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과 아마추어 쇼기
다카자키 잇세이는 1987년 2월 12일 미야자키현 니치난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쇼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일본 쇼기계에 이름을 알렸다.
q=니치난시|position=right
1.1. 유년기와 교육
다카자키 잇세이는 미야자키시립 오미야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98년, 제23회 초등학생 쇼기 명인전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그는 5학년 자격으로 출전했으며, 이 대회 결승에서는 후나에 고헤이를 꺾었다. 이 대회에는 후일 프로 기사가 되는 여러 인재들이 참여했는데, 후나에 고헤이가 준우승을 차지했고, 토베 마코토(6학년)가 3위, 카나이 코타(6학년)와 나카무라 타이치(4학년)가 동일본 베스트 4, 이토타니 테츠로(4학년)가 서일본 베스트 4, 마키노 미츠노리(4학년)가 서일본 베스트 16에 올랐다. 또한, 히로세 아키히토(6학년)는 동일본 대회에서 토베에게 패했고, 사토 아마히코(5학년)는 서일본 대회에서 이토타니에게 패했다. 같은 해 9월, 다카자키는 일본 쇼기 연맹의 장려회에 6급으로 입회하며 프로 기사 견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스승은 프로 쇼기 기사 요네나가 쿠니오였다. 장려회 초기에는 고향에서 일본 쇼기 연맹 본부가 있는 도쿄로 비행기로 통근하며 정기 대국에 참여했고, 한동안 요네나가 스승의 집에서 내제자(住み込み弟子, uchi-deshi우치데시일본어)로 지내기도 했다.
1.2. 장려회 기간
다카자키는 장려회 입회 후 빠른 속도로 승단하며 주목받았다. 6급으로 시작하여 불과 1년 6개월 만인 2000년 4월에는 초단으로 승단했다. 이러한 빠른 승단 속도는 일본 쇼기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게 '중학생 기사'가 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초단 승단 이후 그의 승단 속도는 다소 둔화되어, 2005년 10월 1일 4단(프로)으로 승단하기까지 5년 6개월이 더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서 언급된 동기들 중 히로세 아키히토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르게 프로가 되었다. 또한, 그는 미야자키현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프로 쇼기 기사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 그는 제37기 장려회 3단 리그에서 13승 5패를 기록하며 공동 1위를 차지하여 4단 승단 자격을 획득했다.
2. 프로 쇼기 경력
다카자키 잇세이는 프로 데뷔 이후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며 일본 쇼기계의 주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2.1. 프로 데뷔와 승단 이력
다카자키 잇세이의 프로 데뷔와 이후의 승단 이력은 다음과 같다.
- 1998년: 6급 (장려회 입회)
- 2000년 4월: 초단
- 2005년 10월 1일: 4단 (프로 데뷔)
- 2010년 2월 2일: 5단 (순위전 C급 1조 승급)
- 2012년 5월 15일: 6단 (류오전 2회 연속 승급)
- 2020년 9월 18일: 7단 (승수 규정)
2.2. 주요 대국 및 토너먼트 성적
다카자키 잇세이는 프로 데뷔 후 여러 주요 토너먼트에서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 류오전
- 제21기(2008년도) 류오전 랭킹전 6조에서 첫 대국에서 패배했으나, 이후 승급자 결정전에서 7연승을 거두며 5조로 승급했다. 그 최종국(2008년 10월 1일)에서는 당시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던 사토 아마히코(당시 신인왕전 우승자이자 전 기사 중 승수와 승률 2위)를 꺾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 제25기(2011년도) 류오전 랭킹전에서 4조로 승급했으며, 제26기(2012년도)에서는 3조로 승급했다.
- 제29기(2015년도) 류오전 랭킹전에서는 2조로 승급했다.
- 순위전
- 제67기(2008년도) C급 2조 순위전 최종 10국에서 승리하면 첫 승급을 확정할 수 있었으나, 당시 이미 2개의 강급점을 가지고 강급 위기에 있던 73세의 아리요시 미치오에게 패배하여 승급 기회를 놓쳤다. 이 대국은 아리요시가 패하면 규정에 따라 은퇴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실제로는 아리요시의 경쟁 상대들이 모두 패하여 아리요시에게 강급점이 부여되지 않았다.)
- 제68기(2009년도) C급 2조 순위전 제9회전에서 승리하며 8승 1패를 기록, 최종국을 남겨두고 2위를 확정하며 승급을 달성했다. 순위전에 처음 참가한 지 4년 만에 첫 승급과 동시에 5단으로 승단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 2017년도 제76기 순위전 C급 1조 최종국에서 무라타 아키히로에게 승리하여 9승 1패의 성적을 기록했으나, 순위 차이로 나가세 타쿠야와 사사키 유키보다 하위에 머물러 B급 2조로의 승급은 이루지 못했다.
- 2020년도 제79기 순위전 C급 1조에서는 10전 전승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B급 2조로의 승급을 확정했다. 최종국에서는 이미 승급을 확정 지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면 자력으로 승급하는 타카미 타이치를 상대로 밤 11시가 넘는 열전 끝에 승리하여 '요네나가 철학'('자신에게 소화 경기일지라도 상대에게 중요한 대국이라면 전력을 다해 이긴다')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승리는 다카자키가 해당 기수 C급 1조 1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결과이기도 했다. (만약 타카미에게 패했다면, 같은 최종국에서 마스다 야스히로가 승리했기 때문에 마스다가 1위, 다카자키가 2위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마스다는 순위전 11위, 다카자키는 23위였다.)
- 왕좌전
- 제57기(2009년도) 왕좌전에서는 하시모토 타카노리와 나메카타 히사시 등을 꺾고 예선을 통과했다. 도전수 결정 토너먼트에서는 당시 기왕이던 쿠보 토시아키를 꺾고 베스트 8에 진출했으나, 8강전에서 후지이 타케시에게 패배했다.
- 왕위전
- 제51기(2010년도) 왕위전에서는 모리 코지, 시마 아키라, 아쿠츠 치카라, 쿠보타 요시유키를 꺾고 예선을 통과했다. 리그전에서는 토베 마코토와 미우라 히로유키에게 승리했으나, 하부 요시하루 등에게 패배하며 2승 3패로 마감했다.
2.3. 기풍
다카자키 잇세이는 주로 후리비샤(振り飛車Furibisha일본어, 비차를 움직이는 전술)를 선호하는 기사이다. 특히 시켄비샤(四間飛車Shikenbisha일본어, 네 번째 열에 비차를 놓는 전술)를 많이 사용한다. 실제로 그가 초등학생 쇼기 명인전 결승에서 우승했을 때도 시켄비샤 전술로 대국에 임했다. 상대방 또한 후리비샤 전술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아이후리비샤(相振り飛車Aifuribisha일본어, 서로 후리비샤로 맞서는 전술)를 구사한다.
3. 저작
다카자키 잇세이는 자신의 쇼기 기풍과 전략을 담은 여러 서적을 저술하여 쇼기 팬들에게 기량 향상에 도움을 주었다.
- 高崎一生の最強向かい飛車다카자키 잇세이의 최강 무카이비샤일본어: 2010년 3월 16일 출판, 마이내비 쇼기 북스
- よくわかる石田流잘 알 수 있는 이시다 류일본어: 2012년 1월 25일 출판, 마이내비 쇼기 북스
- わかる! 勝てる!! 現代相振り飛車알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현대 아이후리비샤일본어: 2015년 4월 14일 출판, 마이내비 쇼기 북스
4. 인물 및 일화
다카자키 잇세이는 스승인 요네나가 쿠니오와의 깊은 인연과 프로 기사로서의 철학을 보여주는 일화들이 있다. 그의 형제 제자인 센자키 마나부가 바둑 기사 호사카 마유와 약혼했을 당시, 요네나가 스승은 자신의 저택에서 다카자키(당시 요네나가의 내제자)에게 호사카와 두 점 접쇼기를 두도록 명했다. 동시에 요네나가 스승은 호사카와 바둑을 두었다. 이 장면의 사진과 글은 사진 주간지 '포커스'(신초샤, 1999년 2월 20일호)에 게재되어 대중에게 알려졌다.
또한, 제79기 순위전 C급 1조 최종국에서 보여준 그의 대국 태도는 스승 요네나가 쿠니오의 철학을 그대로 실천한 사례로 꼽힌다. 그는 이미 승급을 확정 지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타카미 타이치와의 대국에서 자신의 승리 여부가 상대의 승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상황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대국에 임했고, 결국 승리했다. 이는 '자신에게는 소화 경기일지라도 상대에게 중요한 대국이라면 전력을 다해 이긴다'는 요네나가 스승의 철학을 다카자키가 충실히 따랐음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5. 주요 업적
다카자키 잇세이는 쇼기 경력 전반에 걸쳐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업적들을 달성했다.
- 1998년 제23회 초등학생 쇼기 명인전에서 우승하며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입증했다.
- 미야자키현 출신 최초의 프로 쇼기 기사라는 역사적 기록을 세웠다.
- 류오전 랭킹전 2조, 순위전 B급 2조 등 주요 기전의 상위 클래스에 꾸준히 재적하며 안정적인 기량을 보여주었다.
- 자신의 쇼기 이론과 전략을 담은 다수의 저서를 출판하여 쇼기 대중화와 기력 향상에 기여했다.
- 스승 요네나가 쿠니오의 '상대에게 중요한 대국에는 최선을 다한다'는 철학을 실천하여 프로 기사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6. 같이 보기
- 쇼기 기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