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youth career
즈드라브코 쿠즈마노비치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으며, 여러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를 거치며 선수로서 성장했다.
1.1. Childhood and background
쿠즈마노비치는 1987년 9월 22일 스위스 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보스니아계 세르비아인 이주민으로, 아버지는 모드리차 근처의 스쿠그리치 마을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 류보와 할아버지 모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의 하부 리그 클럽인 FK 즈비예즈다에서 축구를 했으며, 쿠즈마노비치 또한 그곳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하며 가족의 전통을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베를린에서 프로 선수로 뛰다가 스위스의 FC 툰에서 선수 경력을 마쳤으며, 이후 스위스에 계속 거주했다.
1.2. Youth club career
쿠즈마노비치는 7세 때 스위스 지역 클럽인 FC 뒤레나스트에서 축구를 시작하여 7년간 그곳에서 뛰었다. 14세 때 영 보이즈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이적했고, 그곳에서 3년간 성장한 후 2003년 17세의 나이로 당시 리그 우승 11회를 기록한 스위스의 바젤 유소년 팀에 합류했다.
2. Club career
쿠즈마노비치는 스위스 슈퍼 리그의 바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이래로 이탈리아 세리에 A와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라리가 등 여러 유럽 리그의 클럽을 거치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1. Basel (first stint)
쿠즈마노비치는 2005-06 시즌에 바젤 1군 팀으로 승격되었고, 같은 시즌 1. 리가 클래식의 바젤 B팀에서도 뛰었다. 그는 스위스컵 2라운드 BSC 올드 보이즈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바젤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고, 팀은 6-1로 승리했다. 시즌 후반에 두 골을 더 추가했다. 그의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UEFA는 그를 유럽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젊은 선수 중 한 명으로 선정했으며, 2006년 스위스 골든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다.
2006-07 시즌은 쿠즈마노비치에게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그는 1군 주전으로 자리매김했으며, 2006년 8월 13일 FC 툰과의 경기에서 시즌 첫 리그 골을 기록하며 팀의 4-1 승리에 기여했다. 2006-07 시즌 전반기까지 그는 모든 대회에서 28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바젤에서 총 50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
2.2. Fiorentina
2007년 초, 쿠즈마노비치는 팔레르모의 영입 제의를 받았으나 협상은 갑자기 중단되었다. 2007년 1월 30일, 19세의 나이에 그는 피오렌티나와 4년 반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피오렌티나는 미드필더 마르코 도나델로의 부상으로 약 두 달간 결장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쿠즈마노비치를 영입했다. 이 이적은 논란이 되었는데, 팔레르모의 마우리치오 잠파리니 회장과 리노 포스키 단장은 피오렌티나가 그들의 축구 이사인 판탈레오 코르비노를 '자칼'이라고 비난하며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코르비노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재확인하며 "닭보다 자칼이 낫다"고 응수했다. 쿠즈마노비치는 훗날 구단 공식 웹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팔레르모 이적이 무산된 경위를 설명했다.
"잠파리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와 키 크고 대머리인 남자[포스키]... 그리고 통역을 위한 한 여성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단 5분만 주면서 이탈리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계약은 좋지 않았지만 어떻게 빨리 결정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내가 중요한지 아닌지 물었다. 내가 중요하다면 5분 안에 모든 것을 처리할 수는 없다.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정리했다.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어느 날 에이전트가 전화하여 피오렌티나가 너를 원하며, 그들은 훌륭한 클럽이고 너에게 진지하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승낙했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교체 명단에 머물던 그는 2007년 3월 4일 토리노를 상대로 5-1로 승리한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피오렌티나에서의 첫 시즌 전반기에 그는 세 경기에 더 출전했다.
피오렌티나에서의 첫 풀 시즌인 2007-08 시즌에 쿠즈마노비치는 1군 주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2008년 2월 17일 카타니아를 상대로 클럽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다. UEFA컵 8강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1차전 2-0 승리에서 첫 유럽 대회 골을 넣었다. 2차전에서 에버턴이 2-0으로 승리하여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갔고, 피오렌티나는 4-2로 승리했다. 쿠즈마노비치는 2007-08 시즌을 모든 대회에서 48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며 마쳤다.
다음 시즌인 2008-09 시즌, 2008년 10월 14일 쿠즈마노비치는 2013년까지 클럽에 머물게 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2008-09 시즌을 모든 대회에서 41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며 마쳤다. 피오렌티나에 있는 동안 쿠즈마노비치는 70회 이상의 세리에 A 출전과 성공적인 유럽 대회 출전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1군 선수로 성장했다. 2009-10 시즌을 앞두고 팀이 본격적으로 시스템 변경을 추진하자, 쿠즈마노비치는 대표팀 소집을 위해서라도 출전 기회를 주장하며 이적을 요청했다. 이후 2009년 8월 31일 이적 마감일에 슈투트가르트로 700.00 만 EUR의 이적료로 이적했다.
2.3. VfB Stuttgart
2009년 8월 31일 이적 마감일에 쿠즈마노비치는 슈투트가르트와 4년 계약을 체결했다.
2009년 9월 12일, 쿠즈마노비치는 함부르크와의 경기에서 22분간 뛰며 슈투트가르트 데뷔전을 치렀지만 팀은 3-1로 패배했다. 2009년 10월 20일 세비야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홈에서 1-3으로 패배하며 챔피언스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1-1 무승부로 끝난 원정 경기에서 첫 챔피언스리그 골을 기록했다. 2009년 11월 21일, 헤르타 BSC와의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으나, 경기 후반에 퇴장당했다. 쿠즈마노비치는 토마스 히츨슈페르거의 자리를 대신하여 주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부상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회에서 34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쿠즈마노비치는 1군 주전 자리를 되찾았고, 2010년 9월 18일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7-0으로 대파한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하며 2010-11 시즌을 잘 시작했다. 쿠즈마노비치의 활약은 곧 세리에 A 클럽들의 관심을 끌었으나, 그는 슈투트가르트에 머물러 행복하다고 주장하며 이적 소문을 일축했다. 유로파리그 64강 2차전 벤피카와의 경기에서 쿠즈마노비치는 추가 시간에 즉시 퇴장당했으며, 슈투트가르트는 벤피카에게 두 번째 패배를 당하며 유로파리그에서 탈락했다. 2010-11 시즌에 쿠즈마노비치는 모든 대회에서 47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다.
2011-12 시즌에는 첼시가 2300.00 만 EUR을 제시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쿠즈마노비치 영입에 대한 이적설이 계속되었다. 그는 2011년 9월 10일 하노버 96을 3-0으로 이긴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하는 등 7경기에 출전하며 시즌을 시작했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두 경기를 결장했다. 그는 10월 중순에 복귀하여 2011년 10월 22일 뉘른베르크와의 2-2 무승부 경기에서 복귀 골을 기록했다. 쿠즈마노비치는 2011-12 시즌을 모든 대회에서 29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하며 마쳤다.
2012-13 시즌 초반에는 오른쪽 허벅지 근육 파열로 인해 출전이 적었다. 2012년 9월 24일, 쿠즈마노비치와 구단 간의 계약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2012-13 시즌이 끝나면 그가 팀을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되었다. 이후 그는 교체 출전 및 선발 출전 모두에서 종종 제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뛰었다. 2012년 12월, 계약 협상이 결렬되면서 쿠즈마노비치와 구단 간의 관계는 회복 불능으로 틀어졌다.
2.4. Internazionale
2013년 1월 31일, 쿠즈마노비치는 이적료 미공개 조건으로 이탈리아 클럽인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했다.
쿠즈마노비치는 2013년 2월 3일 AS 시에나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인테르의 유일한 골을 어시스트했지만 팀은 3-1로 패배하며 인테르 데뷔전을 치렀다. 쿠즈마노비치는 1군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13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2013-14 시즌, 신임 감독 발터 마차리 체제에서 쿠즈마노비치는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즌을 교체 명단에 머물거나 부상으로 보냈다. 그는 15경기에 출전했다. 1군 출전 기회 부족으로 로마의 관심을 끌었으나, 그는 클럽에서 행복하다고 밝히며 잔류했다.
이후 2014-15 시즌에는 로베르토 만치니가 인테르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고, 그의 지도 아래 쿠즈마노비치는 더 자주 출전했다. 그는 유로파리그 예선 라운드 스탸르난과의 두 경기 모두에서 두 골을 어시스트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4-15 시즌 첫 리그 출전은 2014년 10월 29일 삼프도리아와의 경기에서였으며, 이 경기에서 유일한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1월에 임대 명단에 올랐으나, 이적 시장 마감 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15년 3월에는 부상으로 한 달간 결장했다. 그는 2014-15 시즌을 모든 대회에서 25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하며 마쳤다.
2015-16 시즌을 앞두고 쿠즈마노비치의 인테르에서의 미래는 세리에 A 클럽들(제노아, 볼로냐, 삼프도리아)과 왓퍼드로의 이적설이 돌면서 불확실해졌다.
2.5. Return to Basel (second stint)
2015년 6월 30일, 쿠즈마노비치는 바젤로 5년 계약을 맺고 복귀했다. 8년간의 공백 끝에 바젤로 돌아온 쿠즈마노비치는 선수 경력의 남은 기간 동안 바젤에 머물고 싶다고 밝혔다. 마티아스 델가도가 주장으로 선임된 후, 쿠즈마노비치는 마레크 수히와 함께 부주장으로 임명되었다.
쿠즈마노비치는 시즌 개막전 파두츠와의 경기에서 마티아스 델가도와 교체되어 63분에 출전하며 바젤 복귀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2-1로 승리했다. 2015년 8월 12일 툰과의 3-1 승리 경기에서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어 4주간 결장했다. 1군 팀 복귀 후, 타울란트 자카와 모하메드 엘네니의 뛰어난 활약으로 인해 1군 주전 자리를 되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의 복귀는 의문시되었다.
1군 출전 기회가 제한되자, 쿠즈마노비치는 세리에 A 복귀(제노아, 볼로냐, 삼프도리아)와 연결되었으며 1월 이적 시장에서 팀을 떠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우르스 피셔 감독과의 불화도 그의 이적 요인 중 하나였다.
2.5.1. Loan to Udinese
2016년 1월 21일, 바젤은 쿠즈마노비치를 시즌이 끝날 때까지 우디네세로 임대 보냈다고 발표했다. 이는 쿠즈마노비치가 우디네세 합류를 위해 클럽의 훈련 캠프를 떠나는 것이 허용된 후에 이루어졌다.
쿠즈마노비치는 2016년 1월 31일 라치오와의 0-0 무승부 경기에서 우디네세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그의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취소되었다). 복귀 이후 쿠즈마노비치는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그 포지션에서 뛰는 것을 즐겼으며, 클럽에서 16경기에 출전했다. 우디네세가 500.00 만 EUR에 그를 영구 영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쿠즈마노비치는 대신 원소속팀으로 돌아갔다.
2.5.2. Loan to Málaga
2016년 6월 30일, 쿠즈마노비치는 라리가 클럽인 말라가로 1년간 임대되었다. 그는 시즌 개막전 오사수나와의 홈 경기에서 71분에 후안피와 교체되어 출전하며 말라가 데뷔전을 치렀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그는 2017-18 시즌까지 임대가 연장되었다.
마르셀 콜러 감독 아래 바젤은 2018-19 시즌 스위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바젤은 1라운드에서 FC 몬틀링겐을 3-0으로, 2라운드에서 FC 에샬렌스를 7-2로, 16강에서 빈터투어를 1-0으로 이겼다. 8강에서는 시옹을 연장전 끝에 4-2로 꺾었고, 준결승에서는 취리히를 3-1로 이겼다. 이 모든 경기는 원정에서 치러졌다. 결승전은 2019년 5월 19일 스타드 드 스위스 방크도르프 베른에서 툰을 상대로 열렸다. 알비안 아예티가 첫 골을, 파비안 프라이가 두 번째 골을 넣었고, 툰의 데얀 소르기치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최종 결과는 바젤의 2-1 승리였다. 쿠즈마노비치는 네 번의 컵 경기에서 뛰었고, 준결승에서 취리히를 상대로 한 골을 기록했다.
2020년 6월 12일, 바젤 구단은 쿠즈마노비치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그리고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바젤에서 두 차례에 걸쳐 총 131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기록했다. 이 중 62경기는 스위스 슈퍼 리그, 12경기는 스위스컵, 2경기는 UEFA 챔피언스리그, 14경기는 UEFA 유로파리그 경기였으며, 41경기는 친선 경기였다. 그는 국내 리그에서 5골, 국내 컵에서 3골, UEFA컵에서 2골, 그리고 친선 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3. International career
즈드라브코 쿠즈마노비치는 스위스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세르비아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며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다.
3.1. Youth national team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스위스 U-21 대표팀에 소집되어 4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2007 UEFA 유럽 U-21 축구 선수권 대회 예선에서 스위스 U-21 대표팀으로 한 차례 출전했으며, 이로 인해 같은 대회에서 세르비아 대표팀으로 뛸 자격이 없었다. 그는 세르비아의 성인 대표팀 소집을 수락하기 전인 2007년 2월에 프랑스 U-21과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3.2. Senior national team
2007년 초, 세르비아 축구 협회는 그에게 세르비아 국가대표팀에서 뛸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고, 그는 2007년 3월 카자흐스탄과 포르투갈과의 경기에 소집되는 것을 수락했다. 그는 벨기에와의 원정 경기에서 세르비아를 위한 첫 두 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3-2로 패배하여 승점을 얻지 못했다. 쿠즈마노비치는 툰에서 태어나 스위스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 대표팀에서는 세르비아를 선택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세르비아인이며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싶다. 이는 마음속에서 느끼는 문제이며, 나는 그에 따라야 한다."

2010 FIFA 월드컵에서 쿠즈마노비치는 세르비아 대표팀 23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가나와의 경기에서 쿠즈마노비치는 핸들링으로 페널티를 내주었고, 가나는 득점하여 1-0으로 승리했다. 이 경기에도 불구하고 쿠즈마노비치는 두 번의 월드컵 경기에 더 출전했지만, 세르비아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는 총 50번의 캡 (국가대표 경기 출전)을 기록하며 6골을 넣었다. 그의 마지막 국제 경기는 2014년 11월 UEFA 유로 2016 예선 덴마크와의 경기였다.
4. Retirement
즈드라브코 쿠즈마노비치는 바젤과의 계약이 2020년 6월 12일 연장되지 않은 후, 프로 축구 선수 경력을 마무리한다고 발표했다.
5. Career statistics
5.1. Club statistics
클럽 | 시즌 | 리그 | 컵 | 유럽 | 기타 | 합계 | |||||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바젤 | 2004-05 | 0 | 0 | 1 | 0 | 0 | 0 | 0 | 0 | 1 | 0 |
2005-06 | 17 | 1 | 1 | 2 | 3 | 1 | 0 | 0 | 21 | 4 | |
2006-07 | 17 | 3 | 3 | 0 | 8 | 2 | 0 | 0 | 28 | 5 | |
총계 | 34 | 4 | 5 | 2 | 11 | 3 | 0 | 0 | 50 | 9 | |
피오렌티나 | 2006-07 | 4 | 0 | 0 | 0 | 0 | 0 | 0 | 0 | 4 | 0 |
2007-08 | 34 | 1 | 2 | 0 | 12 | 1 | 0 | 0 | 48 | 2 | |
2008-09 | 32 | 2 | 1 | 0 | 8 | 0 | 0 | 0 | 41 | 2 | |
총계 | 70 | 3 | 3 | 0 | 20 | 1 | 0 | 0 | 93 | 4 | |
슈투트가르트 | 2009-10 | 26 | 3 | 2 | 0 | 6 | 2 | 0 | 0 | 34 | 5 |
2010-11 | 32 | 9 | 3 | 0 | 12 | 2 | 0 | 0 | 47 | 11 | |
2011-12 | 26 | 5 | 3 | 1 | 0 | 0 | 0 | 0 | 29 | 6 | |
2012-13 | 12 | 0 | 2 | 0 | 3 | 0 | 0 | 0 | 17 | 0 | |
총계 | 96 | 17 | 10 | 1 | 21 | 4 | 0 | 0 | 127 | 22 | |
인테르나치오날레 | 2012-13 | 13 | 0 | 1 | 0 | 0 | 0 | 0 | 0 | 14 | 0 |
2013-14 | 15 | 0 | 1 | 0 | 0 | 0 | 0 | 0 | 16 | 0 | |
2014-15 | 14 | 0 | 1 | 0 | 10 | 1 | 0 | 0 | 25 | 1 | |
총계 | 42 | 0 | 3 | 0 | 10 | 1 | 0 | 0 | 55 | 1 | |
바젤 | 2015-16 | 12 | 0 | 2 | 0 | 4 | 0 | 0 | 0 | 18 | 0 |
2018-19 | 13 | 1 | 3 | 1 | 0 | 0 | 0 | 0 | 16 | 2 | |
2019-20 | 3 | 0 | 1 | 0 | 0 | 0 | 0 | 0 | 4 | 0 | |
총계 | 28 | 1 | 6 | 1 | 4 | 0 | 0 | 0 | 38 | 2 | |
우디네세 (임대) | 2015-16 | 16 | 0 | 0 | 0 | 0 | 0 | 0 | 0 | 16 | 0 |
총계 | 16 | 0 | 0 | 0 | 0 | 0 | 0 | 0 | 16 | 0 | |
말라가 (임대) | 2016-17 | 4 | 0 | 0 | 0 | 0 | 0 | 0 | 0 | 4 | 0 |
2017-18 | 8 | 0 | 0 | 0 | 0 | 0 | 0 | 0 | 8 | 0 | |
총계 | 12 | 0 | 0 | 0 | 0 | 0 | 0 | 0 | 12 | 0 | |
경력 합계 | 298 | 25 | 27 | 4 | 68 | 9 | 0 | 0 | 393 | 38 |
5.2. International statistics
세르비아 국가대표팀 | ||
---|---|---|
연도 | 출전 | 득점 |
2007 | 7 | 2 |
2008 | 8 | 0 |
2009 | 9 | 1 |
2010 | 11 | 1 |
2011 | 8 | 1 |
2012 | 3 | 1 |
2013 | 1 | 0 |
2014 | 3 | 0 |
총계 | 50 | 6 |
5.2.1. International goals
No. | 날짜 | 경기장 | 도시 | 상대 | 스코어 | 최종 결과 | 대회 |
---|---|---|---|---|---|---|---|
1. | 2007년 8월 22일 | 보두앵 국왕 경기장 | 브뤼셀 | 벨기에 | 2-1 | 3-2 | UEFA 유로 2008 예선 |
2. | 2007년 8월 22일 | 보두앵 국왕 경기장 | 브뤼셀 | 벨기에 | 3-2 | 3-2 | UEFA 유로 2008 예선 |
3. | 2009년 10월 10일 | 츠르베나 즈베즈다 경기장 | 베오그라드 | 루마니아 | 3-0 | 5-0 | 2010 FIFA 월드컵 예선 |
4. | 2010년 3월 3일 | 5월 7일 1962 경기장 | 알제 | 알제리 | 0-2 | 0-3 | 친선 경기 |
5. | 2011년 9월 6일 | 파르티잔 경기장 | 베오그라드 | 페로 제도 | 3-1 | 3-1 | UEFA 유로 2012 예선 |
6. | 2012년 2월 28일 | 치리온 경기장 | 리마솔 | 아르메니아 | 0-1 | 0-2 | 친선 경기 |
6. Honours
쿠즈마노비치는 프로 경력 동안 다음 우승 기록을 획득했다.
바젤
- 스위스컵: 2018-19
7. Personal life and anecdotes
즈드라브코 쿠즈마노비치의 아버지는 세르비아인으로, 스위스로 일하러 이주했으며, 쿠즈마노비치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2005-06 시즌에 스위스 골든 플레이어 상을 수상했으며, UEFA가 선정한 유럽에서 가장 흥미로운 젊은 선수 20인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쿠즈마노비치의 피오렌티나 이적 당시 팔레르모와의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셀틱 또한 그의 영입을 추진했다. 피오렌티나에서 뛰던 시절, 그는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는 리캴도 몬톨리보나 토마시 우이팔루시 등과 친하게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