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월터 웨인 백맨 (Walter Wayne Backman, 1959년 9월 22일 출생)은 미국의 전 메이저리그 2루수이자 야구 감독이다. 그는 뉴욕 메츠에서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며 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팀의 핵심 일원으로 활약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여러 마이너리그 및 독립리그 팀에서 성공적으로 감독 경력을 쌓았으며, 특히 2004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선임된 후 과거의 법적 및 재정적 문제로 인해 불과 4일 만에 해고된 사건으로 큰 논란을 겪기도 했다. 이후 뉴욕 메츠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감독으로 복귀하여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며,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트리플 A 팀 라스베이거스 51스의 감독을 맡았다. 그는 '선수 친화적인 감독'이자 '구식' 스타일의 리더십으로 평가받으며, 2023년까지 독립리그 팀인 롱아일랜드 덕스의 감독을 역임하는 등 오랜 기간 야구계에 기여해 왔다.
2. 어린 시절
월리 백맨은 1959년 9월 22일 미국 오리건주 힐즈보로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월터 웨인 백맨이다.
3. 선수 경력
월리 백맨의 선수 경력은 뉴욕 메츠에서의 성공적인 초기 시절과 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 기여를 포함하여, 여러 메이저리그 팀을 거치며 쌓아온 경험들을 포괄한다.
3.1. 뉴욕 메츠
백맨은 1977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뉴욕 메츠의 1라운드 전체 16순위로 지명되었다. 계약 후 뉴욕-펜 리그의 리틀 폴스 메츠에 배정되었으며, 첫 프로 시즌에서 타율 .325와 6홈런을 기록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80년 트리플 A 팀인 타이드워터 타이드스에서 타율 .293를 기록한 후, 같은 해 9월 메츠의 부름을 받아 메이저리그에 승격되었다. 9월 2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상대로 2루수로 선발 출전하며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고, 첫 타석에서 클로델 워싱턴을 홈으로 불러들이는 적시타를 기록했다.
3시즌 동안 주전 자리를 놓고 경쟁한 끝에, 백맨은 1984년 메츠의 주전 2루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그해 타율 .280을 기록했으며, 32도루로 팀 내 무키 윌슨 (46도루)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1985년에는 개인 최다인 14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3, 출루율 .344, 30도루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1986년 시즌을 앞두고 단장 프랭크 캐셴은 미네소타 트윈스로부터 우타자 팀 토이펠을 영입했다. 백맨과 토이펠은 2루에서 플래툰 시스템을 가동하며 활약했으며, 무키 윌슨과 레니 다익스트라와 함께 메츠 타선의 상위 타선에서 "불꽃"을 일으키며 뒤를 잇는 강타자들을 위한 기회를 창출했다. 백맨은 이 시즌에 개인 최고 타율인 .320 (커리어 처음으로 3할 이상), 출루율 .376을 기록했으며, 67득점과 13도루를 올렸다. 메츠는 108승을 거두며 내셔널 리그 이스트 지구에서 21.5경기 차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타율 .333을 기록했으며, 6차전의 유명한 10회 공격에서 메츠의 선두 타자로 나서 짐 라이스에게 뜬공으로 물러났다. 메츠는 월드 시리즈에서 레드삭스를 4승 3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87년 시즌에는 9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0, 11도루를 기록했다. 메츠는 92승 70패의 성적을 거두었으나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1988년에도 백맨과 토이펠은 2루 플래툰으로 활약하며 메츠가 백맨 재임 중 두 번째로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백맨은 그해 타율 .303을 기록했으며, 메츠는 100승을 거두며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15경기 차로 따돌리고 내셔널 리그 이스트 지구 우승을 확정 지었다. 그러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메츠는 1988년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게 패배했다. 백맨은 이 시리즈에서 타율 .273, 2득점, 2타점을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시즌이 끝난 후, 메츠는 백맨과 마이크 산티아고를 미네소타 트윈스로 트레이드하고, 대가로 제프 범가너, 스티브 개서, 토비 니븐스를 영입했다.
3.2. 다른 메이저리그 팀들
미네소타 트윈스로 이적한 백맨은 1989년 시즌에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보였다. 그는 타율 .231, 1홈런, 26타점, 33득점, 1도루에 그쳤다. 트윈스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백맨은 자유 계약 선수로 메츠의 지구 라이벌인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했다. 파이리츠에는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하는 호세 린드가 이미 2루수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백맨은 주로 3루수로 제프 킹의 백업으로 출전했다.
파이리츠는 1990년 시즌 개막전을 셰이 스타디움에서 메츠를 상대로 치렀다. 백맨은 옛 홈 관중들 앞에서 5타수 2안타(단타와 3루타)를 기록하고 2득점하며 파이리츠의 12-3 승리에 기여했다. 4월 27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는 9이닝 동안 6안타를 기록하는 보기 드문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시즌 동안 백맨은 타율 .292를 기록하고 62득점을 올렸으며, 파이리츠는 95승 67패를 기록하며 메츠를 4경기 차로 따돌리고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백맨은 1991년과 1992년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보냈다. 1993년에는 1992년 내셔널 리그 우승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했으나, 스프링 트레이닝을 통과하지 못해 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이후 시애틀 매리너스에 합류했지만, 시즌 38경기 만에 타율 .138, 2득점의 극심한 부진 끝에 방출되었다. 매리너스에서 방출된 후, 그는 다른 구단으로부터의 제안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선수 생활을 은퇴했다.
3.3. 경력 요약
1980년부터 1993년까지 약 14년간의 메이저리그 선수 경력 동안, 월리 백맨은 총 110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75, 10홈런, 275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특히 2루수로서 통산 수비율 .980을 자랑하는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4. 감독 경력
월리 백맨은 선수 은퇴 후 야구 감독으로 변신하여 다양한 마이너리그 및 독립리그 팀을 이끌며 지도력을 발휘했다. 특히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 선임과 관련된 논란, 뉴욕 메츠 산하 팀으로의 복귀 및 독립리그에서의 활동 등이 그의 감독 경력의 주요 부분을 이룬다.

4.1. 초기 감독 역할
선수 은퇴 후 월리 백맨은 2002년 오리건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98년에는 웨스턴 베이스볼 리그의 벤드 밴디츠 감독을 맡아 43승 46패로 북부 지구 2위를 기록했다. 2002년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더블 A 팀인 서던 리그의 버밍엄 배런스를 이끌고 79승 61패의 좋은 성적을 냈다. 2004년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산하 하이 A 팀인 랭커스터 젯호크스 감독으로서 86승 54패의 뛰어난 기록을 달성했으며, 이 공로로 스포팅 뉴스 선정 "마이너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4.2.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논란
2004년 11월 1일, 월리 백맨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메이저리그 팀 감독으로 승진하며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그의 감독 선임 발표 후 더 뉴욕 타임스는 백맨이 과거에 심각한 법적 및 재정적 문제를 겪었음을 보도하며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백맨은 1999년 워싱턴주 케네윅에서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이력이 있었고, 이 사건은 HBO의 시사 프로그램인 브라이언트 검벨과의 리얼 스포츠에서 다뤄진 바 있다. 또한 1년 뒤인 2000년에는 오리건주 프라인빌에 있는 자택에서 발생한 난투극에 연루되어 체포되었으며, 개인 파산 신청 이력(챕터 7 파산)도 있었다.
다이아몬드백스 구단은 처음에는 백맨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결국 2004년 11월 5일, 감독으로 임명된 지 불과 나흘 만에 그를 해고했다. 구단주 켄 켄드릭은 백맨을 고용하기 전에 그의 과거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며, 백맨이 구단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4.3. 메츠 조직으로의 복귀
다이아몬드백스 감독직에서 해고된 후, 월리 백맨은 독립 리그인 사우스 코스트 리그의 사우스 조지아 피너츠 감독으로 재기했다. 그의 복귀 과정은 TV 시리즈 땅콩을 위한 플레이에서 상세히 다뤄졌으며, 피너츠는 59승 28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그 시즌 리그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7년 12월, 백맨은 노던 리그의 졸리엣 잭해머스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2009년 7월 30일 팀이 24승 42패로 6위에 머무르자 해고되었다. 2009년 10월, 백맨의 이름은 뉴욕 메츠 산하 더블 A 팀인 빙엄턴 메츠의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메츠는 대신 세인트루시 메츠의 팀 토이펠을 승진시키기로 결정했고, 백맨에게는 세인트루시 감독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불과 2주 뒤 메츠는 다시 결정을 번복했고, 백맨은 대신 브루클린 사이클론스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백맨은 사이클론스를 이끌고 51승 24패의 리그 최고 기록을 달성하며 뉴욕-펜 리그의 맥나마라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으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트라이시티 밸리캐츠에게 아쉽게 스윕당했다.
2011년에는 제리 마누엘을 대체할 뉴욕 메츠의 메이저리그 감독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테리 콜린스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백맨은 메츠 산하 더블 A 팀인 빙엄턴 메츠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첫 시즌에 65승 76패를 기록했다. 메츠 구단 내에서 그의 지도력은 높이 평가되었고, 2012년 시즌에는 트리플 A 산하 팀인 버팔로 바이슨스의 감독으로 승진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백맨은 메츠의 새로운 트리플 A 산하 팀인 라스베이거스 51스의 감독을 맡았다. 2013년에는 팀을 81승 63패로 이끌며 퍼시픽 코스트 리그의 태평양 남부 지구 우승을 차지했지만, 컨퍼런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솔트레이크에게 패배했다. 백맨은 2014년에도 51스 감독직을 이어갔고, 팀은 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14년 8월 29일, 백맨은 퍼시픽 코스트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16년 9월 12일, 그는 라스베이거스 51스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그러나 이후 인터뷰에서 백맨은 자신이 감독직에서 강제로 해고당했다고 주장하며, 메츠의 단장 샌디 올더슨이 자신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백맨은 친구로부터 올더슨이 자신의 구직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언급했다. 올더슨은 백맨의 주장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지만, 메츠 구단 관계자는 올더슨이 백맨의 구직 기회를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4.4. 독립 리그 및 이후 역할
2017년, 월리 백맨은 멕시칸 리그의 몬클로바 아세레로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시즌 42경기 만인 5월 19일에 해고되었다. 해고 직후, 백맨은 같은 리그의 푸에블라 페리코스의 벤치 코치로 합류했다.
2017년 11월 17일, 백맨은 독립 리그인 애틀랜틱 리그의 뉴브리튼 비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어서 2018년 11월 28일에는 애틀랜틱 리그의 롱아일랜드 덕스의 새 감독으로 발표되어 2019년 시즌부터 팀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2023년 10월 2일, 롱아일랜드 덕스와 상호 합의 하에 결별하며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5. 플레이 및 감독 스타일
월리 백맨은 선수 시절 특유의 활발하고 예측 불가능한 플레이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와 함께 투수들을 괴롭히는 끈질긴 타격으로 상대 팀에게 어려움을 주었다.
감독으로서 백맨은 "선수 친화적인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선수들과 가까이 지내며 소통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으며,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데 주력했다. 또한 그는 "구식" 스타일의 감독으로도 유명했는데, 특히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메이저리그 승격 소식을 알릴 때 종종 장난스러운 방식으로 전달하여 선수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어, 음식 배달을 가장하거나 갑작스럽게 선수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소환하여 놀라게 한 후 승격 소식을 전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유머러스한 접근 방식은 선수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6. 통계
월리 백맨의 선수 시절 연도별 및 통산 타격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구단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희생타 | 희생플라이 | 볼넷 | 몸에맞는볼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1980 | 뉴욕 메츠 | 27 | 110 | 93 | 12 | 30 | 1 | 1 | 0 | 33 | 9 | 2 | 3 | 4 | 1 | 11 | 1 | 1 | 14 | 3 | .323 | .396 | .355 | .751 |
1981 | 뉴욕 메츠 | 26 | 42 | 36 | 5 | 10 | 2 | 0 | 0 | 12 | 0 | 1 | 0 | 2 | 0 | 4 | 0 | 0 | 7 | 0 | .278 | .350 | .333 | .683 |
1982 | 뉴욕 메츠 | 96 | 312 | 261 | 37 | 71 | 13 | 2 | 3 | 97 | 22 | 8 | 7 | 2 | 0 | 49 | 1 | 0 | 47 | 6 | .272 | .387 | .372 | .759 |
1983 | 뉴욕 메츠 | 26 | 45 | 42 | 6 | 7 | 0 | 1 | 0 | 9 | 3 | 0 | 0 | 1 | 0 | 2 | 0 | 0 | 8 | 2 | .167 | .205 | .214 | .419 |
1984 | 뉴욕 메츠 | 128 | 499 | 436 | 68 | 122 | 19 | 2 | 1 | 148 | 26 | 32 | 9 | 5 | 2 | 56 | 2 | 0 | 63 | 13 | .280 | .360 | .339 | .699 |
1985 | 뉴욕 메츠 | 145 | 574 | 520 | 77 | 142 | 24 | 5 | 1 | 179 | 38 | 30 | 12 | 14 | 3 | 36 | 1 | 1 | 72 | 3 | .273 | .320 | .344 | .664 |
1986 | 뉴욕 메츠 | 124 | 440 | 387 | 67 | 124 | 18 | 2 | 1 | 149 | 27 | 13 | 7 | 14 | 3 | 36 | 1 | 0 | 32 | 3 | .320 | .376 | .385 | .761 |
1987 | 뉴욕 메츠 | 94 | 335 | 300 | 43 | 75 | 6 | 1 | 1 | 86 | 23 | 11 | 3 | 9 | 1 | 25 | 0 | 0 | 43 | 5 | .250 | .307 | .287 | .594 |
1988 | 뉴욕 메츠 | 99 | 347 | 294 | 44 | 89 | 12 | 0 | 0 | 101 | 17 | 9 | 5 | 9 | 2 | 41 | 1 | 1 | 49 | 6 | .303 | .388 | .344 | .732 |
1989 | 미네소타 트윈스 | 87 | 337 | 299 | 33 | 69 | 9 | 2 | 1 | 85 | 26 | 1 | 1 | 4 | 1 | 32 | 0 | 1 | 45 | 4 | .231 | .306 | .284 | .590 |
1990 | 피츠버그 파이리츠 | 104 | 361 | 315 | 62 | 92 | 21 | 3 | 2 | 125 | 28 | 6 | 3 | 0 | 3 | 42 | 1 | 1 | 53 | 5 | .292 | .374 | .397 | .771 |
1991 | 필라델피아 필리스 | 94 | 220 | 185 | 20 | 45 | 12 | 0 | 0 | 57 | 15 | 3 | 2 | 2 | 3 | 30 | 0 | 0 | 30 | 2 | .243 | .344 | .308 | .652 |
1992 | 필라델피아 필리스 | 42 | 55 | 48 | 6 | 13 | 1 | 0 | 0 | 14 | 6 | 1 | 0 | 1 | 0 | 6 | 1 | 0 | 9 | 3 | .271 | .352 | .292 | .644 |
1993 | 시애틀 매리너스 | 10 | 31 | 29 | 2 | 4 | 0 | 0 | 0 | 4 | 0 | 0 | 0 | 1 | 0 | 1 | 0 | 0 | 8 | 0 | .138 | .167 | .138 | .305 |
MLB 통산 (14년) | 1102 | 3708 | 3245 | 482 | 893 | 138 | 19 | 10 | 1099 | 240 | 117 | 52 | 68 | 19 | 371 | 9 | 5 | 480 | 55 | .275 | .349 | .339 | .688 |
7. 유산과 인정
월리 백맨은 2002년 오리건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그의 야구 경력 전반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그는 선수로서 뉴욕 메츠의 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이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된다. 선수 은퇴 후 감독으로 전향하여 여러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 팀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특히 그는 '선수 친화적인 감독'이자 '구식' 스타일의 리더십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팀의 단합을 이끌어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 선임 후 불과 4일 만에 해고되는 불미스러운 사건을 겪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야구계로 돌아와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에서 꾸준히 감독직을 수행하며 야구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불굴의 의지와 선수들을 향한 진정성 있는 태도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8. 같이 보기
-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단일 경기 안타 기록자 목록
- 오리건 스포츠 명예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