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개인 배경
하비에르 카를로스 바스케스는 푸에르토리코 폰세에서 태어났다. 그는 야구장 밖에서는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유 시간을 자녀들과 보내는 '집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묘사한다.
1.1. 출생과 가족
바스케스는 푸에르토리코 폰세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밀레 바스케스와 결혼하여 카밀라, 하비에르 호수에, 카리아나 세 자녀를 두었다.
1.2. 개인적인 관심사와 자선 활동
바스케스는 예술 작품, 특히 푸에르토리코 예술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위치 토레스와 이반 로사리오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또한 항상 자선 활동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관심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으며, 기독교적인 양육과 스포츠를 시작할 때의 부모님의 지원이 이러한 영향의 일부였다고 한다.
2. 프로 경력
하비에르 바스케스는 1994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 무대에 입문하여, 마이너리그에서 성장한 후 1998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그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고, 이후 뉴욕 양키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플로리다 말린스 등 여러 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2.1. 마이너리그 경력
바스케스는 1994년 MLB 드래프트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5라운드 전체 140순위로 지명되었다. 같은 해 그는 루키 리그 팀인 GCL 엑스포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15경기(11선발)에서 5승 2패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했으며, 팀 내 최다인 67과 2/3이닝을 투구하며 56개의 탈삼진을 잡고 15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1995년에는 싱글 A의 앨버니 폴캐츠로 승격되어 21경기 선발 등판하여 6승 6패 평균자책점 5.08을 기록했다. 102와 2/3이닝 동안 87개의 탈삼진을 잡았지만, 47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1996년에는 싱글 A의 델마바 쇼어버즈 소속으로 27경기 선발 등판하여 14승 3패 평균자책점 2.68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그는 164와 1/3이닝을 투구하며 팀 내 최다인 173개의 탈삼진과 57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1997년, 바스케스는 하이 A의 웨스트 팜 비치 엑스포스에서 시즌을 시작하여 19경기 선발 등판하여 6승 3패 평균자책점 2.16을 기록했다. 112와 2/3이닝 동안 100개의 탈삼진을 잡고 28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이후 더블 A의 해리스버그 상원의원으로 승격되어 6경기 선발 등판에서 4승 0패 평균자책점 1.07이라는 완벽한 기록을 세웠다. 해리스버그에서 42이닝을 투구하며 47개의 탈삼진을 잡고 12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2.2. 메이저리그 경력
2.2.1. 몬트리올 엑스포스 (1998-2003)
바스케스는 1998년 4월 3일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엑스포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5이닝 동안 3실점을 허용하며 6대2로 패배했다. 5월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었는데, 6과 2/3이닝 동안 3자책점을 허용하고 8개의 탈삼진을 잡았다. 그는 신인 시즌 33경기(32선발)에 등판하여 5승 15패 평균자책점 6.06을 기록했다. 바스케스는 172와 1/3이닝을 투구하며 139개의 탈삼진을 잡고 68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1999년, 바스케스는 엑스포스의 젊은 선발 로테이션의 일원으로서 시즌을 시작했으나, 6월까지 평균자책점 6.63을 기록하며 트리플 A의 오타와 링스로 내려갔다. 올스타 휴식기 이후 복귀한 그는 반전에 성공하며 마지막 11번의 결정 중 7승을 거두었고, ESPN은 그가 "극적으로 전환점을 돌았다"고 평가했다. 9월 14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상대로 생애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그는 26경기 선발 등판하여 9승 8패 평균자책점 5.00, 154와 2/3이닝 투구, 131 탈삼진으로 시즌을 마쳤다. 바스케스는 1999년 7월 18일 뉴욕 양키스의 데이비드 콘이 퍼펙트 게임을 기록할 때 패전 투수였다.
2000년에도 바스케스는 엑스포스의 3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는 유망한 젊은 투수로 평가받았고, 4월 5일 다저스를 상대로 시즌 세 번째 경기에 등판하여 7이닝 동안 8피안타 2자책점을 허용하고 5개의 탈삼진을 잡으며 엑스포스의 6대5 승리를 이끌었다. 엑스포스는 그의 다음 3번의 선발 등판과 첫 11번의 선발 등판 중 8번을 승리하며 6월 1일 27승 23패를 기록했다. 투수들의 부상 속에서 바스케스의 평균자책점 2.79는 내셔널 리그 4위로, 팀 성공의 핵심으로 주목받았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스윕하고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승리하며 엑스포스는 31승 23패를 기록, 내셔널 리그 동부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이어 2위, 내셔널 리그 전체 3위를 차지했다. 6월 6일 경기에서 바스케스는 6이닝 동안 7개의 탈삼진을 잡았지만, 4개의 볼넷을 허용하고 버니 윌리엄스에게 홈런을 허용하며 8대1 패배를 기록했다. 엑스포스는 이후 9경기 중 7경기를 패배하며 33승 31패로 내셔널 리그 8위가 되었다. 엑스포스는 67승 95패로 시즌을 마쳤고, 바스케스는 33경기 선발 등판하여 11승 9패 평균자책점 4.05, 217와 2/3이닝 투구, 196개의 탈삼진, 61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바스케스는 이후 2000년 일본 올스타 시리즈에 초청받기도 했다.
2001년에는 바스케스가 엑스포스 투수진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며 "밝은 젊은 스타이자 앞으로 수년간 올스타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4월 2일 시카고에서 시즌 개막전에 등판하여 5와 2/3이닝 동안 5개의 탈삼진을 잡았으나, 4자책점을 허용하고 3개의 볼넷을 내주며 컵스를 상대로 경기를 치렀다. 엑스포스는 5대4로 간신히 승리했다. 그는 다음 홈 개막전인 올림픽 스타디움 경기에서 더 나은 투구를 선보이며 뉴욕 메츠를 상대로 7이닝 무실점, 9개의 탈삼진, 볼넷 없이 10대0 대승을 이끌었다. 바스케스는 시즌을 32경기 선발 등판 16승 11패 평균자책점 3.42로 마쳤다. 223와 2/3이닝을 투구하며 208개의 탈삼진을 잡고 44개의 볼넷만을 허용했다.
2002년, 바스케스는 230과 1/3이닝을 투구하며 179개의 탈삼진과 49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34경기 선발 등판하여 10승 13패 평균자책점 3.91을 기록했다. 하지만 시즌 후 연봉 조정에서 패하여 요청했던 715.00 만 USD 대신 600.00 만 USD를 받게 되었다.
2003년, 바스케스는 230과 2/3이닝 투구와 241개의 탈삼진으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32경기 선발 등판하여 13승 12패 평균자책점 3.24를 기록했다. 그는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고, 당시 단장이었던 오마르 미나야에게 구단 해체 위협을 받던 엑스포스와 재계약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몬트리올에서의 경험에 대해 그는 "구단주가 없어 힘들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경쟁할 때, 특히 작년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선수를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기사는 재정적인 이유로 엑스포스가 "와일드카드 경쟁에 도움이 될 다른 팀 선수들을 영입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콜업할 수도 없었다"고 언급했다.
2.2.2. 뉴욕 양키스 (2004)
2003년 12월 4일, 뉴욕 양키스는 닉 존슨, 후안 리베라, 랜디 초트를 내주고 엑스포스에서 바스케스를 영입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이후 2004년 1월 5일 4년 4500.00 만 USD 계약에 합의했다. 시즌을 앞두고 더 하드볼 타임스는 그를 "사이 영 상 컨센서스 픽"으로 예측했다.
시즌을 9승 5패 평균자책점 3.50으로 시작한 바스케스는 2004년 올스타에 선정되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투수 팀 허드슨을 대신했다. 하지만 후반기에 부진하며 시즌을 32경기 선발 등판 14승 10패 평균자책점 4.91로 마쳤다. 그의 부진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이어졌는데, 2004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바스케스는 구원 등판하여 2이닝 동안 2안타(모두 자니 데이먼의 홈런) 3실점을 허용하고 5개의 볼넷을 내주며 10대3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2.2.3.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05)
2005년 1월 11일, 양키스는 바스케스, 브래드 핼시, 디오너 나바로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트레이드하고 랜디 존슨을 영입했다. 당시 존슨은 10차례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을 매년 수상했고, 그 해 사이 영 상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245이닝 동안 290개의 탈삼진과 44개의 볼넷을 기록하며 리그 최다 탈삼진을 기록).
애리조나의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한 바스케스는 2와 2/3이닝 동안 7자책점을 허용하고 2개의 탈삼진을 잡았으나 볼넷은 허용하지 않으며 컵스에 16대6으로 패배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총 33경기 선발 등판하여 11승 15패 평균자책점 4.42를 기록했으며, 215와 2/3이닝 동안 192개의 탈삼진과 46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5월에는 46이닝 동안 단 한 개의 볼넷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무볼넷 기록은 6월 9일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5이닝까지 이어지며 총 54이닝에서 깨졌다.
2005년 애리조나에서 시즌을 마친 후, 바스케스는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가족들이 방문하기 더 쉬운" 곳으로 트레이드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2.2.4.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6-2008)

2005년 12월 20일, 바스케스는 올랜도 에르난데스, 루이스 비스카이노, 크리스 영을 상대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화이트삭스에서의 첫 시즌인 2006년, 그는 33경기(32선발)에서 11승 12패 평균자책점 4.84를 기록했다.
바스케스는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으로 뛰기로 합의했으며, 카를로스 델가도, 카를로스 벨트란, 버니 윌리엄스 등 동료 푸에르토리코 선수들과 함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3루 코치인 호세 오퀜도가 이끄는 팀에서 조국을 대표했다.
2007년 시즌, 바스케스는 32경기 선발 등판하여 15승 8패 평균자책점 3.74를 기록했다. 216와 2/3이닝 동안 213개의 탈삼진과 50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이 시즌은 그가 2001년과 2003년 이후 세 번째로 200개 이상의 탈삼진을 기록한 시즌이었다. 또한 이 시즌은 그가 프로 경력에서 200이닝 이상을 투구한 일곱 번째 시즌이었다. 그가 이 정도의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유일한 시즌은 2004년으로, 당시 뉴욕 양키스 감독이었던 조 토레가 로테이션에서 그의 등판을 몇 번 건너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바스케스는 그 해 198이닝을 기록하며 200이닝에 2이닝 부족했다. 시즌 중 하비에르의 활약에 대해 인터뷰에서 화이트삭스 감독 오지 기옌은 바스케스가 오랫동안 잘 던지고 있었지만, 팀이 너무 늦게야 이를 활용할 수 있었다고 언급하며 특히 여름 동안 팀의 성적을 지적했다.
2008년, 바스케스는 33경기 선발 등판하여 12승 16패 평균자책점 4.67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 그는 2008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4와 1/3이닝 동안 6자책점을 허용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화이트삭스는 이후 레이스에 4경기 만에 시리즈에서 패배했다.
2.2.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9)

2008년 12월 4일, 바스케스는 분 로건과 함께 마이너리그 포수 타일러 플라워스, 유격수 브렌트 릴리브리지, 3루수 존 길모어, 투수 산토스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009년 브레이브스에서 바스케스는 아마도 그의 가장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는데, 32경기 선발 등판하여 15승 10패 평균자책점 2.87을 기록했으며, 219와 1/3이닝 동안 238개의 탈삼진과 44개의 볼넷을 기록했다. 그는 또한 희생번트 20개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바스케스는 시즌 후 2009년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투표에서 4위를 차지했다.
2.2.6. 뉴욕 양키스 복귀 (2010)

2009년 12월 22일, 뉴욕 양키스는 멜키 카브레라, 마이크 던, 투수 유망주 아로디스 비스카이노를 내주고 브레이브스에서 좌완 투수 분 로건과 함께 바스케스를 재영입했다. 이 시점에서 그는 2009년에 투수가 기록한 최고의 통계 시즌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야구 전체에서 최고의 선발 투수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2010년 7월 21일, 바스케스는 배리 지토와 제이미 모이어에 이어 현역 투수 중 세 번째로 30개 모든 메이저리그 팀을 상대로 승리한 선수가 되었다. 8월에 부진을 겪은 후, 양키스는 바스케스를 일시적으로 불펜으로 강등시켰다. 2010년 9월 23일, 시즌 마지막에서 두 번째 등판에서 그는 레이스를 상대로 구원 등판하여 3명의 타자에게 연속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며(메이저리그 기록과 동률), 레이스가 안타 없이 2점을 득점하게 했다. 바스케스는 정규 시즌을 31경기(26선발) 10승 10패 평균자책점 5.32로 마쳤다.
정규 시즌 부진으로 인해 양키스는 바스케스를 다시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불펜으로 강등시켰다. 양키스는 2010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3경기 만에 이겼지만, 2010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6경기 만에 패배했다. 바스케스는 시즌 후 프리 에이전트가 되었다.
2.2.7. 플로리다 말린스 (2011)
2010년 11월 28일, 바스케스는 플로리다 말린스와 1년 700.00 만 USD 계약에 합의했다. 이 계약은 12월 2일에 최종 확정되었다. 그는 시즌 초반 13경기에서 3승 6패 평균자책점 7.09로 부진했다. 하지만 이후 시즌 남은 기간 동안 10승 5패 평균자책점 1.92의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는 4월 3일 메츠를 상대로 말린스 첫 선발 등판을 가졌다. 이 경기에서 2.1이닝 동안 6피안타 7실점(4자책) 5볼넷을 허용하며 조기에 강판되었다. 레이스를 상대로 한 첫 인터리그 선발 등판에서는 7이닝 동안 7개의 탈삼진을 잡고 2개의 볼넷을 허용하며 5대3 승리를 이끌었는데, 이는 "올해 최고의 선발 등판"으로 불렸다. 이 선발 등판 이후로 그는 계속 좋은 투구를 이어갔으며, 로스앤젤레스, 애리조나, 플로리다에서의 경기에서 19와 2/3이닝 동안 20개의 탈삼진을 잡고 5개의 볼넷(1개는 고의사구)만을 허용했다. 시즌 말에는 29이닝 무실점 행진을 기록하며 말린스 역사상 최장 기록을 세웠고, 이 기간 동안 28개의 탈삼진을 잡고 4개의 볼넷만을 허용했다.
9월 27일 워싱턴 내셔널스를 상대로 한 마지막 투구 경기에서 바스케스는 완투를 기록했다. 그는 5안타 2실점을 허용하고 97개의 투구로 9개의 탈삼진을 잡았으며, 말린스가 9회에 역전하며 3대2로 승리했다. 그의 마지막 시즌인 2011년, 바스케스는 32경기 선발 등판하여 13승 11패 평균자책점 3.69를 기록했다.
2.3. 국제 경력
하비에르 바스케스는 조국 푸에르토리코를 대표하여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했다. 2006년 대회에서는 카를로스 델가도, 카를로스 벨트란, 버니 윌리엄스 등과 함께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 2009년 대회에서도 팀의 주요 투수로 활약하며 푸에르토리코의 국제 무대에서의 성적에 기여했다.
3. 투구 스타일
바스케스는 쓰리쿼터 투구 자세에서 "움직임/싱커 패스트볼에 대한 좋은 제구력"을 바탕으로 투구했다. 팬그래프에 따르면 그의 패스트볼은 평균 시속 146 km/h (91 mph)를 기록했다. 더 하드볼 타임스의 조쉬 칼크에 따르면, 그의 패스트볼은 전성기에는 "평균 시속 150 km/h (93 mph) 이상"이었다. 칼크는 그의 팔 각도를 고려할 때 이는 특히 인상적이라고 언급하며, "일반적으로 릴리스 포인트가 매우 낮은 투수들은 수평 움직임을 위해 속도와 수직 움직임을 희생한다"고 지적했다. 칼크는 바스케스의 패스트볼이 "예외적으로 높은 스핀율 덕분에" 평균 9인치(약 22.86 센티미터)의 수직 움직임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평균 시속 134 km/h (83 mph)의 "타이트한" 슬라이더와 평균 시속 119 km/h (74 mph)의 "크게 꺾이는 커브볼"을 던졌다. 그의 커브볼은 특히 치기 어려운 구종으로 평가받았다. 2004년 샌디 알로마 주니어는 이를 "내가 본 최고의 변화구; 버트 블라이레븐도 더 잘 던지지 못한다 [...]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 없다. 그는 변화구의 구속을 조절한다. 강하게 던지기도 하고, 몸쪽으로 던지기도 한다. 어떻게 타자를 속일지 안다"고 말했다. 칼크는 이를 "큰 수평 움직임과 적은 수직 낙차를 가진 슬러비 커브"라고 부르며, "가장 좋은 슬라이더부터 거대한 수평 및 수직 움직임을 가진 시속 105 km/h (65 mph) 괴물까지 어떤 형태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시인 카슨 시스툴리는 한때 "하비에르 바스케스의 커브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고 쓰기도 했다.
그는 두 가지 유형의 체인지업을 구사했는데, "하나는 커터처럼 꺾이고 다른 하나는 스크류볼과 유사하다"고 묘사되었다. 칼크는 그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사이에 18 km/h (11 mph)의 구속 차이가 있었고, 팬그래프는 그의 경력 평균이 17 km/h (10.5 mph) (146 km/h (90.9 mph) 대 129 km/h (80.4 mph))라고 밝혔다.
3.1. 패스트볼 구속
야구 작가 데이브 캐머런은 그의 글 "하비에르 바스케스의 패스트볼은 아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에서 2010년부터 바스케스의 패스트볼 구속이 시속 146 km/h (91 mph)에서 143 km/h (89 mph)로 떨어졌으며, "그의 경력 이닝 소화를 고려할 때, 바스케스의 패스트볼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썼다. 2011년 5월, 마이애미 헤럴드는 바스케스의 구속이 떨어졌었지만, "이제는 90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금요일 그의 글러브에 박히는 패스트볼을 벅이 바라보며 다저 스타디움 전광판에서 시속 151 km/h (94 mph)를 보았다"고 언급했다. 2011년 6월, 조 프리사로는 그의 구속이 "증가했다"고 확인하며 바스케스의 패스트볼이 "시즌 최고인 시속 151 km/h (94 mph)"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9월에 에릭 시드만에 의해 통계적으로 확인되었다. "6월 11일부터 지금까지 바스케스는 패스트볼을 53% 던졌고, 평균 시속 147 km/h (91.1 mph)를 기록하며 그의 경력 평균과 일치했다."
4. 은퇴 후 경력
바스케스는 2014년 4월 30일 메이저리그 선수 협회의 사무국장 토니 클라크의 국제 특별 보좌관으로 고용되었다.
5. 평가와 유산
하비에르 바스케스는 메이저리그에서 14시즌 동안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 이닝 소화 능력과 꾸준한 탈삼진 능력을 선보인 투수로 평가받는다. 그는 200이닝 이상을 7번, 200개 이상의 탈삼진을 3번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로서의 내구성과 기량을 입증했다. 특히 2009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에는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 중 한 명으로 각인되었다. 그의 뛰어난 제구력과 다양한 구종, 특히 치기 어렵다고 평가받았던 커브볼은 타자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무기였다. 뉴욕 양키스 시절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은 아쉬운 점으로 남지만, 그는 메이저리그 30개 모든 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몇 안 되는 투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되는 등 다수의 업적을 남겼다. 그는 또한 은퇴 후에도 메이저리그 선수 협회에서 활동하며 야구계에 기여하는 등 야구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6. 같이 보기
-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연간 완봉승 리더 목록
-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경력 선발 등판 리더 목록
-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경력 탈삼진 리더 목록
- 푸에르토리코 출신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선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