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제임스 라도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과 음악에 대한 재능을 보이며 성장했고, 대학에서부터 뮤지컬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1. 어린 시절과 교육
제임스 라도는 1932년 1월 23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알렉산더 라돔스키와 블랑슈 부코프스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뉴욕주 아이언디쿼이트와 워싱턴 D.C.에서 성장했다. 대학에서 메릴랜드 대학교 칼리지파크에 진학하여 연설 및 드라마를 전공했고, 이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 그는 대학에서 인터루드(Interlude영어)와 인터루드 II(Interlude II영어)라는 두 편의 뮤지컬 쇼를 공동 집필했다. 대학 졸업 후 미국 해군에서 2년간 복무한 뒤, 워싱턴 D.C.로 돌아와 미국 가톨릭 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이곳에서 그는 크로스 유어 핑거스(Cross Your Fingers영어)라는 뮤지컬 레뷔를 공동 집필했으며, 초기 작품들의 가사와 음악은 모두 직접 작곡했다.
1.2. 초기 경력 및 활동
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라도는 뉴욕 시로 이주하여 리 스트라스버그에게 연기를 배웠고, 동시에 제임스 알렉산더 앤 더 아가일스(James Alexander and the Argyles영어)라는 자신의 밴드와 함께 팝송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의 첫 브로드웨이 작품은 1963년의 마라톤 '33(Marathon '33영어)이었다. 1966년에는 로버트 프레스턴과 로즈메리 해리스 주연의 제임스 골드먼의 작품 겨울의 사자들(The Lion in Winter영어) 브로드웨이 초연에서 리처드 라이언하트 역을 맡아 연기했다.
그는 1964년 오프브로드웨이 연극 행 다운 유어 헤드 앤 다이(Hang Down Your Head and Die영어)에서 제롬 라그니를 만나 함께 연기하게 된다. 이후 라도와 라그니는 마이크 니컬스가 연출한 앤 젤리코의 더 낵(The Knack영어) 시카고 공연에서 각각 톰과 톨란 역으로 함께 캐스팅되었다.
2. 주요 업적: 뮤지컬 헤어
제임스 라도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1960년대의 정신을 담아낸 뮤지컬 헤어의 공동 창작과 그에 기여한 역할에 있다.
2.1. 헤어의 창작과 초연
라도와 라그니는 1964년 후반부터 헤어를 함께 집필하기 시작하며 친구가 되었다. 라도는 "우리는 절친한 친구였어요. 창의성과 글쓰기, 이 작품을 만드는 데로 향했던 열정적인 관계였죠. 우리 사이의 드라마를 무대에 올렸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또한 "거리와 공원, 히피 지역에는 너무나 많은 흥분이 있었고, 이 흥분을 무대에 옮길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어울리고 '비인'(Be-In영어)에 참석하며 머리를 길렀죠"라고 덧붙였다.
헤어는 1967년 10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고, 1968년 4월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2.2. 헤어의 성공과 영향
헤어는 즉각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1,750회 공연을 기록했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프로덕션을 탄생시켰다. 1979년에는 영화로도 각색되었다. 작품에 수록된 여러 곡들이 톱 10 히트곡이 되었고, 수많은 앨범이 발매되었다. 2009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은 토니상 최우수 리바이벌 뮤지컬 부문을 수상했으며, 런던의 웨스트 엔드에서도 성공적으로 공연되었다.
2.3. 헤어에서의 역할
라도는 헤어의 오프브로드웨이 초연에서 클로드 역을 맡지 않았지만,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에서는 버거 역의 라그니와 함께 클로드 역으로 출연하며 이 역할을 창조했다. 이후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도 클로드 역을 맡았다. 클로드와 버거라는 주요 인물은 어느 정도 자전적인 인물이었는데, 라도가 연기한 클로드는 사색적이고 낭만적인 인물로 묘사되었다. 2008년 성소수자 잡지 디 애드버케이트(The Advocate영어)와의 인터뷰에서 라도는 자신을 옴니섹슈얼(omnisexual영어)이라고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라그니의 연인이었음을 솔직하게 언급했다.
3. 헤어 이후의 작품 활동
헤어의 성공 이후, 라도는 1970년대 초반 잠시 라그니와 각자의 길을 걸었다.

3.1. 레인보우
라그니가 헤어의 작곡가 갈트 맥더못과 듀드(Dude영어)를 공동 작업하는 동안, 라도는 더 레인보우 레인빔 라디오 로드쇼(The Rainbow Rainbeam Radio Roadshow영어) 또는 줄여서 레인보우(Rainbow영어)라는 뮤지컬을 집필했다. 이 작품은 그의 형인 테드 라도와 대본을 공동 집필했으며, 라도가 직접 음악과 가사를 담당했다. 레인보우는 1972년 12월 뉴욕 오르페움 극장에서 오프브로드웨이로 초연되었다. 이 뮤지컬은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맨'(Man영어)이라는 인물이 레인보우랜드에서 살고 있다는 내용을 담아 헤어의 속편 격으로 볼 수 있다.
유명 비평가 클라이브 반스는 뉴욕 타임스에 "레인보우는 즐겁고 생명력이 넘친다. 제임스 라도의 달콤하고 신선한 음악과 가사 덕분에 헤어에서 파생된 작품 중 새로운 창조물의 자신감을 진정으로 보여주는 첫 번째 뮤지컬이다"라고 긍정적인 평을 남겼다. 이후 레인보우는 여러 차례 수정되었는데, 1990년대 후반에는 레인보우: 베트남의 유령(Rainbow: The Ghost of Vietnam영어)으로 제목이 바뀌어 헤어의 속편임을 더욱 명확히 하기도 했다. 다른 버전에서는 더욱 추상적으로 바뀌어 빌리 어스: 더 뉴 레인보우(Billy Earth: The New Rainbow영어), 그리고 나중에는 아메리칸 솔저: 더 화이트 혼티드 하우스(American Soldier: The White Haunted House영어)라는 제목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최신 버전인 슈퍼솔저(Supersoldier영어)는 2013년 10월 14일 배우 샘 언더우드의 펀더멘탈 시어터 프로젝트(Fundamental Theater Project영어)가 뉴욕 시 맨해튼 무브먼트 앤 아츠 센터에서 뉴욕 시어터 반과 협력하여 대본 리딩 공연을 가졌다. 이 리딩은 조 바로스가 연출했으며 타이슨 제네트, 데비 앤드류스, 루이스 빌라본이 출연했다. 라도는 2010년에도 펀더멘탈 시어터 프로젝트와 협력하여 햄릿의 자선 리딩 공연에서 햄릿의 유령 역을 맡았는데, 당시 알렉 볼드윈과 케이트 멀그루도 함께 출연했다.
3.2. 선
1974년 라도는 라그니와 재회하여 스티브 마고셰스의 음악으로 선 (오디오 무비)(Sun (Audio Movie)영어)을 공동 집필했다. 이 작품은 뉴욕 작가 조이스 그렐러의 연극을 기반으로 했으며, 공해와 환경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당시 YMCA라는 제목이었던 이 뮤지컬은 1976년 존 바카로가 연출한 워크숍 형태로 후원자들에게 처음 선보였으며, 루비 린 레이너와 애니-조 에드워즈가 출연했다. 선은 2011년 하울! 아트 프로젝트에서도 공연되었다. 1998년에는 헤어의 공동 작곡가인 갈트 맥더못이 작곡한 또 다른 버전의 선이 콘서트 형식으로 선보였다.
3.3. 다른 작품들
라도와 라그니는 이후 마고셰스와 다시 협력하여 잭 사운드 앤 히즈 독 스타 블로잉 히즈 파이널 트럼펫 온 더 데이 오브 둠(Jack Sound and His Dog Star Blowing His Final Trumpet on the Day of Doom영어)이라는 또 다른 뮤지컬을 공동 집필했다. 이 쇼는 1978년 여름 라 마마에서 공연되었다.
4. 개인적인 삶
제임스 라도는 2008년 인터뷰에서 자신을 범성애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헤어를 공동 집필한 제롬 라그니와 연인 관계였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개인적인 삶의 공개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의 작품인 헤어가 추구했던 자유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정신을 더욱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5. 말년과 활동
제롬 라그니 사망 이후에도 제임스 라도는 그의 주요 작품인 헤어의 새로운 프로덕션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갔으며, 다양한 영화와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새로운 뮤지컬 작업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예술 활동을 펼쳤다.
5.1. 영화 및 다큐멘터리 출연
제임스 라도는 다양한 영화와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했다. 1969년 영화 라이온의 사랑에 출연했으며, 1979년에는 자신이 공동 집필한 뮤지컬을 영화화한 헤어에 참여했다. 이후 2007년에는 다큐멘터리 헤어 - 그 40년의 역사에, 2008년에는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에 본인 역으로 출연하며 스크린에 모습을 비췄다.
5.2. 헤어 관련 활동 및 기타 프로젝트
1991년 제롬 라그니가 사망한 후, 라도는 헤어의 새로운 프로덕션을 개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1994년 11개 도시를 순회한 전국 투어를 직접 연출했으며, 2006년 캐나디안 스테이지 컴퍼니의 토론토 공연에도 참여했다.
2011년부터 라도는 뉴욕 인디 밴드 글래드샷(Gladshot영어)의 멤버들이 집필한 미래 지향적인 록 뮤지컬 바코드(Barcode영어)의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이 작품은 2012년 맨해튼 다운타운의 록 클럽에서 워크숍을 거쳐 2013년 8월 뉴욕 국제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다. 2011년 12월 3일, 라도는 오큐파이 월 스트리트의 '오큐파이 브로드웨이' 행사에서 바코드의 수록곡들을 직접 공연하기도 했다.
6. 사망
제임스 라도는 2022년 6월 21일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90세의 나이로 심폐 정지로 사망했다.
7. 평가 및 영향
제임스 라도는 1960년대 문화의 혁신과 반전 운동의 정신을 담아낸 뮤지컬 헤어를 통해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7.1. 긍정적 평가
제임스 라도는 공동 작곡가 제롬 라그니와 함께 헤어로 제11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뮤지컬 극장 앨범상을 수상했으며, 1969년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다. 헤어는 당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성 혁명, 인종 평등, 마약 문화 등 1960년대 히피 운동과 반문화의 핵심 가치를 대담하게 다루며 사회적 금기를 깨뜨렸다. 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지형을 바꾸고 록 음악과 사회적 논평을 무대에 통합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도의 작품은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자유, 평화,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하며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이후 작품인 레인보우에 대해 비평가 클라이브 반스는 "제임스 라도의 달콤하고 신선한 음악과 가사 덕분에 새로운 창조물의 자신감을 진정으로 보여주는 첫 뮤지컬"이라고 극찬하며 그의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