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히시다 슌소(菱田 春草히시다 슌소일본어, 1874년 9월 21일 ~ 1911년 9월 16일)는 메이지 시대의 저명한 일본화 화가이자 오카쿠라 텐신의 제자였다. 본명은 히시다 미요지(菱田 三男治)이며, 요코야마 다이칸, 시모무라 간잔과 함께 메이지 시대 일본화의 혁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전통적인 일본화의 윤곽선을 없애고 색채의 그라데이션을 활용한 '모로타이'(朦朧体, 모호한 양식) 기법을 창안하여 일본화에 새로운 표현 방식을 도입했다. 이 혁신적인 시도는 당시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윤곽선 드로잉과 통합되며 근대 일본화의 전형적인 양식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고양이를 주제로 한 여러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예술적 여정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표현을 모색한 진취적인 시도로 평가받으며, 일본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히시다 슌소는 1874년 나가노현 이이다시의 옛 시나노 이이다 번 사무라이 가문에서 히시다 엔지(菱田鉛治)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2.1. 어린 시절과 가족
그는 이이다 학교(현 이이다 시립 오테마치 초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이후 도쿄로 이주하여 가노파 화가인 유키 마사아키(結城正明, 1834~1904)의 화숙에서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 치요는 조슈번 사무라이이자 육군 소위였던 노가미 무네나오(野上宗直)의 딸로,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자 어머니의 친정인 이이다 번의 이시다 신나이 가문에서 자랐으며, 이 인연으로 슌소와 만나 결혼했다. 그의 형인 히시다 다메키치(菱田為吉)는 도쿄물리학교 교수였고, 동생 히시다 유이조(菱田唯蔵)는 규슈 대학과 도쿄 대학의 교수였다. 슌소의 장남 히시다 하루오(菱田春夫)는 미술 감정가로 활동했다.
2.2. 교육 및 미술 수련
1890년, 슌소는 도쿄 비주쓰 갓코(현 도쿄 예술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요코야마 다이칸과 시모무라 간잔보다 한 학년 후배였다. 그의 스승은 가노파의 후예인 하시모토 가호였다. 슌소는 도쿄 비주쓰 갓코 재학 중 당시 학교장이었던 오카쿠라 텐신과 어니스트 페놀로사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초기 미술학교에서는 페놀로사의 미학, 오카쿠라 텐신의 일본 미술사, 그리고 페놀로사와 오카쿠라 텐신의 스승인 구로카와 마요리(黒川真頼)의 유직고실(有職故実), 와분(和文), 금공(金工), 칠공사(漆工史) 등의 강의가 기초 지식으로 제공되었다.
2.3. 경력 개발 및 일본 미술원과의 관계
1895년 21세의 나이로 졸업한 슌소는 같은 해 가을부터 이듬해까지 제국박물관의 위촉을 받아 교토와 나라의 불교 사찰에 있는 중요한 고화(古画) 모사 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또한 도쿄 비주쓰 갓코의 교사가 되었다. 1898년, 그는 오카쿠라 텐신과 함께 일본 미술원을 설립하는 데 참여했다. 오카쿠라 텐신은 급진적인 일본화 개혁론자로 반대파가 많았고, 1898년 반대파의 음해로 도쿄 미술학교 교장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미술학교 교사였던 슌소, 다이칸, 간잔도 학교를 떠나 재야 미술 단체인 일본 미술원 창설에 동참했다.
2.4. 해외 여행 및 전시회

일본 미술원 설립 후 슌소는 1903년 요코야마 다이칸과 함께 인도로 건너갔다. 1904년에는 오카쿠라 텐신, 요코야마 다이칸과 함께 미국으로 갔으며, 유럽을 거쳐 이듬해 일본으로 귀국했다. 1906년에는 일본 미술원이 이바라키현 기타이바라키시 이즈라(五浦)로 이전함에 따라 그곳으로 거처를 옮겨 다이칸, 간잔 등과 함께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3. 예술 경력 및 화풍
히시다 슌소는 일본화의 전통적인 틀을 깨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모색하며 근대 일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1. 영향 및 예술적 환경
슌소는 도쿄 비주쓰 갓코 재학 시절부터 스승인 하시모토 가호뿐만 아니라 당시 학교장이었던 오카쿠라 텐신과 미국의 동양 미술사학자 어니스트 페놀로사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일본 전통 미술의 재평가와 근대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제시하며 슌소의 예술적 방향 설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오카쿠라 텐신은 일본 미술원 설립을 통해 슌소와 동료들이 자유롭게 새로운 기법을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3.2. '모로타이'와 양식 혁신 발전

슌소는 1900년경부터 요코야마 다이칸 등과 함께 기존 일본화에 필수적이었던 윤곽선을 없앤 무선묘법(無線描法)을 시도했다. 이 실험적인 화법은 당시 대중과 비평가들로부터 '모로타이'(朦朧体모로타이일본어, 모호한 양식)라는 경멸적인 별명으로 불리며 비난을 받았다. '모로타이'는 색채의 그라데이션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일본화의 선묘(線描)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법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양식은 동시대 화가들의 지지를 거의 얻지 못했고 미술 평론가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슌소는 '모로타이'가 아침 안개나 저녁 노을과 같은 장면을 묘사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색채 그라데이션 기법이 특정 모티프에만 한정적으로 좋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초기 '모로타이'에 선묘를 다시 통합하기 시작했다.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이러한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며, 이는 근대 일본화 장르를 특징짓는 전형적인 스타일이 되었고, 전통적인 일본화의 더욱 제한적인 양식들과 차별화되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국자동』(菊慈童)과 『추경(계산홍엽)』(秋景 渓山紅葉) 등이 '모로타이'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1905년 귀국 후에는 린파풍의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3.3. 국내 전시회 참가
1907년에는 정부 주관의 '분텐'(文展분텐일본어, 문부성 미술전람회) 제1회 전람회가 개최되었고, 슌소는 여기에 『현수보살』(賢首菩薩)을 출품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그는 분텐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아 활약했다. 만년의 작품인 『낙엽』(落葉)은 전통적인 병풍 형식을 사용하면서도 공기 원근법(색채의 농담이나 묘사의 소밀함으로 멀리 있는 사물과 가까이 있는 사물을 구분하여 그리는 기법)을 사용하여 일본화의 세계에 합리적인 공간 표현을 실현한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4. 주요 작품
히시다 슌소는 다양한 주제와 기법으로 수많은 명작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 중 다수는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과부와 고아 (寡婦と孤児, 1895년, 도쿄 예술대학 대학미술관 소장): 졸업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태평기』 제13권 "기타야마도노 모반 사건"에서 소재를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 수경 (水鏡, 1897년, 도쿄 예술대학 대학미술관 소장)
- 육가선 (六歌仙, 1899년, 에이세이 분코 소장, 구마모토현립미술관 기탁)
- 추경(계산홍엽) (秋景 渓山紅葉, 1899년, 시마네현립미술관 소장)
- 국자동 (菊慈童, 1900년, 이이다시 미술박물관 소장)
- 설후의 달 (雪後の月, 1902년, 시가현립근대미술관 소장)
- 왕소군 (王昭君, 1902년, 젠포지(善寳寺) 소장,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기탁, 중요문화재)
- 고양이와 매화 (猫梅, 1906년, 아다치 미술관 소장)
- 현수보살 (賢首菩薩, 1907년,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소장, 중요문화재)
- 낙엽 (落葉, 1909년, 에이세이 분코 소장, 구마모토현립미술관 기탁, 중요문화재): 제3회 분텐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당시 도쿄 요요기 근처의 잡목림을 모티프로 삼았으며, 미완성본도 존재한다. 완성본은 일주일에서 열흘 만에 급히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검은 고양이 (黒き猫, 1910년, 에이세이 분코 소장, 구마모토현립미술관 기탁, 중요문화재): 제4회 분텐 출품작으로, 마지막 분텐 출품작이다. 원래는 현대 미인이 우산을 쓰고 오가는 모습을 육곡일쌍 병풍으로 그릴 예정이었으나, 모델인 아내가 빈혈로 쓰러지고 기모노 색조를 맞추지 못해 제작을 포기하고 급히 이 작품을 5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모델이 된 고양이는 이웃의 군고구마 가게에서 빌려온 것이다.
작품명 | 기법 | 형태/점수 | 치수 (세로x가로 cm) | 소장처 | 연대 | 출품 전시회 | 문화재 지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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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산수 | 지본채색 | 1폭 | 118.2 cmx53.8 cm | 도쿄 예술대학 대학미술관 | 1893년 7월경 | 회화과 본과 2년 학년 시업 성적 | ||
가마쿠라 시대 투우도 | 견본채색 | 1폭 | 42.5 cmx57.8 cm | 개인 | 1894년 4월 | 수업 성적물 및 교우회 임시 대회 상패 제2석 | ||
과부와 고아 | 견본채색 | 1폭 | 136 cmx84 cm | 도쿄 예술대학 대학미술관 | 1895년 7월 | 졸업 제작 최우등 | 『태평기』 제13권 "기타야마도노 모반 사건"에서 소재를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 |
고야산 풍경 | 견본채색 | 1폭 | 56 cmx83.3 cm | 공익재단법인 기노시타 미술관 | 1895년 | |||
사계산수 | 지본채색 | 4폭 대 | 46.5 cmx69.3 cm | 도야마현립근대미술관 | 1896년 9월 | 제1회 일본회화협회 회화공진회 동패 제4석 | ||
염화미소 | 견본채색 | 액자 1면 | 144.5 cmx271.5 cm | 도쿄 국립박물관 | 1897년 3월 | 제2회 일본회화협회 회화공진회 동패 제2석 | ||
수경 | 견본채색 | 1폭 | 257.8 cmx170.8 cm | 도쿄 예술대학 대학미술관 | 1897년 10월 | 제3회 일본회화협회 회화공진회 동패 제7석 | ||
무사시노 | 견본채색 | 액자 1면 | 110 cmx193 cm | 도야마현립근대미술관 | 1898년 10월 | 제5회 일본회화협회·제1회 일본미술원 연합회화공진회 동패 제2석 | ||
한림 | 지본수묵 | 육곡 일척 | 151.5 cmx303.3 cm | 레이유카이 묘이치 기념관 | 1898년 10월 | 제5회 일본회화협회·제1회 일본미술원 연합회화공진회 | ||
월하호 | 지본채색 | 1폭 | 135 cmx65.5 cm | 미즈노 미술관 | 1899년 4월 | 일본미술원 미술공예공진회 | ||
육가선 | 금지채색 | 이곡 일쌍 | 에이세이 분코 (구마모토현립미술관 기탁) | 1899년 4월 | 일본미술원 미술공예공진회 | |||
추경(계산홍엽) | 견본채색 | 1폭 | 163.9 cmx97.4 cm | 시마네현립미술관 | 1899년 10월 | 제7회 일본회화협회·제2회 일본미술원 연합회화공진회 동패 제3석 | ||
추야 | 견본채색 | 1폭 | 112.8 cmx50 cm | 도야마 기념관 | 1899년 10월 | 제7회 일본회화협회·제2회 일본미술원 연합회화공진회 | ||
이나다히메 | 견본채색 | 1폭 | 121.8 cmx53 cm | 미즈노 미술관 | 1899년 10월 | 제7회 일본회화협회·제2회 일본미술원 연합회화공진회 | ||
국자동 | 견본채색 | 1폭 | 181 cmx110.7 cm | 이이다시 미술박물관 | 1900년 4월 | 제8회 일본회화협회·제3회 일본미술원 연합회화공진회 | ||
후세히메(도키와즈) | 견본채색 | 1폭 | 146.6 cmx67.5 cm | 나가노현 시나노 미술관 | 1900년 4월 | 제8회 일본회화협회·제3회 일본미술원 연합회화공진회 | ||
호상조선 | 지본수묵담채 | 이곡 일척 | 148.9 cmx153.5 cm | 사이타마현립근대미술관 | 1900년 | |||
조귀 | 견본채색 | 1폭 | 144.3 cmx79.3 cm | 야마타네 미술관 | 1901년 3월 | 제10회 일본회화협회·제5회 일본미술원 연합회화공진회 은장 제5석 | ||
소리결별 | 견본채색 | 액자 1면 | 149 cmx97.5 cm | 개인 | 1901년 3월 | 제10회 일본회화협회·제5회 일본미술원 연합회화공진회 | ||
모색 | 견본채색 | 1폭 | 140.8 cmx81.8 cm | 교토 국립박물관 | 1901년 4월 | 일본미술원 교토 회화전람회 | ||
철쭉쌍구(온려) | 견본채색 | 1폭 | 130 cmx50 cm | 후쿠이현립미술관 | 1901년 5월 | 제6회 회화호조회 1등 | ||
폭포(유동) | 견본채색 | 1폭 | 110.2 cmx41.9 cm | 히카루 미술관 | 1901년 6월 | 제7회 회화호조회 1등 | ||
라후선 | 견본채색 | 1폭 | 124.5 cmx69.5 cm | 나가노현 시나노 미술관 | 1901년 | |||
월야비로(육리) | 견본채색 | 1폭 | 119.7 cmx50.4 cm | 하야시바라 미술관 | 1901년 12월 | 제12회 회화호조회 2등 | ||
고사망악(장중) | 견본수묵 | 1폭 | 103.4 cmx47.9 cm | 히로시마현립미술관 | 1902년 1월 | 제12회 회화호조회 1등 | ||
해안노도(웅쾌) | 견본채색 | 1폭 | 121.6 cmx49.8 cm | 나가노현 시나노 미술관 | 1902년 2월 | 제14회 회화호조회 1등 | ||
왕소군 | 견본채색 | 액자 1면 | 168 cmx370 cm | 야마가타 젠포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기탁) | 1902년 3월 | 제12회 일본회화협회·제7회 일본미술원 연합회화공진회 동패 제1석 | 중요문화재 | |
영소녀 | 견본채색 | 1폭 | 119.3 cmx49 cm | 이이다시 미술박물관 | 1902년 4월 | 제16회 회화호평회 2등 | 이이다시 유형문화재 | 과제 "단연" |
추초 | 지본채색 | 이곡 일척 | 161.1 cmx183.7 cm | 미즈노 미술관 | 1902년 | |||
설후의 달 | 견본채색 | 1폭 | 113 cmx49.1 cm | 시가현립근대미술관 | 1902년 | |||
변재천 | 견본채색 | 1폭 | 50 cmx40 cm | 법인 | 1903년 | 인도 체류 시기 작품 | ||
사슴 | 견본채색 | 1폭 | 167.1 cmx84 cm | 이이다시 미술박물관 | 1903년 10월 | 제15회 일본회화협회·제10회 일본회화협회 연합회화공진회 은장 제6석 | 이이다시 유형문화재 | |
석양 | 견본채색 | 액자 1면 | 124.1 cmx49.4 cm | 법인 | 1903년 10월 | 제15회 일본회화협회·제10회 일본회화협회 연합회화공진회 | ||
비(산로) | 견본채색 | 액자 1면 | 123.9 cmx49.7 cm | 하세가와 마치코 미술관 | 1903년 10월 | 제15회 일본회화협회·제10회 일본회화협회 연합회화공진회 | 동 전시회에 《바람·비》라는 대폭으로 출품되었으나, 현재는 《비(산로)》만 남아있다. | |
매화하백묘 | 견본채색 | 1폭 | 후쿠다 미술관 | 1903년경 | ||||
춘정 | 견본채색 | 1폭 | 후쿠다 미술관 | 1897-1906년경 (메이지 30년대) | ||||
밤 벚꽃 | 견본채색 | 1폭 | 72.9 cmx49.5 cm | 이이다시 미술박물관 | 1904년 | 이이다시 유형문화재 | ||
저녁 숲 | 견본채색 | 1폭 | 44.5 cmx60 cm | 이이다시 미술박물관 | 1904년 | 이이다시 유형문화재 | ||
귀초 | 견본채색 | 1폭 | 49.5 cmx70.3 cm | 이이다시 미술박물관 | 1906년 | 이이다시 유형문화재 | ||
현수보살 | 견본채색 | 1폭 | 185.7 cmx99.5 cm |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 1907년 10월 | 제1회 분텐 2등 제3석 | 중요문화재 | |
봉래산 | 견본채색 | 1폭 | 107.7 cmx41.7 cm | 오카다 미술관 | 20세기 초 | |||
엉겅퀴에 비둘기 | 견본채색 | 1폭 | 123.9 cmx40.6 cm | 오카다 미술관 | 20세기 초 | |||
해월 | 견본채색 | 1폭 | 118 cmx50 cm | 오카다 미술관 | 1907년경 | |||
욱광요요 | 견본채색 | 1폭 | 116.8 cmx50.3 cm | 오카다 미술관 | 1907년경 | |||
송간의 달 | 견본채색 | 1폭 | 117 cmx49.3 cm | 오카다 미술관 | 20세기 초 | |||
폭포도 | 견본채색 | 1폭 | 112.3 cmx48.2 cm | 오카다 미술관 | 20세기 초 | |||
임화정 | 견본채색 | 1폭 | 116 cmx50.5 cm | 이바라키현 근대미술관 | 1908년 3월 | 일본미술원 소전람회 | ||
오동나무에 소금 | 견본채색 | 1폭 | 114.9 cmx49.8 cm | 미즈노 미술관 | 1908년 3월 | 일본미술원 소전람회 | ||
단풍산수 | 견본채색 | 1폭 | 120 cmx50.7 cm | 아이치현 미술관 | 1908년 11월 | 후원자였던 아키모토 샤테이(秋元洒汀)의 옛 소장품 | ||
추목립 | 견본채색 | 1폭 | 119.1 cmx50.5 cm |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 1909년 2월 | 제2회 국화옥성회 | ||
낙엽 | 견본채색 | 이곡 일척 | 152 cmx164 cm | 시가현립근대미술관 | 1909년 | 낙엽 연작 중, 앞서 언급된 《추목립》과 공통성이 강하여 첫 작품으로 추정된다. | ||
낙엽 (미완) | 지본채색 | 육곡 일쌍 | 149.7 cmx360.2 cm (각) | 개인 | 1909년 | 흙 언덕이 특징. 슌소는 이 작품 제작을 급히 중단하고 아래의 분텐 출품작에 착수했다. | ||
낙엽 | 지본채색 | 육곡 일쌍 | 157 cmx362 cm (각) | 에이세이 분코 (구마모토현립미술관 기탁) | 1909년 10월 | 제3회 분텐 2등 제1석 | 중요문화재 | 미완성본 제작 중단 후 일주일에서 열흘 만에 완성했다. 지평선은 암시되어 있지만 흐릿하게 처리되었고, 나무들은 안쪽으로 갈수록 대비가 줄어들며 배경에 녹아드는 환상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
낙엽 | 견본채색 | 이곡 일쌍 | 152.8 cmx151.8 cm (각) | 이바라키현 근대미술관 | 1909년 | |||
낙엽 | 지본채색 | 육곡 일쌍 | 154.2 cmx354.3 cm (각) | 후쿠이현립미술관 | 1909년 | |||
고행 | 견본채색 | 1폭 | 130.6 cmx50.8 cm | 히메지 시립미술관 | 1909년 | |||
설중의 사슴 | 견본채색 | 1폭 | 127 cmx56 cm | 요시노 석고 주식회사 | 1909년경 | |||
새벽 바다 | 견본채색 | 1폭 | 116.4 cmx49.4 cm | 요시노 석고 주식회사 | 제작 연도 불명 | |||
사계산수 | 견본채색 | 1권 | 40.2 cmx945.6 cm |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 1910년 | |||
참새와 까마귀 | 지본채색 | 육곡 일쌍 | 159 cmx357 cm (각) |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 1910년 3월 | 다쓰미화회 제10회 회화전람회 2등 은상 제1석 | ||
선녀(영소녀) | 견본채색 | 1폭 | 109.4 cmx40.5 cm | 개인 | 1910년 7월 | 우에무라 쇼엔으로부터 "당인물(唐人物)"로 의뢰받아 그린 그림. 1910년 5월 27일 수주, 7월 26일 완성. | ||
검은 고양이 | 지본채색 | 육곡 일쌍 | 116.7 cmx259 cm | 레이유카이 묘이치 기념관 | 1910년 | |||
검은 고양이 | 견본채색 | 1폭 | 151.1 cmx51 cm | 에이세이 분코 (구마모토현립미술관 기탁) | 1910년 | 제4회 분텐 | 중요문화재 | 마지막 분텐 출품작. |
춘추 | 견본채색 | 쌍폭 | 144.5 cmx71.7 cm (각) | 이이다시 미술박물관 | 1910년 | 이이다시 유형문화재 | ||
고양이에 까마귀 | 지본금지채색 | 이곡 일쌍 | 162 cmx162 cm (각) | 이바라키현 근대미술관 | 1910년 | |||
단풍에 소금 | 견본채색 | 1폭 | 115.8 cmx49.6 cm | 오카다 미술관 | 1910년경 | |||
송죽매도 | 지본은지채색 | 이곡 일쌍 | 146 cmx146 cm (각) | 개인 | 1910년경 | |||
소나무와 대나무 | 은지수묵담채 | 이곡 일쌍 | 174 cmx176 cm (각) | 법인 | 제작 연도 불명 | |||
초봄 | 견본채색 | 육곡 일쌍 | 172.7 cmx307.2 cm (각) | 개인 | 1911년 3월 | 제11회 다쓰미화회 회화전람회 | ||
매화에 참새 | 견본채색 | 1폭 | 120.2 cmx50.4 cm |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 1911년 3월 | 족자 그림으로는 마지막 작품. 슌소는 이 해 2월에 병이 재발하여 제대로 붓을 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 |
5. 사생활
히시다 슌소의 아내 치요는 나가노현 이이다 출신으로, 슌소는 그녀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그의 가족 관계는 미술계뿐만 아니라 학계에도 걸쳐 있었다. 형 히시다 다메키치는 도쿄물리학교 교수였으며, 동생 히시다 유이조는 규슈 제국대학과 도쿄 제국대학의 교수였다. 장남 히시다 하루오는 미술 감정가로 활동하며 아버지의 예술적 유산을 이어받는 데 기여했다. 슌소는 가족에게 보낸 서신들이 이이다시 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가족과의 유대가 깊었다.
6. 사망

슌소는 말년에 신장병으로 고통받았으며, 특히 망막염으로 인한 시력 저하를 겪었다. 실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병이 잠시 호전될 때마다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1911년, 그는 만 37세 생일을 얼마 앞두고 신장 질환(신장염)으로 사망했다.
7. 유산 및 평가
히시다 슌소는 근대 일본화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7.1. 근대 일본화에 미친 영향
슌소는 전통적인 일본화의 세계에 다양한 종류의 참신한 기법을 도입하여 근대 일본화의 발전에 힘썼다. 특히 윤곽선을 없앤 '모로타이' 기법은 당시에는 비판을 받았으나, 이후 전통적인 선묘와 결합되며 일본화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공기 원근법 등 서양화의 요소를 일본화에 접목하여 합리적인 공간 표현을 시도하는 등, 일본화의 근대적 변혁을 이끌었다. 오카쿠라 텐신과 요코야마 다이칸 모두 그의 이른 죽음을 비통해했다.
7.2. 동시대 및 후대 평가
요코야마 다이칸은 만년에 이르러 자신이 일본화의 대가로 칭찬받을 때마다 "슌소야말로 진정한 천재다. 만약 그 녀석(슌소)이 살아있었다면 나보다 훨씬 더 잘 그렸을 것"이라고 말하며 슌소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슌소의 낙관과 인장은 그의 화풍 변화와 시기가 일치하며, 그의 투철하고 냉철한 인품과 성격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4년에는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미술관 특별 갤러리에서 그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8. 헌사 및 기념물
q=Iida City, Nagano Prefecture|position=right
나가노현 이이다시 나카노초에 위치한 히시다 슌소의 탄생지는 공원으로 정비되어 2015년 3월 29일 '히시다 슌소 탄생지 공원'으로 개원했다. 공원 내에는 슌소 생가의 툇마루를 재현한 지붕 있는 벤치와 그가 즐겨 그렸던 초화류가 심어진 정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주민 조직인 '슌소 공원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유지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9. 우표
일본 정부는 히시다 슌소의 작품이나 그 자신을 특징으로 하는 기념 우표를 발행하여 그의 업적을 기렸다.
- 1951년: 문화인 시리즈의 일환으로 히시다 슌소 자신을 주제로 한 기념 우표가 발행되었다.
- 1979년: 근대 미술 시리즈의 일환으로 그의 대표작 『검은 고양이』가 기념 우표의 소재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