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플로렌스 그린의 어린 시절과 가족 관계에 대한 정보는 그녀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과 말년의 삶에 비해 상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1.1. 출생 및 가족
플로렌스 비어트리스 패터슨은 1901년 2월 19일 영국 미들섹스 주 에드먼턴에서 프레더릭 패터슨과 사라 패터슨(결혼 전 성 네일)의 딸로 태어났다.
1.2. 교육
그녀의 구체적인 학력이나 교육 과정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소스 문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17세에 여성 왕립 공군(WRAF)에 입대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플로렌스 그린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 기간 동안 영국 공군에 소속되어 국가에 봉사하였다.
2.1. 여성 왕립 공군 복무
그녀는 1918년 9월 13일, 17세의 나이로 영국 공군 산하 여성 왕립 공군(WRAF)에 입대하였다. 그녀의 군번은 22360번이었으며, 장교 식당 관리인으로 복무하였다. 그녀는 RAF 마르함(RAF Marham)의 장교 식당에서 근무했고, 노퍽주 나버러(Narborough) 비행장에도 배치되었다. 그녀는 전투 임무가 아닌 비전투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1919년, 그녀는 영국 공군 하사로 예편하였다.
3. 개인적인 삶과 말년
플로렌스 그린은 군 복무를 마친 후 가정을 꾸리고 노퍽주 킹즈린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
3.1. 결혼 및 가족
1920년에 그녀는 철도 노동자이자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참전 용사였던 월터 그린(1893년 ~ 1975년)과 결혼하여 '그린'이라는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월터는 55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1975년에 사망하였다. 부부에게는 메이(1921년생), 밥(1926년생), 준 에베츠(1935년생) 세 자녀가 있었다. 그녀가 사망했을 당시, 그녀에게는 세 명의 자녀와 네 명의 손주, 그리고 일곱 명의 증손주가 있었다.
3.2. 킹즈린 이주 및 생활
1920년, 플로렌스 그린은 자신의 근무지였던 노퍽주 나버러 근처의 킹즈린으로 이주하였다. 그녀는 2011년 11월까지 딸 메이와 함께 킹즈린에서 거주했으며, 이후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4. 최후 생존자로서의 인정
플로렌스 그린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 생존 참전 용사로 알려지게 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4.1. 최고령 참전 용사
2010년 1월, 그녀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살아있는 여성 참전 용사 중 최고령자로 공개적으로 알려졌다. 2011년 2월 19일에는 110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슈퍼센테나리안이 되었는데, 당시 영국에서 생존해 있던 10명의 슈퍼센테나리안 중 한 명이었으며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4.2. 제1차 세계 대전 최후의 생존자
2011년 5월 5일, 제1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 전투원 출신 생존자였던 클로드 출스가 사망하자, 플로렌스 그린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 생존 참전 용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2011년 7월 20일, 게론톨로지 연구 그룹은 그녀의 나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그녀를 공식 슈퍼센테나리안 명단에 등재하였다. 그녀는 110세가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109세였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5. 사망
플로렌스 그린은 2012년 2월 4일, 110세 350일의 나이로 킹즈린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그녀는 웨스트 노퍽(West Norfolk)의 최고령 거주자였고, 노퍽주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으며, 영국 전체에서는 여섯 번째로 고령자였다.
6. 유산
플로렌스 그린의 이름은 그녀가 오랫동안 거주했던 킹즈린 지역의 주택 단지에 기려져 남아 있다.
6.1. 플로렌스 필즈 개발
2023년 1월, 킹즈린 및 웨스트 노퍽 자치구 의회와 주택 개발업체인 로벨 파트너십 유한 회사(Lovell Partnerships Ltd)는 노퍽주 게이우드에 226채의 주택을 건설하는 개발 단지명을 '플로렌스 필즈'(Florence Fields)로 명명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단지는 이전에 파크웨이(Parkway)로 알려져 있었다. 이 이름은 개발 부지에 인접한 킹즈린 아카데미에서 진행된 공모전을 통해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