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현주엽현주엽玄周燁한국어은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현재는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1975년 7월 27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현진구와 어머니 홍성화 또한 운동선수 출신으로, 특히 어머니는 전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선수였다. 휘문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 경기 63득점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초고교급' 선수로 주목받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여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신기성 등과 함께 '고려대 5인방'으로 불리며 대학 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98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청주 SK 나이츠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되며 프로에 데뷔했고, 곧바로 KBL 최초 신인 트리플더블, 24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 등 인상적인 기록을 세우며 '매직 히포', '코리안 찰스 바클리' 등 다양한 별명을 얻었다. 파워 포워드로서 탁월한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빼어난 어시스트 능력을 겸비해 '포인트 포워드'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며 한국의 20년 만의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2009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MBC 스포츠플러스 농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재치 있는 해설로 큰 인기를 얻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을 역임했으며, 코치 경력 없이 곧바로 프로팀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은 KBL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감독직 사퇴 후에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특히 '먹보스 쭈엽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먹방' 콘텐츠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주엽은 프로 경력 동안 우승 경험이 없어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뛰어난 기량과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로 KBL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레전드 선수로 평가받는다.
2. 학력
- 1988년 서울도성국민학교 졸업
- 1991년 휘문중학교 (농구부) 졸업
- 1994년 휘문고등학교 (농구부) 졸업
- 1998년 고려대학교 (94학번) 경영학사(졸업)
- 2008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
3. 유년 시절 및 배경
현주엽은 1975년 7월 27일 서울특별시에서 의류 제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 현진구(1944년 ~ 2009년 4월 2일)와 전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선수였던 어머니 홍성화 사이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에게는 세 살 위의 쌍둥이 형 두 명이 있다. 그의 본관은 연주이다. 현주엽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도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농구를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3.1. 어린 시절과 교육
현주엽은 서울도성초등학교 6학년 때 휘문중학교 농구팀 입단 테스트에 지원했지만, 당시에는 키도 작고 농구 실력이 부족해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휘문중학교에 일반 학생으로 배정받게 되면서 다시 농구부에 문을 두드렸고, 비교적 늦은 나이인 중학교 1학년 때 정식으로 농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동안은 대부분 벤치를 지켰으며,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코트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자신의 어머니가 농구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의 경기를 보러 왔을 때 농구 코치가 어머니를 알아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동선수 출신인 어머니는 현주엽이 농구 선수가 된 후에도 항상 주변 사람들과 선후배들에게 예의를 지킬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현주엽은 어린 시절부터 서장훈과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장훈은 현주엽보다 한 살 많은 선배였고, 1988년 현주엽의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다. 이들은 농구 입문 초기에 경험이 부족하여 함께 코트 구석에서 연습하며 벤치를 지키는 '벤치워머' 신세였다. 당시 두 사람은 훈련을 빠지고 수영장에 놀러 가는 것이 낙이었다는 일화도 있다. 현주엽의 농구 실력 향상에는 중고등학교 동료였던 석주일의 자극이 큰 영향을 미쳤다. 석주일은 현주엽과 서장훈에게 "너희는 재능이 없으니 농구를 그만두라"고 말했고, 현주엽은 이 말을 듣고 실력 향상을 위한 동기 부여를 얻었다고 밝혔다.
농구 실력 향상에 대한 강한 의지로 현주엽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NBA 스타 매직 존슨의 비디오를 보며 독학으로 연습했다. 매직 존슨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는 현역 시절 내내 백넘버 32번을 달았다. 휘문고등학교 재학 시절, 현주엽은 한 경기 최다 63득점을 기록하며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고교 농구 역대 최고 득점 기록을 세웠다.
그의 뛰어난 능력은 대학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고, 당시 국내 최고 명문 농구 대학인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치열한 영입 경쟁이 벌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3년 3월 31일, 현주엽은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대학교 진학을 공식 발표했다. 현주엽은 원래 당시 대학 농구 최강팀이었던 연세대학교에 합류해 쉽게 우승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고려대학교 출신인 아버지 현진구는 "쉬운 길만 택하면 발전하지 못하고 안주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많은 고민 끝에 현주엽은 자신의 성장을 위한 도전을 택하고, 당시 연세대에 열세였던 고려대학교에 들어가 팀의 우승을 돕기로 결정했다.
4. 대학 경력
현주엽은 1994년부터 1998년까지 고려대학교에서 뛰며 1990년대 고려대의 성공을 이끌었다. 그는 전희철, 양희승, 김병철, 신기성 등과 함께 '고려대 5인방'으로 불리며 강력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현주엽은 뛰어난 덩크슛 능력으로 경기장을 뜨겁게 달구며 팬들을 열광시키는 인기 선수였다. 그의 압도적인 체격과 힘 덕분에 '매직 히포'(Magic Hippo)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고려대 진학 후 첫 출전한 1994년 MBC배 대학농구에서 고려대는 연세대학교에 크게 패했지만, 이후 선수들이 머리를 짧게 깎고 절치부심하여 패자부활전을 통해 결승에 올랐다. 연세대와의 최종 결승전에서 고려대는 줄곧 리드를 당했으나,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양희승이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현주엽이 속공으로 종료 직전 0.4초를 남기고 시도한 레이업 슛이 연세대 김택훈의 반칙으로 자유투를 얻어냈고, 현주엽은 침착하게 자유투 2개를 모두 성공시키며 고려대학교의 우승을 이끌었다. 현주엽은 이 대회 후 인터뷰에서 고교 농구와 대학 농구의 엄청난 차이를 깨달았고, 선배들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후 현주엽은 파워 포워드로서 팀 내 입지를 확고히 다졌고, 고려대는 '베스트 5' 체제를 구축하며 대학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1995년 가을철 대학농구 연맹전 예선 첫 경기에서 현주엽이 발목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당시 약체였던 홍익대학교에 3점 차로 패배, 고려대의 20연승 행진이 마감되는 이변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려대는 이후에도 한동안 연승을 이어갔지만, 70년대 말에 세웠던 최다 연승 기록인 49연승에는 미치지 못했다. 또한, 고려대는 충분한 전력을 갖췄음에도 현주엽이 졸업하기 전까지는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학교가 달성했던 대학팀 우승을 이루지는 못했다. 현주엽은 허재에 이어 대학 1학년 때부터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두 번째 선수가 되었다.
4.1. 주요 사건 및 부상
현주엽은 대학 시절부터 고질적인 부상 문제에 시달렸다. 1996년 9월 20일에는 왼쪽 발목 부상으로 경희대학교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또한, 무릎에 과도한 훈련과 격렬한 운동 동작이 가해지면서 무릎관절 삼출증을 앓기 시작했으며, 이후 왼쪽 무릎 통증을 계속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상 이력은 그의 프로 경력 내내 큰 걸림돌이 되었다.
5. 프로 경력
현주엽은 1998년부터 2009년까지 9시즌 동안 KBL에서 활약하며 총 397번의 정규 시즌 경기에 출전했고, 경기당 평균 13.3득점, 4.1리바운드, 5.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10경기에서는 평균 12.1득점, 3.5리바운드, 2.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를 포함한 총 407경기에서 5,389득점, 1,674리바운드, 2,09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5.1. 청주 SK 나이츠 (1998-1999)
현주엽은 1998년 KBL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청주 SK 나이츠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SK의 안준호 감독은 1순위 지명권을 얻자 "우승이야"를 외치며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현주엽은 SK와 5년간 총 10.00 억 KRW에 달하는 거액의 신인 계약을 체결했다.
또 다른 기대주였던 외국인 선수 토니 러틀랜드의 부진과 더불어, 현주엽과 서장훈은 미묘한 자존심 대결과 포지션의 중복으로 부조화를 보였다. 이 때문에 SK는 우승은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오르지 못했고, 그 책임을 물어 1998년 11월 26일 안준호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되고 기아의 기술고문이었던 최인선이 SK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1998년 11월 14일, 대구 동양 오리온스와의 데뷔전에서 26득점, 6리바운드, 8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며 SK 나이츠의 95대94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신인으로서 KBL 최장인 24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고, 리그 역사상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신인 선수가 되었다. 또한 KBL 올스타에 선정된 최초의 신인이라는 역사적인 기록도 세웠다. 첫 올스타전에서 그는 6득점, 6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현주엽은 한국, 중국, 일본이 참여하는 제1회 아시안 농구 슈퍼리그(ABSL) 한국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두 번째 시즌인 1999-00시즌에는 SK 나이츠 소속으로 15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19.6득점, 4.7리바운드, 6.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5.2.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이적 (1999)
1999년 12월 24일, 시즌 트레이드 마감일 하루 전날, 청주 SK 나이츠는 현주엽을 조상현과 4.00 억 KRW의 현금에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로 트레이드하는 초대형 '빅딜'을 단행했다. 현주엽은 이 트레이드 소식을 신문 기자로부터 처음 접했고, 트레이드 직후 인터뷰에서 최인선 감독이 미리 귀띔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인간적인 실망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 트레이드에는 여러 뒷이야기가 있는데, 일부에서는 현주엽과 최인선 감독 간의 불화가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99년 12월 14일 현대와의 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한 후 최인선 감독은 현주엽에게 패배의 책임을 물었고, 자존심이 강한 현주엽은 이에 항명하여 다음 경기인 16일 LG전을 부상 핑계로 보이콧했다는 것이다. 이후 19일 신세기전에서는 현주엽이 워밍업까지 마치고 경기에 나설 준비를 했으나, 최인선 감독이 고의로 출전시키지 않는 보복성 조치를 취했다고 알려졌다. 결국 23일 동양전이 현주엽의 SK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SK는 골드뱅크와 접촉하기 전 삼성과 먼저 현주엽 트레이드를 논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SK의 이원재 단장은 현주엽을 내보내더라도 좋은 팀으로 보내고 싶어 했고, 실제로 현주엽은 SK 지명 전 삼성 입단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SK는 우승 가능성이 높은 삼성의 전력 강화를 원치 않았고, 결국 현주엽은 SK의 우승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약체 팀인 골드뱅크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트레이드 직후 SK는 곧바로 효과를 보며 승승장구했고, 결국 현대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실패했다면 최악의 자충수가 될 수 있었던 이 트레이드는 SK의 우승으로 인해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 찾기'로 농구 역사에 기록되었다.
5.3. 골드뱅크/KTF 매직윙스 (1999-2005)
현주엽 이적 후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는 곧바로 여수로 연고지를 옮겨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가 되었다. 골드뱅크는 현주엽 영입 효과를 보았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1999-00시즌 중반에 이적한 현주엽은 1월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며 66표 중 38표를 획득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두 차례의 트리플더블을 기록했으며, 득점 6위(경기당 23.33득점), 리바운드 16위(경기당 7.5리바운드), 어시스트 2위(경기당 8.42어시스트)에 올랐다. 현주엽은 2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농구 해설위원과 기자단 투표를 통해 올스타 베스트 5에도 이름을 올렸다. 시즌 잔여 기간 동안 그는 새로운 팀에서 27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3.7득점, 6.0리바운드, 7.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00-01시즌에는 현주엽이 무릎 부상을 크게 당했고, 수술과 재활로 인해 코트에 나서지 못한 경기가 더 많았다. 2001년 2월 14일, 대전 현대 걸리버스와의 경기 중 오른쪽 발목과 무릎을 다쳤다. 2월 21일에는 오른쪽 발목 인대 2개 파열, 발목 힘줄 염증 및 파열, 근육염, 무릎 관절 손상 진단을 받았다. 이 부상으로 인해 현주엽은 시즌을 일찍 마감했으며, 27경기 출전에 그쳤고 평균 16.7득점, 5.7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3년 연속 올스타전 출전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발목 부상으로 불참했다.
5.3.1. 부상과 상무 농구단 복무 (2001-2003)
2001년 6월, 현주엽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대학 동료이자 국가대표팀 동료인 신기성, 그리고 강혁과 함께 군 복무를 시작했다. 그는 상무 농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1-02 농구대잔치에서 현주엽은 전년도 우승팀인 중앙대학교를 꺾고 상무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그는 이전 해의 부상 재활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1월 16일 결승전에서 25득점 17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팀의 87대84 승리에 기여했다. 전반전 8득점에 그쳤던 현주엽은 3쿼터 막판 역전 레이업을 성공시키며 63대61을 만들었고, 4쿼터에 17득점을 몰아치며 상무의 첫 우승을 견인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그는 '군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결국 결승전 최우수선수(MVP)와 리바운드상을 수상했다.
상무 우승 이후에도 현주엽은 왼쪽 무릎 연골 부상을 두 차례 더 입어 2002년에만 두 번의 수술을 받았다. 첫 번째 수술은 2월 19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부상당한 왼쪽 무릎 대퇴부 연골에 대한 관절경 수술이었다. 당시 왼쪽 무릎 통증으로 재활 중이던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출전을 만류하는 의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출전했다. 아시안 게임 참가 후 10월에는 또다시 같은 부상을 입었고, 12월 20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두 번째 왼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
2003년에도 현주엽은 세 번째 왼쪽 무릎 연골 부상으로 인해 상무에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 그의 상태는 매우 심각하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이는 이미 전년도에 같은 부상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산 KTF 매직윙스의 추일승 감독은 현주엽의 무릎에 연골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세 번째 수술은 연골 조직을 배양하고 이식하는 어려운 방법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복잡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그에게 해외 치료를 권유했지만, 현역 군인 신분이었기에 국내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치명적인 경우가 아니면 해외 치료가 허용되지 않아 결국 수술을 포기하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왼쪽 무릎 연골에 대한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현주엽은 26개월의 의무 복무를 마치고 2003년 8월 전역했다.
5.3.2. 복귀 및 '포인트 포워드' 시대 (2003-2005)
2003년 군 복무를 마친 현주엽은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로 복귀했다. 그의 복귀 시기에 팀명은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바뀌어 있었고, 이후 재정난으로 인해 팀은 KTF에 매각되면서 부산 KTF 매직윙스로 다시 한 번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기고 팀 이름을 변경했다. 현주엽은 KTF에서 상무 시절 인연을 맺었던 추일승 감독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두 번의 무릎 수술을 겪으며 현주엽의 플레이 스타일은 포스트업보다는 어시스트 위주의 외곽 플레이로 바뀌어갔고, 그의 전매특허였던 몸을 날려 레이업 슛을 성공시킨 후 바닥으로 쓰러지는 플레이 또한 횟수가 줄었다. 이때부터 그를 '포인트 포워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부상으로 오랜 기간 고통받았던 현주엽은 세 시즌 만에 올스타 무대에 복귀했다. 2004년 올스타전에서는 감독들의 투표를 통해 세 번째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그는 이 시즌 44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12.9득점, 3.4리바운드, 5.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04년 11월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며 73표 중 45표를 획득했다. 이 달에 그는 평균 13.7득점(24위), 3.4리바운드(27위), 8.3어시스트(3위), 1.2스틸(25위)을 기록했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에서 선두는 아니었지만, 그의 수비 능력이 이달의 선수 선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서울 삼성 썬더스의 서장훈과 원주 TG 삼보 엑서스의 김주성 등 장신 슈터들이 현주엽의 수비에 막혀 10득점 이상을 기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5년에는 KBL과 CBA 간의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1차전은 1월 28일 서울에서 열려 한국이 85대82로 승리했고, 2차전은 1월 30일 하얼빈에서 열려 중국이 93대77로 승리했다. 이후 현주엽은 네 시즌 만에 팬 투표를 통해 올스타 베스트 5에 선정되며 네 번째 올스타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이 시즌 동안 그는 포워드 포지션에서 가장 많은 13개의 더블더블을 기록했다. 평균 득점은 14.2점, 리바운드는 3.6점으로 증가했으며, 포워드 포지션에서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시즌 전체 어시스트 순위에서 경기당 7.83어시스트로 2위를 차지하며 '포인트 포워드'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현주엽의 활약으로 부산 KTF 매직윙스는 32승 22패로 시즌을 마쳤는데, 이는 전년 대비 13승이 늘어난 기록으로, 2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팀은 서울 삼성 썬더스에게 첫 두 경기를 내주며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현주엽은 이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3.0득점, 8.0리바운드, 6.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개인 플레이오프 통산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는 시즌 MVP 투표에서 16표를 얻어 2위를 차지했으며, 이 활약을 인정받아 KBL 베스트 5에 선정되었다.
5.4. 창원 LG 세이커스 (2005-2009)
2005년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현주엽은 창원 LG 세이커스와 5년 계약을 체결하며 이적했다. 그는 그동안 약체 팀에서만 뛰며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변화를 원했고, LG를 선택했다. LG 구단은 그에게 당시 최고 대우인 연봉 3.60 억 KRW를 지급하며, 2005-06시즌 KBL에서 서장훈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당시 신기성 선수도 함께 영입할 수 있었지만, 샐러리캡과 포지션 중복 문제로 함께 뛰지 못하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2006년 현주엽은 두 번째 KBL-CBA 올스타전에 한국 대표로 연속 출전했다. 1차전은 1월 22일 서울에서 열려 한국이 96대86으로 승리했고, 2차전은 1월 24일 지난에서 열려 중국이 104대85로 승리했다. 그는 또한 감독들의 투표로 다섯 번째 KBL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2006년 현주엽은 리그 심판 및 기술 위원회로부터 프로다운 코트 내 행동을 인정받아 KBL 모범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강인하고 거친 인상에도 불구하고, 선수 생활 동안 단 5개의 테크니컬 파울만을 기록할 정도로 신사적인 플레이와 침착한 태도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시즌 그는 54경기에 출전하며 개인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웠고, 평균 11.2득점, 4.3리바운드, 5.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06-07시즌, 2007년 1월 21일 전주 KCC 이지스와의 경기 도중 왼쪽 발목과 무릎을 다쳤다. 1월 24일 진단 결과 왼쪽 발목 염좌와 왼쪽 무릎 연골판 손상으로 판명되었다. 부상에 시달린 현주엽은 46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고, 평균 득점은 9.3점으로 한 자릿수로 떨어지며 시즌 평균 기록이 하락했다. 리바운드와 어시스트는 각각 3.7개와 3.4개를 기록했다.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전 소속팀인 부산 KTF 매직윙스와의 준결승전에 참가하기 위해 무릎 수술을 미뤘다. 현주엽은 4경기에서 평균 12.0득점, 2.5리바운드, 2.0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LG 세이커스는 결국 탈락했다. 5월 8일, 현주엽은 세 번째 왼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
2007-08시즌, 현주엽은 다시 한번 감독들의 투표로 올스타에 선정되며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올스타 출전을 기록했다. 그는 이 올스타전에서 서장훈과 함께 가장 많은 9개의 3점슛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수술을 미루면서 그의 무릎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이는 시즌 내내 그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신체적 약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54경기 중 53경기에 출전했지만, 평균 득점은 7.9점으로 개인 최저를 기록했다. 리바운드 평균은 3.7개로 전년과 같았고, 어시스트 평균은 4.0개로 증가했다. LG 세이커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 진출했지만, 서울 삼성 썬더스에게 패배하며 탈락했다. 이 플레이오프에서 현주엽은 평균 7.5득점, 3.5리바운드, 2.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08-09시즌, 재발하는 왼쪽 무릎 연골 부상으로 인해 현주엽은 9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44경기에 출전한 그는 평균 6.7득점, 2.2리바운드, 3.3어시스트로 개인 최저 기록을 남겼다. 플레이오프 4경기 중 단 2경기만 출전했으며, 평균 6.0득점, 1.0리바운드, 1.5어시스트로 개인 플레이오프 통산 최저 기록을 세웠다. LG 세이커스는 서울 삼성 썬더스에게 1라운드에서 패했다. 오프시즌인 2009년 5월 7일, 현주엽은 삼성서울병원에서 무릎 관절경 수술을 받았는데, 이는 그의 네 번째 왼쪽 무릎 연골 수술이었다.
5.5. 은퇴
네 차례의 왼쪽 무릎 연골 수술 끝에 현주엽은 코트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창원 LG 세이커스는 현주엽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당시 LG 세이커스와 1년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지만, 무릎 재활 중이던 현주엽은 2009년 6월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9시즌 동안의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기자회견장에는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목발을 짚고 등장했다.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는 질문에 그는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땄을 때를 꼽았고, 아쉬운 점으로는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것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농구를 좀 잘했던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5.6. 은퇴 후 활동
2012년 KBL 12주년을 기념하는 레전드 올스타전에 현주엽이 선정되어 출전했다. 그는 팬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아 드림팀 1위를 차지했다. 2017년에는 KBL 20주년 기념 '올타임 레전드 12'에 선정되었는데, 포워드 부문 레전드(아론 헤인즈, 조니 맥도웰, 전희철, 추승균, 문경은과 함께)로 이름을 올렸다.
6. 국가대표팀 경력
현주엽은 19세의 대학 1학년 때부터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허재에 이어 대학 신분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두 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0년 이상 대한민국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 국제 무대에서는 주로 9번과 15번 등번호를 달고 뛰었다.
6.1. 청소년 국가대표팀
현주엽은 대한민국 U-19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어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1992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FIBA 아시아 U-18 챔피언십 (구 아시아 농구 연맹 U-18 챔피언십)에 출전하여 결승전에서 개최국 중국에 80대93으로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3년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열린 1993년 FIBA U-21 월드 챔피언십 (현존하지 않는 연령별 대회)에 참가하여 대만과의 순위 결정전에서 96대87로 승리하며 11위를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 현주엽은 7경기 중 5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8.0득점을 기록했으며, 자유투 성공률은 66.7%였다.
1997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1997년 FIBA U-21 월드 챔피언십에서 현주엽은 8월 3일 호주를 상대로 32득점을 기록하며 대회 최고 득점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 대회에서 7경기 동안 평균 18.0득점, 4.3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야투 성공률 41.1%, 자유투 성공률 73.1%를 보였다. 현주엽은 팀 내 득점과 수비 리바운드에서 선두를 차지했으며, 대회 전체 최다 득점자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이집트와의 순위 결정전에서 78대62로 승리하며 9위를 기록했다.
6.2. 성인 국가대표팀
현주엽은 대한민국 성인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FIBA 세계 선수권 대회(1994, 1998), 아시안 게임(1994, 1998, 2002), FIBA 아시아컵(1995, 1997, 1999, 2005), 하계 올림픽(1996), 동아시아 경기 대회(1997) 등 주요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6.2.1.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19세의 대학생 신분으로 팀의 최연소 멤버였던 현주엽은 199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1994년 FIBA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성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94년 8월 4일 호주와의 데뷔전에서 그는 6득점, 2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 현주엽은 3경기 동안 평균 3.7득점, 3.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준결승에서 이집트에 76대69로 승리하며 대회 13위를 차지했다.
1998년 그리스 아테네와 피레아스에서 열린 1998년 FIBA 세계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하여 5경기 중 4경기에 나섰고, 브라질과의 경기는 불참했다. 현주엽은 경기당 평균 10.0득점, 4.0리바운드, 1.2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야투 성공률은 50.0%였다. 대한민국은 세네갈에 75대72로 패하며 대회 16위로 마무리했다.
6.2.2. 아시안 게임
현주엽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1994년 아시안 게임 농구 대한민국 대표팀에 발탁되어 중국에 72대100으로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1998년 아시안 게임 농구에서도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했으며, 결승전에서 라이벌 중국에 92대112로 다시 패하며 은메달을 추가했다.
6.2.3.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부산에서 열린 2002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다. 그는 군 복무 중이었고, 대회 직전 왼쪽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 왼쪽 무릎 통증이 계속되고 의사가 출전을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주엽은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상대로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한국은 시종일관 중국에 리드를 당하며 4쿼터 종료 3분 17초를 남기고 71대84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이때 김진 대표팀 감독은 작전타임을 불러 현주엽과 김승현을 교체 투입하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현주엽의 미들 슛과 골밑 돌파, 김승현의 가로채기와 어시스트가 빛을 발하며 한국팀은 대량 득점에 성공했다. 마침내 4쿼터 종료 4.7초를 남기고 현주엽이 드리블에 이은 과감한 골밑 돌파로 레이업 슛을 성공시켜 90대90 동점을 만들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연장전에서도 현주엽은 6득점을 추가하며 102대100의 극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이 승리로 대한민국 남자 농구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 이후 20년 만에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되찾았다.
6.2.4. 올림픽
현주엽은 대학 2학년이던 1996년 애틀랜타에서 열린 1996년 하계 올림픽 농구 대한민국 대표팀에 발탁되어 7경기 모두 출전했다. 그는 팀 내 최고의 선수일 뿐만 아니라 대회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평균 득점에서는 찰스 바클리를, 총 득점에서는 데이비드 로빈슨을, 야투 성공률에서는 스코티 피펜을 능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현주엽은 팀 내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선두를 달렸으며, 경기당 평균 16.6득점, 5.3리바운드, 2.1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야투 성공률 56.8%, 자유투 성공률 82.1%를 보였다. 대한민국은 앙골라와의 순위 결정전에서 61대99로 패하며 대회 12위를 기록했다.
6.2.5. 동아시아 경기 대회
현주엽은 고국인 부산에서 열린 1997년 동아시아 경기 대회 농구 대한민국 대표팀에 출전했다. 대한민국은 결승전에서 중화 타이베이에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6.2.6. FIBA 아시아 챔피언스컵
1997년 현주엽은 대학생 신분으로 다시 한번 대한민국 대표로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자카르타에서 열린 1997년 FIBA 아시아 챔피언스컵 (구 아시아 농구 연맹 챔피언스컵) 올스타전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그는 백보드 파괴라는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현주엽은 한국 농구 역사상 백보드를 파괴한 유일한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6.2.7. FIBA 아시아컵 (구 ABC 챔피언십)
현주엽은 서울에서 열린 1995년 ABC 챔피언십 대한민국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결승전에서 중국에 78대87로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리야드에서 열린 1997년 ABC 챔피언십에서는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하여 결승전에서 일본을 78대76으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후쿠오카에서 열린 1999년 ABC 챔피언십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했으며, 결승전에서 라이벌 중국에 45대63으로 패하며 은메달을 차지했다.
현주엽은 도하에서 열린 2005년 FIBA 아시아 챔피언십 (구 아시아 농구 연맹 챔피언십)에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했다. 그는 8경기 모두 출전하여 경기당 평균 8.6득점을 기록했고, 자유투 성공률은 61.5%였다. 대한민국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개최국 카타르에 77대89로 패하며 대회 4위를 기록했다.
7. 선수 프로필 및 특징
현주엽은 키 195 cm에 몸무게 129 kg의 체격으로 파워 포워드 포지션에서 뛰었다. 발은 느리지만 70 cm에 달하는 서전트 점프 능력으로 골밑을 장악하고, 파워 포워드 출신 치고는 보기 드물게 드리블 능력과 아웃렛 패스 능력이 좋아서 고교 시절부터 한 경기 평균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대학 시절부터 종종 멋진 덩크슛을 성공시켜 팬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기도 했다. 1990년대 한국 농구에서는 생소했던 전문 파워 포워드 포지션을 국내에 소개하고 대중화시킨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뛰어난 플레이메이킹, 볼 핸들링, 패스 능력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화려하고 강력한 플레이 스타일로 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신인 시절 24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KBL 역사상 신인 최장 기록으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또한 KBL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신인으로도 역사에 남았다. 인상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후, 그는 KBL 역사상 최초로 올스타에 선정된 신인 선수가 되었다. 2004-05 시즌에는 포워드 포지션에서 가장 많은 13개의 더블더블을 기록했다. 또한 포워드 포지션에서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시즌 전체 어시스트 순위에서 경기당 7.83개로 2위를 차지하며 '포인트 포워드'의 대명사로 불렸다. 이러한 활약으로 그는 시즌 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고, KBL 베스트 5에 선정되었다.
강인하고 거친 인상에도 불구하고, 현주엽은 젠틀한 플레이와 자신감 있지만 침착한 태도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선수 생활 동안 단 5개의 테크니컬 파울만을 기록했을 정도로 코트 내에서 매너 있는 플레이를 선보였으며, 2006년에는 모범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KBL 역사상 가장 많은 통산 7개의 트리플더블을 기록했으며, 이는 대학 동료였던 주희정과 함께 최다 기록이다. 상무에서 제대한 뒤 찍은 증명사진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흡사해 보여서 디씨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의 유저들은 그에게 '노무현주엽', '가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KBL 최고의 파워 포워드이자 포지션에 비해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였던 현주엽은 '한국의 찰스 바클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별명처럼 그는 바클리처럼 챔피언십 우승 반지와 인연이 없었다.
7.1. '무관의 제왕'
현주엽은 뛰어난 개인 기량과 화려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프로 경력 동안 우승 경험이 없어 '무관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0년대 그와 함께 대학 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농구대잔치 스타들이 대부분 프로에서 한 번 이상의 우승을 경험한 것과 대조적으로, 현주엽은 9년간의 프로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했다.
1999-00시즌 SK 나이츠가 정규리그 1위를 달리며 우승을 눈앞에 두는 듯했지만, 시즌 도중 골드뱅크 클리커스로 트레이드되면서 SK의 우승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후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은 LG 세이커스로 이적한 2006-07시즌이었다. 당시 LG는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하며 우승 가능성을 엿보았지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LG의 외국인 선수 파스코의 심판 폭행 사건이 발생하면서 KTF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나마 유일한 우승 경력은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다.
8. KBL 경력 통계
범례 | |||||
---|---|---|---|---|---|
G | 경기 출장 수 | FTM | 자유투 성공 | SPG | 경기당 스틸 |
MPG | 경기당 출전 시간 (분:초) | OFF | 공격 리바운드 | BPG | 경기당 블록 |
PPG | 경기당 득점 | DEF | 수비 리바운드 | TO | 턴오버 |
FGM | 야투 성공 | RPG | 경기당 리바운드 | PF | 개인 파울 |
3PM | 3점슛 성공 | APG | 경기당 어시스트 | 굵은 글씨 | 커리어 하이 |
8.1. 정규 시즌
시즌 | 팀 | G | MPG | PPG | FGM | 3P | FTM | OFF | DEF | RPG | APG | SPG | BPG | TO | PF |
---|---|---|---|---|---|---|---|---|---|---|---|---|---|---|---|
1998-99 | 청주 SK 나이츠 | 34 | 36:32 | 23.9 | 8.9 | 2.1 | 4.1 | 1.5 | 4.9 | 6.4 | 4.6 | 0.8 | 0.3 | 3.4 | 2.6 |
1999-00 | 청주 SK 나이츠 | 15 | 38:50 | 19.6 | 7.7 | 1.2 | 3.1 | 1.3 | 3.5 | 4.7 | 6.2 | 1.1 | 0.2 | 4.1 | 2.7 |
1999-00 |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 27 | 37:34 | 23.7 | 8.8 | 0.9 | 5.1 | 1.3 | 4.8 | 6.0 | 7.6 | 1.3 | 0.3 | 3.3 | 3.4 |
2000-01 | 여수 골드뱅크 클리커스 | 27 | 30:57 | 16.7 | 6.8 | 0.1 | 3.0 | 1.4 | 4.2 | 5.7 | 5.0 | 1.1 | 0.0 | 2.7 | 2.9 |
2003-04 | 부산 KTF 매직윙스 | 44 | 31:14 | 12.9 | 5.0 | 0.6 | 2.4 | 0.8 | 2.7 | 3.4 | 5.9 | 1.3 | 0.0 | 3.2 | 2.6 |
2004-05 | 부산 KTF 매직윙스 | 53 | 35:12 | 14.2 | 5.4 | 1.2 | 2.3 | 0.7 | 2.8 | 3.6 | 7.8 | 1.2 | 0.4 | 3.7 | 2.4 |
2005-06 | 창원 LG 세이커스 | 54 | 31:11 | 11.2 | 4.4 | 0.7 | 1.8 | 0.7 | 3.6 | 4.3 | 5.3 | 1.0 | 0.1 | 2.1 | 2.8 |
2006-07 | 창원 LG 세이커스 | 46 | 26:47 | 9.3 | 3.4 | 0.5 | 1.8 | 0.7 | 3.0 | 3.7 | 3.4 | 0.9 | 0.1 | 2.1 | 2.4 |
2007-08 | 창원 LG 세이커스 | 53 | 26:33 | 7.9 | 3.1 | 0.4 | 1.4 | 0.7 | 3.0 | 3.7 | 4.0 | 0.9 | 0.1 | 1.7 | 2.0 |
2008-09 | 창원 LG 세이커스 | 44 | 19:47 | 6.7 | 2.6 | 0.3 | 1.3 | 0.3 | 1.9 | 2.2 | 3.3 | 0.8 | 0.1 | 1.8 | 1.8 |
커리어 | 397 | 30:30 | 13.3 | 5.1 | 0.8 | 2.4 | 0.9 | 3.3 | 4.1 | 5.2 | 1.0 | 0.2 | 2.7 | 2.5 |
참고: 2001년 현주엽은 의무 군 복무를 위해 입대했으며, 2003년에 전역했다.
8.2. 플레이오프
시즌 | 팀 | G | MPG | PPG | FGM | 3P | FTM | OFF | DEF | RPG | APG | SPG | BPG | TO | PF |
---|---|---|---|---|---|---|---|---|---|---|---|---|---|---|---|
2004-05 | 부산 KTF 매직윙스 | 2 | 41:30 | 23.0 | 9.5 | 1.5 | 2.5 | 3.5 | 4.5 | 8.0 | 6.5 | 1.0 | 0.5 | 3.5 | 3.0 |
2006-07 | 창원 LG 세이커스 | 4 | 21:40 | 12.0 | 4.8 | 0.5 | 2.0 | 0.3 | 2.3 | 2.5 | 2.0 | 0.0 | 0.3 | 2.3 | 2.3 |
2007-08 | 창원 LG 세이커스 | 2 | 23:09 | 7.5 | 2.0 | 0.0 | 3.5 | 1.0 | 2.5 | 3.5 | 2.0 | 1.0 | 0.0 | 3.5 | 1.5 |
2008-09 | 창원 LG 세이커스 | 2 | 14:26 | 6.0 | 2.0 | 1.0 | 1.0 | 0.5 | 0.5 | 1.0 | 1.5 | 0.0 | 0.0 | 1.5 | 0.5 |
커리어 | 10 | 24:29 | 12.1 | 4.6 | 0.7 | 2.2 | 1.1 | 2.4 | 3.5 | 2.8 | 0.4 | 0.2 | 2.6 | 1.9 |
9. 은퇴 후 경력
9.1. 방송인 경력
2009년 현역에서 은퇴한 현주엽은 5년 만에 MBC 스포츠플러스의 농구 해설위원으로 코트에 복귀하여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했다. 그는 은퇴 후 받았던 수많은 스포츠 방송 제의를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이는 자신이 다시 코트에 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면 '집'과 같은 코트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해설위원 제의를 수락했다고 밝혔다.
2014년 9월 17일, 39세의 현주엽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4 KBL 드래프트에서 농구 해설가로 데뷔하며 은퇴 기자회견 이후 첫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첫 해설위원 활동 기간에는 베테랑 캐스터인 한명재와 호흡을 맞추며 2014-15 KBL 시즌을 중계했다. 2015-16시즌부터는 정용검 스포츠 캐스터와 짝을 이루며 재치 있는 입담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농구 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2017년, 그는 KBL 공식 미디어 매체인 '점프볼'에서 선정한 '올해의 해설위원상'을 수상했다. 30명의 농구 기자 및 방송인으로 구성된 패널의 투표에서 현주엽은 13표를 얻어 7표의 최연길과 6표의 김동광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4월 26일, 창원 LG 세이커스의 감독으로 선임된다는 소식이 발표된 후, 그는 안양 KGC인삼공사와 서울 삼성 썬더스 간의 2016-17 KBL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 게스트 해설위원으로 출연하며 방송인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9.2. 감독 경력
2017년 4월 21일, 현주엽은 코치 경력이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창원 LG 세이커스의 제7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는 KBL 역사상 코치 경험 없이 곧바로 감독으로 선임된 첫 사례였으며, 같은 팀의 선수 출신이 비경험 감독으로 부임하는 유일한 경우였다. 그는 LG 세이커스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현주엽 감독의 첫 시즌인 2017-18시즌, 창원 LG 세이커스는 17승 37패로 리그 10개 팀 중 9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2018-19시즌에는 30승 24패를 기록하며 팀을 3위로 끌어올렸는데, 이는 2015년 이후 하위권을 맴돌던 팀이 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이었다. 하지만 2019-20시즌에는 16승 26패로 다시 9위로 추락했으며, 이 시즌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조기 종료되었다.
2020년 4월 9일, LG는 현주엽 감독의 사임을 발표했다. 창원 LG 세이커스 구단은 현주엽 감독과의 재계약에 관심을 표명했지만, 계약이 만료된 그는 연장 제안을 거절했다. 2020년 5월 17일 방영된 KBS2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현주엽은 2019-20시즌 팀의 부진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고 밝혔다. 선수들은 현주엽 감독의 사임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일화도 공개되었다. 그의 후임으로는 조성원 명지대 감독이 부임했다.
9.3. 방송 연예인 경력
현주엽은 2015년부터 한국 연예 및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2015년 2월, 농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현주엽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슈퍼파워'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첫 예능 출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특유의 행동, 재치, 유머 감각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예능 대세'로 떠올랐다. 그의 출연 이후 현주엽의 이름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꾸준히 오르내렸다. 이후 그는 게스트, 패널, 고정 출연자 등으로 TV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했다. 현주엽은 자신의 TV 출연 목적이 축구, 야구, 골프 등에 가려져 침체되었던 농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고 밝혔다.
2016년 한국 잡지 스타일러 주부생활과의 인터뷰에서 현주엽은 서장훈이 무한도전 출연을 제안했을 때 처음에는 주저했다고 말했다. 첫 예능 출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촬영 후 자녀들이 그의 출연을 좋아하고 TV에서 아빠를 보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말을 듣고, 이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TV 프로그램 제의에 적극적으로 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같은 해 다른 인터뷰에서는 TV 프로그램 출연 결정의 기준으로 '두 아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을 꼽기도 했다.
2017년 4월 농구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스포츠 중계에서 하차한 현주엽은 감독직에 집중하기 위해 TV 프로그램 출연도 중단했다. 그의 마지막 출연은 2017년 5월 원나잇 푸드트립이었다.
2019년 4월, 현주엽은 KBS2의 새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고정 출연자로 합류하며 23개월간의 방송 활동 휴식기를 마쳤다. 이 프로그램에는 현주엽 감독이 이끄는 창원 LG 세이커스의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출연했는데, 이를 통해 김시래, 강병현, 정희재, 김동량, 박병우 등의 선수들과 박도경 단장, 채성우 통역 등 구단 관계자들이 농구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창원 LG 세이커스 또한 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 중 하나가 되었다.
현주엽의 방송 활동은 KBL의 이미지 개선에 큰 기여를 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불법 도박, 승부 조작, 음주 운전 등 일련의 스캔들로 인해 리그와 선수, 코치들이 부정적인 여론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보수적인 국내 스포츠계가 선수들의 TV 프로그램 출연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서장훈과 전 국가대표팀 동료 허재와 함께 현주엽의 TV 출연은 1990년대 전성기 이후 급격히 인기가 하락했던 농구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으로서 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집중하기 위해 현주엽은 2019-20 KBL 시즌 동안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출연은 2019년 10월이었다.
2019년 KBS 연예대상에서 현주엽은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의 활약으로 '엔터테인먼트 부문 최우수상' 후보에 올랐다.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직 사임 후, 현주엽은 6개월 만인 2020년 5월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다시 출연하며 방송 활동을 재개했고, 이후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연예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20년 9월 2일, KBS는 현주엽이 베테랑 방송인 김원희와 함께 1994년부터 방영된 TV는 사랑을 싣고 시즌 3의 진행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현주엽이 방송계에 발을 들인 이후 첫 단독 진행 프로그램이었다.
2020년 12월 24일, 제18회 KBS 연예대상에서 현주엽은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의 활약으로 '리얼리티 부문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첫 연예 대상을 받았다.
2021년 2월 1일, 현주엽은 유튜브 채널 먹보스 쭈엽이를 개설하여 먹방 콘텐츠를 선보였다. 개설 2주 만에 구독자 수 19만 3천 명을 달성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콘텐츠 제작을 위해 멀티 채널 네트워크(MCN) 에이전시 엠씨코이(MCCOI)와 계약했다.
10. 개인 생활
10.1. 가족 및 결혼
현주엽은 2006년 11월 지인의 소개로 제과제빵사이자 홍익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출신인 배우자 박상현을 만났다. 5개월간의 교제 끝에 현주엽은 박상현에게 프로포즈했으며, 두 사람은 2007년 6월 21일 호텔신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 부부에게는 현준희(2008년생)와 현준욱(2009년생)이라는 두 아들이 있다.
현주엽은 두 차례의 인터뷰에서 30대 초반까지도 아버지(현진구)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아버지 옆에 누워 뽀뽀하며 잠들곤 했다고 밝혔다. 아버지처럼 현주엽 또한 두 아들에게 스킨십을 자주 하는데, 아들들 역시 이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이자 가정적인 남자로 알려져 있다.
10.2. 사기 피해 및 자선 활동
은퇴 후 현주엽은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17.00 억 KRW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입었다. 2012년 현주엽은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지만, 8.70 억 KRW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2023년 3월 6일, 현주엽은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발전기금 1.00 억 KRW을 기부했다.
11. 경력 성과 및 수상
다음은 현주엽의 주요 경력 성과 및 수상 내역을 통합하여 정리한 것이다.
11.1. KBL
- 신인 최장 연속 두 자릿수 득점 기록 (24경기)
- KBL 역사상 최초의 신인 트리플더블 기록
- KBL 역사상 최초로 올스타에 선정된 신인
- 2004-05 정규 시즌 포워드 최다 더블더블 (13회)
- 2004-05 정규 시즌 포워드 최다 어시스트 및 시즌 전체 어시스트 2위 (총 415어시스트, 경기당 7.83어시스트)
- 통산 최다 트리플더블 기록 (7회)
11.2.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 1997년 FIBA U-21 월드 챔피언십: 최다 득점자 (총 126득점, 경기당 18.0득점)
- 1997년 FIBA U-21 월드 챔피언십: 단일 경기 최다 득점 (1997년 8월 3일 호주전 32득점)
- ABC 챔피언스컵 덩크슛 콘테스트 우승 (1997)
11.2.1. 메달
- 1992년 FIBA 아시아 U-18 챔피언십 은메달
- 1994년 아시안 게임 은메달
- 1995년 ABC 챔피언십 은메달
- 1997년 동아시아 경기 대회 은메달
- 1997년 ABC 챔피언십 금메달
- 1998년 아시안 게임 은메달
- 1999년 ABC 챔피언십 은메달
-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11.3. 수상 및 영예
- KBL 20주년 올타임 레전드 12 (2017)
- KBL 15주년 레전드 올스타 (2012)
- KBL 모범 선수상 (2006)
- KBL 베스트 5 (2005)
- KBL 이달의 선수 (2000년 1월, 2004년 11월)
- 농구대잔치 결승 MVP (2002)
- 농구대잔치 리바운드상 (2002)
- 점프볼 올해의 해설위원 (2017)
- KBL 정규 시즌 3위 (2018-19)
- 2020년 KBS 연예대상 리얼리티 부문 남자 최우수상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12. 비판 및 논란
현주엽은 선수 및 방송 활동 중 다음과 같은 사건들로 비판과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 음주 운전 사건 (2013년):** 2013년 7월 10일, 음주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어 면허정지 100일 처분을 받았다.
- 학교폭력 의혹 (2021년):** 2021년 3월 14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과거 학교폭력 의혹이 제기되었다. 현주엽 측은 "악의적으로 지어낸 말"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13. 기타 활동
13.1. 출연작
연도 | 제목 | 비고 |
---|---|---|
1994 | MBC 《이야기쇼 만남》 | |
1994 | MBC 《일요큰잔치》 | |
1994 | KBS 《한밤의 이야기 쇼》 | |
1995 | SBS 《백보드 밑의 전쟁》 | |
1996 | KBS 《가족오락관》 | |
1996 | KBS 《TV는 사랑을 싣고》 | |
1998 | SBS 《게임쇼 하이파이브》 | |
1998 | KBS 《체험 삶의 현장》 | |
2015 | MBC 《무한도전》 | 무도큰잔치 특집 |
2015 | SBS 《좋은 아침》 | |
2015 | KBS2 《우리동네 예체능》 | 농구 리턴즈 특집 |
2015 | tvN 《촉촉한 오빠들》 | 고정 출연 |
2015 | SBS 《백년손님》 | |
2015 | SBS 《런닝맨》 | |
2015 | SBS 《정글의 법칙 in 니카라과》 | 178회 - 185회 출연 |
2015 | KBS2 《네 멋대로 해라》 | 진행자 |
2015 | MBC 《위대한 유산》 | 패널, 아들 현준희, 현준욱과 함께 출연 |
2015 | 채널A 《부르면 갑니다 머슴아들》 | 고정 출연 |
2015 | 채널A 《개밥 주는 남자》 | 1회 - 15회 출연 |
2016 | MBN 《엄지의 제왕》 | 패널 |
2016 | SBS 《오! 마이 베이비》 | |
2016 | SBS 《영재 발굴단》 | |
2016 | tvN 《수요미식회》 | 부정기 출연 |
2016 |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 |
2016 | KBS2 《배틀트립》 | 홍콩 영화 투어vs일본 만화 투어, 5회 출연 |
2016 | SBS 《정글의 법칙 in 뉴칼레도니아》 | 225회 - 228회 출연 |
2016 |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 |
2016 | TV조선 《모란봉 클럽》 | |
2016 | JTBC 《청춘식당 잘 먹겠습니다》 | |
2016 | XTM 《REBOUND》 | 고정 출연 |
2016 | KBS2 《해피투게더 3》 | |
2017 | tvN 《버저비터》 | 고정 출연 |
2017 | OLIVE 《요상한 식당》 | |
2017 | OLIVE 《원나잇 푸드트립 먹방레이스》 | |
2017 | KBS1 《트루밥쇼》 | 고정 출연 |
2017 | MBC 《은밀하게 위대하게》 | |
2019 |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 1회 - 27회 고정 출연 |
2020 | JTBC 《위대한 배태랑》 | 고정 출연 |
2020 | tvN 《건강함의 시작, 몸의 대화》 | |
2020 |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 |
2020 | KBS2 《TV는 사랑을 싣고 시즌 3》 | 1회 - 현재 진행자 |
2020 | SBS 《미운 우리 새끼》 | 특별출연 |
2020 | JTBC 《뭉쳐야 찬다》 | |
2020 |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 55회 - 현재 고정 출연 |
2021 | MBC 《배달고파? 일단시켜!》 | 진행자 |
2021 | JTBC 《뭉쳐야 쏜다》 | 코치, 해설 |
2021 | MBC 《구해줘! 홈즈》 | |
2021 | MBC 《안싸우면 다행이야》 | |
2021 | MBN 《전국방방쿡쿡》 | 고정 출연 |
2021 | tvN 《동굴캐슬》 | 고정 출연 |
2022 |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 | 게스트 |
2022 | JTBC 《전설체전》 | 참가자 |
2022 | E채널 《마녀체력 농구부》 | 감독 |
2022 | KBS2 《자본주의 학교》 | 고정 출연 |
2022 | MBN 《전설끼리 홀인원》 | 고정 출연 |
2022 | KBS 《달리는 풀코스》 | 고정 출연 (파일럿 프로그램) |
2023 | 채널A 《천하제일장사2》 | 참가자 |
13.2. 광고 및 홍보대사
현주엽은 다양한 광고 활동과 홍보대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 광고**
- 1994년 삼성물산 브이네스
- 1995년 성우종합상운 바이킹
- 1995년 대한적십자사
- 홍보대사**
- 2000년 한국이웃사랑회 친선대사
- 2005년 고려대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행사 홍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