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education
제러미 스콧의 어린 시절과 학업적 배경은 그의 독특한 디자인 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1. Childhood and formative years
스콧은 1975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을 로워리 시티의 한 농장과 캔자스시티 외곽의 교외 지역에서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제러미 스콧은 14세에 패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야간에는 일본어 수업을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책에 패션 디자인을 그리곤 했으며, 자신의 옷차림 스타일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잡지
q=Kansas City, Missouri|position=right
1.2. Academic background
1992년 스콧은 뉴욕으로 이주하여 도시의 미술 및 디자인 대학 중 하나인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학창 시절 그는 SF에서 영감을 받은 옷, "1880년대 대 1980년대" 스타일의 의상, 그리고 찢어지고 해진 옷들을 즐겨 입었다. 스콧은 모스키노를 소유한 회사인 아에페(Aeffe)의 뉴욕 사무소에서 인턴십을 경험했다.
2. Career
제러미 스콧은 파리에서의 독립 레이블 데뷔부터 모스키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경력을 쌓아왔다.
2.1. Debut and independent label in Paris
1996년 졸업 후 스콧은 파리로 이주했다. 패션 업계에서 일자리를 찾던 중 그는 식사를 구걸하고 지하철에서 잠을 자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장 폴 고티에의 홍보 담당자를 우연히 만나 그의 헤어스타일(스콧은 다섯 살 때부터 자신의 머리를 직접 잘랐다)을 마음에 들어 하면서 나이트클럽에서 파티를 홍보하는 일을 얻게 되었다. 패션 관련 일자리를 구하는 데 계속 실패하자 그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q=Paris, France|position=right
이듬해인 1997년, 제러미 스콧의 브랜드는 바스티유 광장 근처의 한 바에서 데뷔했다. 이 쇼는 J. G. 밸러드의 소설 <충돌>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크래쉬>를 기반으로 했으며, 대부분의 재료는 종이 병원 가운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쇼에서는 포르트 드 클리냥쿠르 벼룩시장에서 구한 쓰레기봉투와 닮은 천 조각들을 사용해 온통 검은색으로 연출되었는데, 스콧은 이를 "블레이드 러너, 쓰레기봉투, 그리고 종말"이라고 묘사했다. 이 컬렉션은 이후 영향력 있는 파리 상점인 콜레트에 전시되었으며, 콜레트는 그 이후로 제러미 스콧의 작품을 꾸준히 취급하고 있다.
그의 세 번째 컬렉션은 모두 흰색으로 구성되었으며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이 컬렉션은 여러 상을 수상했고, 마리오 테스티노, <프랑스 보그> 편집자, 프랑스 스타일리스트이자 아트 디렉터, 사진작가인 칼린 서프 드 뒤즈엘의 주목을 끌었다. 이 화이트 쇼는 당시 13세에 불과했던 미래의 슈퍼모델 데본 아오키가 런웨이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무대이기도 했다. (20년 후, 두 사람은 스콧의 2016년 가을/겨울 캠페인에서 다시 협력하게 된다.) 비요크는 초기부터 그의 옷을 즐겨 입었으며, 그의 '화이트 쇼'에서 선보인 천사 드레스를 자신의 <호모제닉> 월드 투어에 착용하기도 했다. 스콧은 그녀의 여러 투어에서 의상을 제공했다.
같은 해 스콧은 1980년대의 퇴폐적인 모습(세이블 모피, 어깨 패드, 부푼 머리, 골드 라메)을 다룬 쇼를 선보였는데, 이는 1980년대 패션을 부활시킨 최초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모델들의 불안정한 하이힐은 크리스찬 루부탱이 디자인했다. 당시 유행하던 미니멀리즘에 반대했던 이 쇼는 <보그> 등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스콧 자신은 "골드 쇼"를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힘든 순간으로 꼽는다.
1998년 그의 봄 컬렉션 "듀티 프리 글래머"(Duty Free Glamour)는 승무원에게서 영감을 받은 룩과 로고로 뒤덮인 카키색 재킷을 특징으로 했다. <더 타임스>의 패션 평론가 캐시 호린은 중서부 출신이라는 경험을 젯셋 글래머와 대조시키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카를 라거펠트는 스콧이 자신이 떠난 후 샤넬을 물려받을 수 있는 유일한 패션계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1년 스콧은 파리를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가 아직 패션의 중심지가 아니었기에 이는 놀라운 행보로 여겨졌다.
q=Los Angeles, California|position=right
2.2. Collaboration with Adidas Originals
스콧은 열성적인 팬들, 특히 아시아 팬들을 중심으로 컬트 레이블로서의 명성을 굳혔지만, 그는 여전히 패션 기성복 업계의 변두리에 있었다. "진지하지도 상업적이지도 않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2001년 한 쇼를 마친 후 그는 자신의 얼굴이 인쇄된 가짜 지폐를 관객들에게 뿌렸다. 또 다른 쇼가 끝날 때는 "아방가르드 만세!"를 외치고 모든 좌석에 그 메시지가 찍힌 노란색 티셔츠를 남겨두었다.
스콧은 2002년 아디다스와 "!사인드" 프로젝트로 처음 협력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는 조지 워싱턴의 모습 대신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돈다발 모티프의 실크 자카드를 만들었다. 이 디자인은 아디다스의 클래식 하이톱 모델인 포럼(Forum)에 적용되었다. 신발은 독일 샤인펠트에 있는 아디다스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되었으며, 총 100켤레만 생산되어 스콧에게 50켤레, 아디다스에 50켤레가 배분되었다. 스콧은 2013년 가을/겨울 시즌에 머니 윙스 2.0으로 이 디자인을 다시 선보였다.
그러나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아디다스 협업은 2008년에 아디다스 오리지널스가 스콧의 신발 및 의류 컬렉션을 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컬렉션에는 JS 윙스(날개 달린 하이톱)와 JS 베어스(곰 머리가 달린 털 신발)가 포함되었다. 릴 웨인과 같은 래퍼들의 초기 공동 사인을 받으며, 스콧의 신발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의 운동화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운동화"이자 "신발 환경에 확실한 흔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년에 걸쳐 그의 상징적인 날개 디자인은 다양한 아디다스 실루엣에 적용되었다. 그는 또한 이 날개 디자인을 스마트 자동차와 유모차 등 다른 고객을 위한 다른 물건에도 적용했다.
스콧은 2012년 니키 미나즈, 스카이 페헤이라, 2NE1과 함께 아디다스 광고 캠페인에 출연했다. 마돈나의 2012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 무대 댄서들은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의 제러미 스콧 트랙 슈트를 착용했다.
2015년 2월 1일, 스콧은 자신의 아디다스 날개 달린 운동화의 유리 복제본 형태로 아디다스를 위한 첫 향수를 선보였다. 2016년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캐릭터 할리 퀸은 제러미 스콧과 아디다스의 2014년 협업으로 탄생한 하이톱 힐을 착용했다.
2.3. Creative Director at Moschino

2013년 10월 스콧은 모스키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 여러 다른 제안들을 거절한 후, 그는 프랑코 모스키노가 패션을 일종의 항의로 보는 등 유사한 불손한 접근 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이탈리아 브랜드를 선택했다.
프리-폴 컬렉션 전체를 재디자인한 후, 스콧은 2014년 가을에 첫 모스키노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는 프랑코 모스키노의 패션 유머(쓰레기 봉투, 재치 있는 슬로건, 비피터 모자)를 미국적인 시각(맥도날드 핸드백, 팝콘 드레스, 영양 라벨 볼 가운, 스폰지밥 털 코트)을 통해 재해석했다. 그의 접근 방식의 한 예는 케첩-빨간색과 밝은 노란색의 맥도날드 색상을 사용한 마주보는 재킷과, 하트 모양의 황금색 "M"이 새겨진 매칭 퀼팅 가죽 핸드백이었다. 그의 첫 모스키노 향수는 '모스키노 토이'라고 불렸는데, 병 자체가 테디베어 모양이었고 스프레이 노즐은 곰 머리 아래에 있었다.
2015년 <더 가디언>에 실린 그의 선언문에서 스콧은 미국의 소비 문화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는 뭄바이, 팀북투,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일하게 이해됩니다. 제가 2007년에 그랬듯이 군용 헬멧에 미키 귀를 달아서 변형시키더라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죠... 제 컬렉션의 많은 부분은 향수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실제로 그의 패션은 종종 유머러스하다. 2016년 쇼에는 말보로 레드 담배 상자처럼 보이고 '패션은 죽인다'(Fashion Kills)라는 경고문이 새겨진 핸드백이 포함되었다.
2015년 8월, 스콧은 모스키노 2015년 가을/겨울 의류 라인과 관련하여 저작권 침해로 모스키노와 함께 고소당했다. 제출된 원고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의류들은 원고의 작품을 "문자 그대로 복제"한 것이었다. 이 소송은 법정 밖에서 합의로 해결되었다.
그의 모스키노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1497년 피렌체의 '허영의 불꽃'에서 영감을 받았다. 드레스에는 거울 조각, 부서진 웅장한 샹들리에, 파괴된 그랜드 피아노의 내부가 특징이었다. 기술적인 면에서 처음으로, 몇몇 드레스는 내부에 연기 발생기가 통합되어 런웨이에 연기 자국을 남겼다. 동시에 뉴욕에서 열린 그의 개인 브랜드 2016년 가을 컬렉션에는 만화 같은 맥스 헤드룸, 로커빌리 기타 프린트, 화려한 하이힐 카우보이 부츠, 소 프린트 데님이 포함되었다. 이 컬렉션은 로스앤젤레스 멜로즈 애비뉴에 위치한 빈티지 상점에서 이름을 따 "카우보이와 푸들"로 불렸는데, 이 상점은 1950년대 로커빌리 문화를 1980년대 펑크족들에게 소개한 곳이었다.
스콧은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장난감 광고를 기반으로 직접 쓰고 아트 디렉팅한 모스키노 바비 인형의 TV 광고를 제작했다. 이 광고는 소년이 등장하는 첫 바비 광고로 주목받았다. 모스키노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스콧은 인터넷 세대의 2D 화면 집착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트롱프뢰유 기법을 사용하여 모스키노의 황금색 액세서리, 가죽 재킷, 그리고 실제보다 더 큰 브랜드 로고를 2D로 표현했으며, 실제 크기의 풀 탭과 종이 인형의 붙여진 액세서리 등을 포함했다.
스콧은 모스키노 브랜드를 부활시키고 매출을 늘리며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2023년 3월 20일, 그는 모스키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직위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2.4. Work with other brands
2006년, 스콧은 프랑스 가죽 제품 회사인 롱샴과 협업을 시작했으며, 이는 그의 패션쇼에 참석한 프런트 로 게스트들을 위한 가방 제작으로 이어졌다.
2011년에는 스와치와 협업하여 세 가지 시계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 시계들은 스콧의 "팝 미학, 재미있는 반전, 과장된 형태"로 스와치가 "초재미있는 80년대 뿌리"로 돌아왔다는 찬사를 받았다.
3. Influence and public image
제러미 스콧은 그의 독특한 디자인 접근 방식으로 대중문화와 패션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수많은 유명 인사들과 협업하며 그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3.1. Collaborations with celebrities and entertainment
스콧 작업의 중요한 부분은 비욘세, 리한나, 레이디 가가, 니키 미나즈와 같은 연예인들에게 의상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케이티 페리, 마일리 사이러스, CL 등 일부 연예인들은 그와 너무 자주 협업하여 "제자 패거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스콧은 유명 인사들과의 작업에 대해 "나는 팝 문화의 언어를 이해하며, 이들은 팝 문화의 토템이다"라고 설명했다.
2015년 1월, 스콧은 팝스타 케이티 페리의 슈퍼볼 XLIX 하프타임 쇼 공연을 위한 의상을 제작했다. 페리는 <롤링 스톤> 커버에서 그의 맞춤형 뷔스티에를 선보였다. 이 디자이너와 가수는 페리의 첫 앨범이 나오기 10년 전부터 협력하기 시작했다.
리한나는 "We Found Love" 뮤직 비디오에서 제러미 스콧의 데님 브라톱과 원형 스커트를 착용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자신의 "Toxic" 비디오에서 입었던 레트로-퓨처리즘 승무원 드레스는 스콧이 만든 것이다. 그는 레이디 가가의 "파파라치" 의상을 디자인했다. 2015년 메트 갈라에서 스콧은 케이티 페리와 그가 음악/패션 아이콘의 원조라고 생각하는 마돈나의 의상을 담당했다. 2016년 메트 갈라에서는 니키 미나즈와 데미 로바토가 그의 의상을 입었다.
스콧은 더 머펫의 미스 피기를 앤디 워홀 분장을 한 커밋 더 프로그와 함께 사진 촬영을 위해 의상을 입혔다. 그는 자신의 패션쇼에서 미스 피기의 프런트 로 등장과 <더 머펫>의 세계 초연을 포함하여 여러 번 피기에게 의상을 제공했다. 2015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그는 문맨(Moonman) 트로피를 재디자인했다.
3.2. Impact on fashion and popular culture
스콧은 패션계의 앤디 워홀로 불리기도 했다. '저속함: 패션 재정의'라는 제목의 영국 전시회는 다양한 저속함 개념을 주제로 했는데, 이 전시회에는 스콧의 사탕 포장지 테마 드레스가 팝 아트 중심의 "너무 대중적인"(Too Popular) 섹션에 워홀의 수프 드레스와 함께 전시되었다.
4. Controversies and criticisms
제러미 스콧의 디자인은 혁신적인 만큼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4.1. "Shackle" sneakers controversy
2012년 6월, 스콧이 디자인한 'JS 라운드하우스 미드' 운동화 한 켤레가 대중의 비판을 받자 아디다스는 이 신발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신발은 밝은 노란색 수갑 디자인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에게 노예 제도를 암시하는 "족쇄"라는 비판을 받았다. 스콧은 신발이 노예 제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며, 어린 시절의 장난감인 마이 펫 몬스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4.2. Plagiarism allegations
2013년 2월, 스콧은 산타크루즈 스케이트보드의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산타크루즈와 스콧은 스콧이 컬렉션 생산을 중단하는 것으로 합의에 도달했다.
2015년 8월에는 모스키노 2015년 가을/겨울 의류 라인과 관련하여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디자인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저작권 침해 소송에 휘말렸다. 원고가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해당 의류들은 원고의 작품을 "문자 그대로 복제"한 것이었다. 이 소송 또한 법정 밖에서 합의로 해결되었다.
5. Film and media appearances
제러미 스콧의 삶과 경력은 다큐멘터리 영화 및 다양한 미디어 프로젝트를 통해 조명되었다.
5.1. "Jeremy Scott: The People's Designer"
<제러미 스콧: 더 피플스 디자이너>(Jeremy Scott: The People's Designer)는 블라드 유딘이 감독한 2015년 다큐멘터리 영화로, 스콧의 삶과 패션 산업에서의 그의 성장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2015년 9월 18일에 개봉했으며, 케이티 페리, 리한나, 마일리 사이러스, 리타 오라, 패리스 힐튼, 에이셉 라키, 2NE1의 CL 등이 출연한다.
5.2. Other media appearances
2010년 7월 13일, 제러미 스콧은 미국 드라마 <더 영 앤 더 레스트리스>에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2NE1의 리더 CL의 절친한 친구로도 알려져 있으며, 그녀와 다른 여성 멤버들에게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는 블랙 아이드 피스의 윌 아이 앰과 함께 2NE1의 리얼리티 쇼인 <2NE1 TV 시즌2>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2010년 11월에 열린 '2010 올'리브 온스타일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에서는 2NE1에게 상을 수여하기 위해 참석했다.
6. Awards and honors
제러미 스콧은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다음과 같은 중요한 상과 영예를 받았다.
- 2000년: ANDAM 패션 어워드 수상
- 2015년: 연례 패션 로스앤젤레스 어워즈(Annual Fashion Los Angeles Awards)에서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상 수상
- 1998년, 1999년: 두 번째 및 세 번째 컬렉션으로 베스트 뉴 디자이너 부문 비너스 드 라 모드(Venus de la Mode) 상 수상
- 1999년: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CFDA) 올해의 젊은 디자이너 후보 지명
- 피렌체의 주요 남성복 박람회인 제88회 피티 우오모의 게스트 디자이너로 선정
- 그의 아디다스 운동화는 브루클린 박물관의 "운동화 문화의 부상" 전시회에 포함
- 데뷔 20주년이 되는 2017년에 댈러스 컨템포러리 미술관에서 그의 패션 회고전을 개최하기로 동의
7. Personal life
제러미 스콧의 부모님은 엔지니어인 짐과 교사인 샌디이다. 제러미에게는 변호사인 바바라와 제임스라는 두 명의 형제가 있다. 그가 디자인을 시작한 이래 그의 가족들은 거의 모든 쇼에 참석해왔다.
스콧은 존 라우트너가 설계한 두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 하나는 할리우드 힐스에 위치한 포스터-칼링 하우스(1947년)이고, 다른 하나는 팜스프링스에 위치한 엘로드 하우스(1969년)이다. 그는 채식주의자이기도 하다.
q=Palm Springs, California|position=right
제러미 스콧은 동성애자이며, 14세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8. See also
- 모스키노
- 아디다스
- 대중문화
- 스트리트웨어
- 케이티 페리
- 레이디 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