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1.1. 출생과 유년기
창락궁주는 고려의 제17대 국왕인 인종과 공예왕후의 셋째 딸로, 왕실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정확한 출생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막내 동생인 영화궁주가 1141년에 태어났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적어도 1141년 이전에 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성은 왕, 본관은 개성이다. 그녀는 의종, 명종, 신종 등의 친남매이며, 강종과 희종에게는 고모가 된다.
1.2. 궁주 책봉과 혼인
1151년 (의종 5년) 음력 4월, 창락궁주는 동생인 영화궁주와 함께 정식으로 궁주 宮主궁주한국어에 책봉되어 창락궁주의 호를 받았다. 이후 그녀는 신안후 왕성 信安侯 王珹신안후 왕성한국어과 혼인하였다. 신안후 왕성은 현종의 아들인 평양공 왕기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한남백 왕기이며 어머니는 예종의 딸인 승덕공주이다. 승덕공주가 창락궁주의 고모이므로, 신안후 왕성은 창락궁주에게는 사촌 관계이자, 현종을 공통 조상으로 하는 10촌 관계가 성립된다. 이들의 혼인은 당시 고려 왕실에서 흔히 이루어졌던 근친혼의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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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죽음
2.1. 사망과 애도
창락궁주는 1216년 (고종 3년) 음력 1월 27일에 사망하였다. 당시 고려의 국왕이었던 고종은 그녀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특별한 조치를 취했다. 고종은 소복 素服소복한국어 (흰 상복)을 착용하고 식사의 반찬 가짓수를 줄였으며, 모든 백관에게도 하루 동안 소복을 입게 하여 애도를 표하도록 명령했다.
2.2. 사후 평가와 위상
고종이 창락궁주의 죽음에 이토록 지극한 애도를 표한 것은 그녀가 고종의 외조모였기 때문이다. 이는 창락궁주가 왕실 내에서 지녔던 높은 위상과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왕족으로서의 그녀의 지위와 왕실의 의례적 측면을 엿볼 수 있다. 한편, 그녀의 남편인 신안후 왕성 信安侯 王珹신안후 왕성한국어은 1178년 (명종 8년) 음력 8월 20일에 사망하였고, 당시 명종 또한 사흘간 조회를 중지하며 그를 애도하였다.
3. 가족 관계
창락궁주를 중심으로 한 고려 왕실의 주요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3.1. 부모와 형제자매
- 아버지: 제17대 인종 仁宗인종한국어 (1109~1146, 재위: 1122~1146)
- 어머니: 인종의 제3비 공예왕후 恭睿王后공예왕후한국어 (1109~1183)
- 형제자매:
- 남매: 제18대 의종 毅宗의종한국어 (1127~1173, 재위: 1146~1170)
- 남매: 대령후 왕경 大寧侯 王暻대령후 왕경한국어 (1130~?)
- 남매: 제19대 명종 明宗명종한국어 (1131~1202, 재위: 1170~1197)
- 조카: 제22대 강종 康宗강종한국어 (1152~1213, 재위: 1211~1213)
- 남매: 원경국사 왕충희 元敬國師 王冲曦원경국사 왕충희한국어 (?~1183)
- 남매: 제20대 신종 神宗신종한국어 (1144~1204, 재위: 1197~1204)
- 조카 (손녀사위): 제21대 희종 熙宗희종한국어 (1181~1237, 재위: 1204~1211)
- 언니: 승경궁주 承慶宮主승경궁주한국어 (생몰년 미상)
- 언니: 덕녕궁주 德寧宮主덕녕궁주한국어 (?~1192)
- 동생: 영화궁주 永和宮主영화궁주한국어 (1141~1208)
3.2. 남편과 자녀
- 시아버지 (고모부): 한남백 왕기 漢南伯 王杞한남백 왕기한국어 (생몰년 미상)
- 시어머니 (고모): 승덕공주 承德公主승덕공주한국어 (생몰년 미상)
- 남편: 신안후 왕성 信安侯 王珹신안후 왕성한국어 (?~1178)
- 신안후 왕성은 1178년 (명종 8년) 음력 8월 20일 사망하였고, 당시 명종은 사흘간 조회를 중지시켰다.
- 자녀:
- 아들: 계성후 왕원 桂城侯 王沅계성후 왕원한국어
- 아들: 영인후 왕진 寧仁侯 王稹영인후 왕진한국어 (?~1220)
- 영인후 왕진은 희종의 부인이 되는 성평왕후의 아버지이다.
- 딸: 강종의 제2비 원덕왕후 元德王后원덕왕후한국어 (?~1239)
3.3. 근친혼 관계
고려 왕실에서는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근친혼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창락궁주의 경우, 그녀는 현종의 아들인 평양공의 현손인 신안후 왕성 信安侯 王珹신안후 왕성한국어과 혼인하였다. 신안후의 어머니인 승덕공주가 창락궁주의 고모였기 때문에, 신안후는 창락궁주와 사촌 관계였다. 또한 이들은 현종을 공통 조상으로 하는 10촌 관계이기도 했다.
창락궁주의 딸인 원덕왕후 元德王后원덕왕후한국어 역시 근친혼을 통해 강종과 혼인하였다. 강종은 창락궁주의 친오빠인 명종의 아들이므로, 원덕왕후와 강종은 사촌 관계였다. 이들은 친가로는 12촌, 외가로는 4촌 관계였다. 이처럼 고려 왕실에서는 복잡한 혈연 관계 속에서 여러 대에 걸쳐 근친혼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