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카를로 2세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의 출생과 어린 시절은 사보이아 공국의 중요한 전환기와 맞물려 있었다.
1.1. 출생과 가족
카를로 2세 디 사보이아는 1489년 6월 23일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1세와 비안카 디 몬페라토의 아들이었다.
1.2. 어린 시절과 섭정
카를로 2세는 1490년 아버지 카를로 1세가 일찍 사망하면서 불과 두 살 또는 한 살의 어린 나이에 사보이아 공작위를 계승했다. 그의 어머니 비안카 디 몬페라토(1472년-1519년)는 아들의 어린 나이 때문에 섭정으로서 공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했다. 비안카는 섭정 기간 동안 공국의 안정과 외교 관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재위 및 주요 활동
카를로 2세의 재위 기간은 짧았고 명목상이었지만, 그가 상속받은 왕위 계승권과 당시 유럽의 격변하는 정치 상황은 그의 시대를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2.1. 사보이아 공작 재위
카를로 2세는 1490년부터 1496년까지 사보이아 공작으로 재위했다. 그는 또한 피에몬테 공작, 아오스타 백작, 모리엔 백작, 니스 백작의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공작위에 오른 시점부터 사망할 때까지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의 재위는 명목상이었고, 실제적인 통치 권한은 전적으로 어머니인 섭정 비안카 디 몬페라토에게 있었다.
2.2. 상속된 왕위 계승권
카를로 2세는 1485년 그의 아버지 카를로 1세가 획득한 키프로스, 예루살렘, 아르메니아 왕국의 왕위 계승권을 상속받았다. 이 계승권은 사보이아 가문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명분이었으며, 비록 실질적인 통치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유럽 왕실 간의 복잡한 혈연 및 상속 관계 속에서 사보이아 가문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2.3. 시대적 배경 및 사건
카를로 2세의 짧은 재위 기간 동안, 프랑스의 샤를 8세는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나폴리를 정복하는 등 유럽의 정치 지형이 크게 변화하는 시기였다. 사보이아 가문은 섭정 비안카 디 몬페라토의 통치 아래, 샤를 8세가 공국을 자유롭게 통과하도록 허용했다. 이는 사보이아 공국이 이탈리아 전쟁의 주요 통로 중 하나였음을 보여주며, 당시 사보이아 가문이 강대국 사이에서 취해야 했던 신중한 외교 정책을 반영한다.
3. 사망
카를로 2세는 1496년 4월 16일 몬칼리에리에서 사망했다. 그는 침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인해 7세 또는 8세의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4. 계승
카를로 2세가 어린 나이에 사망하면서 사보이아 공국은 그의 종조부이자 사보이아 가문의 남성 후계자였던 필리포 2세(1496년-1497년 재위)에게 계승되었다.
카를로 2세의 일반 상속인(heir-general)은 그의 어린 여동생인 이올란디아 루도비카였다. 이올란디아는 필리포 2세의 장남인 미남공 필리베르토와 혼인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올란디아는 1499년 12세의 나이에 자식 없이 사망하여, 1497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작이 된 필리베르토 2세를 홀아비로 남겼다.
카를로 2세와 이올란디아의 다음 일반 상속인은 그들의 이모 안나 디 사보이아의 딸인 사촌 카를로타 디 나폴리(1479년-1506년) 공주였다. 카를로타는 이후 라발 백작 니콜라 기 드 몽포르와 혼인했다. 그들의 여성 후손들은 예루살렘 왕국의 계승권을 주장했다. 법적으로는 키프로스, 예루살렘, 아르메니아 왕국에 대한 계승권(그리고 르네 당주의 권리까지 포함하여)은 남성 후계자인 필리포 2세의 계열이 아닌 일반 상속인 계열에 속했다.
5. 평가
카를로 2세 디 사보이아 공작은 불과 7년의 짧은 생애와 6년의 명목상 재위 기간을 보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실질적인 권한은 어머니 섭정 비안카 디 몬페라토에게 있었으므로, 그 자신의 직접적인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했다. 그러나 그의 이른 죽음은 아메데오 9세의 남성 직계 혈통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사보이아 가문의 왕위 계승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그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키프로스, 예루살렘, 아르메니아 왕국의 계승권은 이후 사보이아 가문과 그 후손들 사이에서 복잡한 상속 분쟁의 근거가 되었으며, 이는 그의 짧은 생애가 남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