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존 헨리 콘스턴틴 화이트헤드의 생애는 그의 학문적 성취만큼이나 다채로운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1.1. 출생 및 어린 시절
화이트헤드는 1904년 11월 11일 인도 첸나이(당시 마드라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헨리 화이트헤드 주교는 마드라스 교구의 주교였으며, 자신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한 경력이 있었다. 그는 또한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조카이자 이소벨 던컨의 조카이기도 했다. 화이트헤드는 어린 시절을 영국 옥스퍼드에서 보냈다.
1.2. 교육
화이트헤드는 명문 이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 볼리올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옥스퍼드에서 학업을 마친 후, 1929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1930년 오스왈드 베블런의 지도 아래 "사영 공간의 표현(The representation of projective spaces)"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린스턴에 머무는 동안 그는 솔로몬 렙셰츠와도 함께 연구했다.
1.3. 초기 경력 개발
학문적 경력을 시작하기 전, 화이트헤드는 잠시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며 버크마스터 & 무어(Buckmaster & Moore)에서 1년간 근무했다. 이 짧은 경험 이후 그는 수학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본격적인 학문적 길을 걸었다.
1.4. 제2차 세계 대전 활동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화이트헤드는 전쟁 노력에 기여했다. 그는 잠수함전에 대한 작전 연구에 참여했다. 이후에는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 팀에 합류했으며, 1945년에는 맥스 뉴먼이 이끄는 "Newmanry뉴먼리영어" 섹션에서 독일 텔레프린터 암호를 기계적 방법으로 해독하는 약 15명의 수학자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초기 디지털 전자 컴퓨터인 콜로서스 기계가 활용되었다.
1.5. 학계 경력 및 직책
화이트헤드는 1933년 볼리올 칼리지의 펠로우가 되었다. 1947년부터 1960년 사망할 때까지 옥스퍼드 대학교 막달렌 칼리지의 웨인플리트 순수수학 교수직을 역임했다. 또한 1953년부터 1955년까지 런던 수학회의 회장을 지냈다.
1.6. 개인사
1934년 화이트헤드는 콘서트 피아니스트 바버라 스미스와 결혼했다. 바버라 스미스는 엘리자베스 프라이의 고손녀이자 피터 피어스의 사촌이었다. 부부 사이에는 두 아들이 있었다. 1936년,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학생 수학회인 인베리언트 학회(The Invariant Society)를 공동 설립했다.
2. 주요 업적 및 활동
화이트헤드는 위상수학, 특히 호모토피 이론 분야에서 혁신적인 개념들을 도입하며 현대 수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2.1. 수학적 업적
화이트헤드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CW 복합체의 정의이다. 이 정의는 호모토피 이론의 표준적인 틀을 제공하며, 위상 공간을 구성하는 데 있어 매우 유연하고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그는 또한 단순 호모토피 이론의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이후 대수적 K-이론과 관련하여 크게 발전했다. 화이트헤드 곱은 호모토피 이론에서 중요한 연산으로, 두 호모토피류의 결합을 나타낸다. 아벨 군에 대한 화이트헤드 문제는 사하론 셸라에 의해 독립성 증명으로 해결되었다. 위상수학과 푸앵카레 추측에 대한 그의 깊은 관여는 화이트헤드 다양체의 창조로 이어졌다. 교차 모듈의 정의 또한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2.2. 주요 기여 분야
화이트헤드는 미분 위상수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특히 삼각분할과 그와 관련된 매끄러운 구조에 대한 그의 연구는 이 분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전반적인 연구는 대수적 위상수학의 기반을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3. 저서 및 출판물
화이트헤드는 그의 수학적 업적을 담은 여러 중요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다음은 그의 대표적인 출판물 중 일부이다.
- J. H. C. Whitehead, "C1-Complexes", The Annals of Mathematics, Second Series, Vol. 41, No. 4 (1940년 10월), pp. 809-824.
- J. H. C. Whitehead, "On incidence matrices, nuclei and homotopy types", Ann. of Math. (2) 42 (1941), 1197-1239.
- J. H. C. Whitehead, "Combinatorial homotopy. I.", Bull. Amer. Math. Soc. 55 (1949), 213-245.
- J. H. C. Whitehead, "Combinatorial homotopy. II.", Bull. Amer. Math. Soc. 55 (1949), 453-496.
- J. H. C. Whitehead, "A certain exact sequence", Ann. of Math. (2) 52 (1950), 51-110.
- J. H. C. Whitehead, "Simple homotopy types", Amer. J. Math. 72 (1950), 1-57.
- 손더스 맥레인, J. H. C. Whitehead, "On the 3-type of a complex", Proc. Natl. Acad. Sci. USA 36 (1950), 41-48.
- J.H.C. Whitehead, "Manifolds with Transverse Fields in Euclidean Space", The Annals of Mathematics, Vol. 73, No. 1 (1961), pp. 154-212. (사후 출판됨)
4. 영향 및 평가
존 헨리 콘스턴틴 화이트헤드는 그의 혁신적인 연구와 개념들을 통해 20세기 수학, 특히 위상수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4.1. 긍정적 평가
화이트헤드의 공헌은 수학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런던 수학회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두 개의 상을 제정했다. 하나는 매년 여러 수상자에게 수여되는 화이트헤드 상이고, 다른 하나는 격년으로 수여되는 시니어 화이트헤드 상이다. 조지프 J. 로트먼은 그의 저서 "대수적 위상수학 입문(An Introduction to Algebraic Topology영어)"에서 화이트헤드의 지적 능력에 대한 헌사로 "대수적 위상수학 교과서는 모두 클라인 병의 정의로 끝나거나 J. H. C. 화이트헤드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통신으로 끝난다는 헛소문이 있다"고 언급하며 그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4.2. 후대에 미친 영향
화이트헤드의 CW 복합체 정의는 호모토피 이론의 표준적인 틀이 되었으며, 이는 후대 연구의 기초를 제공했다. 그가 도입한 단순 호모토피 이론은 대수적 K-이론과 연관되어 크게 발전했다. 그의 위상수학 연구와 푸앵카레 추측에 대한 관심은 화이트헤드 다양체의 개념으로 이어졌다. 또한 교차 모듈의 정의는 대수적 위상수학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는 미분 위상수학에서도 삼각분할과 매끄러운 구조에 대한 중요한 기여를 했다. 1950년대 후반, 화이트헤드는 당시 퍼가몬 프레스의 회장이었던 로버트 맥스웰에게 새로운 저널인 토폴로지의 창간을 제안했으나, 첫 호가 1962년에 발행되기 전인 1960년에 사망하여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5. 사망
존 헨리 콘스턴틴 화이트헤드는 1960년 5월, 프린스턴 대학교를 방문하던 중 무증상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6. 관련 항목
- 대수적 호모토피
- CW 복합체
- 화이트헤드 곱
- 화이트헤드 다양체
- 교차 모듈
- 호모토피 이론
- 미분 위상수학
- 블레츨리 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