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로이스 그레이시(Royce Gracie포르투갈어, 1966년 12월 12일 출생)는 브라질의 은퇴한 종합격투기 선수이자 브라질리언 주짓수 그랜드마스터 엘리오 그레이시의 아들이다. 그는 종합격투기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특히 UFC 1, UFC 2, UFC 4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체격이 훨씬 크고 무거운 상대들을 상대로 자신의 주짓수 기술을 활용해 승리함으로써, 그는 그레이시 주짓수의 우수성을 증명하고 그래플링과 그라운드 파이팅 중심의 현대 종합격투기 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레이시는 UFC 명예의 전당에 2003년 초대 헌액자로 이름을 올렸으며, 2016년에는 국제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PRIDE 파이팅 챔피언십, K-1의 MMA 이벤트, 그리고 벨라토르 MMA에서도 활동했다.
2. 초기 생애
로이스 그레이시는 1966년 12월 1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그는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그랜드마스터이자 창시자 중 한 명인 엘리오 그레이시의 아홉 아들 중 한 명으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무술을 배웠다. 8세 때 첫 시합에 참가했으며, 14세부터 주짓수 수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7세가 되던 해, 로이스는 아버지 엘리오에게 검은 띠를 수여받았다. 몇 달 후, 로이스는 형인 로일러 그레이시와 히우쿠송 그레이시와 함께 1978년 먼저 이주하여 그레이시 아카데미를 설립한 형 호리온 그레이시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토런스로 이사했다.
미국에 정착한 그레이시 형제들은 가문의 전통인 "그레이시 챌린지"를 이어갔다. 이는 그레이시 주짓수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무술가들에게 체육관에서 규칙 없는 풀컨택트 경기를 제안하는 것이었다. 호리온 그레이시는 그레이시 챌린지 경기 장면을 편집하여 "그레이시 인 액션"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만들었고, 이 중 일부 영상에는 로이스의 경기가 포함되었다. 이 "그레이시 인 액션" 테이프는 아트 데이비에게 UFC를 창설하는 영감을 주었다.
3. 종합격투기 경력
로이스 그레이시는 종합격투기 선수로서 UFC, 프라이드 파이팅 챔피언십, K-1, 벨라토르 MMA 등 여러 단체에서 활약하며 자신의 독자적인 주짓수 스타일을 선보였다. 특히 초기 UFC에서의 성공은 그의 경력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3.1. 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 (UFC)
로이스 그레이시는 1993년 형 호리온 그레이시와 사업가 아트 데이비, 그리고 세마포어 엔터테인먼트 그룹(SEG)이 설립한 UFC에 출전하며 종합격투기 경력을 시작했다. 이 대회는 최소한의 규칙만을 가진 8인 무제한급 토너먼트로, 다양한 무술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가장 효과적인 격투 스타일을 찾기 위해 겨루는 것을 목표로 했다. 데이비와 SEG는 "그레이시 인 액션" 테이프에서 본 것과 유사한 폭력적이고 흥미로운 발리투도 경기를 원했던 반면, 호리온은 그레이시 주짓수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관심이 있었다. 호리온은 로이스의 가늘고 작은 체구가 주짓수를 사용하면 작은 사람이 어떻게 큰 상대를 이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그를 대표 선수로 선정했다.
3.1.1. 초기 UFC 활동 및 토너먼트 우승 (UFC 1, 2, 3, 4)
그레이시는 이제는 상징이 된 그의 주짓수 도복을 입고 UFC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그의 첫 경기에서 그는 노련한 복서 아트 지머슨을 꺾었다. 그는 바리아나(모로테 가리 또는 더블 레그 테이크다운) 기술을 사용하여 상대를 그라운드로 넘어뜨린 후 마운트 포지션을 잡았다. 한쪽 팔만 자유로운 상태에서 지머슨은 패배를 인정했다.
준결승에서 그레이시는 슈트파이터이자 판크라스 선수인 켄 샴록과 맞붙었다. 샴록은 이전 경기에서 패트릭 스미스에게 힐 훅을 걸어 승리한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 경기는 로이스에게 가장 힘든 시합이었다. 그레이시는 더블 레그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며 경기를 시작했으나, 샴록은 스프롤로 방어하며 일어서려 했다. 그레이시는 곧바로 샴록을 자신의 가드로 끌어들여 작은 발차기로 샴록의 신장을 공격했지만, 샴록은 가드에서 벗어나 패트릭 스미스에게 했던 것처럼 힐 훅을 시도했다. 그레이시는 자신의 도복을 샴록의 팔에 감아 방어했고, 샴록이 뒤로 넘어지면서 그레이시가 그의 위로 올라탔다. 그는 샴록의 등 뒤를 잡고 자신의 도복을 사용하여 리어 네이키드 초크를 걸었다. 샴록은 그레이시의 초크에 탭 아웃했지만, 심판은 이를 보지 못하고 경기를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샴록은 심판에게 패배를 인정하며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고, 로이스가 승자로 선언되었다. 두 선수는 약간의 도발 후 악수를 교환했다.
그레이시는 결승에서 극진가라테 수련자이자 사바트 세계 챔피언인 제라르 고르도와 맞붙었다. 그레이시는 상대를 그라운드로 끌어들여 리어 초크를 성공시키며 승리했다. 경기 도중 고르도는 그레이시의 귀를 물었는데, 이는 대회의 몇 안 되는 규칙 중 하나를 위반한 것이었다. 그레이시는 고르도가 탭 아웃한 후에도 초크를 풀지 않고 보복했고, 고르도는 당황하며 탭 아웃한 후 심판에 의해 분리되었다. 로이스는 "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으로 선언되었고, 우승 상금으로 5.00 만 USD를 받았다.
4개월 후 UFC 2에 출전하여 타이틀 방어에 나섰다. 이 대회에는 16명의 선수가 참가했으며,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4명의 상대를 꺾어야 했다。 그레이시는 첫 경기에서 일본의 대도숙 공도 및 극진 가라테카인 미노키 이치하라를 5분 만에 라펠 초크로 제압했다. 이 경기는 그에게 가장 긴 경기였다. 준결승에서는 오행권 쿵푸 수련자이자 미래의 판크라스 베테랑인 제이슨 드루시아를 상대했는데, 그레이시는 이미 1991년 "그레이시 챌린지"에서 그를 꺾은 적이 있었다. 그레이시는 경기 시작 1분여 만에 암바로 드루시아를 제압했다. 이어서 그레이시는 113 kg (250 lb)의 유도 및 태권도 검은 띠 소유자인 렘코 파르두엘을 라펠 초크로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이전에 UFC 1에 참가했던 킥복서 패트릭 스미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그래플링 기술을 선보이며 그라운드로 끌어들인 후 파운딩으로 승리하여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UFC 3에 두 차례 챔피언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로 참가했다. 이번 대회는 다시 8인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로이스는 1라운드에서 태권도와 레슬링 출신의 키모 레오폴도와 맞붙었다. 레오폴도는 레슬링 배경을 활용하여 그래플링 공방을 지배했고, 그레이시의 여러 테이크다운 시도를 저지하고 그의 등 뒤를 잡기도 했다. 두 선수 모두 지쳐갈 무렵, 그레이시는 레오폴도의 포니테일을 잡고 버티며 결국 1라운드 4분 40초에 암바로 그를 제압했다. 그러나 그는 키모와의 경기에서 입은 피로와 탈수 증상으로 인해 다음 경기인 해럴드 하워드와의 준결승을 기권했다. 로이스는 링에 올라 수건을 던지며 기권을 선언했다. 이는 그레이시가 우승하지 못한 첫 대회였다.
UFC 4에서 로이스 그레이시는 1라운드에서 51세의 가라테카이자 쿵푸 영화 배우인 론 반 클리프를 4분여 만에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제압했다. 준결승에서는 아메리칸 켄포 가라테 전문가인 키스 해크니와 맞붙었는데, 해크니는 그레이시의 테이크다운을 4분 동안 방어했으나 결국 암바에 탭 아웃했다.
그레이시의 마지막 토너먼트 경기는 전 팬아메리칸 게임 자유형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댄 세번을 상대로였다. 세번은 경기를 지배하며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키고 거의 15분 동안 상위 포지션에서 그라운드 앤 파운드를 날렸다. 그러나 그레이시는 결국 1라운드 15분 49초에 트라이앵글 초크를 걸어 서브미션 승리를 거뒀다. 이 경기는 페이퍼뷰 시간을 초과하여 진행되었고, 경기 종료를 놓친 시청자들은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3.1.2. 켄 샴록과의 대결 (UFC 5)
그레이시가 첫 UFC 대회에서 켄 샴록을 꺾은 후, 두 선수 사이에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다. 샴록은 특히 재대결을 원했는데, 그레이시가 도복을 사용하여 그래플링에 유리하게 경기를 한 반면, 자신은 프로모터에 의해 레슬링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그레이시에게 불공정한 이점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샴록은 자신이 상대를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했다.
로이스 그레이시와 켄 샴록의 재대결은 UFC 2에서는 샴록이 훈련 중 손을 다쳐 불발되었고, UFC 3에서는 그레이시가 탈진으로 대회에서 기권하는 바람에 샴록도 기권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토너먼트 형식의 예측 불가능성을 해결하기 위해, 그레이시와 켄 샴록이 메인 토너먼트와 별개로 싸우는 "슈퍼파이트"가 UFC 5에서 예정되었다. 승자는 특별 벨트를 획득하고 초대 UFC 슈퍼파이트 챔피언십의 챔피언이 될 예정이었다. UFC 4에서의 실패 이후 페이퍼뷰 송출 시간 제한 때문에 1995년에 시간 제한이 다시 도입되었으며, 이 사실은 경기 몇 시간 전에야 선수들에게 통보되어 두 선수 모두 불만을 가졌다.
1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샴록은 그레이시가 가드를 잡으면서 곧바로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다. 경기의 대부분은 샴록이 상위 포지션에서 그레이시의 서브미션 기술을 방어하며 간헐적으로 그라운드 앤 파운드를 날리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샴록이 거의 30분 동안 경기를 지배한 후, 경기는 연장전으로 돌입하여 스탠딩 상태에서 재개되었다. 연장전 초반, 샴록의 펀치가 그레이시의 눈에 맞아 부종이 생겼고, 그레이시는 즉시 가드를 잡았다. 몇 분간의 별다른 움직임 없는 공방 끝에 경기는 무승부로 선언되었다.
이 무승부 판정은 만약 심판이 결과를 결정했거나 시간 제한이 없었다면 누가 이겼을지에 대한 많은 논쟁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경기 종료 시 그레이시의 오른쪽 눈이 부어 완전히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UFC 매치메이커 아트 데이비는 만약 링 사이드 심판이 있었다면 샴록이 승자로 선언되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두 선수 모두 별다른 액션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경기는 비평가들과 현장 관중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이 경기 후 그레이시는 그의 형 호리온 그레이시가 UFC 지분을 매각함에 따라 UFC를 떠났다. 호리온에 따르면, 그들은 UFC 4 이후 도입된 시간 제한과 향후 심판 및 체급 도입 계획 때문에 이해 충돌이 발생하여 단체를 떠났다고 한다.
3.1.3. UFC 잠정 은퇴
UFC 활동 당시 로이스는 "어디에서든 언제든 결판을 낼" 유명한 격투가들에게 자주 도전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복역 중이던 마이크 타이슨을 포함한 많은 유명 스포츠 선수들은 블랙 벨트 매거진의 "The Ultimate Fighter" 칼럼에 자주 게재되는 공개 서한 형식의 쪽지를 여러 차례 받았다.
3.1.4. UFC 복귀 (UFC 60)
2006년 1월 16일, UFC 회장 데이나 화이트는 로이스 그레이시가 2006년 5월 27일 UFC 60에서 UFC 웰터급 챔피언 맷 휴즈와 맞붙기 위해 UFC로 복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경기는 UFC/캘리포니아주 체육 위원회 규칙에 따라 79 kg (175 lb) 계약 체중으로 치러지는 논타이틀전이었다. 준비를 위해 그레이시는 무에타이를 훈련했으며, 페어텍스의 홍보 자료에 자주 등장했다.

1라운드에서 휴즈는 스트레이트 암바를 걸어 로이스의 팔을 과신전시켰지만, 로이스는 탭 아웃을 거부했다. 결국 휴즈는 1라운드 4분 39초에 TKO로 경기를 승리했다. 로이스는 휴즈와의 경기 후 재대결을 원하며 휴즈의 경기력에 놀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할 계획인지 알고 있었다. 우리는 경기 전에 그의 경기 계획을 예상했고, 그는 정확히 우리가 예상한 대로 했다. 내가 경기를 너무 과도하게 훈련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너무 많이, 너무 열심히, 너무 오래 훈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확히 우리가 예상한 대로 했다"라고 덧붙였다.
3.2. 프라이드 파이팅 챔피언십 (PRIDE FC)
3.2.1. 프라이드 데뷔 및 사쿠라바 카즈시와의 대결
그레이시는 원래 1998년 PRIDE 2 대회에서 UFC 챔피언 마크 커와 대결하며 PRIDE 파이팅 챔피언십에 데뷔할 예정이었다. 그레이시 측은 시간 제한이나 심판 중단이 없는 특별 규칙을 요구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경기가 홍보된 후 로이스는 허리 부상으로 출전을 취소했다.
상황은 PRIDE 8 이후 바뀌었다. 로이스의 형 로일러 그레이시가 사쿠라바 카즈시에게 패배했기 때문이다. 사쿠라바는 경기를 지배했고 기무라 록에 걸린 로일러가 탭 아웃을 거부하자 심판이 그의 팔이 부러지기 전에 경기를 중단시키면서 테크니컬 서브미션으로 승리했다. 이는 50년 만에 그레이시 가문이 종합격투기 경기에서 패배한 첫 사례였고, 사쿠라바는 이어서 히우쿠송 그레이시에게 도전했다. 이에 대해 그레이시 가문은 로일러가 항복하거나 탭 아웃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배로 간주할 수 없으며, 심판의 경기 중단은 그들이 요청했던 특별 규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많은 전문가들은 그레이시의 순수 BJJ 접근 방식이 더 이상 다재다능하게 훈련된 파이터와 대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맞서 사쿠라바를 꺾기 위해 그레이시 가문은 로이스를 PRIDE에 계약시켰다.
로이스 그레이시의 첫 PRIDE 대회는 "PRIDE 그랑프리 2000"이었다. 이 무제한급 토너먼트는 두 개의 이벤트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첫 번째는 16강으로 구성된 PRIDE 그랑프리 2000 개막전이었고, 두 번째는 3개월 후에 열리는 8강, 준결승, 결승으로 구성된 PRIDE 그랑프리 2000 결승전이었다. 개막전의 경기 규칙은 15분 1라운드로 수정되었다. 1라운드에서 그는 일본의 프로레슬러 다카다 노부히코와 맞붙었다. 다카다는 PRIDE 1과 PRIDE 4에서 로이스의 형 히우쿠송 그레이시와 맞붙었던 매우 인기 있는 레슬러였다. 다카다는 또한 그레이시 가문의 라이벌인 사쿠라바의 전 스승이기도 했다.
경기 시작 1분 만에 그레이시는 다카다를 자신의 가드로 끌어들였고, 나머지 경기 시간 동안 다카다를 서브미션시키거나 스윕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대체로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경기 끝에 로이스 그레이시는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그랑프리 8강에 진출했다.
이후 로이스는 PRIDE 그랑프리 2000 결승전에서 사쿠라바 카즈시와 8강전을 치르게 되었다. 사쿠라바는 캐치 레슬링과 슈트 레슬링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 레슬러였다. 그는 여러 상대를 물리치고 PRIDE의 첫 일본 스타 중 한 명이 되었다. 로이스가 사쿠라바와 싸우기 위해 특별히 그랑프리에 참가했으므로, 그레이시 가문은 경기에 대한 특별 규칙을 요구했다. 이는 무제한 15분 라운드, 무심판, 심판 중단 없음, 그리고 녹아웃, 서브미션 또는 수건 투척으로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쿠라바는 이러한 다른 규칙, 그레이시 가문의 요구, 그리고 그들의 특별 대우 요구를 비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에 응했다.
두 선수는 한 시간 반 동안 싸웠고, 그 후 그레이시는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레그 킥으로 인해 대퇴골이 골절되어 더 이상 일어설 수 없게 되자, 그의 코너에서 수건을 던져 사쿠라바가 승자로 선언되었다. 사쿠라바는 이후 렌조 그레이시와 라이언 그레이시를 포함한 다른 그레이시 가문원들을 꺾으며 "그레이시 헌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3.2.2. 요시다 히데히코와의 대결
그레이시는 2002년 PRIDE로 복귀하여 일본의 유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요시다 히데히코와 특별한 "유도 대 브라질리언 주짓수" 규칙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는 50년 전 있었던 기무라 마사히코 대 엘리오 그레이시의 "재대결"로 홍보되었다. 규칙은 경기가 10분 2라운드로 진행되며,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무승부로 선언되는 것이었다. 머리 타격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두 선수 모두 그라운드 상태에서는 모든 종류의 타격이 금지되었다. 상대방을 만지지 않고 매트에 눕거나 쓰러지는 것도 금지되었다. 두 선수 모두 각자의 종목 선호에 따라 도복을 착용했다. 이 경기는 PRIDE와 K-1 킥복싱의 합작으로 열린 "마샬 아츠 축제" 메가 이벤트인 PRIDE 쇼크웨이브에서 열렸으며, 거의 91,000명의 팬이 모여 MMA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을 기록했다. (일부 출처에서는 71,000명이라고도 한다.) 로이스의 아버지 엘리오 그레이시는 MMA 선구자 안토니오 이노키와 함께 개막식에서 올림픽 성화를 점화했다.
로이스는 가드를 잡고 힐 훅과 암바를 시도하며 경기를 시작했지만, 히데히코는 이를 막아내고 도복 초크와 발목 꺾기를 시도하며 반격했다. 그레이시가 다시 가드를 잡았지만, 요시다는 이를 어깨들어메치기로 연결하며 기무라 록을 노렸다. 그레이시가 기술을 막아내자 요시다는 그의 가드를 통과하여 마운트 상태에서 소매 조르기를 시도했다. 잠시의 비활동 후 심판 다이스케 노구치는 로이스가 의식을 잃었다고 판단하여 경기를 중단시키고 요시다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레이시는 즉시 항의했고, 경기 영상이 재검토되었지만, 초크가 걸리는 동안 그레이시의 보이는 팔이 늘어져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 나타났다. 그레이시는 노구치와 언쟁을 시작했고, 이 다툼은 곧 그가 심판을 공격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두 선수 코너 간의 난투극으로 번졌다. 이후 백스테이지에서 그레이시 가문은 이를 무효 경기로 선언하고 다른 규칙으로 즉시 재대결을 주선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레이시 가문은 다시는 PRIDE FC에서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레이시 가문을 잔류시키고 싶었던 PRIDE는 그들의 요구를 수락했다.
그 후 그레이시는 도복 없이 싸우기 시작하여 상대방이 도복을 잡고 늘어지는 것을 막았다. 요시다와 그레이시의 재대결은 2003년 12월 31일 PRIDE의 쇼크웨이브 2003 이벤트에서 열렸다. 그레이시는 요시다를 압도했지만, 그레이시의 요청에 따라 심판이 없는 경기였기 때문에 10분 2라운드 후 경기는 무승부로 선언되었다.
3.2.3. 프라이드와의 계약 분쟁
2004년 9월, PRIDE는 로이스 그레이시의 2005년 PRIDE 미들급 그랑프리 참가를 두고 그레이시와 이견을 보였다. 그레이시는 제안된 상대와 규칙(그랑프리 경기는 반드시 승자가 있어야 하고 무승부로 끝나서는 안 된다)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파이팅 앤 엔터테인먼트 그룹의 K-1 단체로 옮겼다. PRIDE는 그레이시를 계약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 사건은 2005년 12월에 합의되었고, 그레이시는 그의 매니저가 계약을 오해하여 벌어진 일이라고 밝히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3.3. K-1 및 벨라토르 MMA
3.3.1. K-1 활동
K-1에서 로이스 그레이시는 킥복싱과 MMA 경기가 모두 열리는 K-1의 K-1 프리미엄 다이너마이트!! 시리즈에 참가했다. 2004년 12월 31일, 그레이시는 오사카 돔에서 열린 K-1 프리미엄 2004 다이너마이트!! 이벤트에 출전하여 전 스모 선수이자 MMA 신인인 아케보노 타로와 특별 MMA 규칙(10분 2라운드; 두 라운드 후 승자가 없으면 무승부)으로 맞붙었다. 그레이시는 육중한 상대를 1라운드 2분 13초에 숄더 록으로 제압하며 빠르게 승리했다.
정확히 1년 후인 2005년 12월 31일 K-1 프리미엄 2005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 그레이시는 일본의 65 kg (143 lb) 파이터 도코로 히데오와 맞붙었고, 경기는 20분 후 무승부로 끝났다. 그레이시의 원래 상대는 키가 큰 한국의 신인 MMA 파이터 최홍만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3.3.2. 벨라토르 MMA 복귀

2013년 11월 15일, UFC의 20주년 기념 행사로 열린 UFC 167에서 로이스 그레이시는 MMA 저널리스트 아리엘 헬와니에게 종합격투기에서 은퇴했음을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벨라토르 145에서 그레이시가 은퇴 후 복귀하여 라이벌 켄 샴록과 3차전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이 경기는 2016년 2월 19일 벨라토르 149에서 열렸다. 그레이시는 1라운드 TKO로 승리했다. 그러나 이 승리는 논란이 없지 않았다. 리플레이 화면에서는 그레이시가 경기 종료 전에 샴록의 사타구니를 스치는 니킥을 날리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샴록은 경기 중단에 항의했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레이시의 승리로 판정되었다. 이후 샴록이 경기 전 금지 약물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발표되었다.
4. 서브미션 그래플링 경력
1998년 12월 17일, 오스카 데 주짓수 대회에서 로이스 그레이시는 왈리드 이스마일과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앙숙 대결을 펼쳤다. 이스마일은 칼슨 그레이시의 제자였으며, 원래는 마리우 스페리, 무리루 부스타만테, 아마우리 비테티에 이어 칼슨의 네 번째 로이스 상대였다. 경기는 점수나 시간 제한 없이 진행되었으며, 이스마일은 4분 53초 만에 클록 초크로 그레이시를 기절시켰다.
5. 은퇴 후 활동

로이스 그레이시는 종합격투기 은퇴 이후 주짓수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주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학교에서 강의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며, 잡지, 웹사이트, 토크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로이스 그레이시 주짓수 네트워크"라는 자체 도장 연합을 설립했으며, 미국에 34개의 지부 도장을 두고 있고, 브라질, 캐나다, 에콰도르, 과테말라,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영국 등 전 세계 여러 곳에 지부를 확장했다.
로이스 그레이시의 주짓수 분파는 주로 무술의 호신술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레이시는 현대 "스포츠" 주짓수가 호신 상황에서 비실용적이고 비현실적인 기술을 가르친다고 비판하며, 아버지 엘리오 그레이시가 고안한 그레이시 주짓수의 진정한 의도를 회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6. 개인 생활
그레이시는 2016년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전 부인 마리안과 세 아들, 한 딸을 두었다. 그의 아들 케이든 그레이시는 미국 육군에 입대했다.
그레이시는 7단 산호 띠임에도 불구하고, 훈련 시에는 진한 남색 띠를 착용한다. 이는 그의 아버지 엘리오 그레이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함인데, 엘리오 그레이시는 가장 높은 단수인 붉은 띠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진한 남색 띠를 착용했다. 엘리오 그레이시는 2009년에 사망했으며, 로이스는 다른 누구에게도 승단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시온주의자이며 도널드 트럼프와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레이시는 열렬한 총기 사격수이다. 2022년에는 시그 사우어 헌터 게임에 팀 워리어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우승팀에 속했다.
2023년 7월 6일, ESPN 필름스가 그레이시 가문에 대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 중이며, 크리스 풀러가 감독하고 그렉 오코너와 가이 리치가 제작에 참여한다고 발표되었다.
7. 논란과 비판
로이스 그레이시는 그의 경력 동안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했으며, 일부 법적 문제에도 연루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의 대중적 이미지와 격투기계 내 평가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
7.1. 약물 검사 양성 반응
2007년 6월 14일, 캘리포니아주 체육 위원회는 그레이시가 사쿠라바와의 경기 후 나드롤론이라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에 대해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캘리포니아주 체육 위원회에 따르면, 일반인은 약 2 ng/ml의 나드롤론을 생성할 수 있고, "강렬한 신체 운동"을 하는 운동선수는 약 6 ng/ml 수준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위원회는 그레이시가 제출한 "A" 및 "B" 샘플 모두 "수준이 너무 높아 실험실의 교정기에서 등록되지 않을 정도"로 50 ng/ml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그레이시는 최대 벌금인 2500 USD를 부과받고 2008년 5월 30일에 만료되는 그의 라이선스 잔여 기간 동안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레이시는 벌금을 지불했다.
로이스 그레이시는 2009년 5월 온라인 비디오 인터뷰에서 이 주장을 반박하며, 첫 UFC 대회 당시 체중은 81 kg (178 lb)였고 사쿠라바와의 경기 당시 체중은 82 kg (180 lb)였다며 단 2파운드만 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전문가들에 의해 널리 반박되었다. ESPN에 따르면, "이전 경기에서 그의 체중은 79 kg (175 lb)였고, 사쿠라바와의 경기에서는 85 kg (188 lb)였다. 영양사가 아니더라도 40세의 나이에 1년 만에 5.9 kg (13 lb)의 근육량 증가를 달성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업적임을 알 수 있다. 50대에 가까워지는 운동선수들은 기능적 근육량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7.2. 재정적 및 법적 문제
2015년 4월 1일, IRS는 로이스 그레이시와 그의 아내에게 부족세액 통지서를 보내, 그들이 미국 국세법 6663(a) 조항에 따라 미납 세금 65.71 만 USD와 민사 사기 벌금 49.28 만 USD를 포함하여 총 114.99 만 USD를 빚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2023년 3월 31일에 합의되었으며, 로이스 그레이시는 미국 정부에 46.16 만 USD를 지불하기로 동의했다.
7.3. 내부적 갈등
그레이시는 조카인 레너 그레이시, 라이론 그레이시를 비롯한 다른 무술가들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다. 또한 그는 에디 브라보와도 불화를 겪었는데, 그레이시는 에디 브라보와의 문제가 그의 주짓수나 가문 불화 때문이 아니라 에디 브라보의 약물 사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8. 유산 및 영향
로이스 그레이시는 종합격투기와 브라질리언 주짓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UFC의 초기 대회에서 체격과 힘에서 우세한 상대를 자신의 주짓수 기술로 제압하며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철학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 그의 성공은 그래플링과 그라운드 파이팅의 중요성을 격투 스포츠에 각인시키며 현대 종합격투기 전략의 초석을 다졌다. 그는 UFC 역사상 가장 긴 피니시 연승(11연승), 토너먼트 최다 승리(11승), 토너먼트 최다 우승(3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UFC 5에서 켄 샴록과의 36분간의 경기는 UFC 역사상 가장 긴 싸움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레이시는 2003년 11월 UFC 45에서 그의 라이벌 켄 샴록과 함께 UFC 명예의 전당에 초대 헌액자(개척자 부문)로 이름을 올렸다.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은 "로이스와 켄보다 더 자격이 있는 두 사람은 없다"며 "옥타곤 안팎에서 그들이 우리 스포츠에 기여한 바는 결코 비견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에는 국제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그의 영향력은 파이트 매트릭스 선정 올해의 파이터(1993년), 블랙 벨트 매거진 선정 올해의 경쟁자(1994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2000년, 사쿠라바 카즈시와의 경기) 등 수많은 수상 이력으로도 증명된다. 또한 그는 UFC 역사상 가장 높은 서브미션 피니시율(90.91%)과 최장 서브미션 연승(6연승)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UFC 최초 25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브미션으로 켄 샴록과의 첫 경기에서의 승리가 선정되었다.
그의 PRIDE에서의 사쿠라바 카즈시와의 90분간의 경기는 PRIDE 역사상 가장 긴 싸움으로 기록되었으며, 이 경기 후 사쿠라바는 "그레이시 헌터"라는 별명을 얻으며 그레이시 가문과의 라이벌 관계를 공고히 했다. 로이스 그레이시는 은퇴 후에도 전 세계를 순회하며 주짓수를 가르치고 자신의 주짓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호신술로서의 주짓수 본질을 강조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9. 수상 및 영예
로이스 그레이시는 그의 종합격투기 및 서브미션 그래플링 경력 전반에 걸쳐 수많은 수상과 영예를 얻었다.
- 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
- UFC 명예의 전당 (초대 헌액자, 개척자 부문, 2003년)
- UFC 1 토너먼트 챔피언 (1993년)
- UFC 2 토너먼트 챔피언 (1994년)
- UFC 4 토너먼트 챔피언 (1994년)
- UFC 3 토너먼트 준결승 진출자 (부상으로 기권)
- UFC 시청자 선정상
- UFC 백과사전 어워드
- 이달의 경기 (4회) - 대 켄 샴록 1차전, 미노키 이치하라, 키모 레오폴도, 댄 세번
- 이달의 서브미션 (4회) - 대 제라르 고르도, 렘코 파르두엘, 키모 레오폴도, 댄 세번
- UFC 역사상 최초의 토너먼트 챔피언
- UFC 역사상 최장 피니시 연승 (11연승)
- UFC 역사상 토너먼트 최다 승리 (11승)
- UFC 역사상 토너먼트 최다 우승 (3회)
- UFC 역사상 단일 밤 최다 경기 (4경기) (패트릭 스미스 (격투가)와 공동 기록)
- UFC 역사상 최장 경기 (36분) - 대 켄 샴록 2차전 (UFC 5)
- UFC 역사상 최장 서브미션 연승 (6연승)
- 길버트 번즈와 함께 UFC 역사상 최다 암바 서브미션 승리 (4회)
- UFC 역사상 세 번째로 높은 서브미션 피니시율 (11승 중 10회 서브미션 - 90.91%)
- UFC 첫 25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서브미션 - 대 켄 샴록 1차전
- PRIDE 파이팅 챔피언십
- PRIDE 역사상 최장 경기 (90분) - 대 사쿠라바 카즈시 (PRIDE 그랑프리 2000 결승전)
- 파이트 매트릭스
- 올해의 파이터 (1993년)
- 블랙 벨트 매거진
- 올해의 경쟁자 (1994년)
-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 올해의 경기 (2000년) - 5월 1일 사쿠라바 카즈시와의 경기
- 월드 MMA 어워드
- 2013년 평생 공로상
- 국제 스포츠 명예의 전당
- 2016년 헌액
10. 지도자 계보
로이스 그레이시는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중요한 계보를 잇고 있다.
- 가노 지고로
- 도미타 쓰네지로
- 마에다 미츠요
- 카를로스 그레이시
- 엘리오 그레이시
- 로이스 그레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