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조지 아키야마는 1943년 4월 27일 도쿄도 닛포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아키야마 유우지이다.
1.1. 어린 시절과 가족
그는 다섯 형제자매 중 둘째 아들로, 위로는 형과 누나가, 아래로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재일 한국인 출신으로, 뛰어난 솜씨를 가진 조화 장인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가족은 도치기현 다누마정으로 피난을 갔으며, 10살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아시카가시로 이사하여 극심한 빈곤을 경험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직접 만화책을 만들기도 했다.
1.2. 교육 및 초기 경력
고등학교 진학을 권유받았으나, 가족을 생각하여 중학교 졸업 후 도쿄로 상경했다. 간다에 위치한 대본소 만화 도매상인 호메이도(芳明堂)에 취직하여 근무했다. 호메이도에서 일하면서 담당했던 와카기 쇼보(若木書房)에 원고를 들고 가거나, 만화가 마에타니 요시미쓰의 집을 매일 방문하며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그의 첫 단행본은 마에타니 요시미쓰의 명의로 출판되었다. 또한, 대본 단행본 《풍마》(東邦漫画出版社)에 본명인 아키야마 유우지 명의로 《폭풍과 닌자》가 실렸으며, 이는 시라토 산페이의 선평을 받기도 했다.
호메이도 퇴사 후에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일본방송영화에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싸워라! 오스퍼》 작업을 도왔다. 이후 고단샤에 꾸준히 원고를 제출했고, 편집자의 소개로 약 1년 반 동안 모리타 겐지에게 사사받았다.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면서도 대본소 만화에 작품을 발표했으며, 1965년 《별책 소년 매거진》 신년호에 《심술궂은 E》가 실리며 정식 데뷔작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소년화보》에 《토피나 작전》을, 《모험왕 증간》에 《로봇 전쟁》을 게재했다.
2. 경력
조지 아키야마는 데뷔 초부터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2.1. 데뷔와 초기 작품 활동
1966년 《별책 소년 매거진》에 연재한 개그 만화 《해골군》이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 연재 의뢰를 받은 《파토맨 X》가 히트하며 1968년 고단샤 아동 만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잔혹 베이비》, 《컴퓨탄》, 《허풍쟁이 돈돈》, 《데로린맨》 등 페이소스 넘치는 개그를 특징으로 하는 개그 만화가로 성공을 거두었다.
2.2. 논란이 된 작품과 사회적 파장
1970년에는 주간 소년 선데이에 《제니게바》를, 주간 소년 매거진에 《아슈라》를 각각 발표하며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는 노골적인 묘사로 인간의 선악과 도덕성을 질문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아슈라》 1화에는 기아로 인해 인육을 먹고 심지어 자신의 아이까지 먹으려 하는 여인의 묘사가 담겨 있다. 이 내용이 실린 1970년 8월 2일자 《주간 소년 매거진》은 일부 지역에서 유해 도서로 지정되었고, 작가 아키야마에게 취재 요청이 쇄도하며 일약 시대의 인물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만화계에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아슈라》는 2012년 도에이 애니메이션에 의해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논란의 한가운데였던 1971년 《주간 소년 선데이》 11호에서는 《고백》의 연재를 시작했다. 이 만화는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을 게재한 다음 주에는 지난주 고백이 거짓이었다고 쓰는 행위를 반복하며 허구와 진실이 뒤섞인 과거를 풀어가는 전례 없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2.3. 은퇴와 복귀
《고백》 연재 중 조지 아키야마는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고, 여러 잡지에 연재 중이던 모든 작품을 중단한 뒤 1971년 6월부터 일본 일주 방랑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불과 3개월 후인 1971년 주간 소년 점프 34호에 《장미의 언덕》으로 복귀했다.
2.4. 주요 작품 및 성과
복귀 후 그는 활동 영역을 청년지로 넓혔다. 1973년 12월 5일 발매된 《빅 코믹 오리지널》 19호부터 《부랑운》의 연재를 시작했다. 이 작품은 에도 시대 말기 도카이도 시나가와슈쿠를 배경으로,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도매상의 우두머리 부랑운을 주인공으로 하여 남녀의 미묘한 감정과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그린 시대극 만화이다. 이 작품은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대히트작이 되었고, 1977년도 하나조노 대학 입시 문제에 출제되기도 했다. 또한, 와타리 데쓰야 주연(1978년, TV 아사히)과 비트 다케시 주연(1990년, TBS)으로 두 차례 텔레비전 드라마화되었다. 《부랑운》은 4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연재되어 2017년 9월에 최종회를 맞이했으며, 총 112권으로 완결되었다. 이 시리즈는 1982년 도에이 애니메이션과 매드하우스에 의해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1979년에는 이 작품으로 쇼가쿠칸 만화상을 수상했다.
2.5. 기타 주요 작품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주간 만화 고라쿠》에 성인 만화 《핑크의 커튼》을 연재했다. 이 작품은 1982년부터 닛카쓰 로망 포르노에서 성인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영화판은 큰 호평을 받아 1983년까지 3편이 제작되는 인기 시리즈가 되었고, 주연을 맡은 미호 준을 닛카쓰 로망 포르노의 간판스타로 만들었다. 그는 또한 성경의 만화화를 직접 작업하여 그 존재감을 더욱 각인시켰다. 이 만화판 《성경》은 겐토샤에서 발행되었다.
그 외 주요 작품으로는 《초인 하루코》(1982년~1984년), 《해인 곤즈이》(1984년), 《연인의 매일》(1985년~1992년), 《구애꾼 조》(1986년~1987년), 《러블린 먼로》(1989년~1993년), 《여장남자 기사부로》(1993년~2002년), 《박애의 사람》(1993년~1996년), 《도부게로사마》(1995년~1996년), 《버리기 아까운 사람들》(1996년~1999년), 《살아라 키키》(2001년~2002년), 《WHO are YOU》(2002년, 연재 당시 아키야마 유우지 명의), 《만화 중국 입문: 까다로운 이웃 연구》(2005년) 등이 있다.
3. 작품 목록
제목 | 연재 기간 | 출판사 | 권수 | 비고 |
---|---|---|---|---|
《해골군》 | 1966년 | 별책 소년 매거진 | 1권 | 첫 연재 작품 |
《파토맨 X》 | 1967년~1968년 | 주간 소년 매거진 | 5권 | 제9회 고단샤 아동 만화상 수상 |
《검은 수염 탐정장》 | 1969년 | 주간 소년 점프 | 1권 | |
《잔혹 베이비》 | 1969년~1971년 | 주간 소년 챔피언 | 1권 | 창간호부터 연재 |
《컴퓨탄》 | 1969년 | 주간 소년 킹 | 1권 | |
《데로린맨》 | 1969년~1970년 | 주간 소년 점프 | 2권 | 철학적 개그로 평가되며, 리메이크 후 단행본화되며 '원조 데로린맨'으로 개칭 |
《허풍쟁이 돈돈》 | 1969년~1970년 | 주간 소년 매거진 | 5권 | |
《컴퓨탄》 | 1969년~1970년 | 소년화보 | 1권 | |
《아슈라》 | 1970년~1971년 | 주간 소년 매거진 | 3권 | 1화가 실린 《주간 소년 매거진》은 각 지자체에서 유해 도서로 지정되며 사회 문제로 발전한 최대 문제작 |
《제니게바》 | 1970년~1971년 | 주간 소년 선데이 | 5권 | |
《현약 성서》 | 1970년~1971년 | 주간 소년 점프 | - | 2001년 '걸작 미간행 작품집 NO.3'으로 첫 단행본화되었으나, '소지로 유전편' 11화는 미수록 |
《고백》 | 1971년 | 주간 소년 선데이 | 1권 | |
《장미의 언덕》 | 1971년~1972년 | 주간 소년 점프 | 3권 | |
《더 문》 | 1972년~1973년 | 주간 소년 선데이 | 4권 | |
《쓰레기벌레군》 | 1972년~1973년 | 주간 소년 챔피언 | 5권 | |
《자전 청춘 희극》 | 1973년 | 별책 소년 점프 | 단편 | 4월호 단편 |
《부랑운》 | 1973년~2017년 | 빅 코믹 오리지널 | 112권 | |
《독안 명탐정 포물첩 천우》 | 1973년~1975년 | 빅 코믹 | 1권 | |
《재가 되는 소년》 | 1973년 | 주간 소년 점프 | - | 1973년 39호~49호 연재 |
《도하즈레 천하일》 | 1974년 | 주간 소년 점프 | - | 1974년 6호~35호 연재 |
《전격 하리키리 아가씨 핀치》 | 1974년 | 주간 소년 매거진 | 1권 | 1974년 30호~48호 연재 |
《요타로》 → 《꽃의 요타로》 | 1974년~1979년 | 주간 소년 챔피언 | 15권 | 개그 만화로 시작했으나 내용 변경으로 제목 수정 |
《눈물을 참아라!》 | 1975년 | 시오분샤 | 단편집 | |
《고양이밥 조지》 | 1975년 | - | 1권 | |
《데로린맨》 | 1975년~1976년 | 주간 소년 매거진 | 3권 | 구작 리메이크, 종반 전개가 크게 다름 |
《멍청한 동심》 | 1976년~1977년 | 주간 소년 매거진 | 4권 | |
《사기밧바》 | 1976년경 | 주간 소년 선데이 | - | |
《허풍쟁이 돈빈장》 | 1977년~1978년 | 소학 3학년 | - | 후에 코로코로 코믹에 재수록. 이 작품 이후 순수한 의미의 개그 만화는 그리지 않음 |
《갤러》 | 1979년~1981년 | 소년 킹 | 8권 | |
《싸워라 남》 | - | 망가 소년 | 2권 | |
《렌게 마타사부로》 | 1980년 | 일간 겐다이 | - | |
《SEX 닥터 센자부로》 | 1980년~? | 플레이 코믹 | 7권 | |
《저녁 여섯 시 동심》 | 1980년~1981년 | 굿 코믹 | 3권 | |
《핑크의 커튼》 | 1980년~1984년 | 주간 만화 고라쿠 | Part1: 15권, Part2: 6권 | |
《기쁘고 부끄러운 이야기》 | - | 주간 만화 고라쿠 | 5권 | |
《샤카의 아들》 | 1981년 | 주간 소년 점프 | 2권 | |
《스파트맨 X》 (후에 '패트 마스터 X'로 개칭) | 1981년~1982년 | TV 매거진 → 코믹 봉봉 | - | |
《초인 하루코》 | 1982년~1984년 | 모닝 | 3권 | |
《해인 곤즈이》 | 1984년 | 주간 소년 점프 | 1권 | |
《연인의 매일》 | 1985년~1992년 | 만화 액션 | 32권 | |
《구애꾼 조》 | 1986년~1987년 | 빅 코믹 스페리올 | 4권 | |
《고교 우협전 퍼포먼스 이와지로》 | 1988년~1989년 | 영 킹 | 3권 | |
《러블린 먼로》 | 1989년~1993년 | 주간 영 매거진 | 13권 | |
《'부랑운'의 부모 자식 학원》 | 1993년 | 경제계 | - | |
《여장남자 기사부로》 | 1993년~2002년경 | 빅 코믹 오리지널 증간 | 7권 | |
《박애의 사람》 | 1993년~1996년 | 빅 골드 | 8권 | |
《도부게로사마》 | 1995년~1996년 | 월간 소년 간간 | 1권 | |
《버리기 아까운 사람들》 | 1996년~1999년 | 빅 골드 | 5권 | |
《순즈쿠의 제왕 오리는 독약》 | - | MANGA 올맨 | 1권 | |
《고보 대사 구카이》 | 1997년 | MANGA 올맨 | 6권 | 2015년 KADOKAWA/중경출판에서 전 3권으로 문고화 |
《살아라 키키》 | 2001년~2002년 | 만화 선데이 | 4권 | |
《극도의 딸》 | 2002년 | 아사히 예능 | 1권 | |
《WHO are YOU》 | 2002년 | 빅 코믹 오리지널 증간 | 1권 | 잡지 게재 시 아키야마 유우지 명의 |
《오카피키 텐규》 | 2003년~2005년 | 코믹 란 트윈스 | 1권 | |
《무사도라는 것은 죽는 것을 발견하는 것》 | 2004년 | 겐토샤 | - | |
《만화 중국 입문: 까다로운 이웃 연구》 | 2005년 | 아스카신샤 | - | 황문웅 감수. 아키야마 본인 외에 작품 캐릭터 다수 출연 |
《부랑 지도: 술 취해 오래 살기》 | 2007년 | 신초샤 | - | |
《여자 꼬시는 방법》 | 2008년 | 소라 출판 | - | |
《제니게바의 딸 푸코/아슈라 완결편》 | 2009년 | 세이린 코게이샤 | - | |
《도스토옙스키의 개》 | 2010년 | 세이린 코게이샤 | 단편집 | 35년 만의 단편집 |
《아마존군/도부게로사마》 | 2010년 | 세이린 코게이샤 | - | |
《가이바라 에키켄의 양생훈》 | 2010년 | 가이류샤 | - |
4. 수상 경력
- 제9회 고단샤 아동 만화상 (《파토맨 X》)
- 제24회 (1978년도) 쇼가쿠칸 만화상 청년 일반 부문 수상 (《부랑운》)
5. 개인사 및 성격
조지 아키야마는 만화가로서의 독특한 작품 세계만큼이나 개성 있는 성격과 개인사를 가지고 있었다.
5.1. 필명과 성격
그의 필명 '조지 아키야마'는 드러머 조지 가와구치처럼 밴드맨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나중에 이를 '젊은 시절의 치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만화는 싫다", "만화를 읽으면 바보가 된다",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다"고 공언했지만, 함께 《싸워라! 오스퍼》 작업을 했던 만화가 토리이 가즈요시에 따르면 실제로는 만화를 매우 사랑했으며, 데즈카 오사무 또한 매우 존경하여 그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걸어두기까지 했다고 한다. 토리이는 아키야마가 본심을 잘 드러내지 않는 '독특한 부끄럼'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1984년 연재가 시작되었으나 단기 연재로 중단된 《해인 곤즈이》에 대해 당시 주간 소년 점프 편집장이었던 니시무라 시게오는 "아키야마 씨는 이야기하면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지만, 정작 만화(곤즈이)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적어도 점프 독자 인기 설문조사에서는 최하위였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제니게바》가 드라마화되었을 때, 극중에 사용될 헤노헤노모헤지 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했다.
5.2. 개인적 배경 정보
그의 중학교 시절 지능 지수는 120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신장은 170 cm이다.
6. 평가 및 영향력
조지 아키야마는 그의 작품을 통해 일본 만화계와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6.1. 비평적 평가 및 논란
그의 작품은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주제를 담고 있어 비평가와 대중으로부터 다양한 평가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아슈라》와 《제니게바》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사회적 충격을 주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유해 도서로 지정되는 등 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인간 심리와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6.2. 영향력
조지 아키야마의 독특한 작품 세계는 후대 만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기존 만화의 틀을 깨고 사회의 금기시되는 주제들을 과감하게 다루면서 만화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작품들은 만화 산업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인간 본성과 사회적 모순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슈라》는 2012년 애니메이션 영화로, 《부랑운》은 1982년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어 그의 작품이 가진 문화적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7. 관련 인물
조지 아키야마의 만화 경력에는 여러 스승과 어시스턴트, 그리고 가족의 영향이 있었다.
7.1. 스승
조지 아키야마는 만화가 모리타 겐지에게 약 1년 반 동안 사사받았다. 또한 그의 첫 단행본은 마에타니 요시미쓰의 명의로 출판되기도 했다.
7.2. 어시스턴트
- 테라오 타이요 (てらお太平葉): 1970년부터 2003년까지 조지 아키야마의 어시스턴트로 활동했다. 현재는 일러스트, 삽화, 아동화 등을 제작하며 2년에 한 번 개인전을 열고 있다.
- 이에스 고이케 (イエス小池): 1978년부터 2017년까지 약 40년간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그의 인생을 담은 블로그가 화제가 되어 2008년 블로그 단행본 《만화가 어시스턴트 이야기》를 출간했다. 같은 해 1991년 발표했던 《패왕의 배》를 가필 수정하여 《극화 게공선 패왕의 배》를 문고판으로 출간했다.
- 츠카사 히사가 (ツカサ久賀): 1969년부터 1978년까지 어시스턴트로 활동했다. 1978년 《블루한 그 녀석》, 1979년 속편 《마이 러브 써니》를 《주간 소년 킹》에서 연재했으나, 모두 한 쿨의 단기 연재로 끝났다. 《만화가 어시스턴트 이야기》에 따르면 한때 만화가를 그만두었던 시기가 있었으나 재개하여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별책 만화 고라쿠》에 《불효자 거리》를 연재한 후 만화가 활동을 은퇴했다.
- 스가야 미쓰루: 아키야마의 어시스턴트였던 키요 츠네오가 지인이었던 관계로, 키요가 병에 걸렸을 때 외부 어시스턴트로 한동안 일을 도왔다. 스가야는 아키야마가 어시스턴트에게 파격적인 보수를 지급했다고 회고했다.
7.3. 가족
- 아키야마 미코토: 조지 아키야마의 장남으로, 스포츠 및 정보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방송작가이다. 그는 아버지의 작품 영화화 및 애니메이션 제작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