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배경
이즈미 히로시는 일본 아오모리현 시모키타군 오마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가족은 대대로 참치 어부였으며, 70세가 넘은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참치 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선수 경력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가족이 착용한 '마구로 잇신'(참치 한마음) 티셔츠는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1.1. 어린 시절과 가족
이즈미 히로시는 초등학교 때까지 고향인 오마정에서 성장했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유도를 시작했으며, 어부 가족이라는 독특한 배경 속에서 강인한 정신력을 키웠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유도 및 종합격투기 경기를 관전하며 끊임없이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2. 교육 및 초기 유도 경력
이즈미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유도 사설 학원인 고도학사에 입문하기 위해 홀로 도쿄로 상경했다. 세타가야구 쓰루마키 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전국 중학교 유도 대회에서 8강에 그쳤지만, 세타가야 학원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전국 고등학교 종합체육대회 유도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메이지 대학교에 진학하여 학업과 유도 훈련을 병행하며 선수로서의 기량을 더욱 발전시켰다.
2. 유도 경력
이즈미 히로시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국제 대회에 이르기까지 유도 선수로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의 주특기는 밭다리걸기이며, 왼손잡이 자세를 취한다.
2.1. 아마추어 및 국내 대회
이즈미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000년에는 전국 고등학교 종합체육대회 90kg급에서 우승했으며, 같은 해 전일본 주니어 체중별 선수권 대회 90kg급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2001년과 2002년에는 전일본 학생 체중별 선수권 대회 90kg급에서 2년 연속 우승하며 대학 유도계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2002년 벨기에 국제 유도 대회 90kg급 우승, 2003년 전일본 선발 유도 체중별 선수권 대회 90kg급 우승, 고도칸컵 전일본 유도 체중별 선수권 대회 90kg급 우승 등 국내외 아마추어 대회에서 꾸준히 우승을 기록했다. 2005년에는 아사히카세이에 입사하여 실업팀 선수로 활동했다.
2.2. 국제 대회 성과
이즈미 히로시는 국제 무대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2002년 노비사드 하계 유니버시아드 90kg급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90kg급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4년 프랑스 국제 유도 대회 90kg급에서 우승하며 상승세를 이어갔고, 같은 해 알마티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90kg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의 유도 경력의 정점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었다. 남자 90kg급에 출전한 이즈미는 결승에서 조지아의 주랍 즈비아다우리에게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듬해인 2005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 남자 90kg급에서는 대한민국의 황희태를 상대로 반칙승을 거두는 등 우여곡절 끝에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90kg급에서는 동메달을, 2007년 선전 동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90kg급에서는 금메달을, 2008년 제주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 90kg급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하며 국제 대회에서의 꾸준한 기량을 입증했다.
2.3. 베이징 올림픽과 유도계 은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이즈미 히로시는 90kg급에서 메달 획득을 목표로 했으나, 감량 실패의 여파로 2회전에서 탈락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올림픽 이후 2008년 10월, 일부 언론에서 그가 유도계를 은퇴하고 종합격투기로 전향할 가능성이 보도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이를 부인했지만, 오퍼가 없다고는 거짓말이라고 언급하며 종합격투기 전향 가능성을 시사했다. 결국 2009년 6월 전일본 실업 유도 단체 대항 대회를 끝으로 아사히카세이를 퇴사하며 유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종합격투기 선수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3. 종합격투기 경력
이즈미 히로시는 유도계 은퇴 후 종합격투기로 전향하여 새로운 경력을 쌓았다. 그는 주로 월드 빅토리 로드와 드림 (종합격투기) 프로모션에서 활동했다.
3.1. MMA 전향 및 데뷔
2009년 7월 7일, 이즈미 히로시는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종합격투기 단체인 센고쿠 라이덴 챔피언십에 참전할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는 반더레이 실바와 같은 타격 중심의 스타일을 지향하겠다고 밝히며 유도 선수로서의 강점을 넘어선 새로운 모습을 예고했다.
2009년 9월 23일, 이즈미는 센고쿠 라이덴 챔피언십 10의 메인 이벤트에서 뉴질랜드의 킥복싱 전문가 앤츠 난센을 상대로 프로 종합격투기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자신의 유도 기술을 활용하기보다는 타격으로 정면 승부를 시도했으나, 펀치 연타에 이은 TKO 패배를 당했다. 비록 데뷔전에서 패했지만, 이 경기는 '베스트 바웃' 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3.2. 주요 경기 및 성과
데뷔전에서의 아쉬운 패배 이후, 이즈미는 종합격투기 경력을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2009년 12월 31일 다이너마이트!! 2009 대회에서 시바타 카츠요리와 맞붙어 판정승을 거두며 종합격투기 선수로서 첫 승리를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초반 라운드에서 고전했으나, 마지막 라운드 후반에 펀치 연타와 그라운드 컨트롤을 통해 반격에 성공했다. 특히, 그의 아버지가 만약 다시 패배하면 종합격투기를 그만두고 유도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이 경기의 승리는 중요했다.
이후 이즈미는 3연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탔다. 2010년 6월 20일 센고쿠 라이덴 챔피언십 13에서 이창섭을 상대로 파운딩에 의한 TKO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해 10월 30일 센고쿠 라이덴 챔피언십 15의 메인 이벤트에서는 제임스 지킥을 상대로 2-1 판정승을 거둔 후, 경기 후 링 위에서 이시이 사토시와의 대결을 어필하기도 했다. 2010년 12월 31일 다이너마이트!! 2010에서는 전 프라이드 FC 베테랑이자 드림 슈퍼 헐크 토너먼트 챔피언인 미노와맨을 상대로 파운딩에 의한 TKO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는 그의 종합격투기 경력에서 가장 큰 승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이즈미는 드림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십 타이틀을 걸고 게가드 무사시에게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2011년 7월 16일 드림 재팬 GP 파이널에서 무사시에게 1라운드 TKO 패배를 당하며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3.3. 종합격투기 전적
이즈미 히로시의 프로 종합격투기 전적은 다음과 같다.
| 승패 | 전적 | 상대 | 방식 | 대회명 | 개최일 | 라운드 | 시간 | 장소 | 비고 | |
|---|---|---|---|---|---|---|---|---|---|---|
| 패 | 4-2 | 게가드 무사시 | TKO (펀치) | 드림 재팬 GP 파이널 | 2011년 7월 16일 | 1 | 3:28 | 도쿄, 일본 | 드림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십 타이틀전 | |
| 승 | 4-1 | 미노와맨 | TKO (펀치) | 다이너마이트 | 2010 | 2010년 12월 31일 | 3 | 2:50 | 사이타마현, 일본 | 오픈웨이트 경기 |
| 승 | 3-1 | 제임스 지킥 | 판정 (2-1) | 센고쿠 라이덴 챔피언십 15 | 2010년 10월 30일 | 3 | 5:00 | 도쿄, 일본 | ||
| 승 | 2-1 | 이창섭 | TKO (펀치) | 센고쿠 라이덴 챔피언십 13 | 2010년 6월 20일 | 1 | 4:37 | 도쿄, 일본 | ||
| 승 | 1-1 | 시바타 카츠요리 | 판정 (만장일치) | 다이너마이트 | 2009 | 2009년 12월 31일 | 3 | 5:00 | 사이타마현, 일본 | |
| 패 | 0-1 | 앤츠 난센 | TKO (펀치) | 센고쿠 라이덴 챔피언십 10 | 2009년 9월 23일 | 1 | 2:56 | 사이타마현, 일본 |
4. 레슬링 도전
이즈미 히로시는 종합격투기 활동 중에도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아마추어 레슬링에 도전했다. 2010년 8월 25일, 그는 도쿄에서 열린 레슬링 일본 국가대표팀 합숙에 특별 참가하며 자유형 96kg급으로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1년 7월 2일 열린 전일본 사회인 레슬링 선수권 대회 자유형 96kg급에 출전했으나, 첫 경기인 2회전에서 패배하며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5. 개인사
이즈미 히로시는 2014년 2월 22일 일본의 배우 스에나가 하루카와 결혼했다. 2017년 12월 3일에는 첫째 아들을 얻으며 가정을 꾸렸다.
6. 은퇴 후 활동
선수 생활을 마감한 이즈미 히로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6.1. 지도자로서의 활동
이즈미는 선수 은퇴 후에도 유도계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한때 수산물 도매 회사에 재직하면서도 실업 유도팀의 감독을 맡는 등 유도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NPO 법인 빌리지 스포츠의 부이사장을 역임하며 유도 교실, 매너 키즈 유도, 경찰서 유도 지도, 유도 지도자 파견, 강연 활동 등을 통해 유도 보급과 인재 양성에 힘썼다.
2024년 4월 1일, 이즈미 히로시는 이집트 유도 국가대표팀의 헤드 코치로 임명되며 국제적인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목표로 이집트 대표팀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통역은 유명인사인 피피의 여동생이 맡고 있다. 2024년 4월 2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제45회 아프리카 유도 선수권 대회에 이집트 대표팀 감독으로 참가하여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하며 이집트가 사상 처음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성과는 이집트가 2024년 파리 올림픽 진출에 필요한 포인트를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6.2. 기타 활동
지도자 활동 외에도 이즈미 히로시는 오타 시장에서 수산물 도매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는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또한 2017년 12월 31일 아베마TV의 웹 예능 프로그램 '아사쇼류를 밀어내면 천만 엔'에 출연하는 등 방송 활동을 하기도 했다.
7. 유산 및 영향
이즈미 히로시는 그의 독특한 경력과 배경을 통해 스포츠계와 지역 사회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쳤다.
7.1. 스포츠계에서의 영향
이즈미는 유도 올림픽 메달리스트에서 종합격투기 선수로 성공적으로 전향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스포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도전은 다른 유도 선수들에게 새로운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유도와 종합격투기라는 두 종목 간의 교류와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했다. 특히 유도 기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타격 기술을 연마하려 노력한 그의 스타일은 종합격투기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7.2. 지역 사회 및 문화적 영향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이즈미 히로시의 가족이 응원석에서 입고 있던 '마구로 잇신'(マグロ一筋, 참치 한마음) 티셔츠는 큰 화제가 되었다. 유도 명문가 출신이 많은 다른 선수들과 달리, 그가 오마정의 참치 어부 집안 출신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이 티셔츠는 전국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디자인은 2005년 오마정의 지역 활성화 단체 대표자에 의해 상표 등록되었으며, 이를 통해 오마정의 지역 경제 활성화와 홍보에 크게 기여했다. '마구로 잇신' 티셔츠는 이즈미 히로시의 상징이자, 그의 고향에 대한 애정과 지역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의 상징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