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학력
이경수는 1979년 4월 27일에 태어났다. 그는 대전에 위치한 유성초등학교, 대전중앙중학교, 대전중앙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배구 선수로서의 기량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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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이경수 선수는 1997년부터 2011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으며, 프로 입단 후에는 오랫동안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의 공격진을 이끌며 대한민국 배구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선수 경력은 국가대표 활동과 프로 리그에서의 활약, 그리고 부상으로 인한 은퇴로 나뉜다.
2.1. 국가대표 및 올림픽 출전
이경수는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남자 배구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그는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 남자 배구 토너먼트에 출전하여 한국 남자 배구의 올림픽 무대에서의 도전을 함께했다. 또한 아시아 배구 선수권 대회와 아시안 게임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뛰며 팀의 성과에 기여했다. 특히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2. 프로 선수 활동 및 주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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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수는 프로 데뷔 후 LG화재에 입단하여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LG화재는 이후 LIG손해보험, 그리고 현재의 KB손해보험 스타즈로 명칭이 변경되었는데, 그는 팀의 이름이 바뀌는 동안에도 줄곧 한 팀에서만 뛰며 원 클럽 플레이어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프로 리그에서 꾸준히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이며 주요 기록을 세웠다. 2009년 1월 27일 대한항공 점보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통산 2천 공격 득점을 기록했다. 이어서 2012년 12월 29일 삼성화재 블루팡스와의 경기에서는 프로배구 최초로 통산 3천 공격 득점을 달성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그는 김요한과 함께 오랫동안 팀의 공격을 책임지며 LG-LIG-KB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2.3. 은퇴
이경수는 2015년 2015-2016 시즌을 앞둔 상황에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은퇴는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허리 부상이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년간 팀의 기둥 역할을 하며 흔들리지 않고 활약했던 그였지만, 고질적인 부상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정든 코트를 떠나게 되었다.
3. 스카우트 파동
이경수는 2001년 한양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당시 LG화재에 입단하면서 큰 스카우트 파동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인해 LG화재 구단은 2002년 ~ 2003년 슈퍼리그에 불참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경수는 이 기간 동안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외에는 코트에 설 수 없었다. 이 파동은 당시 대한민국 배구계에 큰 논란과 어려움을 안겼다.
이후 관계 당국의 중재를 통해 그는 드래프트를 거쳐 정식으로 LG화재에 입단하는 절차를 밟았다. 이경수는 2003년 ~ 2004년 시즌에 정식으로 프로배구에 데뷔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를 받아 기초 군사 훈련만 이수했기 때문에, 시즌이 시작한 후 조금 지나서 팀에 합류할 수 있었다.
4. 은퇴 후 경력
이경수는 선수 은퇴 후에도 배구계에 남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지도자와 행정가로서의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 대한민국 남자 배구 국가대표팀 트레이너: 은퇴 직후 국가대표팀의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선수들을 지원했다.
- 목포대학교 배구부 감독: 목포대학교 배구부의 감독을 맡아 대학 배구 선수들을 지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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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손해보험 코치: 친정팀인 KB손해보험 스타즈의 코치로 복귀하여 선수들을 지도하며 경험을 전수했다.
- 광주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 창단 코치 및 사무국장: 2021년 창단된 신생 여자배구 팀 광주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에 창단 코치로 합류했다. 이후 팀의 김형실 감독과 조 트린지 감독이 사퇴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장소연이 3대 감독으로 선임된 후에는 프런트로 전향하여 광주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의 사무국장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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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요 수상 경력
이경수 선수의 주요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다.
연도 | 대회 | 부문 | 비고 |
---|---|---|---|
2001년 | 아시아 배구 선수권 대회 | 공격상 | |
2002년 | 부산 아시안 게임 | 금메달 | |
2005년 | 아시아 배구 선수권 대회 | 서브상 | |
2006년 | 도하 아시안 게임 | 금메달 | |
2012년 | KOVO컵 수원 프로배구 | 우승 | 팀 우승 |
6. 평가 및 영향
이경수는 대한민국 남자 배구 역사에서 손꼽히는 왼손 공격수이자 원 클럽 플레이어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2001년의 스카우트 파동이라는 어려운 시작에도 불구하고, 그는 LG화재, LIG손해보험, KB손해보험 스타즈라는 팀 이름 변화 속에서도 단 한 번도 팀을 옮기지 않고 헌신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는 선수로서의 충성심과 성실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프로 통산 2천 공격 득점, 프로배구 최초 3천 공격 득점 등 전무후무한 개인 기록을 세우며 공격수로서의 뛰어난 기량을 입증했다. 또한 국가대표로서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두 차례나 획득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은퇴 이후에도 지도자와 행정가로서 배구계에 기여하며, 특히 여자 배구 신생 팀 광주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의 창단 코치 및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배구 발전에 지속적으로 이바지하고 있다. 그의 꾸준함과 리더십은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며, 한국 배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