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칼 딘 윌슨(Carl Dean Wilson영어, 1946년 12월 21일 ~ 1998년 2월 6일)은 미국의 음악가로, 비치 보이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리드 기타리스트였다. 그는 밴드 멤버인 브라이언 윌슨과 데니스 윌슨의 막내 동생이었으며, 1970년대 초중반에는 사실상 밴드의 리더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1965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밴드의 무대 음악 감독을 맡았다.
척 베리와 더 벤처스의 기타 연주에 영향을 받은 윌슨은 초기에는 리드 기타리스트와 백킹 보컬로 활동했지만, 후기에는 "God Only Knows"(1966), "Good Vibrations"(1966), "I Can Hear Music"(1969), "Kokomo"(1988) 등 여러 히트곡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다. 그는 밴드의 비평적, 상업적 전성기였던 1960년대 중반에 다른 밴드 멤버들과 달리 세션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브라이언의 밴드 참여가 줄어들면서 칼은 앨범 20/20(1969)부터 Holland(1973)까지 대부분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서 징집 문제에 맞서 싸웠다.
1980년대에는 솔로 활동을 시도하여 앨범 Carl Wilson(1981)과 Youngblood(1983)를 발매했다. 1990년대에는 게리 벡클리 및 로버트 램과 함께 음반을 녹음했으며, 이 음반은 사후에 Like a Brother(2000)라는 제목으로 발매되었다. 그는 1988년 비치 보이스의 멤버로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윌슨은 또한 영적 내면 인식 운동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1998년 51세의 나이로 폐암으로 사망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칼 윌슨의 어린 시절은 가족 관계와 초기 음악적 경험이 그의 음악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칼 딘 윌슨은 1946년 12월 21일 캘리포니아주 호손에서 오드리 네바(Audree Neva Korthof)와 머리 윌슨 부부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와 형들은 아버지로부터 잦은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겪었다. 그는 10대 초반부터 형 브라이언의 지도 아래 하모니 보컬을 연습했으며, 종종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가족 음악실에서 노래를 불렀다. 컨트리 스타 스페이드 쿨리에게 영감을 받아 12세 때 부모님께 기타를 사달라고 졸랐고, 몇 차례 레슨을 받았다. 1982년, 칼은 당시를 회상하며 "길 건너편에 살던 데이비드 마크스가 존 마우스에게 기타 레슨을 받고 있었는데, 나도 시작했다. 데이비드와 나는 12살 정도였고 존은 겨우 세 살 많았지만, 우리는 그가 정말 뛰어난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했다. 존과 그의 여동생 주디는 듀오로 대학 친목회 공연을 함께했다. 나중에 존은 영국으로 건너가 워커 브라더스의 멤버가 되었다. 그는 나에게 아직도 사용하는 몇 가지 핑거피킹 기술과 스트러밍 기술을 가르쳐주었다."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칼은 색소폰도 배웠다.
칼 윌슨의 가족 관계는 비치 보이스의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머리 윌슨의 아들이자 브라이언 윌슨과 데니스 윌슨의 동생이며, 마이크 러브의 외사촌 동생이다.
2.2. 초기 음악 활동
비치 보이스의 첫 히트곡인 "Surfin'"이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인기를 얻었을 때, 15세가 된 칼의 아버지이자 매니저인 머리(아들들의 밴드를 지원하기 위해 사업을 팔았던)는 그에게 펜더 재규어 기타를 사주었다. 칼은 밴드의 초기 녹음을 통해 음악가이자 가수로 성장했으며, 1964년 17세 때 녹음된 "Fun, Fun, Fun"에서 들리는 초기 "서프 릭"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브라이언이 밴드의 보컬 스타일과 키보드 기반을 완성하는 동안, 칼의 척 베리 스타일의 기타는 초기 비치 보이스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1964년, 칼은 마이크 러브와 브라이언 윌슨과 공동으로 작곡한 "Dance, Dance, Dance"의 기타 리프와 솔로를 통해 비치 보이스 싱글에 첫 공동 작곡 크레딧을 기여했다. 1964년 말까지 그는 더 버즈의 사운드를 확립하는 데 로저 맥귄이, 그리고 이 시기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이 사용했던 12현 리켄배커를 선호하며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데이브 마시는 롤링 스톤 록앤롤 삽화 역사(1976)에서 더 후의 피트 타운젠드가 "비치 보이스의 칼 윌슨에게 크게 영향을 받아" R&B와 록을 모두 확장했다고 언급했다.
3. 비치 보이스에서의 경력
칼 윌슨은 비치 보이스의 핵심 멤버로서 기타리스트, 보컬, 그리고 후기에는 리더십과 프로듀싱 역할까지 수행하며 밴드의 사운드와 방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1. 기타리스트 및 보컬
밴드 초기 3년간 칼의 리드 보컬은 드물었다. 밴드의 모든 멤버가 초기 녹음에 참여했지만, 브라이언은 1965년부터 복잡한 곡 작업을 위해 숙련된 세션 음악가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밴드 멤버들이 연주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었으며, 각 앨범의 특정 곡들에서는 계속 연주에 참여했다. 다른 밴드 멤버들과 달리 칼은 종종 세션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했으며, 비치 보이스의 보컬 세션 중에도 자신의 개별 기타 리드를 사운드보드에 직접 연결하여 녹음했다. 그의 연주는 "California Girls"의 도입부, 1965년 앨범 The Beach Boys Today! 전체, 그리고 Pet Sounds 앨범의 "That's Not Me"에서 들을 수 있다.

1965년 브라이언이 투어에서 은퇴한 후, 칼은 밴드의 무대 음악 감독이 되었다. 당시 계약서에는 프로모터가 "칼 윌슨과 다른 네 명의 음악가"를 고용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1966년 "God Only Knows"에서 리드 보컬을 맡은 이후, 칼은 밴드의 리드 보컬로서의 비중이 점점 커졌으며, 이 역할은 이전에는 마이크 러브와 브라이언이 주로 맡았다. 그는 싱글 "Good Vibrations", "Darlin'", "Wild Honey"에서 리드 보컬을 불렀다. 앨범 Wild Honey부터 브라이언은 칼에게 비치 보이스 음반에 더 많이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칼은 "천사의 목소리"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으며, 보컬 실력의 성장이 두드러져 파워풀한 창법까지 익혔고, 브라이언의 팔세토를 대체하는 비치 보이스의 새로운 매력이 되었다.
3.2. 리더십 및 프로듀싱
1969년 비치 보이스의 "I Can Hear Music"은 칼 윌슨이 단독으로 프로듀싱한 첫 곡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사실상 밴드의 스튜디오 리더가 되어 1970년대 초반에 발매된 대부분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그는 Carl and the Passions - "So Tough"(1972)와 Holland(1973)의 대부분을 프로듀싱했다. 1970년대에 들어 브라이언이 정신 질환 등의 이유로 밴드 활동에서 멀어지자, 칼은 밴드의 중심 인물이 되어 음악적 측면과 운영적 측면 모두에서 밴드를 이끌었다. 그러나 브라이언의 짧은 대중적 재등장과 칼 자신의 약물 남용 문제로 인해 그의 리더십 역할은 다소 줄어들었다.

3.3. 작곡 기여
칼은 초기에는 밴드를 위해 서프 인스트루멘탈 곡들을 작곡했지만, 1971년 앨범 Surf's Up에서 비로소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당시 밴드 매니저였던 잭 라일리의 가사로 "Long Promised Road"와 "Feel Flows"를 작곡했다. 칼은 "Long Promised Road"를 자신의 첫 진정한 곡으로 여겼다.
L.A. (Light Album)(1979)에는 칼이 네 곡을 기여했는데, 그중 5년 전 브라이언과 공동 작곡한 "Good Timin'"은 미국 톱 40 히트곡이 되었다. 1970년대 후반 칼의 주요 작곡 파트너는 제프리 쿠싱-머레이였지만, Keepin' the Summer Alive(1980)에서는 밴드 바흐만-터너 오버드라이브의 랜디 바흐만과 함께 작업했다. 칼은 1993년 RTÉ 다큐멘터리 더 비치 보이스 투데이의 작가 겸 감독인 마이클 피니 캘런에게 바흐만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 파트너라고 말하며, 그 이유로 "기본적으로 그가 록을 했고, 나는 록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 솔로 경력 및 협업
칼 윌슨은 비치 보이스 활동 외에도 솔로 활동과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4.1. 솔로 앨범 및 싱글
1980년대 초반 비치 보이스는 혼란에 빠져 있었고, 밴드는 여러 파벌로 나뉘어 있었다. 새로운 곡을 녹음하는 데 밴드가 느리고 리허설에 소극적인 것에 좌절한 윌슨은 1981년 잠시 밴드를 떠났다. 그는 곧바로 솔로 앨범 Carl Wilson을 녹음하여 발매했는데, 이 앨범은 주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아레사 프랭클린의 전 백킹 보컬이자 당시 윌슨의 매니저 제리 실링의 아내였던 마나 스미스-실링과 공동 작곡한 록앤롤 곡들로 구성되었다. 이 앨범은 잠시 차트에 올랐으며, 두 번째 싱글 "Heaven"은 빌보드 성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톱 20에 진입했다. 윌슨은 또한 앨범 홍보를 위해 솔로 투어를 진행하며 비치 보이스 멤버 중 처음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뉴욕시의 더 바텀 라인이나 로스앤젤레스의 록시와 같은 클럽에서 공연했으며, 이후 1981년 여름 투어에서 두비 브라더스의 오프닝 공연을 맡았다.

윌슨은 비슷한 분위기의 두 번째 솔로 앨범 Youngblood를 녹음했지만, 1983년 이 앨범이 발매될 무렵에는 이미 비치 보이스에 재합류한 상태였다. Youngblood는 차트에 오르지 못했지만, 존 홀이 작곡한 싱글 "What You Do To Me"는 72위까지 오르며 윌슨을 빌보드 핫 100에 솔로 싱글을 올린 두 번째 비치 보이스 멤버로 만들었다. 또한 이 곡은 빌보드 성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톱 20에 진입했다. 윌슨은 1980년대 비치 보이스 콘서트에서 이 곡과 같은 앨범의 "Rockin' All Over the World", 그리고 1981년 앨범의 "Heaven"을 자주 공연했다. "Heaven"은 1983년 12월에 익사한 형 데니스 윌슨을 추모하는 곡으로 항상 소개되었다.
4.2. 게스트 참여 및 기타 프로젝트
칼의 프로듀서 및 보컬로서의 활동은 비치 보이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70년대에는 딘 마틴의 아들인 리치 마틴과 남아프리카 그룹 더 플레임스와 같은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프로듀싱했다. 더 플레임스의 두 멤버는 나중에 비치 보이스 라인업에 임시로 합류하기도 했다. 그는 시카고의 히트곡 "Baby, What a Big Surprise"와 "Wishing You Were Here"(앨 자딘과 형 데니스와 함께), 엘튼 존의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브루스 존스턴과 함께), 데이비드 리 로스의 히트 커버곡 "California Girls", 워렌 지본의 "Desperados Under the Eaves", 그리고 카니/웬디 윌슨의 홀리데이 트랙 "Hey Santa!" 등 많은 곡에 백킹 보컬로 참여했다. 칼은 또한 올리비아 뉴턴존과 "You Were Great, How Was I?"라는 제목의 듀엣곡을 그녀의 스튜디오 앨범 Soul Kiss(1985)에 수록했지만, 싱글로 발매되지는 않았다.
칼은 더 박스 탑스가 비치 보이스와 투어했을 때 알렉스 칠튼과 친구가 되어 기타 레슨을 해주기도 했다. 칼은 1990년대에도 계속 녹음 활동을 이어갔으며, 돈 워스가 이끌었던 브라이언의 "Soul Searchin'"과 "You're Still a Mystery" 녹음에 참여했다. 이 곡들은 앤디 페일리 세션에서 취소된 브라이언 윌슨/비치 보이스 앨범의 기반으로 구상된 것이었다. 그는 또한 로버트 램과 게리 벡클리와 함께 앨범 Like a Brother를 녹음했으며, 생애 마지막 달까지 비치 보이스와 함께 투어를 계속했다.
5. 개인 생활 및 신념
칼 윌슨의 개인 생활은 그의 가족 관계, 결혼 생활, 그리고 사회적, 영적 신념을 통해 그의 삶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5.1. 가족 및 결혼 생활
윌슨은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는 비치 보이스의 오랜 세션 멤버인 빌리 하인시의 여동생 애니 하인시(Annie Hinsche)와 결혼했다. 애니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두었다. 칼이 "Angel Come Home"을 작곡한 것은 그와 애니의 결혼 생활이 파탄 나던 시기였는데, 공동 작곡가 제프리 쿠싱-머레이에 따르면 이 곡은 비치 보이스의 끊임없는 투어 중 아내와 헤어지는 것에 대한 윌슨의 슬픔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87년에는 딘 마틴의 딸 지나 마틴(Gina Martin, 1956년 12월 20일 출생)과 재혼했다. 지나는 이후 모든 투어에 동행했으며, 이 결혼 생활은 칼이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윌슨은 섀넌(Shannon)이라는 이름의 아이리시 세터를 키웠는데, 1976년 헨리 그로스의 감성적인 히트곡 "Shannon"은 이 개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5.2. 양심적 병역 거부 및 영적 신념
윌슨은 베트남 전쟁 당시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선언하고 미군 징집을 거부했다. 1988년까지 윌슨은 영적 내면 인식 운동의 안수 목사가 되었다.
6. 사망
윌슨은 1997년 초 하와이 휴가 중 병에 걸렸다. 그는 폐암 진단을 받고 화학 요법을 시작했다. 그는 10대 초반부터 담배를 피웠다. 병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그는 1997년 가을까지 진행된 비치 보이스의 여름 투어 내내 계속 연주하고 노래했다.
윌슨은 1998년 2월 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어머니 오드리 윌슨의 사망 두 달 후에 일어났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웨스트우드 빌리지 메모리얼 파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7. 유산 및 평가
칼 윌슨은 비치 보이스의 핵심 멤버로서 그의 음악적 기여와 개인적인 삶의 방식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사후에도 그의 음악은 계속해서 인정받고 있다.
7.1. 음악적 영향
칼은 "천사의 목소리"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으며, 보컬 실력의 성장이 두드러져 파워풀한 창법까지 익혔고, 브라이언의 팔세토를 대체하는 비치 보이스의 새로운 매력이 되었다. 롤링 스톤 록앤롤 삽화 역사(1976)의 데이브 마시는 더 후의 피트 타운젠드가 "비치 보이스의 칼 윌슨에게 크게 영향을 받아" R&B와 록을 모두 확장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Q 매거진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 100인" 중 20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7.2. 사후 인정
윌슨은 1988년 비치 보이스의 멤버로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벡클리-램-윌슨의 앨범 Like a Brother는 2000년에 마침내 발매되었으며, 칼의 후기 녹음물들은 계속해서 공개되고 있다. 브라이언의 앨범 Gettin' in Over My Head(2004)에는 미발매된 비치 보이스 곡 "Soul Searchin'"에서 칼의 보컬이 사용되었으며, 브라이언이 새로운 백킹 보컬을 녹음했다. 1995년 후반 새로운 비치 보이스 앨범 시도가 취소되면서 나온 오리지널 비치 보이스 버전은 결국 Made in California(2013) 박스 세트에 포함되어 발매되었으며, 칼의 보컬이 블렌딩된 또 다른 1995년 트랙 "You're Still a Mystery"도 함께 수록되었다. 2010년, 밴드 동료 앨 자딘은 자신의 첫 솔로 앨범 A Postcard From California를 발매했는데, 여기에는 칼이 녹음한 마지막 보컬 중 하나가 담긴 재구성된 트랙 "Don't Fight The Sea"가 포함되어 있다. 칼의 목소리는 2011년 11월 발매된 The Smile Sessions에서도 중심적인 보컬로 들을 수 있다.
재결합한 비치 보이스의 앨범 That's Why God Made the Radio(2012)의 한 트랙에서 윌슨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발표되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예정되었던 곡 "Waves of Love"는 2012년 재발매된 자딘의 A Postcard from California에 수록되었다. 비치 보이스 50주년 기념 재결합 투어 동안 쇼의 한 부분은 데니스와 칼의 추모에 할애되었다. 밴드 크루가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윌슨 형제들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동안, 밴드는 칼이 "God Only Knows"를 부른 고립된 보컬 트랙과 데니스가 "Forever"를 부른 고립된 보컬 트랙에 맞춰 하모니를 불렀다.
칼의 사망 직후 앨 자딘이 비치 보이스 투어에서 이탈을 선언했고, 칼이라는 기둥을 잃은 비치 보이스는 사실상 분열 상태에 빠졌다. 형 브라이언은 칼의 사망 4개월 후 발매된 솔로 앨범 이매지네이션에 추모곡 "Lay Down Burden"을 수록했다.
8. 장비
칼 윌슨은 경력 전반에 걸쳐 다양한 기타와 앰프를 사용했다. 그는 글을 쓸 때는 왼손잡이였지만, 기타는 모두 일반적인 오른손잡이용을 사용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깁슨 ES-335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나중에 넥을 깁슨 ES-355의 것으로 이식했다).
기타
- 카이 싱글 컷어웨이 어쿠스틱 - 픽업 추가
-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 선버스트
- 펜더 재규어 - 올림픽 화이트
- 리켄배커 360/12 구형 - 파이어글로
- 리켄배커 360/12 신형 - 파이어글로
- 펜더 일렉트릭 XII - 올림픽 화이트
- 길드 스타파이어 VI
- 펜더 텔레캐스터 - 내추럴 (빅스비 트레몰로 포함)
- 깁슨 ES-335 커스텀 - 블론드 (빅스비 트레몰로 포함)
-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 올림픽 화이트
- 에피폰 리비에라 12현 - 토바코 선버스트 (깁슨 넥 포함)
베이스
- 호프너 카피
앰프
- 펜더 듀얼 쇼맨 - 블론드 (아웃보드 스프링 리버브 유닛 포함)
- 펜더 듀얼 쇼맨 - 블랙
- 펜더 밴드마스터
- 펜더 베이스맨
- 펜더 트윈 리버브

칼은 곡에 따라 다른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1968년에서 1969년 라이브나 TV 출연에서는 데니스가 리드 보컬을 맡을 때 드럼을 담당하기도 했다. "Long Promised Road", "Feel Flows", "All This Is That"을 라이브에서 연주할 때는 키보드를 담당했다. "Good Vibrations" 라이브 연주 시 1970년대 초반까지는 베이스로 리프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9. 음반 목록
칼 윌슨의 주요 솔로 앨범 및 비치 보이스 활동과 관련된 작곡 목록은 다음과 같다.
솔로 앨범
연도 | 앨범 세부 정보 | 미국 차트 순위 |
---|---|---|
1981 | Carl Wilson
| 185 | |
1983 | Youngblood
| - | |
2000 | Like a Brother (게리 벡클리, 로버트 램과 함께)
| - |
솔로 싱글
발매일 | 제목 | 앨범 | 미국 차트 순위 | 호주 차트 순위 |
---|---|---|---|---|
1981년 3월 | "Hold Me" / "Hurry Love" | Carl Wilson | - | - |
1981년 6월 | "Heaven" / "Hurry Love" | 107 | - | |
1983년 3월 | "What You Do To Me" / "Time" | Youngblood | 72 | 98 |
1983년 7월 | "Givin' You Up" / "It's Too Early to Tell" | - | - | |
2015년 9월 | "This Is Elvis" | 비앨범 곡 | - | - |
작곡 또는 공동 작곡한 곡
- Surfin' U.S.A. (1963)
- "Surf Jam"
- Shut Down Volume 2 (1964)
- "Shut Down, Part II"
- All Summer Long (1964)
- "Carl's Big Chance" (브라이언 윌슨과 함께)
- The Beach Boys Today! (1965)
- "Dance, Dance, Dance" (브라이언, 마이크 러브와 함께)
- Wild Honey (1967)
- "How She Boogalooed It" (마이크, 브루스 존스턴, 앨 자딘과 함께)
- Friends (1968)
- "Friends" (브라이언, 데니스 윌슨, 앨 자딘과 함께)
- "Be Here in the Mornin'" (브라이언, 데니스, 앨 자딘, 마이크와 함께)
- "When a Man Needs a Woman" (브라이언, 데니스, 앨 자딘, 스티브 코르토프, 존 파크스와 함께)
- 20/20 (1969)
- "I Went to Sleep" (브라이언과 함께)
- Sunflower (1970)
- "It's About Time" (데니스, 앨 자딘, 밥 버치만과 함께)
- "Our Sweet Love" (브라이언, 앨 자딘과 함께)
- Surf's Up (1971)
- "Feel Flows" (잭 라일리와 함께)
- "Long Promised Road" (잭 라일리와 함께)
- Carl and the Passions - "So Tough" (1972)
- "All This Is That" (마이크, 앨 자딘과 함께)
- Holland (1973)
- "The Trader" (잭 라일리와 함께)
- "Leaving This Town" (마이크, 리키 파타르, 블론디 채플린과 함께)
- Pacific Ocean Blue (1977)
- "River Song" (데니스와 함께)
- "Rainbows" (데니스, 스티븐 칼리니치와 함께)
- L.A. (Light Album) (1979)
- "Good Timin'" (브라이언과 함께)
- "Full Sail" (제프리 쿠싱-머레이와 함께)
- "Angel Come Home" (쿠싱-머레이와 함께)
- "Goin' South" (쿠싱-머레이와 함께)
- Keepin' the Summer Alive (1980)
- "Keepin' the Summer Alive" (랜디 바흐만과 함께)
- "Livin' with a Heartache" (바흐만과 함께)
- Carl Wilson (1981)
- "Hold Me" (마나 스미스와 함께)
- "Bright Lights" (마나 스미스와 함께)
- "What You Gonna Do About Me?" (마나 스미스와 함께)
- "The Right Lane" (마나 스미스와 함께)
- "Hurry Love" (마나 스미스와 함께)
- "Heaven" (마나 스미스, 마이클 선과 함께)
- "The Grammy" (마나 스미스와 함께)
- "Seems So Long Ago" (마나 스미스와 함께)
- Youngblood (1983)
- "What More Can I Say" (마나 스미스와 함께)
- "She's Mine" (마나 스미스와 함께)
- "Givin' You Up" (마나 스미스, 제리 실링과 함께)
- "Of the Times" (마나 스미스와 함께)
- "Too Early to Tell" (마나 스미스, 존 데일리와 함께)
- "If I Could Talk to Love" (마나 스미스와 함께)
- "Time" (마나 스미스와 함께)
- The Beach Boys (1985)
- "It's Gettin' Late" (마나 스미스, 로버트 화이트 존슨과 함께)
- "Maybe I Don't Know" (마나 스미스, 스티브 레빈, 줄리안 스튜어트 린제이와 함께)
- "Where I Belong" (로버트 화이트 존슨과 함께)
- Lost & Found (1961-62) (1991)
- "Beach Boy Stomp (A.K.A. Karate)"
- Good Vibrations: Thirty Years of The Beach Boys (1993)
- "Our Team" (브라이언, 데니스, 앨 자딘, 마이크와 함께)
- Like a Brother (2000)
- "I Wish For You" (로버트 화이트 존슨, 필 갈드스톤과 함께)
- "Run Don't Walk" (필 갈드스톤과 함께)
- "They're Only Words" (필 갈드스톤과 함께)
- "Like A Brother" (필 갈드스톤과 함께)
- The Smile Sessions
- "Tune X"
- I Can Hear Music: The 20/20 Sessions (2018)
- "Sail Plane Song" (브라이언과 함께)
- Feel Flows (음반) (2021)
- "Loop de Loop" (브라이언, 앨 자딘과 함께)
- 비앨범 곡
- "This Is Elvis" (1980년 녹음, 2015년 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