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용신왕후 한씨는 고려 정종의 왕비로서, 그의 즉위 전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생애 사건들을 통해 왕실에서의 역할과 지위를 보여주었다.
1.1. 출생 및 가계
용신왕후는 훗날 지서경유수사(知西京留守事)와 증(贈)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추증된 한조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본관은 단주 한씨(湍州)이다. 용신왕후에게는 상서 형부시랑(尙書 刑部侍郞)을 지낸 오빠 한규가 있었으며, 남편 정종의 제2비인 용의왕후 한씨와는 친자매 지간이었다. 당시 고려 왕실에서는 근친혼이 성행하였으나, 용신왕후와 정종의 혼인은 왕족과 귀족 가문 사이의 결합으로, 혈연관계가 없는 혼인이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1.2. 혼인 및 왕실 생활
용신왕후는 정종이 아직 평양군평양군平壤君한국어이던 시절에 그에게 시집와 비에 책봉되었다. 이후 남편 정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녀는 왕비가 되었고, 연흥궁주(延興宮主)라는 호를 받았다. 1035년(정종 원년) 아들 왕형을 낳은 후에는 혜비(惠妃)에 책봉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왕비(定信王妃)라는 또 다른 존호를 받았다.
1.3. 자녀
용신왕후는 1035년에 정종과의 사이에서 아들 왕형왕형王詗한국어을 낳았다. 그러나 《고려사》의 기록에는 왕형에 대한 언급이 다소 상이하다. 《고려사》의 〈열전 후비전〉에는 용신왕후가 정종과의 사이에서 아들 왕형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열전 종실전〉편에는 왕형에 대한 기록이 아예 누락되어 있어 그의 자세한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1.4. 사망
용신왕후는 1036년(정종 2년) 8월 18일(음력 7월 24일)에 사망하였다. 그녀의 능은 현릉(玄陵)이다. 사망 당시 용신왕후(容信王后)라는 시호를 받았다.
2. 시호
용신왕후는 사망 당시 용신왕후(容信王后)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추가적인 시호가 추증되었다.
- 1056년 10월(문종 10년): 정의(定懿)라는 시호가 추가되었다.
- 1140년 4월(인종 18년): 명달(明達)이라는 시호가 추가되었다.
- 1253년 10월(고종 40년): 희목(禧穆)이라는 시호가 추가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용신왕후의 최종 시호는 정의명달희목용신왕후(定懿明達禧穆容信王后)가 되었다.
3. 가족 관계
용신왕후 한씨의 주요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 아버지 : 지서경유수사 증 문하시중 한조한조韓祚한국어
- 오빠 : 상서 형부시랑 한규한규韓圭한국어
- 여동생 : 정종의 제2비 용의왕후 한씨용의왕후 한씨容懿王后 韓氏한국어
- 남편 : 제10대 정종 용혜대왕정종 용혜대왕靖宗 容惠大王한국어 (1018년 ~ 1046년, 재위: 1034년 ~ 1046년)
- 아들 : 왕형왕형王詗한국어 (1035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