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재키 필즈(Jackie Fields영어, 본명 제이콥 핀켈스타인(Jacob Finkelstein영어), 1908년 2월 9일 ~ 1987년 6월 3일)는 미국의 프로 복서로, 두 차례 세계 웰터급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그는 1924년 파리 하계 올림픽 복싱 페더급에서 16세의 나이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복싱 역사상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등 뛰어난 아마추어 경력을 쌓았다. 프로 전향 후에는 웰터급에서 챔피언에 올랐으며, 그의 복싱 기술과 강한 정신력은 당대 복싱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필즈는 은퇴 후에도 사업가, 영화 편집자, 네바다주 체육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다방면에 걸쳐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유대계 미국인으로서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1979년 국제 유대인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등 당대 저명한 유대계 운동선수로서 그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재키 필즈의 어린 시절은 그의 복싱 경력과 이후의 삶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복싱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2.1. 출생 및 유년기
재키 필즈는 1908년 2월 9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맥스웰 스트리트에서 본명 제이콥 핀켈스타인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으로 도축업에 종사했다. 그의 남동생 샘 필즈는 나중에 영화 편집자로 활동했다. 1921년, 14세가 되던 해에 필즈는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2.2. 교육 및 초기 훈련
필즈는 로스앤젤레스의 링컨 고등학교에 다녔으나, 학업을 중단하고 복싱에 전념했다. 그의 초기 복싱 교육은 전 라이트급 복서이자 훗날 조 루이스를 훈련시킨 전설적인 흑인 복싱 트레이너 잭 블랙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21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후에는 잭 뎀프시의 체육관에서 복싱 훈련을 계속했다. 그는 조지 블레이크의 지도를 받으며 로스앤젤레스 스포츠 클럽에서 뛰어난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했다. 블레이크는 필즈의 잠재력을 13세 때부터 알아봤다. 블레이크의 훈련소에 있던 또 다른 뛰어난 복서이자 훗날 세계 플라이급 챔피언이 될 피델 라바르바는 필즈가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후 어린 필즈와 스파링을 하며 그의 기술과 속도 향상에 도움을 주었다.
어린 시절 필즈는 복싱 프로모터들로부터 "유대인들은 강인하거나 육체적인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당시의 편견 때문에 자신의 본명(핀켈스타인)이 "잘못된 이미지를 준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따라 링 이름을 물색하던 중 그는 시카고의 사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인 마셜 필드의 성을 따서 "필즈"를 선택했고, 그의 본명 제이콥의 미국식 형태인 "재키"를 사용하게 되었다.
3. 아마추어 경력
재키 필즈는 프로 전향 전 아마추어 복서로서 인상적인 경력을 쌓았으며, 이는 그가 훗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챔피언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필즈는 아마추어 경력 동안 총 54번의 경기에 참여하여 51승을 기록했다.
3.1. 1924년 파리 올림픽
1924년, 필즈는 16세의 나이로 파리 하계 올림픽 복싱 페더급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로써 그는 올림픽 복싱에서 금메달을 딴 가장 어린 복서가 되었다. 올림픽에서의 그의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
- 모시 도일 (아일랜드)에게 판정승
- 올라프 한센 (노르웨이)에게 판정승
- 카를로스 아바르카 (칠레)에게 판정승
- 페드로 콰르투치 (아르헨티나)에게 판정승
- 조지프 살라스 (미국)에게 판정승
4. 프로 복싱 경력
재키 필즈는 아마추어 시절의 성공을 발판 삼아 1925년 프로로 전향했다. 그는 1929년과 1932년에 두 차례 세계 웰터급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프로 복싱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4.1. 초기 프로 경기
필즈는 1925년 2월 5일 베니 파스칼을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치러 판정승을 거두었다.
1925년 11월 12일, 필즈는 경험이 훨씬 많은 지미 맥라닌을 상대로 5000 USD의 대전료에 이끌려 경기에 나섰다. 당시 프로 전적 6전 9개월의 짧은 경력을 가진 필즈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강당에서 2라운드 KO 패배를 당하며 턱이 부러지는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맥라닌은 짧은 경기 동안 필즈를 네 차례 쓰러뜨렸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맥라닌이 필즈의 스타일을 신중하게 연구하여 1라운드에 주도권을 내준 뒤 2라운드에서 연속적인 오버핸드 라이트로 세 번 쓰러뜨린 것을 높이 평가했다. 이 경기에서 필즈는 처음으로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현명하지 못하게 즉시 일어섰고, 다시 캔버스에 쓰러졌다. 네 번째 쓰러졌을 때는 끝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이 경험을 통해 필즈는 교훈을 얻었고, 이후로는 KO 패배를 당하지 않았다.
1927년 6월 15일, 필즈는 전 세계 페더급 챔피언인 유대계 복서 루이스 "키드" 카플란과의 경기에서 10라운드 판정패를 당했다. 카플란의 양손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키가 더 큰 필즈가 스트레이트 잽과 빠른 라이트 크로스로 득점을 올리기도 했지만, 충분히 자주 성공시키지 못해 판정에서 밀렸다. 카플란은 필즈에게 훨씬 더 많은 펀치를 퍼부으며 판정승을 거두었다.
1927년 11월 22일, 필즈는 현 세계 주니어 라이트급 챔피언인 유대계 복서 머쉬 캘러헌을 상대로 비타이틀전에서 승리했다. 캘러헌은 2, 9, 10라운드에서 거의 KO될 뻔했으며, 서 있기도 힘들어했다。 필즈는 몸과 얼굴에 끊임없이 라이트와 레프트를 퍼부었고, 10라운드 중 6라운드를 가져갔다. 수개월간의 질병에서 복귀한 캘러헌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1928년 2월 3일, 필즈는 현 세계 라이트급 챔피언 새미 맨델에게 10라운드 만장일치 판정패를 당했다. 필즈는 초기 몇 라운드 동안 강력한 보디 공격으로 앞서나갔지만, 맨델은 3라운드에 필즈의 왼쪽 눈에 긴 러싱 레프트를 성공시키며 자신의 거리를 찾았다. 필즈의 부상은 그를 방어적으로 만들었고, 후반 라운드에서는 더 많은 인파이팅과 클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9라운드에 전세를 역전시키려 했으나, 점수 차이를 만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1927년 4월 4일 로스앤젤레스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맨델과의 첫 대결에서는 필즈가 훨씬 더 좋은 활약을 펼쳤다. 12라운드 신문 판정에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필즈가 10라운드 중 8라운드를 압도적으로 가져갔다고 보도했다. 필즈는 6라운드에 오버핸드 라이트로 맨델의 턱을 흔들었지만, 이 경기는 타이틀전이 아니었고 필즈가 라이트급 체중 제한을 초과했기 때문에 맨델은 챔피언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는 맨델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고 보았지만, 더 젊고 경험이 적은 필즈가 더 강한 펀치로 2라운드와 10라운드를 쉽게 가져갔다고 언급했다.
1930년대 초, 필즈는 유명한 매니저 잭 컨스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4.2. 첫 번째 세계 웰터급 챔피언십
재키 필즈는 1929년과 1932년에 웰터급 세계 타이틀을 두 차례 획득했다.

1929년 3월 25일, 필즈는 시카고에서 열린 공석인 NBA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9,000명의 관중 앞에서 영 잭 톰슨을 상대로 10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었다. 『애크런 비콘 저널』은 필즈가 "공격에 있어서 막을 수 없었고, 결단력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었으며, 상대를 완벽히 압도했다"고 보도했다. 처음 두 라운드에서 필즈는 톰슨을 거의 KO시킬 뻔했다. 톰슨은 경기 내내 용감하게 버티며 자신의 주특기인 라이트 크로스를 반복적으로 날리려 했지만, 대부분 빗나갔다. 필즈는 톰슨의 많은 펀치를 글러브와 전완근으로 막아냈고, 일부는 공중에서 멈추게 했다. 그의 가장 효과적이고 빈번한 공격은 왼손 잽과 훅에서 나왔다. 3라운드에 톰슨은 몇 차례 강력한 라이트 크로스를 성공시키며 잠시 반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음 라운드까지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8라운드는 링 안으로 번진 소란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마지막 두 라운드에서는 두 선수 모두 지쳐 있었지만 경기는 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10라운드에서 톰슨은 KO를 노렸지만 그의 펀치 대부분은 필즈에게 막혔고, 라운드는 팽팽하게 끝났다. 필즈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10라운드 중 7라운드를 가져갔고 톰슨은 1라운드, 2라운드는 무승부였다.
이 경기 이전에, NBA가 조 던디의 타이틀을 박탈하면서 세계 웰터급 타이틀은 공석이 되었다. 캘리포니아와 NBA는 필즈를 1929년 4월 19일 공식 챔피언으로 인정했지만, 강력한 NYSAC는 필즈를 챔피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NYSAC는 필즈가 던디와 맞붙을 7월까지 그를 챔피언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1929년 7월 25일, 필즈는 디트로이트에서 25,000명의 대규모 관중 앞에서 조 던디와 웰터급 챔피언십 통합 경기를 치렀다. 필즈는 던디가 네 차례 쓰러진 후 일어설 수 없는 상태에서 반칙성 블로우를 날려 경기를 계속할 수 없게 되자 2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던디는 그 반칙이 고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필즈는 던디의 말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자신이 반칙으로 이긴 유일한 경기였다고 언급했다. 이 승리로 필즈는 세계 웰터급 챔피언으로 통합 인정을 받았다.
1929년 10월 21일, 필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10,000명의 관중 앞에서 훗날 세계 "유색인" 웰터급 챔피언이 될 흑인 복서 고릴라 존스를 상대로 승리했다. 박진감 넘치는 10라운드 경기에서 존스는 초반에 앞서나갔고 필즈의 턱에 스트레이트 라이트를 여러 차례 성공시키며 그를 흔들었지만, 필즈의 체력과 공격성이 후반 라운드에서 존스를 지치게 했다. 필즈는 9, 10라운드를 명확히 가져갔고 5라운드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했지만, 경기 내내 존스의 반복되는 라이트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두 달 뒤인 12월 13일의 경기에서는 심판 조 오코너가 존스가 "평소와 같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며 경기를 중단시켰고, 프로모터에게 두 선수 모두에게 대전료를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보스턴 글로브』는 경기가 정당했다고 보았으며, 존스의 긴 팔과 필즈가 근접전에서 싸우려는 경향 때문에 두 복서가 서로 펀치를 피하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언급했다.
1930년 1월 24일, 필즈는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열린 비타이틀전에서 조 던디의 동생인 빈스 던디에게 10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던디는 3라운드에서 네 차례 다운되었지만, 10라운드를 모두 버텨내며 후반 라운드에서 반격에 성공했다. 3라운드에 던디는 한 차례 8 카운트 다운을 당했고, 다시 한 차례 9 카운트 다운을 당했으며, 라운드 끝에 쓰러지면서 벨에 의해 구원받았다. 필즈는 5라운드를 가져갔고 던디는 3라운드, 2라운드는 무승부였다. 필즈는 그 이전에 1929년 10월 2일 시카고에서, 그리고 1928년 4월 17일과 2월 14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 차례 10라운드 판정 경기에서 빈스 던디를 상대로 승리한 바 있다.
4.3. 첫 번째 타이틀 상실
1930년 2월 22일, 필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영 코벳 3세와의 10라운드 경기에서 판정패를 당하며 2년 만에 첫 패배를 기록했다. 상대의 왼손 자세에 당황한 필즈는 초반 라운드에서 뒤처졌고, 경기 후반에 강력하게 반격했지만 심판은 코벳이 여전히 점수에서 앞서고 있다고 판단했다. 코벳이 웰터급 체중 제한을 0.9 kg (2 lb) 초과했기 때문에 필즈의 타이틀은 걸려있지 않았다. 필즈는 두 달 후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미래의 웰터급 챔피언 토미 프리먼과의 경기에서 8,000명의 관중 앞에서 4라운드 TKO 승을 거두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프리먼이 처음 두 라운드에서 우위를 점했고, 3라운드에 라이트 펀치로 필즈의 코를 멍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필즈는 4라운드 초반에 라이트 펀치를 날려 프리먼의 입술을 심하게 찢어 더 이상 경기를 계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30년 5월 9일, 14,000명의 관중 앞에서 필즈는 디트로이트 올림피아 스타디움에서 영 잭 톰슨에게 15라운드 판정패를 당하며 NBA 세계 웰터급 타이틀을 잃었다. 필즈는 초반 라운드에서 점수 우위를 쌓았지만, 톰슨은 근접전에서 잽과 어퍼컷으로 반격하며 현 챔피언을 심하게 지치게 만들었다. 7라운드에 톰슨의 턱에 대한 라이트 펀치는 필즈의 체력을 고갈시켰고, 스트레이트 레프트는 그의 오른쪽 눈 아래에 자상을 입혔다. 11라운드에 지쳐버린 필즈는 자주 클린치를 했다. 13라운드에 이르러 필즈는 거의 방어할 수 없는 상태였고, 비틀거리다가 종료 벨이 울리자 톰슨의 품으로 쓰러졌다. 14라운드에 필즈는 간신히 반격을 시도했지만, 톰슨의 점수 우위가 너무 커서 역부족이었다. 심판은 15라운드 중 10라운드를 톰슨에게, 필즈에게는 3라운드만을 주었다. 필즈가 이전에 톰슨을 두 차례 꺾었던 것을 고려할 때, 톰슨의 승리는 이변으로 여겨졌다.
4.4. 두 번째 세계 웰터급 챔피언십 재탈환
1932년 1월 28일, 필즈는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11,200명의 열광적인 관중 앞에서 루 브루야드를 상대로 10라운드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NBA 세계 웰터급 챔피언십 타이틀을 되찾았다. 필즈는 6라운드부터 강력한 레프트와 힙에서 나오는 강력한 스위핑 라이트를 날리며 점수에서 앞서기 시작했다. 7라운드와 8라운드에도 공격을 이어가며 다양한 펀치를 성공시켜 현 챔피언과의 격차를 벌렸다. 10라운드는 브루야드에게 약간의 우위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필즈는 이미 큰 점수 차이를 벌려놓았고 경기 종료 벨이 울릴 때까지 더욱 강한 모습을 보였다.

1932년, 필즈는 켄터키주 루이빌 외곽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하여 왼쪽 눈에 심각한 부상인 망막 박리를 입었다. 필즈는 대공황으로 인해 대부분의 부동산 재산을 잃었고, 부상에도 불구하고 복싱을 그만두기를 주저했다. 당시에는 거의 아무도 몰랐지만, 그는 그 눈의 시력이 부분적으로만 남아 있었고, 그 상태로 다음 웰터급 타이틀전을 치러야 했다. 이후의 수술로도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고, 1938년에는 그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4.5. 두 번째 타이틀 상실 및 은퇴
1933년 2월 22일, 필즈는 샌프란시스코 실스 스타디움에서 15,000명의 관중 앞에서 사우스포 영 코벳 3세를 상대로 10라운드 판정패를 당하며 NBA 웰터급 타이틀을 잃었다. 그는 코벳의 근접전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고, 상대가 파고들 때 충분히 빨리 카운터 펀치를 날리지 못했다. 그는 효과적인 방어 복싱을 하지 못했고, 아마도 피로 때문인지 경기 대부분 동안 발을 질질 끌며 움직였다. 첫 5라운드는 코벳이 가져갔지만, 필즈는 6라운드에 얼굴과 몸에 펀치를 날리며 반격했다. 7라운드에 코벳은 근접전에서 필즈의 턱에 레프트 펀치를 네 차례 성공시켜 상대를 느리게 만들었다. 9라운드에 필즈는 마지막 노력을 다해 두 손으로 코벳을 링 주변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느린 시작을 극복하지 못했고, 심판은 코벳에게 6라운드, 필즈에게는 3라운드만을 주었다.
웰터급 타이틀을 잃은 지 3개월 후인 1933년 5월, 필즈는 영 피터 잭슨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둔 후 프로 복싱에서 은퇴했다.
5. 복싱 은퇴 이후의 삶
재키 필즈는 복싱에서 은퇴한 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성공적인 삶을 이어갔다.
5.1. 사업 및 엔터테인먼트 활동
대공황으로 인해 대부분의 부동산 투자를 잃은 후, 필즈는 한동안 필라델피아의 독일인 거주 지역에서 살았다. 1935년부터 1940년대까지 그는 울리처 주크박스 회사와 맥주 제조업체인 해나 앤 호그 디스틸러리에서 판매원으로 일했다.
로스앤젤레스에 머무는 동안, 그는 영화 《배틀링 버니언》(1924), 《권투선수와 숙녀》(1933), 《빅 시티》(1937), 《세계 헤비급 챔피언십: 무하마드 알리 대 플로이드 패터슨》(1965) 등에 출연했다. 그는 1934년 영화 《퍼스낼리티 키드》에서 복싱 장면을 지도하기도 했다. 또한 TV 영화 《무하마드 알리 대 론 라일》(1975)과 TV 프로그램 《와이드 월드 오브 스포츠》(1969), 《이주의 경기》(1961)에도 출연했다. 영화 산업에서의 그의 활동에는 MGM과 20세기 폭스의 영화 편집자 역할도 포함되었다.
5.2. 카지노 경영 및 공직 활동
1957년, 필즈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하여 트로피카나 라스베이거스의 공동 소유주가 되었다. 그는 결국 호텔 지분을 매각했지만, 홍보 이사직은 계속 유지했다. 1960년대에는 네바다주 체육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5.3. 코칭 및 개인 생활
1965년, 필즈는 마카비아 게임에서 미국 복싱 팀을 코치했다.
그는 1931년 8월 마사 린과 첫 결혼을 했다. 이 부부는 1940년 12월에 별거했으며, 1944년 5월 그의 아내 마사 린은 이혼을 승인받았다. 라스베이거스에 거주하는 동안, 그는 전 뉴욕 모델이자 라스베이거스 무대 공연자였던 마조리 필즈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며, 그녀의 여러 의붓자녀들을 함께 키웠다.
6. 사망
재키 필즈는 1987년 6월 3일, 79세의 나이로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7. 유산 및 평가
재키 필즈는 복싱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업적은 수많은 명예의 전당 헌액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7.1. 명예의 전당 헌액
재키 필즈는 그의 뛰어난 복싱 경력과 스포츠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여러 권위 있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72년: 유나이티드 세이빙스-헬름스 복싱 명예의 전당
- 1979년: 국제 유대인 스포츠 명예의 전당
- 1987년: 세계 복싱 명예의 전당
- 1996년: 남부 캘리포니아 유대인 스포츠 명예의 전당
- 2004년: 국제 복싱 명예의 전당
7.2. 전반적인 평가
복싱 통계 웹사이트 복스렉은 재키 필즈를 역대 웰터급 선수 중 19위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강타와 뛰어난 스태미너를 겸비한 선수로 인정받으며, 복싱 역사상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8. 프로 복싱 기록
다음 표는 재키 필즈의 공식 프로 복싱 기록을 나타낸다.
번호 | 결과 | 전적 | 상대 | 유형 | 라운드 | 날짜 | 나이 | 장소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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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 승 | 72-9-2 (3) | 영 피터 잭슨 | 판정 | 10 | 1933년 5월 2일 | 25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85 | 패 | 71-9-2 (3) | 영 코벳 3세 | 판정 | 10 | 1933년 2월 22일 | 25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미국 | NYSAC, NBA, 더 링 웰터급 타이틀 상실 |
84 | 패 | 71-8-2 (3) | 에디 머독 | 판정 | 10 | 1932년 12월 30일 | 24 |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 미국 | |
83 | 승 | 71-7-2 (3) | 레드 그리그리 | TKO | 5 (10) | 1932년 12월 7일 | 24 | 스톡턴, 캘리포니아주, 미국 | |
82 | 승 | 70-7-2 (3) | 토미 허먼 | KO | 2 (10) | 1932년 12월 1일 | 24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미국 | |
81 | 승 | 69-7-2 (3) | 헨리 퍼포 | NWS | 10 | 1932년 5월 6일 | 24 | 루이빌, 켄터키주, 미국 | |
80 | 승 | 69-7-2 (2) | 피위 자렐 | KO | 4 (10) | 1932년 4월 5일 | 24 | 데이턴, 오하이오주, 미국 | |
79 | 승 | 68-7-2 (2) | 레슬리 베이커 | TKO | 5 (10) | 1932년 4월 1일 | 24 | 보스턴, 매사추세츠주, 미국 | |
78 | 승 | 67-7-2 (2) | 이지 클라인 | KO | 1 (10) | 1932년 3월 11일 | 24 | 솔트레이크시티, 유타주, 미국 | |
77 | 승 | 66-7-2 (2) | 팻시 폴록 | KO | 2 (10) | 1932년 3월 8일 | 24 | 덴버, 콜로라도주, 미국 | |
76 | 패 | 65-7-2 (2) | 지미 벨몬트 | UD | 10 | 1932년 3월 4일 | 24 | 보스턴, 매사추세츠주, 미국 | |
75 | 승 | 65-6-2 (2) | 지미 벨몬트 | TKO | 8 (10) | 1932년 2월 29일 | 24 | 피츠버그, 펜실베이니아주, 미국 | |
74 | 승 | 64-6-2 (2) | 루 브루야드 | UD | 10 | 1932년 1월 28일 | 23 | 시카고, 일리노이주, 미국 | NYSAC, NBA, 더 링 웰터급 타이틀 획득 |
73 | 무승부 | 63-6-2 (2) | 지미 벨몬트 | 판정 | 10 | 1931년 11월 16일 | 23 | 피츠버그, 펜실베이니아주, 미국 | |
72 | 승 | 63-6-1 (2) | 킹 투트 | 판정 | 10 | 1931년 10월 8일 | 23 | 디트로이트, 미시간주, 미국 | |
71 | 패 | 62-6-1 (2) | 영 테리 | 판정 | 10 | 1931년 9월 17일 | 23 | 뉴욕시, 뉴욕주, 미국 | |
70 | 승 | 62-5-1 (2) | 재키 브래디 | UD | 10 | 1931년 2월 26일 | 23 | 시라큐스, 뉴욕주, 미국 | |
69 | 승 | 61-5-1 (2) | 버키 로리스 | KO | 5 (10) | 1930년 12월 19일 | 22 | 디트로이트, 미시간주, 미국 | |
68 | 승 | 60-5-1 (2) | 폴 피론 | MD | 10 | 1930년 12월 10일 | 22 | 클리블랜드, 오하이오주, 미국 | |
67 | 승 | 59-5-1 (2) | 샘 브루스 | MD | 10 | 1930년 11월 24일 | 22 | 버펄로, 뉴욕주, 미국 | |
66 | 승 | 58-5-1 (2) | 피트 서스키 | UD | 10 | 1930년 11월 14일 | 22 | 스크랜턴, 펜실베이니아주, 미국 | |
65 | 승 | 57-5-1 (2) | 토미 조던 | KO | 3 (10) | 1930년 10월 7일 | 22 |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애나주, 미국 | |
64 | 승 | 56-5-1 (2) | 잭 호너 | 판정 | 10 | 1930년 9월 30일 | 22 | 로체스터, 뉴욕주, 미국 | |
63 | 패 | 55-5-1 (2) | 잭 톰슨 | 판정 | 15 | 1930년 5월 9일 | 22 | 디트로이트, 미시간주, 미국 | NYSAC, NBA, 더 링 웰터급 타이틀 상실 |
62 | 승 | 55-4-1 (2) | 마이어 그레이스 | KO | 3 (10) | 1930년 4월 21일 | 22 | 캔자스시티, 미주리주, 미국 | |
61 | 승 | 54-4-1 (2) | 토미 프리먼 | TKO | 4 (12) | 1930년 4월 8일 | 22 | 클리블랜드, 오하이오주, 미국 | |
60 | 패 | 53-4-1 (2) | 영 코벳 3세 | 판정 | 10 | 1930년 2월 22일 | 22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미국 | |
59 | 승 | 53-3-1 (2) | 빈스 던디 | UD | 10 | 1930년 1월 24일 | 21 | 시카고, 일리노이주, 미국 | |
58 | 승 | 52-3-1 (2) | 지미 오웬스 | TKO | 2 (10) | 1930년 1월 10일 | 21 | 시카고, 일리노이주, 미국 | |
57 | 승 | 51-3-1 (2) | 알프 로스 | 판정 | 10 | 1930년 1월 6일 | 21 |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주, 미국 | |
56 | NC | 50-3-1 (2) | 고릴라 존스 | NC | 7 (10) | 1929년 12월 13일 | 21 | 보스턴, 매사추세츠주, 미국 | |
55 | 승 | 50-3-1 (1) | 프레드 마한 | KO | 2 (10) | 1929년 11월 4일 | 21 | 캔자스시티, 미주리주, 미국 | |
54 | 승 | 49-3-1 (1) | 고릴라 존스 | 판정 | 10 | 1929년 10월 21일 | 21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미국 | |
53 | 승 | 48-3-1 (1) | 빈스 던디 | 판정 | 10 | 1929년 10월 2일 | 21 | 시카고, 일리노이주, 미국 | |
52 | 승 | 47-3-1 (1) | 조 던디 | 실격 | 2 (15) | 1929년 7월 25일 | 21 | 디트로이트, 미시간주, 미국 | NBA 웰터급 타이틀 방어; NYSAC 및 더 링 웰터급 타이틀 획득 |
51 | 승 | 46-3-1 (1) | 파머 조 쿠퍼 | KO | 1 (10) | 1929년 6월 28일 | 21 | 시카고, 일리노이주, 미국 | |
50 | 승 | 45-3-1 (1) | 재키 호너 | KO | 4 (10) | 1929년 6월 19일 | 21 | 세인트루이스, 미주리주, 미국 | |
49 | 승 | 44-3-1 (1) | 클라이드 채스테인 | 판정 | 10 | 1929년 5월 24일 | 21 | 시카고, 일리노이주, 미국 | |
48 | 승 | 43-3-1 (1) | 잭 톰슨 | UD | 10 | 1929년 3월 25일 | 21 | 시카고, 일리노이주, 미국 | 공석인 NBA 웰터급 타이틀 획득 |
47 | 승 | 42-3-1 (1) | 앨 밴 라이언 | TKO | 5 (10) | 1929년 3월 8일 | 21 | 디트로이트, 미시간주, 미국 | |
46 | 승 | 41-3-1 (1) | 베이비 조 간스 | 판정 | 10 | 1929년 2월 15일 | 21 | 뉴욕시, 뉴욕주, 미국 | |
45 | 승 | 40-3-1 (1) | 잭 매카시 | 판정 | 10 | 1929년 1월 28일 | 20 | 시카고, 일리노이주, 미국 | |
44 | 승 | 39-3-1 (1) | 토미 엘크스 | TKO | 7 (10) | 1928년 12월 28일 | 20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43 | 승 | 38-3-1 (1) | 마이크 파이안 | KO | 2 (10) | 1928년 11월 30일 | 20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미국 | |
42 | 승 | 37-3-1 (1) | 새미 베이커 | KO | 2 (10) | 1928년 10월 30일 | 20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41 | 승 | 36-3-1 (1) | 잭 톰슨 | 판정 | 10 | 1928년 10월 1일 | 20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미국 | |
40 | 승 | 35-3-1 (1) | 피트 마이어스 | TKO | 4 (10) | 1928년 8월 10일 | 20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미국 | |
39 | 승 | 34-3-1 (1) | 조 바르가스 | TKO | 9 (10) | 1928년 7월 20일 | 20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미국 | |
38 | 승 | 33-3-1 (1) | 파머 조 쿠퍼 | 판정 | 10 | 1928년 7월 13일 | 20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미국 | |
37 | 승 | 32-3-1 (1) | 잭 지빅 | TKO | 7 (10) | 1928년 6월 26일 | 20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36 | 승 | 31-3-1 (1) | 돈 프레이저 | KO | 3 (10) | 1928년 6월 8일 | 20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35 | 승 | 30-3-1 (1) | 돈 프레이저 | KO | 1 (10) | 1928년 5월 4일 | 20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34 | 승 | 29-3-1 (1) | 빈스 던디 | 판정 | 10 | 1928년 4월 17일 | 20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33 | 패 | 28-3-1 (1) | 새미 맨델 | UD | 10 | 1928년 2월 23일 | 20 | 시카고, 일리노이주, 미국 | |
32 | 승 | 28-2-1 (1) | 빈스 던디 | 판정 | 10 | 1928년 2월 14일 | 20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31 | 승 | 27-2-1 (1) | 찰리 페라치 | 판정 | 10 | 1928년 1월 13일 | 19 |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 미국 | |
30 | 승 | 26-2-1 (1) | 버디 선더스 | 판정 | 10 | 1927년 12월 20일 | 19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29 | 승 | 25-2-1 (1) | 딕 래미스 | KO | 2 (10) | 1927년 12월 2일 | 19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28 | 승 | 24-2-1 (1) | 머쉬 캘러헌 | 판정 | 10 | 1927년 11월 22일 | 19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27 | 승 | 23-2-1 (1) | 조이 실버 | 판정 | 10 | 1927년 11월 3일 | 19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26 | 승 | 22-2-1 (1) | 베이비 조 간스 | 판정 | 10 | 1927년 8월 30일 | 19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25 | 승 | 21-2-1 (1) | 프랭키 핑크 | 판정 | 10 | 1927년 7월 4일 | 19 | 뉴욕시, 뉴욕주, 미국 | |
24 | 패 | 20-2-1 (1) | 루이스 "키드" 카플란 | 판정 | 10 | 1927년 6월 15일 | 19 | 뉴욕시, 뉴욕주, 미국 | |
23 | 승 | 20-1-1 (1) | 조이 코프먼 | 판정 | 10 | 1927년 6월 1일 | 19 | 뉴욕시, 뉴욕주, 미국 | |
22 | 승 | 19-1-1 (1) | 새미 맨델 | NWS | 12 | 1927년 4월 4일 | 19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21 | 승 | 19-1-1 | 러셀 웨일런 | 판정 | 10 | 1927년 3월 11일 | 19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20 | 승 | 18-1-1 | 해리 브라운 | 판정 | 10 | 1927년 1월 25일 | 18 | 버넌,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9 | 승 | 17-1-1 | 매티 마리오 | 판정 | 10 | 1927년 1월 14일 | 18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8 | 승 | 16-1-1 | 잭 실버 | TKO | 4 (10) | 1926년 12월 21일 | 18 |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7 | 승 | 15-1-1 | 킹 투트 | 판정 | 10 | 1926년 12월 7일 | 18 | 버넌,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6 | 승 | 14-1-1 | 세일러 패디 멀렌 | KO | 1 (10) | 1926년 11월 6일 | 18 | 버넌,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5 | 승 | 13-1-1 | 딕 호프 | 판정 | 10 | 1926년 9월 24일 | 18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4 | 승 | 12-1-1 | 세일러 애쉬모어 | 판정 | 8 | 1926년 9월 2일 | 18 | 패서디나,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3 | 승 | 11-1-1 | 로스코 홀 | 판정 | 10 | 1926년 7월 16일 | 18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2 | 승 | 10-1-1 | 조니 라마 | 판정 | 10 | 1926년 6월 18일 | 18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1 | 승 | 9-1-1 | 조니 라마 | 판정 | 10 | 1926년 4월 28일 | 18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0 | 승 | 8-1-1 | 필 살바도르 | 판정 | 10 | 1926년 4월 9일 | 18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9 | 승 | 7-1-1 | 영 브라운 | TKO | 5 (8) | 1926년 3월 12일 | 18 | 새크라멘토, 캘리포니아주, 미국 | |
8 | 승 | 6-1-1 | 윌리 벅 | KO | 3 (8) | 1926년 2월 24일 | 18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7 | 패 | 5-1-1 | 지미 맥라닌 | KO | 2 (10) | 1925년 11월 12일 | 17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6 | 승 | 5-0-1 | 프랭키 핑크 | 판정 | 6 | 1925년 9월 23일 | 17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5 | 무승부 | 4-0-1 | 조니 라마 | 판정 | 6 | 1925년 8월 12일 | 17 |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 미국 | |
4 | 승 | 4-0 | 빌리 영 | KO | 1 (?) | 1925년 6월 9일 | 17 | 버넌, 캘리포니아주, 미국 | |
3 | 승 | 3-0 | 조 살라스 | 판정 | 10 | 1925년 5월 8일 | 17 | 할리우드, 캘리포니아주, 미국 | |
2 | 승 | 2-0 | 빌리 영 | KO | 2 (8) | 1925년 4월 8일 | 17 | 윌밍턴, 캘리포니아주, 미국 | |
1 | 승 | 1-0 | 베니 파스칼 | 판정 | 6 | 1925년 2월 5일 | 16 | 패서디나, 캘리포니아주, 미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