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파블로 이바녜스는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주 알바세테도의 마드리게라스에서 스페인 국가경찰대 소속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1.1. 유년 시절 및 교육
그는 아버지가 근무하던 마드리드 광역권의 레가네스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엘 카라스칼 지구의 팀에서 미드필더나 가끔 포워드로 축구를 했다.
1.2. 초기 축구 경력
파블로의 부모님은 알바세테 발롬피에 구단과 인연이 있었고, 14세에 그는 이 구단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며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는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그는 주니어 팀을 거쳐 성장했지만, 알바세테 B팀으로 바로 승격하는 대신 당시 4부 리그인 테르세라 디비시온 소속의 카라바카 CF로 임대되었다. 원 소속팀으로 복귀한 후, 그는 2001-02 시즌에 알바세테 B팀에서 뛰며 정규 선발 선수로 활약했다. 이 시즌에 팀은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2. 클럽 경력
파블로 이바녜스는 알바세테 발롬피에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라리가 승격에 기여했으며,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핵심 수비수로 활약하며 약 200경기에 출전했다. 잉글랜드로 이적하여 프리미어리그와 풋볼 리그 챔피언십에서도 경험을 쌓았다.
2.1. 알바세테 발롬피에
알바세테의 감독이었던 세사르 페란도는 파블로가 프리시즌 훈련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고 그를 다음 시즌의 주전으로 낙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말대로 파블로는 2002년 8월 31일 테라사 FC와의 세군다 디비시온 원정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는 이 시즌 알바세테의 42경기 중 38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팀이 3위를 차지하고 2003년 라리가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다. 2부 리그에서 몇 경기 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내외 여러 클럽의 관심을 끌었으며 스페인 U-21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불가리아 U-21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했다.
2003년 1월 이적 시장에서 알바세테는 그를 셀타 비고로 이적시키려 했으나, 이적료 중 상당 부분을 현금으로 받아야 한다는 알바세테의 요구로 거래가 무산되었다. 몇 주 후, 스포츠 에이전트 알레한드로 카마뇨가 파블로의 권리 절반을 매입하여 구단이 급여를 지불하고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도왔다. 훈련 중 부상으로 라리가 데뷔가 불투명해지기도 했지만, 2003-04 라리가 시즌 개막전인 CA 오사수나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할 수 있었다. 이 경기에서 알바세테는 0대2로 패배했으며, 파블로와 수비 파트너 구스타보 시비에로의 마킹 실패가 첫 실점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는 이 시즌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 모든 리그 경기에 출전했으며, 알바세테는 리그 14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 시즌 동안 파블로가 더 큰 클럽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맨체스터 시티 FC, 아스널 FC, 리즈 유나이티드, AS 로마,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 여러 클럽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으며, 특히 인테르는 약 300.00 만 EUR를 지불하고 그를 알바세테로 한 시즌 임대 보낼 의향이 있다고 보도되었다. 데포르티보 라코루냐는 알바세테와 이적에 합의했지만, 카마뇨와의 계약에는 실패했다. 결국 파블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4년 계약을 맺었으며, 이적료는 추가 옵션을 포함하여 350.00 만 EUR였다. 그는 아틀레티코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세사르 페란도와 재회했다.
2.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이자 동료 신입생인 루이스 아마란토 페레아와 함께 중앙 수비 라인에서 호흡을 맞춘 파블로는 2004-05 라리가 시즌에서 아틀레티코가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CF 다음으로 세 번째로 적은 실점을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팀은 득점력 부족으로 리그 11위에 머물렀지만, 파블로는 3골을 기록하며 팀 내 리그 득점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활약으로 그는 2004년 11월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주요 클럽들의 관심도 받았다. 그와 페레아는 2005년 2월 급여 인상과 함께 2009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05-06 시즌, 파블로는 소속팀과 국가대표팀 모두에서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와 페레아는 지난 시즌과 같은 활약을 펼치며 아틀레티코가 리그 10위를 기록하고 네 번째로 적은 실점을 기록하는 데 기여했으며, 2006년 FIFA 월드컵에서는 카를레스 푸욜과 함께 수비 라인을 구축했다.
2006년 레알 마드리드 CF 회장 선거에 파블로가 연루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후안 팔라시오스 회장 후보의 지명 감독이었던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는 자신이 당선되면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호아킨 산체스, 그리고 파블로를 영입하여 팀을 강화할 것이며, 파블로와의 계약은 이미 완료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팔라시오스가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파블로는 아틀레티코에 남게 되었다. 그의 에이전트는 파블로가 아틀레티코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팔라시오스 측이 1500.00 만 EUR의 제안이 오면 선수가 떠날 수 있다는 계약 조항을 악용했다고 주장했다. 아틀레티코의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은 여전히 "스페인 최고의 센터백"인 파블로를 원하고 필요로 한다고 분명히 밝혔으며, 파블로는 팬들에게 사과하며 아틀레티코에 남고 싶다고 강조하고 레알의 제안을 수락한 것이 실수였음을 인정했다.
그는 팀 내 입지를 유지했지만, 11월 RCD 마요르카와의 경기에서 신장 타박상과 척추 골절 진단을 받아 몇 주 동안 결장했다. 이 기간 동안 제 카스트루가 주전으로 고려되기 시작했다. 2007년 1월, 파블로는 라싱 산탄데르와의 경기에서 귀중한 골을 넣어 무승부를 기록하며 구단에서의 100번째 경기를 자축했다. 그는 이 시즌 리그 24경기를 소화했다. 그는 팀이 UEFA 인터토토컵을 통해 2007-08 UEFA컵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으며, 2008-09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며 리그 4위를 기록한 아틀레티코에서 꾸준히 주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2008년 1월 마드리드 더비에서 두 골 모두 레알의 득점에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팬들의 적대감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토마시 우이팔루시와 조니 헤이팅아의 영입으로 파블로의 입지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는 2008-09 시즌에 리그 21경기에 출전했다. 레알 사라고사의 500.00 만 EUR 미만 제안은 구단에 의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거절되었고, 후아니토의 영입으로 수비 경쟁이 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블로는 남은 계약 기간을 채우는 것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마지막 시즌인 2009-10 시즌에는 출전 기회가 드물었다. 그는 코파 델 레이 초기 라운드와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에 참가하여 아틀레티코가 조 3위로 UEFA 유로파리그로 강등되는 것을 지켜봤지만, 2009년 12월 20일 교체 선수로 출전한 경기가 그의 아틀레티코에서의 마지막 출전이었다.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 감독은 알바로 도밍게스를 중용했다.
2.3. 웨스트 브롬미치 앨비언
당시 오사수나 감독이었던 카마초의 재차 관심에도 불구하고, 파블로는 잉글랜드로 이적하여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웨스트 브롬미치 앨비언 FC와 3년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은 아틀레티코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2010년 7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시즌 개막일인 2010년 8월 14일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가브리엘 타마슈와 함께 중앙 수비수로 데뷔했지만, 팀은 0대6으로 대패했다. 10일 후, 풋볼 리그 컵 레이턴 오리엔트 FC와의 경기에서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2대0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이 시즌 프리미어리그 10경기에만 출전했으며, 이 중 2011년에는 단 두 경기에만 나섰다. 팀 동료 요나스 올손은 그가 처음 잉글랜드에 왔을 때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잉글랜드 축구에 적응하는 데 최소 한 시즌이 걸렸다고 언급했다.
2.4. 버밍엄 시티
2011년 8월 여름 이적 시장 막바지에 파블로는 2부 리그인 풋볼 리그 챔피언십 소속의 버밍엄 시티 FC와 2년 계약을 맺었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UEFA 유로파리그 조별 리그에서 SC 브라가와의 홈 경기에서 데뷔했지만, 팀은 1대3으로 패배했다. 같은 대회에서 클뤼프 브뤼허 KV와의 원정 경기 도중 조제프 아크팔라와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잃었고,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았다. 추가 시간 10분, 크리스 우드가 결승골을 넣어 버밍엄이 승리했다. 파블로는 부상당한 커티스 데이비스를 대신하여 선발 출전했지만, 브뤼헤전에서 입은 뇌진탕으로 인해 데이비스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고 스티븐 콜드웰과 함께 중앙 수비의 확고한 주전 자리를 되찾을 시간을 주었다. 콜드웰이 시즌 중 부상으로 일찍 시즌을 마감한 후, 파블로는 2012 풋볼 리그 플레이오프 준결승 패배를 포함한 마지막 몇 경기에 복귀했다. 그는 총 62경기를 치른 시즌에서 17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며, 이 중 리그 경기는 7경기에 불과했다.
데이비스와 콜드웰은 2012-13 시즌에 주전으로 시작했지만, 코번트리 시티 FC와의 리그 컵 경기에서 데이비스가 발목 부상을 당하면서 파블로에게 초반에 인상적인 활약을 펼칠 기회가 찾아왔다. 데이비스가 건강을 회복한 후에도 그는 자리를 지켰지만, 반즐리 FC와의 경기에서 발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어 한 달간 결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추가 부상, 콜드웰의 복귀, 그리고 어린 레프트백 미치 핸콕스의 등장으로 폴 로빈슨이 데이비스와 중앙 수비 파트너를 이룰 수 있게 되면서 파블로는 단 두 경기에만 더 출전했다. 그는 계약 만료와 함께 팀에서 방출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파블로 이바녜스는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2006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는 등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주요 수비수로 활약했다.
3.1. 스페인 U-21
몇몇 세군다 디비시온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후, 파블로는 2002년 11월 19일 불가리아 U-21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를 위해 스페인 U-21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소집되었다. 언론에서는 그가 교체 선수 명단에 포함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스페인이 7대1로 승리한 이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는 이후 12개월 동안 꾸준히 소집되었으며, 총 10경기에 출전하며 U-21 대표팀 경력을 마무리했다。 그의 마지막 U-21 대표팀 출전은 2004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스웨덴 U-21 축구 국가대표팀에 의해 스페인이 탈락했을 때였다.
3.2. 스페인 성인 대표팀
그의 첫 성인 국가대표팀 소집은 2004년 10월,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및 리투아니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FIFA 월드컵 지역 예선을 앞두고 부상으로 제외된 후아니토를 대신해서였다. 당시 카를로스 마르체나와 카를레스 푸욜이 중앙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블로는 두 경기 모두 벤치에 머물렀다. 그는 2004년 11월 17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국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스페인이 1대0으로 앞서던 하프타임에 마르체나와 교체되어 투입되었다. 경기 종료 20분을 남기고 그는 앨런 스미스를 슈팅 동작에서 파울한 것처럼 보였지만 페널티는 선언되지 않았다. 파블로는 스미스가 공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스스로 넘어졌다고 말했다. 스페인은 리드를 지키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파블로는 다음 경기인 2005년 2월 산마리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2006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홈 경기에서 이전에 꾸준히 선발되었던 이반 엘게라를 대신하여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출전하지는 않았다.
그의 다음 경기인 3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그는 전반전 헤딩으로 득점한 것처럼 보였지만, 페르난도 토레스의 오프사이드로 인해 득점이 취소되었다. 며칠 후, 그는 2005년 3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월드컵 예선 원정 경기에서 첫 공식 국제 경기에 출전했다. 이 경기는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났으며, 그는 전반전에는 푸욜과, 후반전에는 후아니토와 함께 뛰었다. 월드컵 예선 과정에서 파블로는 푸욜과 함께 스페인의 주전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마지막 평가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선에서 조별 리그 첫 두 경기에 푸욜과 함께 출전하여 8강 진출을 확정 지었으며, 세 번째 경기인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는 휴식을 취했다. 8강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스페인은 파블로가 릴리앙 튀람의 "서투른 뒤에서 태클"의 희생양이 된 후 다비드 비야의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프랑스는 전반전에 동점골을 넣었고, 경기 종료 몇 분을 남기고 역전골을 넣었다. 스페인이 동점골을 위해 공세에 나서자, 지네딘 지단이 추가 시간에 세 번째 골을 넣었다. 이 경기는 파블로가 스페인 대표팀에서 패배한 첫 경기였다.
그는 2006년 남은 기간 동안 주전 자리를 지켰지만, 그 이후로는 출전 빈도가 줄어들어 UEFA 유로 2008 예선 12경기 중 4경기에만 출전했다. 유로 2008 본선 31인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국제 경기는 2008년 2월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1대0으로 승리한 경기였다.
4. 선수 스타일
파블로 이바녜스는 키가 1.92 m로 장신이며, 공중볼 경합에 능하다. 어린 선수 시절에는 빠른 발이 강점으로 꼽혔다. 알바세테의 팀 동료 미켈 부아데스는 그의 이러한 핵심적인 강점들이 그를 "공격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알바세테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그를 지도했던 세사르 페란도 감독은 그가 자신의 포지션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여기에는 예측력과 단순하게 플레이하는 지능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페란도에 따르면 파블로는 거의 파울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이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수비 자원의 모든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6년 월드컵 프로필에서는 그가 "첫인상보다 공을 다루는 데 훨씬 더 능숙하다"고 평가했지만, "어색해 보일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그의 달리기 스타일이 "못생겼다"는 스카우트의 평가가 레알 마드리드 CF가 그에게 초반 관심을 보이다가 포기하게 된 원인으로 알려졌다. 후년에 그는 경험을 활용했다. 2012년 버밍엄 메일은 "더 공격적이고 활기찬" 스티븐 콜드웰과 대조적으로, "파블로는 위치 선정과 태클에서 미묘한 경향이 있으며, 검투사처럼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경기를 읽는 것을 선호한다"고 평가했다.
5. 개인사
파블로는 2007년 알바세테 대성당에서 마이카와 결혼했다. 2010년 12월 기준으로 그들에게는 아들 아드리안과 딸 파울라가 있었다.
2008년, 알바세테 주 정부는 파블로와 산티 데니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에게 명예와 감사의 금메달(Medalla de Oro de Honor y Gratitud스페인어)을 수여했다. 이는 그들이 해당 지역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뛴 세 명의 선수로서의 축구 실력뿐만 아니라, 지역 청소년들에게 모범이 되는 개인적인 자질을 인정받은 것이었다.
6. 경력 통계
6.1. 클럽 통계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컵 | 리그컵 | 기타 | 합계 | ||||||
---|---|---|---|---|---|---|---|---|---|---|---|---|
디비전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알바세테 | 2002-03 | 세군다 디비시온 | 38 | 1 | 1 | 0 | - | - | 39 | 1 | ||
2003-04 | 라리가 | 37 | 1 | 0 | 0 | - | - | 37 | 1 | |||
합계 | 75 | 2 | 1 | 0 | - | - | 76 | 2 |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2004-05 | 라리가 | 35 | 3 | 8 | 1 | - | 5 (UEFA 인터토토컵 출전) | 0 | 48 | 4 | |
2005-06 | 라리가 | 35 | 2 | 3 | 0 | - | - | 38 | 2 | |||
2006-07 | 라리가 | 24 | 2 | 2 | 0 | - | - | 26 | 2 | |||
2007-08 | 라리가 | 34 | 1 | 3 | 0 | - | 9 (인터토토컵 1회, UEFA컵 8회 출전) | 0 | 46 | 1 | ||
2008-09 | 라리가 | 21 | 1 | 3 | 0 | - | 4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 0 | 28 | 1 | ||
2009-10 | 라리가 | 7 | 0 | 2 | 0 | - | 3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 0 | 12 | 0 | ||
합계 | 156 | 9 | 21 | 1 | - | 21 | 0 | 198 | 10 | |||
웨스트 브롬미치 앨비언 | 2010-11 | 프리미어리그 | 10 | 1 | 0 | 0 | 4 | 1 | - | 14 | 2 | |
2011-12 | 프리미어리그 | 0 | 0 | 0 | 0 | 0 | 0 | - | 0 | 0 | ||
합계 | 10 | 1 | 0 | 0 | 4 | 1 | - | 14 | 2 | |||
버밍엄 시티 | 2011-12 | 챔피언십 | 13 | 0 | 2 | 0 | 1 | 0 | 7 (UEFA 유로파리그 5회, 풋볼 리그 챔피언십 플레이오프 2회 출전) | 0 | 23 | 0 |
2012-13 | 챔피언십 | 6 | 0 | 0 | 0 | 1 | 0 | - | 7 | 0 | ||
합계 | 19 | 0 | 2 | 0 | 2 | 0 | 7 | 0 | 30 | 0 | ||
총합 | 260 | 12 | 24 | 1 | 6 | 1 | 28 | 0 | 318 | 14 |
6.2. 국가대표 통계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스페인 | 2004 | 1 | 0 |
2005 | 6 | 0 | |
2006 | 11 | 0 | |
2007 | 4 | 0 | |
2008 | 1 | 0 | |
합계 | 23 | 0 |
7. 수상 경력
알바세테
-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 2002-03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코파 델 레이 준우승: 2009-10
- UEFA 인터토토컵 우승: 2007
- UEFA 유로파리그 우승: 2009-10
8. 은퇴 후 활동
파블로 이바녜스는 선수 생활 은퇴 후, 2015년부터 브라이턴 앤 호브 앨비언 FC의 선수 스카우트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