저주: 에쿠르의 복수"라는 제목의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사르곤이 세운 제국이 어떻게 붕괴하고 아카드 시가 파괴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역사적 서사시이다. 이 신화는 나람신의 생애로부터 수백 년 후에 쓰였으며, 시인의 관점에서 구티족이 어떻게 수메르를 정복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서사시는 파괴되기 전 아카드의 영광을 묘사하는 서두 구절로 시작하여, 나람신이 니푸르에 있는 엔릴 신의 신전(에쿠르)을 약탈함으로써 엔릴 신의 분노를 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엔릴 신은 분노하여 티그리스강 동쪽의 산악 지대에서 구티족을 불러내어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전염병, 기근, 죽음을 가져왔다. 식량 가격은 엄청나게 폭등하여, 서사시에서는 양 한 마리로 곡물 0.5 L 또는 기름 0.5 L, 혹은 약 250 g의 양모밖에 살 수 없었다고 묘사한다.
이러한 파괴를 막기 위해 인안나, 엔키, 신, 닌우르타, 우투, 이쉬쿠르, 누스쿠, 니다바 등 여덟 신들이 수메르의 나머지를 살리기 위해 아카드 시를 파괴하고 저주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이야기는 시인이 아카드의 운명을 묘사하며 신들의 저주를 반영하는 말로 끝을 맺는다.
: 그 전차 길에는 '울부짖는 풀' 외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네,
: 더 나아가, 그 운하 보트 길과 선착장에는,
: 들염소, 해충, 뱀, 산악 전갈 때문에 아무도 다니지 않았네,
: 마음을 달래는 풀이 자라던 평야에는 '눈물의 갈대' 외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네,
: 아카드에는 달콤하게 흐르던 물 대신 쓴물이 흘렀네,
: "나는 그곳에 살리라" 말했던 자는 좋은 거처를 찾지 못했네,
: "나는 아카드에서 누우리라" 말했던 자는 좋은 잠자리를 찾지 못했네.
다른 설화에 따르면, 나람신이 신탁을 무시한 죄로 구티족이 소환되어 36만 명의 병사가 살해당했다고도 전해진다. 이처럼 후대의 이야기는 나람신을 왕조의 쇠퇴를 초래한 인물로 보는 비판적 평가를 담고 있다.
3.2. 대중문화 속 나람신
나람신 왕은 2021년 비디오 게임 하우스 오브 애쉬의 등장인물로, 게임의 주요 줄거리는 그의 개인 신전에서 벌어진다. 게임에서 그는 스스로를 "신왕"이라 칭하는 아카드의 왕이며, 엔릴 신의 신전을 약탈하여 신의 저주를 받은 후 구티족과 전쟁을 벌인다. 나람신의 목소리와 모션 캡처는 사미 카림이 담당했다.
2021년 모바일 가챠 게임 블루 아카이브의 볼륨 F에서는 거대한 부유 양자 슈퍼컴퓨터인 "아드라하시스의 방주"(이 역시 아카드 신화에서 따온 이름)의 가장 안쪽 방이 "나람신의 왕좌"라고 명명되어 있다.
4. 유물
나람신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들은 그의 통치와 업적, 그리고 신성한 지위를 보여준다.
4.1. 나람신의 승전비


나람신의 승전비는 그를 뿔 달린 투구로 상징되는 신적인 왕으로 묘사하며, 그의 병사들과 패배한 적들, 즉 왕 사투니가 이끄는 자그로스 산맥의 룰루비족 위로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비석은 기원전 12세기에 슈트루크-나훈테의 엘람 군대가 시파르에서 가져갈 때 상단 부분이 부서진 것으로 보인다.
이 비석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연속적인 대각선 단계를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전통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작은 파편들에서는 더 전통적인 수평 프레임도 확인된다. 이 비석에는 군사 표준과 판금 갑옷이 처음으로 묘사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 비석은 높이 200 cm, 너비 105 cm이며 분홍빛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다. 리무슈의 라가시에 대한 승전비나 사르곤의 승전비와 비교해 볼 수 있다. 이 비석은 수사에서 자크 드 모르강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Sb 4).
왕의 머리 위에 새겨진 비문은 아카드어이며 매우 단편적이지만,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 "[나라]람신, 위대한, <결손> ..., 시두[르-x] (그리고) 룰루붐 고지대인들이 함께 모여 ... [전]투를 벌였노라. <결손>을 위하여/에게 고지대인[들 ...] <결손> [그들 위에 무덤 언덕을] 쌓았노라, ... (그리고 이 유물을) [신 ...]에게 봉헌하였노라. <결손>"
슈트루크-나훈테는 이 비석에 자신의 비문을 중기 엘람어로 추가했다.
: "나는 할루투슈-인슈시나크의 아들 슈트루크-나훈테, 신 인슈시나크의 사랑받는 종, 안샨과 수사의 왕이며, 왕국을 확장하고, 엘람 땅을 돌보는, 엘람 땅의 군주이니라. 신 인슈시나크가 내게 명령을 내렸을 때, 나는 시파르를 물리쳤노라. 나는 나람신의 비석을 가져와 엘람 땅으로 가져왔노라. 나의 신 인슈시나크에게 이를 제물로 바치노라."

나람신을 묘사하는 유사한 비석 파편(ES 1027, 높이 57 cm, 너비 42 cm, 깊이 20 cm)이 디야르바키르에서 북동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피르 휘세인의 우물에서 발견되었으나, 이것이 원래의 맥락은 아니었다. 이 파편은 미야파르킨(디야르바키르에서 북동쪽으로 약 75 km 떨어진 마을)에서 처음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카드 병사들에게 포로가 끌려가는 모습을 묘사한 설화 석고 비석의 파편은 양식적 특징으로 인해 때때로 나람신(또는 리무슈나 마니슈투슈)의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는 사르곤이나 리무슈, 마니슈투슈의 비석보다 그래픽적으로 더 정교한 것으로 평가된다. 두 개의 파편(IM 55639와 IM 59205)은 이라크 국립 박물관에 있으며, 한 개의 파편(MFA 66.89)은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비석은 매우 단편적이지만, 재구성 시도가 이루어졌다. 자료에 따라 이 파편들은 이라크 와시트의 알-하이 지구 또는 나시리야에서 발굴되었다.
이 비석은 나람신의 킬리키아 또는 아나톨리아 원정의 결과를 나타낸다고 여겨진다. 이는 비석 속 병사들이 운반하는 전리품의 특징, 특히 주 병사가 들고 있는 금속 용기의 디자인이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시대 아나톨리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시사된다.


4.2. 기타 관련 유물
나람신의 이름이 새겨진 인장들은 그의 공식적인 권위를 상징한다.


다양한 형태의 비석과 조각상들은 나람신의 통치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다. 여기에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된 비석과 나람신의 초상화 디테일 등이 포함된다.


나람신의 이름이 새겨진 화병이나 기타 석고 유물들도 발견되었다. 이는 그가 당대에도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1931년 니네베에서 발견된 청동 두상은 전통적으로 사르곤의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그의 손자 나람신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우르에서 출토된 석기 파편, 나람신 이름이 새겨진 금박, 점토 복사본, 섬록암 받침대, 석상 파편 등이 그의 통치를 증명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들이다.




일부 바위 부조는 한때 나람신의 것으로 여겨졌으나, 현재는 그 귀속 여부가 논쟁 중이다. 나람신의 이름이 새겨진 철퇴 머리 또한 발견되어 그의 신성한 권위를 입증한다.


5. 나보나이두스의 발굴


기원전 550년경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왕 나보나이두스는 나람신의 초석 매장 유물을 발굴하여 분석했다. 로버트 실버버그는 나보나이두스를 최초의 고고학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는 태양신 샤마슈와 전사의 여신 아누니투의 신전 초석 매장 유물(둘 다 시파르에 위치)뿐만 아니라, 나람신이 달의 신을 위해 하란에 지은 성소의 발굴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본래의 영광을 되찾도록 복원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나람신의 신전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고고학적 유물의 연대를 측정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비록 그의 추정은 약 1,500년 정도 부정확했지만, 이는 고고학적 연대 측정의 초기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6. 같이 보기
- 아카드 왕 목록
- 메소포타미아의 역사
- 수메르 왕 목록
- 사르곤
- 샤르-칼리-샤리
- 구티족
- 엘람
- 나람신의 승전비
-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하우스 오브 애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