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제프 반 건디는 1962년 1월 19일 캘리포니아주 헤멧에서 태어났다. 1977년까지 캘리포니아주 마르티네스에서 거주했으며, 이후 가족과 함께 뉴욕주 브록포트로 이주했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반 건디는 브록포트 고등학교에 다니며 농구 선수로 활약했다. 그의 아버지 빌 반 건디는 뉴욕 주립대학교 브록포트와 제네시 커뮤니티 칼리지의 전 헤드 코치였으며, 그의 형은 전 NBA 코치인 스탠 반 건디이다. 고등학교 시절 포인트 가드로 뛰었던 반 건디는 1979년과 1980년에 두 차례 올 그레이터 로체스터(All Greater Rochester)에 선정되었고, 브록포트 고등학교를 클래스 AA 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예일 대학교에 진학한 후 멘로 칼리지로 편입했으며, 최종적으로 1985년 뉴욕의 나자렛 대학교를 졸업했다. 나자렛 대학교 재학 중에는 1984년 NCAA 디비전 III 토너먼트에서 골든 플라이어스 팀을 이끌었다. 그는 현재까지 나자렛 대학교의 자유투 성공률 역대 1위(86.8%)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 지도자 경력
제프 반 건디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보조 코치로 경력을 시작하여 NBA의 뉴욕 닉스와 휴스턴 로키츠에서 헤드 코치를 맡았으며, 미국 국가대표팀을 지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런트 오피스 경험과 함께 다시 NBA 코치로 복귀했다.
2.1. 초기 지도자 경력
반 건디의 농구 지도자 경력은 1985-86 시즌 뉴욕주 로체스터에 위치한 맥쿼이드 예수회 고등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이듬해에는 프로비던스 칼리지에서 릭 피티노 헤드 코치 밑에서 대학원 보조 코치로 일하며 프로비던스 프라이어스 남자 농구팀이 파이널 포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프라이어스에서의 두 번째 시즌에는 고든 키에사 코치 밑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승격되었다. 그 다음 시즌에는 럿거스 대학교의 밥 웬젤 코치 밑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았다.
2.2. 뉴욕 닉스
반 건디는 뉴욕 닉스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오랜 기간 활동하며 팀의 성공에 기여했고, 이후 헤드 코치로 승격되어 팀을 NBA 파이널까지 이끄는 등 인상적인 성과를 냈다.
2.2.1. 어시스턴트 코치
1989년 7월 28일, 반 건디는 뉴욕 닉스의 어시스턴트 코치가 되었다. 그는 이후 6년 반 동안 닉스의 헤드 코치인 스투 잭슨 (1989-1990), 존 맥클라우드 (1990-1991), 팻 라일리 (1991-1995), 돈 넬슨 (1995-1996)을 보좌했다. 어시스턴트 코치 재임 기간 동안 닉스는 세 차례 애틀랜틱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으며, 디비전 순위에서 3위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고, 매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닉스는 1993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으며, 1994년에는 휴스턴 로키츠를 상대로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2.2.2. 헤드 코치
1996년 3월 8일, 닉스는 돈 넬슨의 후임으로 반 건디를 새로운 헤드 코치로 임명했다. 헤드 코치로서 그의 두 번째 경기에서 닉스는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를 32점 차로 대파하는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불스는 1989년 이후 닉스를 플레이오프에서 네 번이나 탈락시켰던 팀이었다. 그러나 반 건디는 플레이오프에서 이러한 추세를 바꾸지 못했고, 닉스는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시카고에 패했다.
헤드 코치로서의 첫 풀 시즌인 1996-97 시즌, 닉스는 57승 25패를 기록하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세 번째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69승 12패를 기록 중이던 시카고 불스를 시카고에서 꺾어, 불스가 2년 연속 70승 시즌을 달성하는 것을 막고 NBA 역사상 최고의 홈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1998 NBA 플레이오프에서는 뉴욕 닉스와 마이애미 히트 간의 시리즈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히트의 센터 알론조 모닝과 닉스의 파워 포워드 래리 존슨이 벤치 클리어링 난투극을 벌였을 때, 반 건디는 이를 말리려다 실패하고 바닥에 넘어져 모닝의 다리에 매달렸다.
록아웃으로 단축된 1998-99 시즌, 닉스는 부상(특히 올스타 패트릭 유잉)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27승 23패로 플레이오프 8번 시드를 가까스로 차지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닉스는 히트를 5경기 만에 꺾으며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패배를 설욕했고, 1번 시드를 꺾은 역대 두 번째 8번 시드 팀이 되었다. 이 승리는 닉스의 놀라운 질주를 이끌었으며, 준결승에서 애틀랜타 호크스를 스윕하고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6경기 만에 꺾고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유잉 없이 파이널에 진출한 닉스는 스퍼스에 역부족이었고, 5경기 만에 시리즈에서 패했다. 닉스는 NBA 역사상 최초로 NBA 파이널에 진출한 8번 시드 팀이 되었다.
닉스는 파이널 진출 이후 50승 32패 시즌을 기록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인디애나 페이서스에게 패했다. 2013년 플레이오프까지 이는 닉스가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승리한 마지막 기록이었다.
2001년 스퍼스와 닉스의 경기에서 대니 페리가 마커스 캠비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심판과 이야기하던 캠비는 통제력을 잃고 페리를 주먹으로 때리려 했으나, 빗나가 반 건디를 때렸다. 반 건디는 선수들 간의 싸움을 말리려다 얻은 교훈이라고 말했다. 닉스는 48승 34패로 시즌을 마쳤지만, 1라운드에서 토론토 랩터스에게 패했다.
2001-02 시즌이 시작된 지 19경기 만인 2001년 12월 8일, 반 건디는 닉스 헤드 코치직에서 예상치 못하게 사임했다. 당시 닉스는 연승 중이었고, 밀워키 벅스를 14점 차로 이긴 직후였기 때문에 그의 사임은 더욱 의외였다.
2.3. 휴스턴 로키츠
2003년 6월 10일, 반 건디는 루디 톰자노비치의 후임으로 휴스턴 로키츠의 헤드 코치로 임명되었다. 로키츠 헤드 코치로서의 첫 시즌인 2003-04 시즌, 로키츠는 45승 37패를 기록하며 5년 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로키츠에서의 두 번째 시즌, 반 건디는 야오 밍과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이끄는 팀을 51승 31패로 이끌었으며, 이는 1996-97 시즌 이후 처음으로 50승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었다. 그러나 로키츠는 다시 한번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패했다.
2005-06 시즌에는 맥그레이디와 야오가 부상으로 총 70경기를 결장하면서, 반 건디는 NBA 헤드 코치 경력에서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5년 5월, 반 건디는 심판들이 휴스턴 로키츠의 센터 야오 밍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비난한 혐의로 NBA로부터 10.00 만 USD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반 건디는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 마크 큐반이 심판들의 편향을 유발했다고 비난했다. 이는 NBA 역사상 코치에게 부과된 가장 큰 벌금이다.
이후 시즌에도 로키츠의 부상과 실망은 계속되었고, 야오는 48경기 출장에 그쳤으며 맥그레이디도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로키츠는 시즌 막판 맥그레이디의 부활에 힘입어 막판 질주를 했지만, 유타 재즈에게 또다시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패하면서 반 건디의 헤드 코치 운명은 결정되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결정적인 7차전 패배 직후, 반 건디는 해고되었고, 릭 아델만이 그를 대신했다.

2.4. 국가대표팀 경력
2017년 7월, 반 건디는 2017 FIBA 아메리컵 토너먼트와 2019 FIBA 월드컵 예선에서 미국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의 헤드 코치를 맡을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그레그 포포비치 미국 헤드 코치는 월드컵과 2020년 하계 올림픽에 팀이 진출할 경우 다시 팀을 지도할 예정이었다. 미국 국가대표팀은 반 건디가 2007년 로키츠를 떠난 이후 처음으로 맡은 코치직이었다.
반 건디는 2017 FIBA 아메리컵에서 미국을 금메달로 이끌었으며, 2019 FIBA 월드컵 본선 진출 자격을 획득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2.5. 프런트 오피스 경력
2023년 10월 14일, 보스턴 셀틱스는 반 건디가 농구 운영 부서의 시니어 컨설턴트로 팀에 합류했다고 발표했다. 셀틱스는 2024년 NBA 파이널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꺾고 우승했으며, 이로써 반 건디는 그의 첫 NBA 챔피언십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2.6.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2024년 6월 18일,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는 반 건디를 타이론 루 헤드 코치 밑의 수석 코치로 고용했다. 이는 2007년 이후 그가 NBA에서 맡은 첫 코치직이다.
3. 방송 경력
2007년 휴스턴 로키츠에서 해고된 후, 반 건디는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피닉스 선즈와 샌안토니오 스퍼스 경기 ESPN 중계에 게스트 해설가로 출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ESPN의 정규 방송 멤버가 되었다.
그는 플레이 바이 플레이 캐스터 마이크 브린과 마크 잭슨과 함께 NBA 파이널을 15차례 중계하며 컬러 코멘테이터로 활동했다. 2022년 NBA 파이널 1차전은 코로나19 프로토콜로 인해 결장했으며, 마크 존스, 마크 잭슨, 리사 솔터스가 그를 대신했다.
2023년 6월, 반 건디는 ESPN의 대규모 정리 해고의 여파로 해고되었다. 그는 또한 그레그 포포비치 감독에게 경기 중 인터뷰를 시도했을 때, 포포비치가 그를 안아주기만 하고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4. 개인사
반 건디의 형은 스탠 반 건디로, 마이애미 히트, 올랜도 매직,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전 NBA 헤드 코치이다.
2011년 5월 8일, 반 건디는 모교인 나자렛 대학교의 제84회 연례 졸업식에서 인문학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5. 지도자 기록
제프 반 건디의 NBA 헤드 코치 정규 시즌 및 플레이오프 기록은 다음과 같다.
팀 | 연도 | 경기 수 | 승 | 패 | 승률 | 최종 순위 | 플레이오프 경기 수 | 플레이오프 승 | 플레이오프 패 | 플레이오프 승률 | 결과 |
---|---|---|---|---|---|---|---|---|---|---|---|
뉴욕 | 1995-96 | 23 | 13 | 10 | 0.565 | 애틀랜틱 2위 | 8 | 4 | 4 | 0.500 | 컨퍼런스 준결승 패배 |
뉴욕 | 1996-97 | 82 | 57 | 25 | 0.695 | 애틀랜틱 2위 | 10 | 6 | 4 | 0.600 | 컨퍼런스 준결승 패배 |
뉴욕 | 1997-98 | 82 | 43 | 39 | 0.524 | 애틀랜틱 2위 | 10 | 4 | 6 | 0.400 | 컨퍼런스 준결승 패배 |
뉴욕 | 1998-99 | 50 | 27 | 23 | 0.540 | 애틀랜틱 4위 | 20 | 12 | 8 | 0.600 | NBA 파이널 패배 |
뉴욕 | 1999-2000 | 82 | 50 | 32 | 0.610 | 애틀랜틱 2위 | 16 | 9 | 7 | 0.563 | 컨퍼런스 파이널 패배 |
뉴욕 | 2000-01 | 82 | 48 | 34 | 0.585 | 애틀랜틱 3위 | 5 | 2 | 3 | 0.400 | 1라운드 패배 |
뉴욕 | 2001-02 | 19 | 10 | 9 | 0.526 | (사임) | — | — | — | — | — |
휴스턴 | 2003-04 | 82 | 45 | 37 | 0.549 | 미드웨스트 5위 | 5 | 1 | 4 | 0.200 | 1라운드 패배 |
휴스턴 | 2004-05 | 82 | 51 | 31 | 0.622 | 사우스웨스트 3위 | 7 | 3 | 4 | 0.429 | 1라운드 패배 |
휴스턴 | 2005-06 | 82 | 34 | 48 | 0.415 | 사우스웨스트 5위 | — | — | — | — |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
휴스턴 | 2006-07 | 82 | 52 | 30 | 0.634 | 사우스웨스트 3위 | 7 | 3 | 4 | 0.429 | 1라운드 패배 |
경력 합계 | 748 | 430 | 318 | 0.575 | 88 | 44 | 44 | 0.500 |
6. 평가 및 영향
제프 반 건디는 수비 중심의 끈끈한 농구를 추구하는 지도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팀은 종종 강력한 수비와 조직적인 플레이를 바탕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그의 경력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 중 하나는 2005년 5월에 발생한 NBA 역사상 코치에게 부과된 가장 큰 벌금 사건이다. 당시 그는 휴스턴 로키츠의 센터 야오 밍을 심판들이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비난하며 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 마크 큐반이 심판들의 편향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그의 강직하고 때로는 논쟁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