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education
존 웰본 루트의 생애는 그의 고향 조지아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어, 미국 남북 전쟁이라는 격동기를 거쳐 영국에서 교육을 받는 특별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초기 경험과 건축 견습 과정은 훗날 그가 미국의 주요 건축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1. Birth and childhood
존 웰본 루트는 1850년 조지아주 럼프킨에서 농장주 시드니 루트와 메리 하비 클라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외삼촌인 마셜 존슨 웰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루트는 어린 시절 애틀랜타에서 주로 가정 교육을 받았다. 미국 남북 전쟁 중 북부 연방군이 애틀랜타를 함락하자, 그의 아버지 시드니는 선박 사업의 본거지였던 영국 리버풀로 어린 루트와 다른 한 소년을 증기선에 태워 보냈다. 한편, 그의 어머니와 누이는 조지아주 커스버트로 피난했다.
1.2. Educational background and early influences
리버풀에 머무는 동안 루트는 리버풀 근처의 클레어몬트 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그의 후기 설계 작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특히, 그는 세계 최초의 금속 프레임과 유리 커튼월 건물인 오리엘 챔버스 (1864년)와 16 쿡 스트리트 (1866년)를 설계한 리버풀 건축가 피터 엘리스의 선구적인 작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루트는 1869년 뉴욕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그는 뉴욕의 렌윅 앤 샌즈(Renwick and Sands) 소속 건축가인 제임스 렌윅 주니어 밑에서 무급 견습생으로 일했다. 이후 그는 뉴욕의 존 버틀러 스누크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스누크를 위해 일하면서 루트는 워런 앤 웻모어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전신인 원래의 그랜드 센트럴 디포(Grand Central Depot) 건설의 감독관으로 근무했다. 이 과정에서 루트는 헨리 홉슨 리처드슨의 건축 양식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2. Career and major achievements
존 웰본 루트의 경력은 시카고로 이주하여 대니얼 번햄과 함께 번햄 앤 루트를 설립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그는 고층 건물의 건설을 가능하게 한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으며, 건축계의 주요 리더로 활약했다.
2.1. Founding of Burnham and Root
1871년, 루트는 시카고로 이주하여 한 건축 회사에서 제도사로 일했다. 그는 그곳에서 대니얼 번햄을 만나게 되었고, 2년 후인 1873년에 두 젊은 건축가는 영향력 있는 건축 회사인 번햄 앤 루트를 공동 설립했다. 이들은 18년 동안 함께 일하며 시카고 건축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873년 불황 시기에는 루트가 다른 회사에서 추가 수입을 얻고, 장로교 제일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2.2. Architectural innovations
루트는 시카고의 습지와 같은 연약한 지반에서 고층 건물이 가라앉지 않도록 강철 들보를 엮은 떠다니는 뗏목 기초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혁신적인 시스템은 1882년 몬톡 빌딩에 처음 적용되었다. 그는 이후 1887년 피닉스 빌딩에서는 이 강철 프레임의 사용을 수직 내력벽으로 확장했는데, 이는 윌리엄 르 배런 제니의 1885년 홈 인슈어런스 빌딩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고층 건물의 안전성과 실용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현대 건축의 발전에 기여했다.
2.3. Professional leadership and associations
루트, 번햄, 단크마르 아들러, 그리고 루이스 설리번은 동부 해안의 건축가들이 자신들을 경시한다고 느끼면서 서부 건축가 협회를 결성했다. 루트는 1886년 이 협회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1887년에는 전국적인 미국 건축가 협회의 이사로 선출되었다. 그의 전성기 작품들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미국 국립역사기념물, 미국 국립사적지, 그리고 시카고 랜드마크로 지정되었다.
2.4. World's Columbian Exposition
루트는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릴 시카고 세계 콜럼버스 박람회의 계획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박람회 건설이 시작되기 전, 그는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자신의 작업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3. Personal life
존 웰본 루트의 사적인 삶은 두 번의 결혼과 가족 관계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의 가족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그의 처형은 루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중요한 전기를 남겼다.
3.1. Marriages and family
루트는 1879년 메리 루이즈 워커와 결혼했으나, 그녀는 6주 후 결핵으로 사망했다. 1882년, 그는 도라 루이즈 먼로(해리엇 먼로의 언니)와 재혼했다. 그들의 아들 존 웰본 루트 주니어 또한 시카고에서 건축가로 활동했다. 루트의 처형인 해리엇 먼로는 1896년 "존 웰본 루트: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의 전기를 집필하여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4. Significant architectural works
존 웰본 루트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중요한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이들 중 다수는 현대 건축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시카고에 위치하며, 일부는 국가적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그라니스 블록 (1880년) 시카고 (파괴됨)
- 세인트 가브리엘 교회 (1880년) 시카고
- 몬톡 빌딩 (1882년-1883년) 시카고 (파괴됨)
- 루커리 빌딩 (1885년) 시카고, 미국 국립역사기념물

- 피닉스 (피닉스) 빌딩 (1887년) 시카고 (파괴됨)
- 레이크뷰 장로교회 (1888년) 시카고

- 윌리엄 칙 스카리트 하우스 (1888년), 미국 국립사적지
- 모나드녹 빌딩 (1889년), 시카고, 미국 국립사적지
- 소사이어티 포 세이빙스 빌딩, 클리블랜드, (1889년), 미국 국립사적지
- 릴라이언스 빌딩 (1889년) 시카고, 1층만, 미국 국립역사기념물

- 키아쿡 유니언 데포 (1891년) 아이오와주 키아쿡, 미국 국립사적지
- 금주 사원 (1892년) 시카고 (파괴됨)
5. Death
1891년 1월 15일, 존 웰본 루트는 폐렴으로 인해 41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는 시카고 업타운에 위치한 그레이스랜드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죽음은 시카고 학파의 발전과 시카고 세계 콜럼버스 박람회 계획에 큰 영향을 미쳤다.
6. Legacy and reception
존 웰본 루트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현대 건축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구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혁신적인 접근 방식과 기술적 기여는 오늘날까지도 건축계에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6.1. Awards and recognition
루트는 사후인 1958년에 미국 건축가 협회 골드 메달을 수상하며, 그의 건축적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그 역사적, 건축적 중요성으로 인해 미국 국립역사기념물, 미국 국립사적지, 그리고 시카고 랜드마크로 지정되었다.
6.2. Influence on modern architecture
루트는 시카고 학파 양식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시카고의 연약한 지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떠다니는 뗏목 기초 시스템' 개발과 고층 건물에 강철 프레임을 도입한 선구적인 기여는 고층 건물의 대량 건설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혁신은 당시 건설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도시의 형태를 재정의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현대 건축의 방향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기능성과 기술적 진보를 결합하여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으며, 이는 20세기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발자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