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하워드 스트링거 경(Sir Howard Stringer영어, 1942년 2월 19일 출생)은 웨일스계 미국인 사업가이자 언론인, 텔레비전 프로듀서이다. 그는 CBS에서 30년간 경력을 쌓았으며, 1986년부터 1988년까지 CBS 뉴스 사장을 역임했고, 이어서 1988년부터 1995년까지 CBS 사장을 지냈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는 소니 코퍼레이션의 이사회 의장, 회장, 사장, 최고경영책임자(CEO)를 역임했다. 그는 1999년에 기사작위를 수여받았으며, 미국 영화 연구소 이사회 의장과 BBC의 비상임 이사로도 활동했다. 특히 소니 재임 기간 동안 회사의 구조조정 및 사업 전략 재편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주가 하락과 혁신 부족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스트링거는 1942년 2월 19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웨일스인 교사인 마저리 메리(Marjorie Mary영어)였고, 아버지는 영국 왕립공군 부사관인 해리 스트링거(Harry Stringer영어)였다. 그의 남동생인 로브 스트링거(Rob Stringer영어)는 이후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의 CEO가 되었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스트링거는 16세가 될 때까지 11개의 중등학교를 다녔으며, 노샘프턴셔주에 위치한 온들 스쿨(Oundle School영어)에서도 수학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칼리지에서 근대사를 전공하여 문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왕립 웨일스 음악 연극 학교에서도 교육을 받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부유하지 않았으며, 온들 스쿨에서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갔다.
3. 경력
하워드 스트링거는 방송계에서 시작하여 거대 미디어 및 전자 기업의 최고위직에 오르기까지 다양한 리더십 역할을 수행하며 전문적인 여정을 거쳤다.
3.1. CBS에서의 초기 경력
스트링거는 1965년 2월 단돈 200 USD를 가지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같은 해 4월 CBS의 플래그십 방송국인 WCBS-TV에 입사했으나, 한 달 뒤 베트남 전쟁에 징병되어 미 육군 소속 헌병으로 사이공에서 10개월간 복무했다. 그는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육군 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군 복무를 마친 후 CBS로 돌아온 스트링거는 30년간의 경력을 쌓았다. 그는 처음에는 《에드 설리번 쇼》의 백스테이지 전화 응대 등 낮은 직책에서 시작했다. 1976년에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CBS 리포트》의 총괄 프로듀서가 되었고, 1981년부터 1984년까지는 《댄 래더와 함께하는 CBS 이브닝 뉴스》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1986년에는 CBS 뉴스 전체의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1988년부터 1995년까지는 CBS의 사장으로서 엔터테인먼트, 뉴스, 스포츠,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 등 CBS의 모든 방송 활동을 총괄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CBS는 데이비드 레터먼의 《레이트 쇼 위드 데이비드 레터먼》을 영입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동시에 내셔널 풋볼 리그 중계권을 신생 방송사인 폭스 방송에 빼앗기면서 여러 CBS 계열사가 폭스로 이탈하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그는 CBS 사장 재임 중 주로 뉴욕과 영국에 거주했다.
3.2. Tele-TV
스트링거는 1995년 CBS를 떠나 텔레-TV(Tele-TV영어)의 최고경영책임자(CEO)가 되었다. 텔레-TV는 벨 애틀랜틱(Bell Atlantic영어), NYNEX(NYNEX영어), 퍼시픽 텔레시스(Pacific Telesis영어) 등 미국의 통신사들과 크리에이티브 아티스츠 에이전시가 공동으로 설립한 미디어 및 기술 회사였다. 이 회사는 전화 네트워크를 통해 콘텐츠를 스트리밍하는 초기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의 시도였다. 그러나 텔레-TV는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약 5.00 억 USD를 지출한 후 1997년 초 대부분의 운영을 중단했다. 스트링거는 이때 회사를 떠났다.
3.3. 소니 코퍼레이션에서의 리더십

스트링거는 1997년 5월 소니에 합류하여 미국 사업 부문인 소니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1998년 5월 소니 그룹의 임원으로 승진했다.
3.3.1. 소니 합류 및 초기 역할
스트링거는 1997년 5월 노부유키 이데이(出井伸之일본어)에 의해 소니 미국 법인 사장으로 영입되었다. 당시 그의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보수 또한 이전 직책보다 상당히 낮았다. 그러나 그는 1998년 12월 소니 미국 법인의 회장 겸 CEO로 취임하면서 미국 사업을 소니의 주요 수익원으로 성장시켰다. 1999년 6월에는 소니 본사의 이사로 임명되었고, 2003년 4월에는 미주 지역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담당하는 집행역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03년 6월 22일에는 이사 겸 집행역 부회장, 2003년 11월 1일에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겸임하며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했다.
3.3.2. 회장 및 CEO
2005년 6월 22일, 스트링거는 노부유키 이데이의 후임으로 소니의 이사 겸 대표 집행역 회장 겸 최고경영책임자(CEO)로 취임했다. 언론인 출신이 거대 기업의 최고경영책임자에 취임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였다. 그는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소니 일렉트로닉스,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소니 금융 홀딩스 등 소니의 주요 사업 부문을 총괄했다.
스트링거가 소니의 최고위직에 오를 당시, 소니는 손실에 시달리고 있었고 삼성, 샤프, 애플, 파나소닉 등 경쟁사들로부터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주로 미디어 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니의 미국 미디어 사업을 책임졌으며,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 등의 출시를 감독했다. 2009년 4월 1일에는 소니 코퍼레이션의 사장직을 겸임하며 료지 주바치(中鉢良治일본어)를 축출했는데, 이는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의 서막으로 여겨졌다. 그는 또한 소니 코퍼레이션 오브 아메리카의 집행 회장 겸 CEO, 2000년 3월부터는 소니 브로드밴드 엔터테인먼트 코퍼레이션의 사장직을 맡았다.
3.4. 연봉의 추이
다음은 소니 재임 기간 동안 하워드 스트링거의 연간 보수액(보너스, 스톡옵션 포함) 추이이다.
| 회계연도 | 연봉 (엔) |
|---|---|
| 2009년 3월기 | 4.10 억 JPY |
| 2010년 3월기 | 8.14 억 JPY |
| 2011년 3월기 | 8.63 억 JPY |
| 2012년 3월기 | 4.50 억 JPY |
4. 개인적인 삶
스트링거는 1978년 7월 피부과 의사인 제니퍼 A. 킨먼드 패터슨(Jennifer A. Kinmond Patterson영어)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그는 1985년에 귀화하여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영국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아 이중 국적자가 되었다。 소니의 최고 책임자로 도쿄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도 그는 뉴욕에 집을 유지했으며, 그의 가족은 영국에 거주했다.
5. 수상 및 영예
스트링거는 다음과 같은 수상 및 영예를 받았다.
- 미국 육군 공로훈장: 베트남 전쟁 중 공로를 인정받아 수여
- 에미상: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언론인, 감독, 프로듀서로서 9회 수상
- 라디오 및 텔레비전 뉴스 디렉터 재단 제1수정헌법 리더십상 (1996년)
- 《브로드캐스팅 & 케이블》 명예의 전당 헌액 (1996년)
- UJA-뉴욕 연합 스티븐 J. 로스 인도주의상 (1999년 5월)
- 왕립 텔레비전 학회 웨일스 명예의 전당 헌액 (1999년 11월)
- 기사작위(Knight Bachelor영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수여 (1999년 12월 31일)
-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칼리지 명예 펠로우십 (2000년)
- 왕립 웨일스 음악 연극 학교 명예 펠로우십 (2001년)
-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 큐나드 브리타니아상 (2003년)
-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박물관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혁신 리더십 비전가상 (2007년 2월)
그는 또한 링컨 센터, 빅 브라더스 빅 시스터스(Big Brothers Big Sisters영어), 뉴욕 과학관, 아메리칸 시어터 윙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으며, 웨일스의 글래모건 대학교와 런던 예술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6. 유산 및 평가
하워드 스트링거의 경력, 특히 소니에서의 리더십은 긍정적인 기여와 비판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6.1. 소니에 미친 영향
스트링거는 소니의 전자 사업 간소화를 추진하고, 삼성전자와의 브라비아 TV 합작 투자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려 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 중 하나는 스포티파이에 대한 소니의 투자였다. 이 투자는 2018년 소니가 지분을 부분 매각하면서 약 10.00 억 USD에 가까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그의 유산 중 긍정적인 측면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소니 유나이티드"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소니 그룹 전체의 일치단결과 부서 간 장벽을 허무는 소통을 강조했다. 이는 전통적인 일본 기업 문화의 수직적이고 '사일로 시스템'적인 특성을 극복하고, 제품 라인과 경계를 넘나드는 영역 횡단적인 기업 문화를 구축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강화하여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인수를 성공시키고, BMG를 인수하여 소니의 음반 사업과 통합하는 등 미디어 콘텐츠 분야에서 소니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6.2. 비판적 평가
스트링거의 소니 재임 기간은 주가 하락과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시장으로부터 매우 엄격한 평가를 받았다. 그가 CEO로 취임했을 때 4000 JPY대였던 소니의 주가는 퇴임 시 1000 JPY대까지 떨어졌다. 주력 사업인 전자 사업, 특히 TV 사업은 2012년 3월 회계연도까지 8년 연속 영업 적자를 기록하며 재건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소니 내부에서는 그가 "제조업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워크맨이나 트리니트론과 같은 혁신적인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는 인원 감축 등의 구조조정을 반복했지만, 소니의 근본적인 혁신 부족과 "낫 인벤티드 히어"(not invented here영어)라는 배타적인 기업 문화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인수와 관련해서도 경영 통제에 실패하여 소니가 배급권을 잃는 등 "실책"을 저질렀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의 리더십은 소니의 장기적인 방향성에 대한 우려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7. 대중문화 속 모습
스트링거는 1996년 HBO 영화 《더 레이트 시프트》에서 피터 주라식에 의해 묘사되었다. 이 영화는 1990년대 초 스트링거가 CBS에 재직하던 시절 제이 레노와 데이비드 레터먼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그는 또한 2013년 BBC 라디오 프로그램 《데저트 아일랜드 디스크스》에 출연하여 자신의 삶과 경력에 대해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