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년기 및 아마추어 경력
1.1. 유년기와 교육
히데노리 구라모토는 1976년 5월 9일 일본기후현하시마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두 형 또한 기후현립 기후상업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했으며, 그는 고등학생 시절 '쿠라모토 삼형제의 셋째'로 프로 스카우트들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첫째 형인 쿠라모토 마사요시는 메이조 대학을 거쳐 사회인 야구팀 이코(一光)에 입단하여 오랜 기간 에이스로 활약했다. 둘째 형인 쿠라모토 타카노부는 호세이 대학 야구부에서 야구를 계속한 후 모델로 전향했다.
히데노리 구라모토 본인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야구를 시작했지만, 스파르타식 지도를 싫어하여 항상 야구를 그만두고 싶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강팀이었던 모교가 고시엔에 진출하는 것을 계기로 야구를 그만둘 예정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현 예선 3회전에서 패퇴하면서 그만둘 기회를 잃었고 야구를 계속하게 되었다. 그는 1998년 메이조 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편, 기후현립 기후상업고등학교 경식 야구부 OB회 명부에는 그의 이름이 셋타 히데노리(説田 英智셋타 히데노리일본어)로 기재되어 있기도 하다.
1.2. 아마추어 야구 경력
기후현립 기후상업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후보 투수에서 중견수 레귤러 선수로 성장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메이조 대학에 진학하여 3번 타자 겸 중견수로 활약했으며, 투수를 겸하기도 했다. 1998년에는 아이치 대학 야구 리그에서 춘계 리그와 추계 리그 모두 외야수 부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아이치 대학 리그에서 총 93경기에 출장하여 310타수 88안타, 타율 0.284, 2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그는 도요타 자동차로부터 입사 내정을 받았었지만, 1998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주니치 드래곤즈로부터 4위 지명을 받고 입단하며 프로 야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2. 프로 선수 경력
2.1. 데뷔 및 초기 활동
프로 입단 첫 해인 1999년과 이듬해인 2000년에는 1군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다. 입단 당시부터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높이 평가받았으며, 야마다 히사시가 감독이었던 시기(2002년 ~ 2003년 도중)에는 투수와 외야수 겸업 안이 나오기도 했다. 2001년에 비로소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출장했으며, 2002년부터는 1군에서의 출전 기회를 점차 늘려갔다.
2.2. 전성기 및 골든 글러브 수상
2004년부터 그의 등록명은 히데노리(英智히데노리일본어)로 변경되었다. 그해 감독으로 취임한 오치아이 히로미쓰가 내세운 '오레류(俺流) 야구' 중 하나인 '특기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는 철학을 상징하는 선수로, 개막부터 1군의 대주자 및 수비 요원으로 활약했다. 특히 6월 27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는 카츠라기 이쿠로가 친 희생 플라이로 보였던 타구를 강한 송구로 3루 주자 히야마 신지로를 홈에서 아웃시키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수비에서의 활약으로 히어로 인터뷰를 하는 이례적인 경험을 했다. 이 플레이는 히데노리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본인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어깨에 불안감이 있었기에 신중하게 던졌고, 그것이 오히려 좋은 송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이노우에 카즈키와의 병용 체제 속에서 점차 출전 기회가 늘어났고, 후쿠도메 고스케가 8월 아테네 올림픽 출전을 위해 결장하고 9월에는 사구로 인한 골절로 전열에서 이탈하자 우익수로 정착했다. 그해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히데노리는 골든 글러브상을 '미토 고몬의 인롱(도장)과 같은, 자신에게는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좌익수 히데노리, 중견수 알렉스, 우익수 후쿠도메로 이뤄진 견고한 수비 라인으로 단숨에 유명해졌다. 그는 "후쿠도메, 알렉스와 함께 세 명이 수비 위치에 있을 때 자랑스러웠다. 메이저리거 출신 강견의 알렉스의 일급품 송구를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5년에는 주루 중 어깨를 강하게 부딪혀 부상당한 영향으로 타율 0.1에도 미치지 못하는 타격 부진에 빠졌다. 또한 대주자 전문 선수였던 사와이 미치히사가 시즌 후반부터 등록이 말소되면서 어쩔 수 없이 대주자로 기용되어 수비 위치 때문에 도중에 교체되는 등 기용이 일정치 않았다. 8월 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의 경기에서는 1점 뒤진 최종회, 1사 만루 찬스에서 3루 주자였던 히데노리는 다츠나미 카즈요시의 짧은 우익수 플라이에 망설임 없이 홈으로 돌진했다. 헤드 슬라이딩으로 포수 아이카와 료지의 태그를 피해 동점 홈인을 성공시켰고, 이어서 후쿠도메의 역전 만루 홈런으로 이어졌다. 히데노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우익수 플라이였기 때문에 포수의 사각지대를 공략하여 약간 라인 안쪽으로 달려 공포심을 주고, 포수의 블로킹 각도가 3루 방향으로 향하도록 페인트를 준 후 약간 크게 돌면서 피하며 헤드 슬라이딩했다. 세이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기 후 오치아이 감독은 "히데노리는 프로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006년 5월 10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경기에서는 연장 11회 초 오카지마 히데키의 폭투로 2루에서 여유롭게 홈인하는 주루를 선보였다. 이 해에는 124경기에 출장했다.
2.3. 말년과 은퇴
2007년에는 이병규의 영입으로 시즌 초반에는 주로 대타, 대주자, 수비 요원으로 기용되었지만, 이병규의 부진과 후쿠도메의 전열 이탈, 그리고 본인의 타격 호조로 중반 이후에는 선발 출장이 증가했다. 그러나 9월 2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근육 파열을 일으켜 남은 시즌을 뛰지 못했다. 오치아이 감독은 히데노리의 이탈이 가장 뼈아팠다고 말했다. 시즌 오프에는 등번호가 57번에서 24번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오치아이 감독이 "57번은 부상이 잦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변경한 것으로, 새로운 등번호로 심기일전하라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5와 7이 붙어있던 2005년과 2007년에는 부상을 당한 바 있다.
2008년에도 주로 대주자와 수비 요원으로 기용되었지만, 교류전에 들어서면서 레귤러였던 모리노 마사히코나 이병규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선발 출장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모리노와 이병규가 복귀한 후에는 2군으로 내려가는 경험도 하는 등 77경기 출장에 그쳤다. 2009년에는 후지이 아츠시나 신인 노모토 케이 등의 성장으로 개막을 2군에서 맞이했지만, 4월 21일 1군에 등록되어 당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6번 우익수로 첫 출장을 기록했다.
2010년 11월 29일 계약 갱신에서는 그해 타격 성적이 0.220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루와 수비 등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구단이 평가하여 30.00 만 JPY가 인상되었다. 그러나 본인은 기뻐하기는커녕 협상 자리에서 "오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때 "다음 시즌에는 히어로 인터뷰에 서고 싶다"는 결의를 밝혔다.
2011년에는 젊은 외야수들의 성장으로 출전 기회가 감소했다. 수비 요원이나 대주자 출장이 주가 되어 타석에 설 기회도 적었고, 타율도 0.100으로 부진했다. 그러나 8월 6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의 나고야 돔 경기에서 역전 스퀴즈를 성공시키며 히어로 인터뷰에 서서 전년도 오프 시즌 계약 갱신 때 밝힌 결의를 달성했다.
2012년에도 출전 기회가 적어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10월 5일 나고야 돔에서 열린 시즌 최종전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경기에 도중 출장하여 3타석 모두 범타에 그쳤지만, 경기 후 은퇴 세리머니에서는 홈 플레이트에서 외야를 향해 원투를 선보였다. 던진 공은 약 110 m 떨어진 우익 폴에 직격했으며, 관중들의 앙코르 요청에 따라 두 번째 투구에서는 우익 스탠드로 공을 던져 넣었다. 같은 해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6차전)에서 9회 초 대주자로 출장하여 현역 마지막 경기를 치렀으며, 팀의 2012년 마지막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3. 은퇴 후 활동
3.1. 코치 경력
2013년부터 주니치 드래곤즈 2군의 외야 수비 주루 코치로 취임했다. 이때도 등록명은 계속 '히데노리'를 사용했다.
2016년에는 1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로 전환하여 공격 시에는 3루 베이스 코치도 담당했다. 11월 25일부터 타이완에서 개최된 2016 아시아 윈터 베이스볼 리그에서는 NPB 웨스턴 선발팀의 외야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았다.
2017년부터는 다시 2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로 복귀했다. 전년에 이어 11월 25일부터 타이완에서 개최된 2017 아시아 윈터 베이스볼 리그에서도 NPB 웨스턴 선발팀의 외야 수비 주루 코치를 역임했다.
2020년부터는 다시 1군 외야 수비 주루 코치로 활동했다. 2021년 가을 캠프부터는 육성 야수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2022년 10월 13일, 해당 시즌을 끝으로 주니치 드래곤즈를 퇴단할 것이 발표되었다.
3.2. 기타 활동
2013년 12월 21일에는 패션 브랜드 'eichi''를 설립하여 오프 시즌 한정으로 패션 디자이너로도 활동했다.
2023년부터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J SPORTS(CBC TV 제작분)의 2023년 5월 17일 중니치 드래곤즈 대 한신 타이거스 전에서 첫 출연을 했다. 또한 CBC TV와 CBC 라디오에서도 야구 해설가(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한다.
2024년 7월 25일, 주니치 OB전 'DRAGONS CLASSIC LEGEND GAME 2024'에 출전하여 초대 MVP를 획득했다.
4. 선수로서의 특징
히데노리 구라모토는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갖춘, 뛰어난 수비와 주루를 선보이는 전문가였다. 압도적인 강견을 자랑하며 수많은 주자를 아웃시켜 다른 구단들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2002년 12월에 열린 프로 야구 올스타 슈퍼 배틀 '원투 일본 제일 결정전'에서는 123 m의 원투 거리를 기록하며 우승했다. 하지만 그는 1년 내내 풀 시즌을 치를 체력이 유지되지 않는 것을 과제로 꼽았으며, 이것이 그가 레귤러로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던 원인이 되기도 했다.
5. 개인 생활 및 일화
히데노리 구라모토는 어린 시절부터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의 팬이었으며, 오치아이가 주니치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이 바로 히데노리였다고 한다.
나가시마 시게오가 TV에서 그의 이름을 '후지모토'로 잘못 읽으면서 한때 위키백과에 '후지모토 히데노리'로 기재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의 타석 등장곡은 평소에는 더 하이로우즈의 '일요일로부터의 사자'였고, 찬스 시에는 RC 석세션의 '비 갠 밤하늘에'를 사용했다. 이전에는 LINDBERG의 'BELIEVE IN LOVE'를 사용했으며, 주자가 없을 때는 이노우에 요스이의 'Make-up Shadow'를 사용했다.
주니치 드래곤즈의 마스코트인 도아라와는 사이가 매우 좋았으며, 주니치 드래곤즈 공식 블로그에는 그와 도아라가 대화하는 장면의 사진이 종종 게재되기도 했다. 선수 중에서는 동갑내기인 오다 코헤이, 그리고 동기 입단인 오가사와라 다카시와 매우 친했다. 본인 말로는 "구장에서 오다의 얼굴을 볼 때가 가장 안심된다"고 했다. 오다는 히데노리의 은퇴 경기에서 수비에 들어가기 전 캐치볼 상대를 눈물을 흘리며 자처했고, 첫 원투 시 우익 폴에 직격하여 그라운드 안으로 튀어 나온 공을 회수하러 달려가기도 했다.
6. 상세 정보
6.1. 수상 내역
- 골든 글러브상: 1회 (2004년)
- JA 전농 Go・Go상 호포상(好捕賞): 4회 (2004년 ~ 2006년, 2008년)
6.2. 프로 경력 기록
6.2.1. 연도별 타격 성적
연도 | 구단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 실패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 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2001 | 주니치 | 15 | 48 | 45 | 7 | 14 | 1 | 0 | 1 | 18 | 3 | 0 | 0 | 2 | 0 | 0 | 0 | 3 | 0 | 0 | 7 | 2 | .311 | .354 | .400 | .754 |
2002 | 72 | 123 | 115 | 17 | 31 | 5 | 1 | 2 | 44 | 13 | 2 | 2 | 3 | 1 | 4 | 0 | 0 | 28 | 1 | .270 | .292 | .383 | .674 | |||
2003 | 61 | 36 | 33 | 11 | 9 | 1 | 0 | 0 | 10 | 2 | 3 | 2 | 0 | 0 | 3 | 0 | 0 | 10 | 1 | .273 | .333 | .303 | .636 | |||
2004 | 107 | 221 | 201 | 33 | 54 | 10 | 2 | 0 | 68 | 19 | 11 | 3 | 4 | 0 | 14 | 0 | 2 | 46 | 5 | .269 | .323 | .338 | .661 | |||
2005 | 81 | 61 | 52 | 14 | 4 | 0 | 0 | 0 | 4 | 5 | 3 | 1 | 3 | 1 | 4 | 0 | 1 | 12 | 1 | .077 | .155 | .077 | .232 | |||
2006 | 124 | 288 | 256 | 30 | 55 | 8 | 1 | 1 | 68 | 27 | 4 | 3 | 22 | 2 | 5 | 0 | 3 | 49 | 1 | .215 | .237 | .266 | .502 | |||
2007 | 99 | 219 | 198 | 27 | 55 | 8 | 1 | 4 | 77 | 19 | 8 | 2 | 7 | 1 | 6 | 0 | 7 | 33 | 4 | .278 | .321 | .389 | .710 | |||
2008 | 77 | 77 | 70 | 10 | 15 | 2 | 1 | 1 | 22 | 7 | 4 | 0 | 5 | 0 | 2 | 0 | 0 | 23 | 3 | .214 | .236 | .314 | .550 | |||
2009 | 71 | 128 | 121 | 15 | 26 | 2 | 0 | 1 | 31 | 10 | 4 | 1 | 4 | 1 | 2 | 0 | 0 | 20 | 4 | .215 | .226 | .256 | .482 | |||
2010 | 68 | 147 | 127 | 15 | 28 | 3 | 1 | 1 | 36 | 9 | 8 | 0 | 10 | 1 | 6 | 0 | 3 | 20 | 3 | .220 | .270 | .283 | .553 | |||
2011 | 56 | 24 | 20 | 9 | 2 | 0 | 0 | 0 | 2 | 1 | 2 | 0 | 2 | 0 | 2 | 0 | 0 | 3 | 0 | .100 | .182 | .100 | .282 | |||
2012 | 53 | 24 | 19 | 5 | 4 | 0 | 0 | 0 | 4 | 0 | 1 | 1 | 3 | 0 | 1 | 0 | 1 | 4 | 0 | .211 | .286 | .211 | .496 | |||
통산: 12년 | 884 | 1396 | 1257 | 193 | 297 | 40 | 7 | 11 | 384 | 115 | 50 | 17 | 63 | 7 | 52 | 0 | 17 | 255 | 25 | .236 | .275 | .305 | .580 |
- 볼드체 연도는 골든 글러브상 수상 연도를 의미한다.
6.2.2. 연도별 수비 성적
연도 | 구단 | 외야 | |||||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2001 | 주니치 | 15 | 24 | 1 | 0 | 0 | 1.000 |
2002 | 64 | 63 | 3 | 1 | 1 | .985 | |
2003 | 23 | 16 | 0 | 1 | 0 | .941 | |
2004 | 102 | 124 | 6 | 0 | 2 | 1.000 | |
2005 | 72 | 50 | 0 | 0 | 0 | 1.000 | |
2006 | 120 | 154 | 3 | 1 | 1 | .994 | |
2007 | 86 | 102 | 6 | 1 | 1 | .991 | |
2008 | 69 | 39 | 1 | 1 | 1 | .976 | |
2009 | 71 | 82 | 0 | 1 | 0 | .988 | |
2010 | 64 | 75 | 0 | 0 | 0 | 1.000 | |
2011 | 50 | 20 | 0 | 0 | 0 | 1.000 | |
2012 | 46 | 16 | 0 | 0 | 0 | 1.000 | |
통산 | 782 | 765 | 20 | 6 | 6 | .992 |
- 볼드체 연도는 골든 글러브상 수상 연도를 의미한다.
6.2.3. 첫 기록
- 첫 출장: 2001년 9월 13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3차전 (나고야 돔), 7회말 이노우에 카즈키의 대주자로 출장
- 첫 선발 출장: 2001년 9월 20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6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7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 2001년 9월 24일, 대 한신 타이거스 26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2회초 그레그 핸셀로부터 중전 안타
- 첫 타점: 2001년 9월 29일, 대 한신 타이거스 27차전 (나고야 돔), 7회말 다테 마사시로부터 우익선 적시 2루타
- 첫 홈런: 2001년 10월 5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7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9회초 쿠로다 히로키로부터 좌중간 2점 홈런
- 첫 도루: 2002년 6월 27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3차전 (나고야 돔), 8회말 2루 도루 (투수: 타마키 시게오, 포수: 니시야마 히데지)
6.3. 등번호 및 등록명
6.3.1. 등번호
- 57 (1999년 ~ 2007년)
- 24 (2008년 ~ 2012년)
- 97 (2013년)
- 89 (2014년 ~ 2022년)
6.3.2. 등록명
- 쿠라모토 히데노리(蔵本 英智くらもと ひでのり일본어, 1999년 ~ 2003년)
- 히데노리(英智ひでのり일본어, 2004년 ~ )
6.4. 대표팀 경력
- 2016년 아시아 윈터 베이스볼 리그: NPB 웨스턴 선발 (외야 수비 주루 코치)
- 2017년 아시아 윈터 베이스볼 리그: NPB 웨스턴 선발 (외야 수비 주루 코치)
7. 저서
- 『히데노리 스타일 48』(英智スタイル48일본어)(2013년 7월 1일 발매, 베이스볼 매거진사 발행)
8. 같이 보기
- 주니치 드래곤즈의 선수 목록
- 형제 스포츠 선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