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요코이 군페이(横井 軍平Yokoi Gunpei일본어, 1941년 9월 10일 ~ 1997년 10월 4일)는 일본의 저명한 장난감 및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이다. 그는 닌텐도의 오랜 직원으로서, 휴대용 게임 시스템 게임 & 워치와 게임보이의 창시자이자 십자형 컨트롤 패드(D-pad)의 발명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메트로이드와 키드 이카루스와 같이 오랫동안 사랑받고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여러 비디오 게임 프랜차이즈의 프로듀서였다.
요코이는 "퇴화된 기술의 수평 사고"(枯れた技術の水平思考Kareta Gijutsu no Suihei Shikō일본어)로 대표되는 독창적인 개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 철학은 최첨단 기술보다는 저렴하고 잘 이해된 기존 기술을 혁신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닌텐도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원동력이 되었으며, 후대 개발자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96년 닌텐도를 퇴사한 후 독립하여 새로운 회사 코토(Koto)를 설립했으며, 1997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요코이 군페이는 1941년 9월 10일 일본 교토부 교토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도시샤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철도 모형에 대한 깊은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O 게이지 모형을 선물 받았고, 중학교 2학년 때는 HO 게이지로 전환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자신이 완성한 철도 모형 레이아웃 "SP 라인"을 철도 모형 전문지 『철도 모형 취미』 1958년 1월호에 투고하여 게재되기도 했다. 대학 시절에도 철도 동호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며 기술과 창작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3. 닌텐도 경력
요코이 군페이의 닌텐도에서의 경력은 완구 개발에서 비디오 게임으로의 전환, 그리고 수많은 혁신적인 하드웨어와 게임 타이틀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3.1. 닌텐도 입사 및 초기 역할
요코이 군페이는 1965년 도시샤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대기업 가전제품 회사에 취업하기를 희망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인해 모두 불합격했다. 결국 그는 집 근처에 있고 자신을 채용해 준다는 이유로 당시 화투와 트럼프를 제조하던 작은 회사였던 닌텐도에 입사했다. 그는 닌텐도에 입사한 최초의 공학부 졸업생으로 알려져 있다.
입사 초기 요코이의 주된 업무는 화투 카드 제조 라인의 기계 유지보수였다. 1966년 어느 날, 당시 닌텐도 사장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요코이가 한가한 시간에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만든 늘어나는 팔 모양의 장난감을 발견했다. 야마우치 사장은 요코이에게 이 장난감을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정식 제품으로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울트라 핸드였으며, 이 제품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3.2. 완구 개발

울트라 핸드의 성공을 계기로 닌텐도 내에 '개발과'가 신설되었고, 요코이는 닌텐도의 완구 개발을 담당하게 되었다. 초기 개발과는 요코이와 경리 담당인 이마니시 히로시 단 두 명으로 시작했으나, 제품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인원도 늘어났다. 이때부터 요코이 자신은 주로 아이디어를 내는 역할을 맡았고, 실제 기술 개발은 오카다 사토시를 필두로 한 다른 기술자들이 담당하는 체제가 확립되었다.
요코이는 이 시기 "퇴화된 기술의 수평 사고" 철학을 바탕으로 수많은 완구를 개발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형 투구 머신인 울트라 머신, 간이 거짓말 탐지기인 러브 테스터, 광선총 시리즈 등이 있다. 광선총 시리즈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불량품 문제로 인해 수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야마우치 사장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레이저 클레이 슈팅 시스템으로 아케이드 시장에 진출하려 했다. 하지만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건설 계획이 잇달아 철회되면서, 요코이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닌텐도가 휘청일 정도의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레이저 클레이 시스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케이드 사업은 계속되었고, 요코이는 게임 센터용 엘레메카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후 닌텐도의 아케이드 사업이 컴퓨터 게임으로 전환되면서, 요코이는 다시 완구 개발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주요 작품으로는 게임성을 도입한 청소기 치리토리와 루빅스 큐브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입체 퍼즐 텐 빌리온 등이 있다.
3.3. 비디오 게임으로의 전환
1974년 닌텐도가 완구 사업에서 비디오 게임 사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요코이는 다케다 겐요에 이어 닌텐도의 초기 게임 디자이너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전환기 동안 그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신칸센을 타고 이동하던 중, 요코이는 지루해 보이는 한 사업가가 LCD 계산기의 버튼을 누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광경에서 영감을 얻은 요코이는 시계와 미니 비디오 게임을 결합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아이디어는 1980년부터 1991년까지 60가지 이상의 변형으로 출시되며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휴대용 미니게임기 시리즈인 게임 앤 워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3.4. 주요 하드웨어 및 발명
요코이는 닌텐도에서 재직하며 수많은 혁신적인 하드웨어와 발명품을 설계하고 개발했다. 그의 대표적인 발명품과 기기들은 다음과 같다.


- 게임 앤 워치 (1980년): 신칸센에서 얻은 영감으로 개발된 휴대용 미니게임기 시리즈로, 시계 기능과 간단한 LCD 게임을 결합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 십자키 (D-pad) (1983년): 게임 & 워치 개발 과정에서 요코이가 고안한 십자형 컨트롤러로, 손을 보지 않고도 방향을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하여 이후 모든 게임 컨트롤러의 사실상의 표준이 되었다. 그는 당시 바쁜 일정으로 인해 특허 출원 시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 패미컴 컨트롤러 (1983년): 패미컴 본체의 하우징 디자인과 함께 십자키를 적용한 컨트롤러를 설계했다.
- R.O.B. (1985년): NES의 주변기기로, 로봇 형태의 장난감으로 게임과 상호작용하는 독특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 NES 재퍼 (1985년): NES용 광선총 주변기기로, 덕 헌트 등의 게임에서 사용되었다.
- 게임보이 (1989년): 요코이의 가장 유명한 발명품 중 하나로, 흑백 화면과 긴 배터리 수명을 특징으로 하여 세가 게임 기어나 아타리 링스 같은 경쟁사의 고성능 컬러 휴대용 기기들을 물리치고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 슈퍼 스코프 (1992년): 슈퍼 패미컴용 광선총 주변기기이다.
- 버추얼 보이 (1995년): 요코이의 또 다른 창작물이지만,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닌텐도는 버추얼 보이의 저조한 시장 성과가 요코이의 퇴사 이유가 아니라고 부인했으며, 그의 은퇴는 닌텐도 하드웨어의 시장 성과와 "완전히 우연"이라고 주장했다. 닌텐도와 코토의 동료였던 타키 요시히로에 따르면, 요코이는 원래 50세에 은퇴하여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으나 단순히 이를 미루고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셰프의 저서 『게임 오버』에 따르면, 요코이는 이 콘솔이 현재의 형태로 출시되기를 의도하지 않았지만, 닌텐도가 닌텐도 64에 개발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버추얼 보이를 서둘러 시장에 출시했다고 한다.
- 게임보이 포켓 (1996년): 닌텐도 재직 시절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기존 게임보이보다 작고 가벼워진 모델이다.
- 원더스완 (1999년, 사후 출시): 닌텐도 퇴사 후 반다이와 협력하여 개발을 주도한 휴대용 게임기이다.
3.5. 게임 프로듀서 및 감수
요코이는 하드웨어 설계뿐만 아니라 수많은 닌텐도 게임 타이틀의 프로듀서 또는 감수자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특히 미야모토 시게루와 같은 후배 개발자들에게 게임 디자인의 복잡한 부분을 설명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사장에게 전달하여 프로젝트 승인을 돕는 등 멘토 역할을 수행했다.
그가 프로듀서 또는 감수로 참여한 주요 게임 타이틀은 다음과 같다.
- 동키콩 (1981): 미야모토 시게루가 만든 이 아케이드 게임의 개발을 감독했다.
- 동키콩 주니어 (1982)
- 마리오 브라더스 (1983): 동키콩의 전 세계적인 성공 이후, 요코이는 미야모토와 함께 다음 마리오 게임에 참여했다. 그는 멀티플레이어 개념을 제안하고, 마리오에게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 능력과 같은 초인적인 능력을 부여하도록 미야모토를 설득했다.
- 동키콩 3 (1983)
- 와일드 건맨 (1984)
- 덕 헌트 (1984)
- 호건스 앨리 (1984)
- 어번 챔피언 (1984)
- 벌룬 파이트 (1985)
- 레킹 크루 (1985)
- 스택업 (1985)
- 자이로마이트 (1985)
- 검슈 (1986)
- 메트로이드 (1986): R&D1 부서에서 개발한 주요 게임 중 하나로, 요코이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 키드 이카루스 (1986): 메트로이드와 함께 R&D1의 대표작이다.
- 나카야마 미호의 도키메키 하이스쿨 (1987)
- 패미컴 탐정 클럽: 사라진 후계자 (1988)
- 패미컴 워즈 (1988)
- 테트리스 (1989): 게임보이 버전의 테트리스를 프로듀싱했다.
- 슈퍼 마리오 랜드 (1989)
- 패미컴 탐정 클럽 파트 II: 뒤에 서 있는 소녀 (1989)
- 솔라 스트라이커 (1990)
- 파이어 엠블렘: 암흑룡과 빛의 검 (1990):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프로듀서를 맡았다.
- 닥터 마리오 (1990)
- 벌룬 키드 (1990)
- 메트로이드 II: 사무스의 귀환 (1991)
- 키드 이카루스: 신화와 괴물들 (1991)
- 파이어 엠블렘 외전 (1992)
- X (1992)
- 마리오 페인트 (1992)
- 슈퍼 마리오 랜드 2: 6개의 금화 (1992)
- 배틀 클래시 (1992)
- 요시의 쿠키 (1992)
- 메탈 컴뱃: 팔콘의 복수 (1993)
- 와리오 랜드: 슈퍼 마리오 랜드 3 (1994)
- 파이어 엠블렘: 문장의 수수께끼 (1994)
- 슈퍼 메트로이드 (1994): 총괄 매니저를 맡았다.
- 마리오의 테니스 (1995)
- 마리오 클래시 (1995)
- 패널로 퐁 (1995)
- 버추얼 보이 와리오 랜드 (1995)
- 커비의 블록 볼 (1995)
- 3D 테트리스 (1996)
- 파이어 엠블렘: 성전의 계보 (1996)
- 포켓몬스터 적/녹 (1996): 이 게임의 제작에도 관여했다.
3.6. 닌텐도 내에서의 영향력과 멘토링
요코이는 닌텐도 내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특히 미야모토 시게루와 같은 후배 개발자들에게 중요한 멘토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미야모토의 초기 경력에 게임 디자인의 복잡한 부분을 많이 설명해주었으며, 미야모토의 게임 아이디어를 사장에게 전달하여 프로젝트 승인을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요코이는 마리오 브라더스 개발 당시 멀티플레이어 개념을 제안하고, 마리오에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능력과 같은 초인적인 능력을 부여하도록 미야모토를 설득했다. 그는 '회사 내의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며, 부서 간의 장벽을 넘어선 인재 활용이 새로운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인재 활용 노선은 훗날 미야모토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요코이즘' 철학은 닌텐도의 게임 개발 방침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게임보이 개발 당시, 요코이는 비용 절감을 위해 깎을 수 있는 요소는 최대한 깎았지만, 출시 당시에는 그 중요성이 명확하지 않았던 통신 포트를 탑재했다. 이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니, 달아두면 뭔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관측에 따른 것이었다. 이 통신 포트는 훗날 세계 최초의 오리지널 대전 모드인 테트리스와 플레이어 간 통신이 게임의 핵심 요소가 된 포켓몬스터에서 본격적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이후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도 사용자 간 통신은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또한 요코이는 사내에서 관리직이든 평사원이든, 다른 부서의 사람이든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로서 입장은 대등하다는 생각을 고수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미야모토의 '모두를 위한 게임' 개발 등 닌텐도의 게임 개발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4. 닌텐도 퇴사 후 활동

요코이 군페이는 버추얼 보이의 실패와 성공적인 게임보이 포켓의 출시가 맞물리던 시기인 1996년 8월 15일, 31년간 몸담았던 닌텐도를 떠났다. 그는 원래 "50세가 넘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해왔으며, 이는 자발적인 퇴사였다. 그러나 버추얼 보이의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사임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요코이는 이에 반박하며 『분게이슌주』 1996년 11월호에 「나는 왜 닌텐도를 그만두었는가」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닌텐도를 떠난 후, 요코이는 자신의 비전을 더욱 자유롭게 실현하기 위해 여러 부하 직원들과 함께 새로운 회사인 주식회사 코토(Koto)를 설립했다. 코토에서 그는 쿠넷쿠넷쵸와 헤노헤노 같은 휴대용 게임기와 완구를 기획했다. 또한 반다이의 휴대용 게임기 원더스완 개발에 어드바이저로 참여하여 개발을 주도했다. 원더스완용 퍼즐 게임인 군페이는 요코이의 감수를 거쳐 제작되었으며, 원더스완 소프트웨어 중 상당한 히트작이 되었다.
5. 디자인 철학 및 사상
요코이 군페이는 "퇴화된 기술의 수평 사고"(枯れた技術の水平思考Kareta Gijutsu no Suihei Shikō일본어)라는 독자적인 개발 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작품에 이 철학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이 철학은 "요코이즘"(ヨコイズムYokoi-ism일본어)으로도 불리며, 닌텐도의 개발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퇴화된 기술"은 이미 널리 사용되어 장단점이 명확하게 파악된, 저렴하고 잘 이해된 기술을 의미한다. "수평 사고"는 기존의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즉, "퇴화된 기술의 수평 사고"는 기존 기술을 기존 제품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개발 비용을 낮게 유지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요코이는 장난감과 게임이 반드시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참신하고 재미있는 게임플레이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싼 최첨단 기술이 오히려 신제품 개발을 방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여러 작품에 반영되었다.
- 게임 앤 워치는 이 철학을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당시 샤프와 카시오는 전자 계산기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액정 디스플레이와 반도체가 과잉 공급 상태였다. 요코이는 이 저렴하고 풍부한 기술을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수평 사고"를 통해 게임 & 워치를 만들었다.
- NES와 게임보이도 유사한 철학 아래 개발되었다.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요코이가 게임보이에 컬러 디스플레이를 채택하지 않고 긴 배터리 수명을 우선시한 것은, 세가 게임 기어와 아타리 링스 같은 경쟁 기기들을 압도하는 주요 이유로 꼽힌다.
- 광선총 SP는 이 철학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태양 전지를 전지가 아닌 빛에 반응하는 센서로 활용했고, 빛의 발신원으로는 꼬마전구를 사용했다.
요코이는 1990년대 중반, "가정용 게임기는 아이디어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아이디어 부족의 도피처는 CPU 경쟁과 색상 경쟁뿐이다"라고 말하며 고성능화되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비판했다. 그의 사후에 일본 시장은 CPU 경쟁이 일단락된 1990년대 후반부터 크게 둔화되었고, 2000년대 이후 그래픽 중심의 게임 산업 풍조와 개발비 상승이 큰 문제로 대두되면서, 그의 비판이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음이 드러났다.
닌텐도의 전 사장 이와타 사토루는 요코이의 이 철학이 미야모토 시게루와 같은 그의 제자들에게 전수되었으며, 닌텐도 DS와 Wii와 같은 닌텐도의 후속 제품들에서도 계속해서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 Wii의 내부 기술은 닌텐도의 이전 가정용 콘솔인 게임큐브와 유사했으며, 경쟁 기기인 엑스박스 360이나 플레이스테이션 3에 비해 계산 능력이나 멀티미디어 활용성 면에서 앞서지 않았다. 대신 Wii는 모션 컨트롤러를 도입하여 비디오 게임 플레이 방식을 변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비디오 게임의 대중적 저변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이러한 전략은 그래픽 발전만이 게임 기술 발전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닌텐도의 신념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Wii의 압도적인 성공 이후,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도 자체 모션 컨트롤 주변기기를 출시했다. 닌텐도가 Wii의 주변기기에 중점을 둔 것 또한 요코이의 "수평 사고"가 작동한 예시로 지적된다.
6. 개인적인 일화 및 기타
요코이 군페이는 그의 혁신적인 업적 외에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여러 일화들을 남겼다.
- 닌텐도 개발부장 시절, 그는 케이스나 패키지 디자인에도 관여했다. 이는 디자인 비용 절감 목적도 있었지만, 당시 협력 회사들과의 거래를 유지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케이스 디자인은 촉감이나 사용 편의성, 안전성 외에도 마키에 필통과 같은 일본 전통 공예품을 참고하여 독창성을 잃지 않았다. 요코이 군페이가 디자인에 관여한 것은 초대 게임보이부터 닌텐도 64까지이다.
- 요코이는 컴퓨터를 싫어했으며, 우에무라 마사유키는 그와의 기술자로서의 길이 자연스럽게 갈라졌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초대 게임보이나 버추얼 보이의 시제품을 자택으로 가져가 직접 분해하고 조정하며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 어느 날, 왼손이 움직이지 않는 아들을 둔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위해 십자키와 AB 버튼의 위치가 좌우 반대인 게임보이를 만들어 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받았다. 요코이는 "그런 건 기계 만지는 지식만 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직접 개조하여 "회사에는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하며 아이에게 개조된 게임보이를 무상으로 선물했다.
-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자전거 바구니에 있던 게임보이가 도로에 부딪혀 망가졌다. 어머니가 닌텐도에 수리를 의뢰했는데, 너무 심하게 파손되어 닌텐도에서 파손 원인을 묻자 교통사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닌텐도에서는 "수리비는 받지 않겠다"며 남자아이에게 새 게임보이 본체를 무상으로 보내주었고, 동봉된 편지에는 "○○군, 차 조심해. 요코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 실제 경험에서 얻은 감각과 느낌을 소프트웨어 개발 및 제작에도 활용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당시 닌텐도 본사(교토시 히가시야마구 후쿠이나카타카마쓰초, 현 교토 리서치 센터) 옥상에 있는 테니스 코트에서 미야모토 시게루와 경기를 한 적도 있다. 경기 결과는 요코이의 압승이었다.
- 닌텐도 개발부장 시절, 도바카이도 길가에 있는 아파트 1층에 두 명이 살던 소프트웨어 제작 직원들의 방을 대청소해 주기도 했다.
- 버추얼 보이 개발 중에도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 그리고 닌텐도 개발부장으로서의 고뇌를 겪으며 한때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 요코이 군페이가 게임보이 포켓 실버 모델을 들고 있는 사진은 퇴사 당일 닌텐도 도쿄 지사 내에서 촬영된 것이다.
- 닌텐도 개발부장 시절과 주식회사 코토 사장 시절 모두 소프트웨어 제작사, 거래처 등 현장에 직접 나가 협상하고 조율하는 일이 많았다. 이는 MOTHER2, 포켓몬스터 적/녹 등의 제작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7. 사망
1997년 10월 4일, 요코이 군페이는 호쿠리쿠 자동차도 상행선에서 지인인 키소 에츠오가 운전하던 차량에 동승하고 있었다. 이 차량이 앞서가던 경트럭을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사람은 차량 손상을 확인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고, 그 순간 요코이는 뒤따라오던 승용차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요코이를 친 두 번째 차량의 운전자는 관광업계 종사자인 츠시마 겐이었다. 요코이는 사고 발생 두 시간 후인 같은 날 오후 9시 30분, 이송된 고마쓰 시민 병원에서 외상성 쇼크로 인해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키소 에츠오는 갈비뼈 골절상만 입었다.
8. 유산 및 평가
요코이 군페이는 비록 56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게임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주요 전기 중 하나인 2010년 출간된 서적의 제목은 일본어에서 "게임의 아버지 - 닌텐도의 DNA를 창조한 남자, 요코이 군페이"로 번역된다. 1997년 출간된 또 다른 책의 제목은 "요코이의 게임 하우스"로 번역되었으며, 2014년 출간된 그의 책은 "요코이 군페이: 닌텐도 장난감의 신의 삶과 철학"이다.
2003년, 요코이는 사후에 국제 게임 개발자 협회로부터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게임트레일러스는 그를 "톱 텐 게임 크리에이터" 목록에 포함시켰다. 2010년 일본의 한 미술관에서는 "게임의 신이라 불린 남자"라는 제목의 미술 전시회를 개최하여 그의 주요 닌텐도 작품들을 조명했다. 1999년 반다이는 요코이를 기리기 위해 휴대용 퍼즐 게임 시리즈인 군페이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의 "퇴화된 기술의 수평 사고" 철학은 닌텐도의 후속 제품들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다. 이와타 사토루 전 닌텐도 사장은 요코이의 이 철학이 미야모토 시게루와 같은 그의 제자들에게 전수되었으며, 이는 닌텐도 DS와 Wii의 성공에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Wii의 경우, 경쟁 기기보다 낮은 사양에도 불구하고 모션 컨트롤러와 같은 혁신적인 게임플레이 방식을 도입하여 시장을 선도했는데, 이는 요코이의 철학이 반영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닌텐도가 Wii의 주변기기에 중점을 둔 것 또한 요코이의 "수평 사고"가 작동한 예시로 지적된다.
9. 주요 작품
요코이 군페이는 닌텐도 재직 시절과 퇴사 후 다양한 완구, 하드웨어, 그리고 비디오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9.1. 완구 및 하드웨어
요코이 군페이가 설계하거나 발명에 관여한 주요 완구 및 게임기 목록은 다음과 같다.
- 드라이브 게임 (1966년)
- 울트라 핸드 (1966년)
- 울트라 머신 (1968년)
- 러브 테스터 (1969년)
- 광선총 SP 시리즈 (1970년)
- 엘레콘가 (1970년)
- N&B 블록 크레이터 (1970년)
- 울트라 스코프 (1971년)
- 광선 전화 LT (1971년)
- 레프티 RX (1972년)
- 타임 쇼크 (1972년)
- 레이저 클레이 슈팅 시스템 (1973년)
- 와일드 건맨 (1974년)
- 슈팅 트레이너 (1974년)
- 패시네이션 (1974년)
- 광선총 커스텀 시리즈 (1976년)
- 배틀 샤크 스카이호크 (1977년)
- 데드라인 (1978년)
- 팬시볼 (1978년)
- 무선 조종 청소기 (1979년)
- 치리토리 (1979년)
- 텐 빌리온 (1980년)
- 게임 앤 워치 (1980년)
- 컴퓨터 마작 (1982년)
- 십자키 (1983년)
- 패미컴 컨트롤러 (1983년)
- R.O.B. (1985년)
- NES 재퍼 (1985년)
- 게임보이 (1989년)
- 슈퍼 스코프 (1992년)
- 버추얼 보이 (1995년)
- 게임보이 포켓 (1996년)
- 쿠넷쿠넷쵸 (1997년)
- 헤노헤노 (1997년)
- 원더스완 (1999년, 사후 출시)
- 군페이 (1999년, 사후 출시)
9.2.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프로듀서)
요코이 군페이가 프로듀서 또는 디자이너로 참여한 대표적인 비디오 게임 목록은 다음과 같다.
- 동키콩 (1981)
- 동키콩 주니어 (1982)
- 마리오 브라더스 (1983)
- 동키콩 3 (1983)
- 와일드 건맨 (1984)
- 덕 헌트 (1984)
- 호건스 앨리 (1984)
- 어번 챔피언 (1984)
- 벌룬 파이트 (1985)
- 레킹 크루 (1985)
- 스택업 (1985)
- 자이로마이트 (1985)
- 검슈 (1986)
- 메트로이드 (1986)
- 키드 이카루스 (1986)
- 나카야마 미호의 도키메키 하이스쿨 (1987)
- 패미컴 탐정 클럽: 사라진 후계자 (1988)
- 패미컴 워즈 (1988)
- 패미컴 탐정 클럽 파트 II: 뒤에 서 있는 소녀 (1989)
- 테트리스 (1989)
- 슈퍼 마리오 랜드 (1989)
- 솔라 스트라이커 (1990)
- 파이어 엠블렘: 암흑룡과 빛의 검 (1990)
- 닥터 마리오 (1990)
- 벌룬 키드 (1990)
- 메트로이드 II: 사무스의 귀환 (1991)
- 키드 이카루스: 신화와 괴물들 (1991)
- 파이어 엠블렘 외전 (1992)
- X (1992)
- 마리오 페인트 (1992)
- 슈퍼 마리오 랜드 2: 6개의 금화 (1992)
- 배틀 클래시 (1992)
- 요시의 쿠키 (1992)
- 메탈 컴뱃: 팔콘의 복수 (1993)
- 와리오 랜드: 슈퍼 마리오 랜드 3 (1994)
- 파이어 엠블렘: 문장의 수수께끼 (1994)
- 슈퍼 메트로이드 (1994)
- 마리오의 테니스 (1995)
- 마리오 클래시 (1995)
- 패널로 퐁 (1995)
- 버추얼 보이 와리오 랜드 (1995)
- 커비의 블록 볼 (1995)
- 3D 테트리스 (1996)
- 파이어 엠블렘: 성전의 계보 (1996)
- 포켓몬스터 적/녹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