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verview
이금진(李金眞)은 1965년 2월 1일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전 농구 선수이자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포지션은 슈팅 가드였다. 그녀는 1983년 상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경화학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데뷔 무대에서부터 신인상을 공동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식스맨으로서 뛰어난 3점슛 성공률과 득점력을 선보이며 한국 농구 역사에 인상 깊은 기록을 남겼다. 비록 부상으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불참했지만, 1984년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1985년 세계 청소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주장으로 팀을 결승으로 이끄는 등 국가대표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89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일본 리그에서도 잠시 활동하며 농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2. Early life and background
이금진 선수의 출생과 초기 교육 배경은 그녀의 농구 선수 생활의 기반을 마련했다.
2.1. Birth and education
이금진은 1965년 2월 1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상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에 실업팀인 선경화학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3. Player career
이금진은 1983년부터 농구 선수로서 활약하며 국내외 무대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그녀의 선수 경력은 초기 실업팀 활동과 국가대표팀에서의 눈부신 활약, 그리고 은퇴 후의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3.1. Early career and club activities
이금진은 1983년 상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실업팀 선경화학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해 3월에 열린 봄철 여자실업농구대회는 그녀의 데뷔 무대였는데, 이 대회에서 이금진은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한국화장품 소속의 이형숙과 함께 대회 신인상을 공동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선경화학, 그리고 이후 SKC로 팀명이 변경된 소속팀에서 그녀는 매 시즌 팀의 주축 선수로서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팀 전력이 상대적으로 약했기 때문에,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농구대잔치에서는 다른 강팀 선수들만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3.2. National team activities
이금진은 실업 데뷔와 동시에 탁월한 기량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발탁되며 여러 국제 대회에서 조국을 대표했다.
3.2.1. Major international competitions (1984-1986)
1984년 6월, 이금진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팀에 최종 선발되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 도중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아쉽게도 김은숙에게 대표 선수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대한민국 여자 농구팀이 은메달을 획득하는 역사적인 순간의 직접적인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부상에서 빠르게 회복한 이금진은 그해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를 위한 국가대표팀에 유일하게 추가 발탁되어 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1985년 8월에는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에서 열린 제1회 세계 청소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에 최경희, 성정아 등과 함께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이 대회에서 이금진은 주전 베스트 5이자 팀의 주장으로서 뛰어난 리더십과 기량을 발휘했다. 그녀는 대한민국 팀을 결승전에 진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개인적으로도 호주와의 경기에서 24득점, 중국과의 경기에서 23득점을 올리는 등 맹활약했다. 이 대회에서 이금진은 경기당 평균 16.3득점을 기록하여 개인 득점 순위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986년에도 이금진은 국가대표팀에 변함없이 선발되어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 세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 그리고 아시안 게임에 연이어 출전하며 대한민국의 농구 발전에 기여했다.
3.2.2. 1988 Seoul Olympics performance
이금진은 1988년 조국에서 열린 1988년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마침내 올림픽 무대를 밟는 숙원을 풀었다. 당시 주전 슈팅 가드 자리는 최경희에게 내주었지만, 이금진은 '식스맨'으로서 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특히 뛰어난 3점슛 능력을 선보이며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풀리그 예선 1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이금진은 3점슛 5개를 포함해 팀 내 최고 득점인 19득점을 기록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이어진 2차전 소련과의 경기에서도 3점슛을 성공시키며 17득점을 올리는 등 높은 득점력을 자랑했다. 서울 올림픽에서 이금진은 총 다섯 경기에 출전하여 경기당 평균 23.2분을 뛰었으며, 평균 15.2득점을 기록하여 토너먼트 개인 득점 순위 9위에 올랐다. 또한, 그녀는 3점슛 성공률 64.5%, 총 3점슛 성공 개수 20개, 경기당 평균 3점슛 4.0개 등 모든 3점슛 관련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독보적인 기록을 세웠다.
3.3. Retirement and post-retirement activities
이금진은 1989년 3월 농구대잔치 올스타전을 마지막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녀의 농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현역에서 물러난 후 일본으로 건너간 이금진은 일본 1부 리그 팀인 미쓰비시 전기에서 잠시 몸담으며 해외 리그에서의 경험을 쌓기도 했다.
4. Affiliated teams
이금진 선수는 선수 생활 동안 다음 팀들에서 활약했다.
- 상명여자고등학교
- 선경화학 / SKC
5. Legacy and reception
이금진은 1980년대 한국 여자 농구의 주요 인물로서,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보여준 독보적인 3점슛 능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5.1. Achievements and records
이금진은 선수 생활 동안 다음과 같은 주요 업적과 기록을 달성했다.
- 1983년 봄철 여자실업농구대회 신인상 (이형숙과 공동 수상)
- 1984년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 금메달 획득
- 1985년 제1회 세계 청소년 여자 농구 선수권 대회 팀 결승 진출 및 개인 득점 순위 7위 (경기당 평균 16.3득점)
- 1988년 서울 올림픽 3점슛 성공률 1위 (64.5%)
- 1988년 서울 올림픽 총 3점슛 성공 개수 1위 (20개)
- 1988년 서울 올림픽 경기당 평균 3점슛 성공 개수 1위 (4.0개)
-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인 득점 순위 9위 (경기당 평균 15.2득점)
6. Personal life
이금진 선수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