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교육
이광재는 1965년 2월 28일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천변리에서 7남매 중 외아들이자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강원은 공무원이었고, 어머니 연명순은 방앗간을 운영했습니다. 한국 전쟁 중 북한 평양 지역에 거주하게 된 고모 이강춘이 있습니다.
그는 평창초등학교와 정선군 신동읍의 예미초등학교를 다녔고, 함백중학교를 거쳐 평창중학교로 전학한 뒤 다시 원주중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아버지의 "도시로 가라"는 조언에 따라 원주로 진학한 그는 1980년 원주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원주는 반독재 운동의 중심지였으며, 그는 장일순의 동생인 장화순의 아들과 친구가 되면서 장일순에게서 정치적 영감을 받았습니다.
1980년 원주고등학교에 입학한 직후, 전두환의 12·12 군사 반란 이후 광주에서 대규모 시위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했습니다. 그는 광주로 가고자 했으나, 집안의 장남이라는 이유로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고, 1983년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하여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정치 활동을 피하기 위해 이공계를 선택했지만, 1985년에는 반정부 학생 잡지 민족의 소리의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대해 그는 도서관에서 사복 경찰관들이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분노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잡지 활동으로 인해 수배되자, 이광재는 1986년 천안으로 이동하여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이후 부산으로 내려가 주물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1987년 11월 18일,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1988년 3월 11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1988년 12월 21일 특별 사면되었습니다.
2. 정치 입문 및 초기 경력
이광재는 1987년 부산에서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는 노무현을 처음 만났습니다. 1988년 노무현이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이광재는 그의 비서관이 되었고, 당시 국회의원 비서 중 최연소였습니다. 그는 안희정과 함께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며 노무현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했습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조순 서울특별시장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기획실장으로 활동했습니다. 2002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이광재는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영향력이 크다"는 비판을 받으며 8개월 만에 사임했습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인사 작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3. 국회의원 활동
이광재는 2004년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지역구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제17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회운영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열린우리당 기획담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했습니다. 또한 11명의 다른 국회의원들과 함께 의정연구센터를 조직했습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자신의 고향인 평창에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대한체육회는 평창을 2014년 동계 올림픽 한국 후보 도시로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평창은 4표 차이로 러시아 소치에 유치권을 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력은 훗날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07년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노무현 정부의 인기가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광재는 2008년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제18대 국회 전반기에는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2009년 3월 26일, 그는 박연차와 정대근으로부터 1.60 억 KRW를 수수한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는 국회의원직 사임과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민주당은 그의 결정을 철회하도록 설득했습니다.
4. 강원도지사 재임

2010년 4월 22일, 이광재는 2010년 대한민국 지방 선거에서 강원도지사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틀 후 그는 민주당의 강원도지사 후보로 확정되었습니다. 5월 26일, 그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야권 단일 후보로 당시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이계진 후보에 맞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는 이광재가 이계진에게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이변의 승리로 끝났고, 이광재는 54.36%의 득표율로 이계진을 누르고 당선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보수 성향이 강한 강원도에서 최초의 비보수 성향 도지사가 되었습니다. 한나라당의 분석에 따르면, 도민들의 소외감, "유능한" 후보의 부족, 그리고 이광재의 도민에 대한 관심 등이 이변의 결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4.1. 법원 재판 및 직무 상실
이광재가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는 동안에도 그의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은 계속 진행 중이었고, 당시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1심에서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48 억 KRW를 선고받았는데, 이는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형량이었습니다.
2010년 6월 11일, 취임 몇 주 전 서울고등법원은 그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14 억 KRW를 선고했고, 이에 따라 그는 취임과 동시에 직무가 정지되었습니다. 그는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2010년 9월 2일 헌법재판소는 그에게 직무 복귀를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 1월 27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2심의 원심 판결을 확정했고, 이광재는 도지사직을 상실했습니다. 그는 또한 10년 동안 모든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비판론자들은 그가 이명박 정부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광재의 당선 무효는 2011년 4월 재보궐선거를 유발했고, 이 선거에서 최문순이 당선되었습니다.
5. 도지사직 상실 이후와 정치적 재기
도지사직 상실 후, 이광재는 2011년 7월 중국 베이징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칭화대학교 공공정책 및 관리대학원 초빙교수로 임명되어 2013년까지 재직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중국의 다양한 정부 관계자와 학자들을 인터뷰했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 중국에게 묻다: 21세기 초강대국의 DNA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이광재는 2016년 여시재 부원장이 되었고, 2017년에는 원장으로 승진했습니다. 2019년 3·1 운동 기념일 특별 사면 시도에서 정치인들이 법무부의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그의 사면은 무산되었습니다.
5.1. 정계 복귀
2019년 12월 30일, 이광재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곽노현, 한상균과 함께 특별 사면을 받았습니다. 청와대는 이 사면에 대해 "부패 범죄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후 2020년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되었습니다. 2020년 3월 2일, 그는 원주시 갑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고, 미래통합당의 박정하 (전 청와대 대변인, 전 제주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 후보와 맞붙었습니다.
이광재는 국회 복귀에 성공하여 45,224표(48.56%)를 얻어 4년 임기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9년 만에 정계에 복귀했습니다.
5.2. 2022년 대통령 선거 출마 시도
2021년 5월 11일, 이광재는 2022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준비 중임을 밝혔습니다. 그는 세종대왕이 약 17만 명의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세금 정책 도입을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던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의 출마 시도는 우상호, 송기헌, 허영 등 강원도 출신 다른 국회의원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5월 27일, 이광재는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본부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에 시대, 선수, 세대 교체를 통한 정치 혁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슬로건은 "대한민국, 세계의 미래를 만나는 첫 번째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2021년 7월, 그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의 후보 단일화 합의에 따라 경선에서 자진 사퇴했습니다.
5.3. 2022년 강원도지사 선거 출마 및 국회사무총장 임명
2022년 4월, 이광재는 같은 해 6월에 치러지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는 박병석 국회의장의 서명으로 수리되었습니다. 5월 중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강원특별자치도 설치 법안이 가결된 후,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은 이광재를 "법안 통과의 일등 공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강원도지사 선거 결과, 국민의힘 후보인 김진태에게 패배하여 낙선했습니다.
2022년 7월부터 이광재는 제36대 대한민국의 국회사무총장으로 임명되어 2023년 12월까지 장관급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5.4. 2024년 국회의원 선거 출마
2024년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안철수와 대결했으나 낙선했습니다. 2024년 5월부터는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6. 이념 및 정치 철학
이광재의 정치적 신념과 이념은 그의 학생 운동가 및 노동자로서의 초기 경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는 1980년대 암울한 시기에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며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형성했습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기획 참모로서, 노무현의 정치적 결단에 중요한 조언을 제공하며 참여정부의 개혁적 정책 방향에 기여했습니다.
그는 공직 수행에 있어 미래 지향적인 관점을 강조하며, 2022년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당시 "시대, 선수, 세대 교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정치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세계의 미래를 만나는 첫 번째 나라"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동력과 국제적 위상 강화를 강조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단순히 당파적 이익을 넘어 국가 전체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는 불교 신자입니다.
7. 논란 및 법적 문제
이광재의 정치 경력 전반에 걸쳐 여러 논란과 법적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7.1. 병역 기피 의혹
이광재는 참여정부에 입성하기 전부터 군 복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손가락을 잘랐다는 의혹을 받아왔습니다. 그는 1985년 징집되었으나, 1986년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잃은 후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습니다.
손가락 상실 경위에 대한 그의 해명은 여러 차례 바뀌어 논란을 키웠습니다. 2003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인천 부평구의 공장에서 위장 취업 중 프레스 기계에 잘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해 말 국정감사장에서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학 시절 다쳤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2004년 총선 전에 출간한 그의 자서전 우통수의 꿈에서는 1986년 학생들의 분신자살을 보고 태극기에 혈서를 쓰기 위해 고의로 손가락을 절단했다고 기술했습니다.
이러한 상반된 해명에 대해 한나라당 오승재 부대변인은 이광재의 자서전을 인용하며 "병역 기피를 위한 고의 절단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도 안중근 의사가 "조국이 위태할 때 총을 쏠 수 있는 손가락은 남겨뒀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이광재의 단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광재는 "1986년 당시 입대하게 되면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받을 터이고 그 결과 동지들을 배신할 수 있어 오른손 둘째 손가락을 '버렸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는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자른 것이 아니고 혈서를 쓰면서 자른 것"이라며, "암울한 시절 학생 운동을 하면서 스스로의 배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손가락을 잘라 '절대 변절하지 않는다'는 혈서를 썼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앞뒤 문맥, 그리고 시대 상황을 다 버리고 군 기피를 위한 단지라고 비난한다면 그 비난은 달게 받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부인 이정숙은 2005년 5월 그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단지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운동권 출신이었던 386세대 인사들은 당시 집행유예만 받아도 소집 면제였다는 점을 들어 군 면제를 위한 단지였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7.2. 정치자금 및 부패 의혹
이광재는 정치 경력 전반에 걸쳐 여러 정치자금 및 부패 혐의로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았습니다.
- 공문서 위조·절도·국가보안법 위반:**
1987년 11월 18일, 대한민국 내무부 치안본부 대공과는 이광재를 공문서 위조, 절도, 국가보안법 위반(기타)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1988년 3월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그에게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는 1988년 12월 21일 특별 사면되었습니다.
- 썬앤문 그룹으로부터 정치자금 수수:**
2004년 7월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는 썬앤문 그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이광재에게 벌금 3000.00 만 KRW와 추징금 500.00 만 KRW를 선고했습니다. 그는 썬앤문 문병욱 회장으로부터 1.00 억 KRW, 김성래 부회장으로부터 500.00 만 KRW를 받은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재판부는 다른 정치인에 비해 불법 정치자금 수수 규모가 크지 않고 돈을 강요하거나 회유해서 받아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여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밝혔습니다.
- 삼성 6억 수수:**
2005년 12월 16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 기획팀장이었던 이광재에게 삼성그룹이 채권 6.00 억 KRW를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이광재에게 적용되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의 공소시효가 완료되어 형사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박연차 로비 사건:**
이광재는 박연차 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2009년 3월 26일 구속되었습니다. 2009년 6월 12일, 박연차는 법정에서 "평소 이 의원에게 10.00 억 KRW이 넘는 돈을 지원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으면서 왜 그때 그랬는지(돈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이 의원이 받기를 끝까지 거절했는데도 검찰에 돈을 건넸다고 진술한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이광재가 박연차에게 "제가 결국 안 받았죠?"라고 마지막 질문을 하자 박연차는 "예"라고 답하며 돈을 주지 않았음을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 형사6부는 2010년 3월 박연차의 진술이 구체적이라고 판단하여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2010년 6월 11일 항소심 판결에서 법원은 "돈을 준 사람들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유죄 증거가 충분하다"면서 "직위가 높을수록 처신을 조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비난의 여지가 있다"고 밝히며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은 그가 강원도지사로 취임함과 동시에 직무가 정지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2011년 1월 27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원심의 징역형을 확정 판결하며 이광재의 강원도지사직 상실을 확정했습니다. 그는 판결에 대해 "재판 절차나 결과가 참으로 실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박연차 로비 사건에 연루된 한나라당 의원은 벌금형을 받고 의원직을 유지했으나, 이광재와 서갑원만 의원직 상실형이 내려진 것에 대해 "정치적 판결"이라며 비판했습니다. 반면 한나라당 강원도당은 "민주당이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도민 여론조사 결과 48.5%가 대법원 판결을 '증거에 근거한 정당한 판결'로 평가했다고 밝혔습니다.
- 총선 허위사실공표:**
2005년 5월 12일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형사합의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이광재에게 벌금 80.00 만 KRW를 선고했습니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20대에 4급 별정직 부군수급 보좌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혐의(허위사실공표)를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객관적인 허위사실이나 선거에 미친 영향이 경미하여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중형을 선고할 만큼 중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정치자금 수수:**
2015년 4월 23일 대한민국 대법원 1부는 유동천 전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1000.00 만 KRW를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벌금 500.00 만 KRW와 추징금 1000.00 만 KRW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그는 2009년 10~11월과 2011년 2~3월에도 각각 1000.00 만 KRW를 수수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재판부는 "돈을 건넨 시기와 장소 등에 관한 유 회장 등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유죄로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원심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7.3. 지역 비하 발언 논란
2021년 3월 31일, 2021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이광재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부산에서 열린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대구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 약 40년간 대통령이 나왔음에도 경제가 지금 전국에서 최하위다. 왜? 사람을 보고 뽑지 않고 항상 당만 보고 뽑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국민의 삶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그저 후보가 되려고 바쁜 정치인들을 뽑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반애국적인 지역 카드 사용"이라며 비판했습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진심 어린 사과 없이 대구에 발 들여놓을 생각 마라"며 이광재의 발언을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 발언은 민주당이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과 부산광역시장 자리를 국민의힘에 내주며 참패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8. 사생활
이광재는 이정숙과 결혼하여 슬하에 딸 한 명과 아들 한 명을 두었습니다. 그가 강원도지사직을 상실했을 때, 그의 부인 이정숙이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그녀는 출마를 거부했습니다. 이광재는 불교 신자입니다.
9. 저서 및 활동
이광재는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고 영화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9.1. 저서
- 우통수의 꿈 (2004)
- 이광재 독서록: 정치인 이광재가 전하는, 혼자 보기 아까운 책들 (2008)
-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2010)
- 중국에게 묻다: 21세기 초강대국의 DNA (2012)
-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 (2014)
- 노무현이 옳았다 (2020)
9.2. 영화
- 노무현입니다 (2017) 출연
10. 수상 경력
- 2010년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최우수상 (광역자치단체장 선거공약서 부문): 2010년 6월 2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좋은 공약을 내놓은 정치인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이광재는 지방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개혁적이고 철학과 가치가 명확히 제시되었으며,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작성되었고, 유일하게 예산 총계를 제시하는 등 내용성, 형식성 면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11. 선거 결과
연도 | 선거 종류 | 대수/직책 | 지역구/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율 | 순위 | 결과 |
---|---|---|---|---|---|---|---|
2004 | 총선 | 17대 국회의원 | 강원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 열린우리당 | 46.66% | 1위 | 당선 |
2008 | 총선 | 18대 국회의원 | 강원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 통합민주당 | 54.57% | 1위 | 당선 |
2010 | 지방 선거 | 35대 강원도지사 | 강원특별자치도 | 민주당 | 54.36% | 1위 | 당선 |
2020 | 총선 | 21대 국회의원 | 강원 원주시 갑 | 더불어민주당 | 48.56% | 1위 | 당선 |
2022 | 지방 선거 | 39대 강원도지사 | 강원특별자치도 | 더불어민주당 | 45.92% | 2위 | 낙선 |
2024 | 총선 | 22대 국회의원 | 경기 성남시 분당구 갑 | 더불어민주당 | 46.72% | 2위 | 낙선 |
12. 평가 및 영향력
이광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핵심 기획 참모로서,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 수립과 운영에 깊이 관여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의 정치적 경력은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을 통해 형성된 민주화와 사회 정의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으며, 이는 그의 공직 활동 전반에 걸쳐 개혁적인 면모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강원도지사 재임 시에는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최초의 비보수 성향 도지사로 당선되며 새로운 정치적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또한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그의 지속적인 노력은 지역 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부분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 경력은 여러 차례의 법적 논란과 의혹으로 얼룩지기도 했습니다. 병역 기피 의혹과 정치자금 수수 혐의는 그의 정치적 행보에 큰 걸림돌이 되었으며, 특히 박연차 로비 사건으로 인한 강원도지사직 상실은 그의 정치 인생에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이러한 논란들은 그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복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별 사면을 통해 정계에 복귀하고 국회의원으로서 다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국회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꾸준히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했습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시도하며 "시대, 선수, 세대 교체"를 주장하는 등 미래 지향적인 리더십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지역 비하 발언 논란과 같은 일부 발언은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이광재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민주화 운동과 개혁적 정치, 그리고 여러 법적 문제들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인물로 평가됩니다.
13. 관련 항목
- 노무현
- 문재인
- 안희정
- 참여정부
- 최문순
- 김진태
- 대한민국 대통령비서실
-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 원주시 갑
- 강원특별자치도지사
- 대한민국의 국회사무총장
- 평창 동계 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