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조지 에밀 펄레이드의 생애는 루마니아에서의 어린 시절과 교육,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나뉜다.
1.1. 출생 및 어린 시절
조지 에밀 펄레이드는 1912년 11월 19일 루마니아 이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아시 대학교의 철학 교수였고, 어머니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이러한 학문적인 가정 환경은 펄레이드의 어린 시절과 학문적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1.2. 교육
펄레이드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위치한 카롤 다빌라 의과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여 1940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시기에 그는 초기 학문적 탐구를 시작하며 과학자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2. 경력 및 연구
조지 에밀 펄레이드는 세포생물학 분야에서 수많은 중요한 발견을 이루었으며, 이는 현대 생물학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1. 미국 이주 및 초기 연구
펄레이드는 1946년까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했다. 같은 해, 그는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뉴욕 대학교 생물학 연구실에서 로버트 챔버스를 돕던 중, 그는 알베르 클로드 교수를 만났다. 이후 펄레이드는 클로드와 함께 록펠러 의학 연구소에 합류했으며, 1952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1948년에는 록펠러 의학 연구소의 조교수로 임명되었다.
2.2. 주요 연구 기관 및 직책
펄레이드는 록펠러 의학 연구소에서 1958년부터 1973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해당 부서의 책임자를 맡았다. 1973년에는 예일 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90년까지 교수로 재직했으며, 예일 대학교 세포생물학과의 초대 학과장을 역임했다. 현재 예일 대학교 세포생물학과의 학과장 직위는 그의 이름을 따 "조지 펄레이드 교수직"으로 명명되어 있다. 1983년에는 예일 대학교의 선임 연구원이자 학장 고문이 되었다. 1990년부터 2008년 사망할 때까지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UCSD)에서 의학 명예 교수이자 과학 담당 명예 학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1981년에는 세계 문화 협의회의 창립 멤버가 되었고, 1985년에는 학술지 『세포 및 발달 생물학 연례 평론』(Annual Review of Cell and Developmental Biology)의 창립 편집장을 맡았다. 1988년에는 미국-루마니아 예술 과학 아카데미(ARA)의 명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2.3. 주요 과학적 발견
록펠러 의학 연구소에서 펄레이드는 전자 현미경을 활용하여 리보솜, 미토콘드리아, 엽록체, 골지체 등 세포 내 소기관의 내부 구조를 심층적으로 연구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펄스-체이스 분석'이라는 실험 전략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실험을 통해 펄레이드와 그의 동료들은 세포 내에 분비 경로가 존재하며, 거친면 소포체와 골지체가 함께 기능한다는 기존 가설을 확증할 수 있었다. 그는 1955년에 소포체에 존재하는 리보솜을 처음으로 기술하며, 이 작은 입자들이 단백질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펄레이드는 또한 스위스 해부학자 에발트 R. 바이벨과 함께 바이벨-펄레이드 소체를 발견하고 기술했다. 이 소체는 내피 세포에만 존재하는 저장 소기관으로, 폰 빌레브란트 인자와 다양한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다.
1960년대에 펄레이드는 두 가지 접근 방식을 병행하거나 연속적으로 사용하여 분비 과정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첫 번째는 필립 시케비츠, 루이스 조엘 그린, 콜빈 레드먼, 데이비드 사바티니, 다시로 유타카와의 협력을 통해 개발된 세포 분획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이었다. 이 연구는 지모겐 과립의 특성 규명과 소포체의 수조 공간 내 분비 산물 분리 발견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접근 방식은 주로 방사선 자기 기록법에 의존했으며, 뤼시앵 카로와 특히 제임스 제이미슨과의 협력을 통해 온전한 동물 또는 췌장 절편에 대한 실험을 수행했다. 이 일련의 연구는 단백질의 합성 및 세포 내 처리 과정에 대한 현재의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펄레이드의 리보솜 발견은 2009년 화학 노벨상을 수상한 벤카트라만 라마크리슈난, 토마스 A. 스타이츠, 아다 E. 요나트의 "리보솜의 구조와 기능 연구"에 결정적인 기반을 제공했다. 1974년 12월 12일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그는 "단백질 분비 과정의 세포 내적 측면"(Intracellular Aspects of the Process of Protein Secretio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2.4. 수상 및 영예
조지 에밀 펄레이드는 그의 뛰어난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아 수많은 상과 영예를 안았다.
- 1961년: 미국 국립 과학원 회원
- 1964년: 파사노상
- 1966년: 앨버트 래스커 기초 의학 연구상
- 1967년: 가드너 국제상
- 1968년: 왕립 현미경 학회 명예 펠로우(HonFRMS)
- 1970년: 컬럼비아 대학교 루이자 그로스 호르위츠상 (레나토 둘베코, 키스 포터와 공동 수상)
- 1971년: 카네기 멜런 대학교 딕슨 과학상
- 1974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알베르 클로드, 크리스티앙 드뒤브와 공동 수상)
- 1975년: 루마니아 아카데미 명예 회원
- 1975년: 미국 성취 아카데미 골든 플레이트 상
- 1981년: E.B. 윌슨 메달
- 1984년: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ForMemRS)
- 1986년: 미국 국가 과학 메달 (생물 과학 분야)
- 1988년: 미국-루마니아 예술 과학 아카데미(ARA) 명예 회원
3. 개인 생활
조지 에밀 펄레이드는 두 번의 결혼을 했다. 첫 번째 결혼은 1941년 6월 12일 산업가 니콜라에 말락사의 딸인 이리나 말락사(1919년생)와 이루어졌다. 부부 사이에는 조지아(1943년생)와 시어도어(1949년생) 두 자녀가 있었다. 이리나는 1969년에 사망했으며, 이후 펄레이드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의 세포생물학자 마릴린 파크하르와 재혼했다.
4. 영향 및 평가
조지 에밀 펄레이드는 세포생물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연구는 현대 생물학의 발전에 필수적인 토대를 제공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세포생물학자"로 불리며, 전자 현미경과 세포 분획법에서의 혁신은 현대 분자세포생물학의 기초를 다졌다.
그의 연구는 세포의 기능적 조직에 대한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현대 세포생물학 발전의 핵심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특히 리보솜의 발견과 단백질 분비 경로의 규명은 세포가 단백질을 합성하고 운반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혁명적인 기여를 했다. 그의 1974년 노벨상 수상 강연은 단백질 수출을 위한 합성 및 세포 내 처리 과정에 대한 현재 우리의 많은 아이디어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펄레이드의 과학적 유산은 그가 몸담았던 기관들에도 남아 있다. 예일 대학교 세포생물학과의 학과장 직위는 그의 이름을 따 "조지 펄레이드 교수직"으로 명명되어 있으며, 이는 그의 학문적 업적과 영향력을 기리는 상징이다. 또한 그의 리보솜 발견은 2009년 화학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에 중요한 기반이 되는 등, 후대 과학자들의 연구에도 지속적인 영감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