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Family Background
카예타나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 공작부인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리리아 궁전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부모와 대부모의 영향 아래 어린 시절을 보냈다.
1.1. Birth and Childhood
카예타나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는 1926년 3월 28일, 마드리드의 리리아 궁전에서 제17대 알바 공작과 그의 부인 제9대 산 비센테 델 바르코 여후작 마리아 델 로사리오 데 실바 이 구르투바이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대부모는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와 알폰소 13세 국왕이었다. 그녀의 세례명은 카예타나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 이 실바였으나, 전체 세례명은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팔로마 알폰사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페르난다 테레사 프란시스카 데 파울라 루르데스 안토니아 호세파 파우스타 리타 카스토르 도로테아 산타 에스페란사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 이 데 실바 팔코 이 구르투바이였다.
1.2. Family Relationships and Upbringing
카예타나 공작부인의 아버지인 제17대 알바 공작 하코보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는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스페인의 저명한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그녀의 외증조모인 마리아 프란시스카 데 사레스 포르토카레로는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외제니의 언니였다. 이처럼 카예타나는 스페인 왕실 및 유럽의 주요 귀족 가문과 깊은 혈연적 유대를 맺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은 그녀가 스페인 사회에서 누린 독특한 지위와 명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Marriages and Children
카예타나 공작부인은 세 번의 결혼을 통해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특히 마지막 결혼은 언론과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다.
2.1. First Marriage
1947년 10월 12일, 카예타나 공작부인은 루이스 마르티네스 데 이루호 이 아르타스코스(Luis Martínez de Irujo y Artázcoz루이스 마르티네스 데 이루호 이 아르타스코스스페인어, 1919년 ~ 1972년)와 첫 결혼을 했다. 루이스는 소토마요르 공작의 막내아들이자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의 궁정 시녀였던 아나 마리아 데 아르타스코스 이 라바옌의 아들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2년 후에 스페인에서 열린 이 결혼식은 유럽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화려한 결혼식이 줄어드는 추세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뉴욕 타임스는 이 결혼식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결혼식"이라고 보도했으며, 당시 약 2000.00 만 ESP가 소요되었다고 알려졌다. 이는 2015년 기준으로 약 1000.00 만 USD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2.2. Second Marriage
1978년 3월 16일, 공작부인은 첫 남편과 사별한 지 6년 만에 헤수스 아기레 이 오르티스 데 사라테(Jesús Aguirre y Ortiz de Zárate헤수스 아기레 이 오르티스 데 사라테스페인어, 1934년 ~ 2001년)와 재혼했다. 그는 신학 박사이자 전직 예수회 사제였다. 아기레는 공작부인보다 8살 어렸으며 비적출자였는데, 1970년대 스페인에서는 이러한 출생 배경이 부유하고 독실한 가문 사이에서 여전히 사회적 낙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결혼은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작부인의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결혼 생활 동안 양자 카를로스와 함께 알바 가문의 영지를 관리했다. 아기레는 2001년에 사망했다.
2.3. Third Marriage
2000년대에 미망인이 된 공작부인은 자신보다 24살 어린 공무원이자 홍보 사업가인 알폰소 디에스 카라반테스(Alfonso Díez Carabantes알폰소 디에스 카라반테스스페인어, 1950년 ~ )와의 결혼을 희망했다. 이 결혼은 자녀들은 물론 후안 카를로스 국왕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전해졌다. 2008년 알바 가문은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랜 우정에 기반한 것이며, 결혼 계획은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공작부인은 결혼을 강행하기로 결심하고, 자녀들에게 스페인의 장엄한 궁전들, 프라 안젤리코, 티치아노, 고야부터 르누아르, 마르크 샤갈에 이르는 고대 및 근대 거장들의 회화 작품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초판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직접 쓴 편지들, 그리고 상당한 토지를 포함한 막대한 유산을 미리 분배했다. 당시 그녀의 재산은 약 6.00 억 EUR에서 35.00 억 EUR 사이로 추정되었다. 디에스 또한 그녀의 재산에 대한 모든 권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이후 두 사람은 2011년 10월 5일, 세비야의 라스 두에냐스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플라멩코에 대한 깊은 열정을 가졌던 공작부인은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을 위해 짧은 플라멩코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2.4. Issue
카예타나 공작부인은 첫 번째 결혼을 통해 5남 1녀, 총 6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이들 모두 그녀의 작위 중 일부를 물려받았다.
- 카를로스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 제19대 알바 공작 (1948년 10월 2일 마드리드 출생)
- 알폰소 마르티네스 데 이루호 이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 제18대 이하르 공작 (1950년 10월 22일 마드리드 출생)
- 하코보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 이 마르티네스 데 이루호, 제23대 시루엘라 백작 (1954년 7월 15일 마드리드 출생)
- 페르난도 마르티네스 데 이루호 이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 제11대 산 비센테 델 바르코 후작 (1959년 7월 11일 출생)
- 카예타노 마르티네스 데 이루호 이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 제4대 아르호나 공작, 제13대 살바티에라 백작 (1963년 4월 4일 마드리드 출생)
- 에우헤니아 마르티네스 데 이루호, 제12대 몬토로 여공작 (1968년 11월 26일 출생)
3. Public Appearances and Social Engagements
알바 공작부인은 스페인 및 국제 사교계에서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으며, 다양한 유명인사들과 교류하고 여러 대중 행사를 주최하거나 참여했다.
그녀의 세비야 궁전에는 재클린 케네디, 월리스 심프슨, 그레이스 공주와 모나코 대공 레니에 3세, 아나마리아 왕비와 콘스탄티노스 2세 국왕 등 수많은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방문했다.
1959년, 공작부인은 이브 생로랑 디자이너와 함께 마드리드의 리리아 궁전에서 자선 목적의 디올 패션쇼를 주최하기도 했다. 이 궁전에는 영화배우 찰턴 헤스턴, 소피아 로렌, 오드리 헵번, 라프 발로네 등 여러 유명 배우들도 방문했다. 젊은 시절 그녀는 리처드 아베던과 세실 비튼의 사진 모델로 활동했으며, 타임과 하퍼스 바자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배너티 페어의 국제 베스트 드레서 명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 Titles, Styles, and Honors
카예타나 공작부인은 생애 동안 수많은 세습 작위와 공식 경칭을 소유했으며, 국내외에서 여러 훈장을 받았다. 그녀는 알바 가문의 수장으로서 주로 "알바 여공작"으로 불렸지만, 14개의 스페인 그란데 작위를 포함하여 50개가 넘는 세습 작위를 보유했다.
4.1. Styles
카예타나 공작부인이 생애 동안 사용했던 공식 경칭은 다음과 같다.
- 1926년 3월 28일 ~ 1935년 1월 11일: 지극히 존귀하신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 이 실바 여사
- 1935년 1월 11일 ~ 1947년 1월 28일: 지극히 존귀하신 알리아가 여공작
- 1947년 1월 28일 ~ 1955년 2월 18일: 지극히 존귀하신 몬토로 여공작
- 1955년 2월 18일 ~ 2014년 11월 20일: 지극히 존귀하신 알바 여공작
4.2. Hereditary Titles
카예타나 공작부인은 기네스 세계 기록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위를 가진 귀족이었다. 그녀가 보유했거나 양위한 주요 세습 작위는 다음과 같다.
;공작위
- 제18대 알바 여공작, 스페인 그란데
- 제15대 알리아가 여공작, 스페인 그란데 - 아들 돈 알폰소에게 양위
- 제4대 아르호나 여공작, 스페인 그란데 - 아들 돈 카예타노에게 양위
- 제11대 베릭 여공작, 스페인 그란데
- 제17대 이하르 여공작, 스페인 그란데 - 아들 돈 알폰소에게 양위
- 제11대 리리아 이 헤리카 여공작, 스페인 그란데
- 제11대 몬토로 여공작, 스페인 그란데 - 딸 도냐 에우헤니아에게 양위
;백작-공작위
- 제12대 올리바레스 여백작-공작, 스페인 그란데
;후작위
- 제17대 카르피오 여후작, 스페인 그란데
- 제10대 산 비센테 델 바르코 여후작, 스페인 그란데 - 아들 돈 페르난도에게 양위
- 제16대 라 알가바 여후작
- 제16대 알메나라 여후작 - 아들 돈 알폰소에게 양위
- 제18대 바르카로타 여후작
- 제10대 카스타녜다 여후작
- 제23대 코리아 여후작
- 제14대 엘리체 여후작
- 제16대 미라요 여후작
- 제20대 라 모타 여후작
- 제20대 모야 여후작
- 제17대 오라니 여후작 - 아들 돈 알폰소에게 양위
- 제12대 오세라 여후작
- 제14대 산 레오나르도 여후작
- 제19대 사리아 여후작
- 제12대 타라소나 여후작
- 제15대 발둔키요 여후작
- 제18대 비야누에바 델 프레스노 여후작
- 제17대 비야누에바 델 리오 여후작
;백작위
- 제27대 아란다 여백작, 스페인 그란데 - 아들 돈 알폰소에게 양위
- 제22대 레모스 여백작, 스페인 그란데
- 제20대 레린 여백작, 스페인 그란데, 나바라 총독
- 제20대 미란다 델 카스타냐르 여백작, 스페인 그란데
- 제16대 몬테레이 여백작, 스페인 그란데
- 제20대 오소르노 여백작, 스페인 그란데
- 제18대 팔마 델 리오 여백작, 스페인 그란데 - 아들 돈 알폰소에게 양위
- 제12대 살바티에라 여백작, 스페인 그란데 - 아들 돈 카예타노에게 양위
- 제22대 시루엘라 여백작, 스페인 그란데 - 아들 돈 하코보에게 양위
- 제19대 안드라데 여백작
- 제14대 아얄라 여백작
- 제16대 카사루비오스 델 몬테 여백작
- 제16대 푸엔테스 데 발데페로 여백작
- 제11대 푸엔티두에냐 여백작
- 제17대 갈베 여백작
- 제18대 헬베스 여백작
- 제16대 기메라 여백작 - 아들 돈 알폰소에게 양위
- 제21대 모디카 여백작 (시칠리아 왕국)
- 제24대 리바데오 여백작 - 아들 돈 알폰소에게 양위
- 제25대 산 에스테반 데 고르마스 여백작
- 제12대 산타 크루스 데 라 시에라 여백작
- 제20대 비얄바 여백작
;자작위
- 제12대 라 칼사다 여자작
;영주위
- 제29대 모게르 여영주
4.3. National and Foreign Honors
카예타나 공작부인이 수여받은 국내외 훈장 및 서훈은 다음과 같다.
국가 | 훈장 | 훈장 리본 | 약칭 | 비고 |
---|---|---|---|---|
스페인 왕국 | 이사벨라 카톨릭 왕실 훈장 대십자장 | GYC | ||
스페인 왕국 | 알폰소 10세 현명왕 민사 훈장 대십자장 | |||
스페인 왕국 | 산 헤르메네힐도 왕실 군사 훈장 기사 | |||
스페인 왕국 | 알칸타라 기사단 대십자장 | |||
스페인 왕국 | 자선 민사 훈장 대십자장 | |||
스페인 왕국 | 농업 공로 민사 훈장 대십자장 | |||
스페인 왕국 | 안달루시아 메달 수훈자 | |||
스페인 왕국 | 콘셉시온 메달 수훈자 | |||
스페인 왕국 | 리네아 메달 수훈자 | |||
스페인 왕국 | 마드리드 공동체 메달 수훈자 | |||
스페인 왕국 | 스페인 적십자 전 명예 총재 메달 수훈자 | |||
스페인 왕국 | 조국을 위한 고통 메달 수훈자 | |||
그리스 왕실 | 자선 훈장 대십자 여기사 | |||
부르봉-양시칠리아 가문 | 칼라브리아 양시칠리아 성 조지 기사단 정의 대십자 여기사 | |||
일본 | 보관장 4급 등화 문장 |
4.4. Honorary Appointments
공작부인은 국내외에서 다양한 명예직을 역임했다.
;국내 명예직
- 카스티야라만차: 카스티야라만차 마셜
- 아라곤: 아라곤 총독
- 리리아: 리리아 명예 시장
- 세비야: 세비야 왕립 기병대 기사
- 스페인: 스페인 적십자 명예 회장
- 스페인: 스페인 국립 오케스트라 명예 회장
- 스페인: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 아카데미 명예 회장
;해외 명예직
5. Death and Funeral

카예타나 알바 공작부인은 2014년 11월 20일, 88세의 나이로 세비야의 라스 두에냐스 궁전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사망 당시 순자산은 약 50.00 억 USD로 추정되었다. 그녀의 아들 카를로스 피츠하메스 스투아르트, 제14대 우에스카르 공작이 제19대 알바 공작 작위를 승계했다.
공작부인의 시신은 세비야 시청에 안치되었고, 수천 명의 시민들이 조문을 위해 방문했다. 그녀의 관 옆에는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놓였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는 그녀의 아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애도를 표하고 세비야에 두 개의 화환을 보냈다. 세비야 시장은 조의를 표하기 위해 도시의 깃발을 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후안 호세 아센호, 쿠로 로메로,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도 공식적으로 조의를 표했다. 그녀의 장례식은 세비야 대성당에서 카를로스 아미고 바예호 추기경의 집전으로 거행되었으며, 왕실은 엘레나 인판타가 대표로 참석했다.
6. Legacy and Evaluation
카예타나 공작부인은 스페인 역사상 독특한 지위를 지닌 인물로 기억되며, 그녀의 삶은 대중의 끊임없는 관심과 때로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6.1. Unique Status and Contributions
카예타나 공작부인은 기네스 세계 기록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위를 가진 귀족'으로 등재되며 전례 없는 독특한 지위를 확립했다. 이는 단순한 호칭을 넘어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 속에 그녀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린 존재였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귀족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1959년 이브 생로랑과 함께 마드리드의 리리아 궁전에서 자선 목적의 디올 패션쇼를 개최한 것이 그 예시이다. 또한 그녀는 스페인 사교계의 중심인물로서 국내외 유명인사들과 교류하며 문화적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6.2. Public Image and Controversies
알바 공작부인은 생애 전반에 걸쳐 언론의 큰 관심을 받으며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그녀의 삶의 선택과 행동은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두 번째 남편인 헤수스 아기레가 비적출자였고 그녀보다 연하라는 점, 그리고 세 번째 남편인 알폰소 디에스 카라반테스가 24살 연하의 공무원이었다는 점은 당시 스페인 사회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자녀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막대한 유산을 미리 분배했던 일화는 그녀의 자유분방하고 단호한 성격을 보여주는 동시에 귀족 가문의 상속 문제를 대중에게 공개하며 큰 논란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멩코에 대한 그녀의 깊은 열정이나 대중과의 소통 방식은 그녀를 단순한 귀족이 아닌, 스페인 문화의 상징적인 인물로 각인시키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