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파블로 라리오스 이와사키는 1960년 7월 31일 멕시코 모렐로스주 사카테페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계 조상을 두었으며, 어머니는 일본계 혈통이었다. 그는 신장 1.79 m에 체중 69 kg의 건장한 체격을 가졌다.
2. 선수 경력
파블로 라리오스 이와사키는 골키퍼로서 1980년부터 1999년까지 약 20년간 프로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멕시코의 여러 주요 클럽에서 뛰었으며,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국제 대회에도 참가했다.
2.1. 클럽 경력
라리오스는 선수 경력 동안 주로 멕시코의 여러 클럽에서 활약했다. 그는 아틀레티코 사카테페크에서 데뷔하여 두 차례에 걸쳐 팀에 몸담았으며, 크루스 아술, 푸에블라 FC, 토로스 네사 등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클럽 | 활동 기간 | 출전 (득점) |
---|---|---|
아틀레티코 사카테페크 | 1980-1984 | 76 (0) |
크루스 아술 | 1984-1989 | 138 (0) |
푸에블라 FC | 1989-1994 | 198 (0) |
토로스 네사 | 1994-1997 | 105 (0) |
아틀레티코 사카테페크 | 1997 | 0 (0) |
토로스 네사 | 1998-1999 | 22 (0) |
그는 총 539경기에 출전하여 무득점을 기록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파블로 라리오스는 1983년부터 1991년까지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48경기에 출전했다. 1983년 3월 15일에 A대표팀에 데뷔했으며, 1979년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한 바 있다.
그는 멕시코에서 개최된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멕시코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출전하여 5경기 모두를 소화하며 팀이 사상 최고의 성적인 8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1991년 CONCACAF 골드컵에도 참가하여 멕시코가 3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3.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파블로 라리오스는 축구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리카르도 라볼페 감독이 이끄는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며 후배 골키퍼들의 성장을 도왔다.
4. 개인사
2008년 9월 초, 라리오스의 19세 아들 파블로 라리오스 가르자가 실종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집중적인 수색 끝에 그의 아들은 리오그란데강에서 약 183 m (600 ft) 떨어진 텍사스주 그라헤노 인근에서 국경 경찰에 의해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아들은 비자를 잃어버린 후 미국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으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5. 사망
파블로 라리오스 이와사키는 2019년 1월 31일 58세의 나이로 푸에블라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는 장폐색과 호흡 정지로 병원에 입원했으며,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6. 수상 경력
파블로 라리오스는 선수 경력 동안 여러 클럽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 아틀레티코 사카테페크
- 멕시코 세군다 디비시온: 1983-84
- 푸에블라 FC
- 멕시코 프리메라 디비시온: 1989-90
- 코파 멕시코: 1989-90
- 캄페온 데 캄페오네스: 1989-90
- CONCACAF 챔피언스컵: 1991
-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
- 1991년 CONCACAF 골드컵: 3위
7. 영향
파블로 라리오스는 멕시코 축구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골키퍼로 평가받는다. 특히 1986년 FIFA 월드컵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멕시코 축구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된다. 그는 이 대회에서 멕시코의 골문을 굳건히 지키며 팀이 역대 최고 성적인 8강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의 별명인 "엘 아르케로 데 라 셀바"는 그의 고향과 선수 생활의 시작을 상징하며, 멕시코 축구 팬들 사이에서 그의 독특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라리오스는 뛰어난 반사 신경과 안정적인 플레이로 많은 후배 골키퍼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멕시코 축구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