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케이 켄들(Kay Kendall, 본명: Justine Kay Kendall McCarthy, 1927년 5월 21일 ~ 1959년 9월 6일)은 잉글랜드의 배우이자 코미디언이다. 그녀는 1946년 뮤지컬 영화 《런던 타운》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으나,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1953년 코미디 영화 《제네비에브》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영국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미국 관객들에게도 인기를 얻어 1957년 뮤지컬 코미디 영화 《레스 걸스》에서 레이디 시빌 렌 역으로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했다.
1955년 코미디 영화 《완벽한 남편》에서 함께 출연한 배우 렉스 해리슨과 연인 관계로 발전하여 1957년에 결혼했다. 렉스 해리슨은 케이 켄들의 주치의로부터 그녀가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케이 켄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이 철 결핍증을 앓고 있다고 믿었다. 해리슨은 켄들이 1959년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녀를 보살폈다. 케이 켄들은 사망 직전 마지막 영화 《다시 한번, 느낌 있게!》를 촬영했으며, 그녀의 삶은 사후에도 전기, 기념물, 그리고 백혈병 연구를 지원하는 자선 기금 등을 통해 기억되고 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케이 켄들은 잉글랜드 요크셔주 이스트라이딩의 해안 휴양지인 위더른시의 헐 로드 스탠리 하우스에서 태어났다.
2.1. 출생과 가족
케이 켄들은 1927년 5월 21일, 저스틴 케이 켄들 매카시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인 테렌스 "테리" 매카시(1901년 ~ 1994년, 테리 켄들이라는 예명으로도 활동)는 뮤직홀 스타 마리 켄들의 아들이자 바라예티 배우였다. 어머니는 글래디스 드루어리(1900년 ~ 1990년)였다.
그녀에게는 두 명의 언니 또는 오빠가 있었는데, 테렌스 저스틴 "테리" 켄들 매카시(1923년생)와 패트리샤 킴 "팻" 켄들 매카시(1925년생, 킴 켄들이라는 예명으로도 활동)이다. 아버지가 전문 댄스 파트너였던 도라 스펜서와 재혼하면서, 그녀는 이복 남동생 캐반 스펜서 켄들 매카시(1942년 ~ 1999년, 캐반 켄들이라는 예명으로도 활동)를 두었다.
2.2. 교육
어린 저스틴은 다양한 학교에 다녔는데, 브라이턴의 세인트 레너즈 학교와 스코틀랜드 오번 근처의 세인트 마가렛 학교, 그리고 런던의 리디아 캬시트 댄싱 아카데미가 포함된다.
3. 경력
케이 켄들은 1946년 뮤지컬 영화로 첫 스크린 주연 역할을 맡았으며, 1950년대에 접어들며 영국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3.1. 초기 경력 및 데뷔
켄들의 첫 주요 스크린 주연 역할은 1946년 뮤지컬 영화 《런던 타운》이었다. 이 영화는 영국 영화 역사상 가장 값비싼 실패작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이후 그녀는 1950년 드라마 영화 《댄스 홀》에서 페툴라 클라크와 다시 공동 주연을 맡았으며, 여러 소규모 영화에 연달아 출연하며 경력을 쌓았다.
3.2. 명성을 얻기까지
켄들은 1953년 영화 《제네비에브》를 통해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영화의 성공에 이어 그녀는 친구 더크 보가드와 함께 출연한 코미디 영화 《닥터 인 더 하우스》(1954)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는 닥터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제네비에브》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켄들은 당시 랭크 조직과 계약을 맺고 있었지만, 제안받는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여 《돈을 위한 가치》(1955), 《그들이 행복한 한》(1955), 《닥터 앳 씨》(1955) 등의 작품 출연 제의를 거절하기도 했다.
1955년에는 피터 핀치와 함께 드라마 《사이먼과 로라》에, 시드니 채플린 및 그레고리 라토프와 함께 코미디 영화 《위대한 압둘라》에 출연했다. 또한 로버트 테일러와 로버트 몰리와 함께 서사 역사 영화 《쿠엔틴 더워드의 모험》에 출연했다. 1956년 10월, 랭크의 전무 이사 존 데이비스는 켄들을 국제적인 스타가 될 잠재력이 있는 계약 배우 중 한 명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3.3. 국제적 인지도 및 수상
켄들은 1957년 10월과 11월에 짧게 방영된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폴리 버겐 쇼》의 두 에피소드에 출연했다. 또한 1958년 1월 17일에 방영된 《필 실버스 쇼》 시즌 3의 17번째 에피소드 "필 실버즈, 케이 켄들을 소개하다"에 본인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958년, 켄들은 미치 게이너와 타이나 엘그와 함께 전후 파리의 세 쇼걸 이야기를 다룬 영화 《레스 걸스》에서 레이디 시빌 렌 역을 맡아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에는 렉스 해리슨과 함께 코미디 영화 《마지못한 데뷔탕트》에 출연했다.
켄들은 1959년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는 그녀의 마지막 영화인 코미디 영화 《다시 한번, 느낌 있게!》(1960)의 촬영을 마친 직후였다. 이 영화는 그녀의 사후에 개봉되었으며, 그녀는 율 브린너와 함께 출연했다.
3.4. 비평적 평가
《다시 한번, 느낌 있게!》를 제작하고 감독한 스탠리 도넌은 케이 켄들에 대해 "그녀는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진정한 광대의 감각을 지닌 본능적인 코미디언이었다. 캐롤 롬바드 이후로 그런 배우는 없었고, 케이는 더 뛰어난 배우였다"고 평가했다.
2006년 디 인디펜던트의 평론가 로다 쾨니히는 "범죄 피해자들에 대해 말하듯이, 케이 켄들은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고 썼다. 이어 "그녀의 경우, 그 범죄는 재능의 낭비였다. 가장 즐거운 영국 여배우 중 한 명이었지만, 그녀의 영화 중 그녀를 빛나게 해준 작품은 거의 없었다. 타고난 스크루볼 히로인인 켄들은 1930년대의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기에는 너무 늦게 태어났고, 1960년대의 짓궂음과 부조리함에는 너무 일찍 태어났다. 1930년대 코미디였다면 엉뚱하지만 빛나는 캐롤 롬바드나 클로데트 콜베르와 동등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켄들은 아름답고 재미있었다. 그녀는 진정한 코미디언으로, 몸개그, 눈 튀어나오게 하기, 코믹한 술 취한 장면 등으로 숙녀다운 외모를 망가뜨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켄들은 그런 행동을 저속하게 보이지 않고도 해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4. 개인사
케이 켄들의 사생활은 초기 경력부터 주목받았으며, 특히 배우 렉스 해리슨과의 관계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4.1. 연인 관계
켄들은 경력 초기에 배우 시드니 채플린(배우 찰리 채플린과 그의 두 번째 아내인 배우 리타 그레이의 둘째 아들)과 오랜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스웨덴의 왕자, 그리고 식료품 재벌 상속인 제임스 세인즈버리와도 교제했으며, 미래의 에든버러 공작 필립과도 연애 관계였다고 보도된 바 있다.
4.2. 렉스 해리슨과의 결혼
1955년, 켄들은 영화 《완벽한 남편》에서 렉스 해리슨과 공동 주연을 맡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당시 해리슨은 배우 릴리 팔머와 결혼한 상태였다. 하지만 해리슨은 켄들의 주치의로부터 그녀가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팔머와 합의하여 이혼을 결정했다. 이는 해리슨이 켄들과 결혼하여 그녀를 보살피기 위함이었다. 켄들은 1957년에 해리슨과 결혼했다.
켄들은 자신의 병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단순히 철 결핍증을 앓고 있다고 믿었다. 팔머는 이혼에 대해 자신이 다른 연인이 있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팔머와 해리슨은 켄들의 사망 후 재혼할 계획이었으나, 팔머는 자신의 동반자인 배우 카를로스 톰프슨과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
5. 투병 및 죽음
케이 켄들은 백혈병 진단 후 투병 생활을 이어가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5.1. 진단과 마지막 해
케이 켄들은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 사실은 그녀에게 비밀로 유지되었으며, 그녀는 자신이 단순히 철 결핍증을 앓고 있다고 믿었다. 남편 렉스 해리슨은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헌신적으로 간병했다. 켄들은 병마와 싸우는 중에도 마지막 영화인 코미디 영화 《다시 한번, 느낌 있게!》(1960년 개봉)의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5.2. 사망 및 장례
케이 켄들은 1959년 9월 6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의 묘지는 런던 햄프스테드에 위치한 세인트 존 앳 햄프스테드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녀의 묘비에는 "케이트 / 렉스의 깊이 사랑받던 아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2013년 9월, 그녀의 마지막 안식처는 대영음악당 길드에 의해 복원되었다.

6. 유산 및 추모
케이 켄들의 삶과 경력은 다양한 형태로 기억되고 있으며, 특히 그녀의 이름을 딴 자선 기금은 백혈병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6.1. 전기 및 기념물
케이 켄들의 삶은 이브 골든과 킴 엘리자베스 켄들이 쓴 2002년 전기 《케이 켄들의 짧고 별난 삶(The Brief, Madcap Life of Kay Kendall)》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켄들이 한때 살았던 곳 근처에 위치한 19세기 후반의 위더른시 등대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며 지역 역사를 다루는 전시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켄들을 기리는 기념물과 그녀의 삶과 관련된 많은 유물 및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2014년 9월 6일, 그녀의 사망 55주년을 기념하여 대영음악당 길드는 위더른시에 있는 그녀의 옛집에 파란색 명판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가졌다.
6.2. 자선 활동
케이 켄들의 이름을 딴 케이 켄들 백혈병 기금(Kay Kendall Leukaemia Fund)은 백혈병에 대한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7. 필모그래피
- 《샴페인 찰리》(Champagne Charlie) (1944) - 단역 (크레딧 미등재)
- 《피들러스 쓰리》(Fiddlers Three) (1944) - 소녀 (크레딧 미등재)
- 《드리밍》(Dreaming) (1945) - 파티 걸 (크레딧 미등재)
- 《왈츠 타임》(Waltz Time) (1945) - 시녀
-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Caesar and Cleopatra) (1945) - 노예 소녀 (크레딧 미등재)
- 《런던 타운》(London Town) (1946) - 팻시
- 《밤과 도시》(Night and the City) (1950) - 헬렌의 소녀들 중 한 명 (크레딧 미등재)
- 《댄스 홀》(Dance Hall) (1950) - 도린
- 《해피 고 러블리》(Happy Go Lovely) (1951) - 비서 (크레딧 미등재)
- 《레이디 고다이바 라이즈 어게인》(Lady Godiva Rides Again) (1951) - 실비아
- 《위험의 날개》(Wings of Danger) (1952) - 알렉시아 라로쉬
- 《커튼 업》(Curtain Up) (1952) - 산드라 베벌리
- 《이것은 파라다이스에서 시작되었다》(It Started in Paradise) (1952) - 레이디 캐롤라인 프렌첨
- 《맨트랩》(Mantrap) (1953) - 베라
- 《제네비에브》(Genevieve) (1953) - 로잘린드 피터스
- 《그림자 거리》(Street of Shadows) (1953) - 바바라 게일
- 《스퀘어 링》(The Square Ring) (1953) - 이브
- 《미스터 루시퍼를 만나다》(Meet Mr. Lucifer) (1953) - 외로운 마음의 가수
- 《패스트 앤 루즈》(Fast and Loose) (1954) - 캐롤 행킨
- 《닥터 인 더 하우스》(Doctor in the House) (1954) - 이소벨 민스터
- 《완벽한 남편》(The Constant Husband) (1955) - '아내들' - 모니카
- 《위대한 압둘라》(Abdulla the Great) (1955) - 로니
- 《사이먼과 로라》(Simon and Laura) (1955) - 로라 포스터
- 《쿠엔틴 더워드의 모험》(The Adventures of Quentin Durward) (1955) - 마크로이 백작부인 이사벨
- 《레스 걸스》(Les Girls) (1957) - 레이디 시빌 렌
- 《마지못한 데뷔탕트》(The Reluctant Debutante) (1958) - 실라 브로드벤트
- 《다시 한번, 느낌 있게!》(Once More, with Feeling!) (1960) - 돌리 파비안 (사후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