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요시하라 신야(吉原 慎也일본어, 1978년 4월 19일 ~ )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사업가이다. 주로 골키퍼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9세에 축구를 시작하여 이바라키현립 히타치 공업고등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U-18 일본 대표팀 후보로도 선정되었다.
1997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으나, 출전 기회가 적었다. 1999년 알비렉스 니가타로 임대 이적하여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개막 7연승에 기여하고 지역 내에서 인지도를 얻었다. 2001년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완전 이적한 후 2003년부터 주전 골키퍼로 자리매김했으며, 2004년 팀의 J1리그 승격과 2006년 리그 2위 달성 및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도쿄 베르디 (2007년)와 주빌로 이와타 (2009년)에서 임대 생활을 거쳤으며, 2010년 가시와 레이솔에 입단했으나 같은 해 7월 14일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요시하라 신야는 필요할 때 투입되어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슈퍼 서브' 골키퍼로 평가받으며, 한국어에 능통하여 한국인 선수들과의 소통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도요타 관련 기업의 임원을 거쳐 현재는 건설업체인 글로벌 에이전시 코퍼레이션의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배우자는 유명 바둑 전문 기사인 요시하라 유카리이다.
2. 초기 경력 및 학력
2.1. 유소년 경력
요시하라 신야는 9세에 축구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히타치시 내의 소년 축구 클럽에서 활동했으며, 중학생 시절에는 히타치시립 코마오 중학교 축구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중학교 시절, 그는 이전 교사로부터 이바라키현 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팀 중 하나인 이바라키현립 히타치 공업고등학교에서 축구를 할 것을 추천받았다.
2.2. 고등학교 시절
1994년, 요시하라 신야는 이바라키현립 히타치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입학 첫해부터 주전 선수로 경기에 출전하며 학교를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에는 간토 지역 올스타 멤버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U-18 일본 대표팀 멤버로도 발탁되었다. 특히 1996년에는 U-18 일본 대표팀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보다 두 살 위인 스즈키 다카유키와 함께 뛰었다.
3. 프로 경력
요시하라 신야는 고등학교 졸업 후 J리그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3.1. 요코하마 F. 마리노스
1997년, 요시하라 신야는 요코하마 마리노스 (이후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문장이었던 가와구치 요시카쓰가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전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 1997년과 1998년 시즌 동안 그는 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01년에도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소속이었으나, 출전 기록은 없었다.
3.2. 알비렉스 니가타 (임대)
1999년, 요시하라 신야는 J2리그 클럽인 알비렉스 니가타로 임대 이적했다. 3월 14일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개막전에서 J리그 공식 경기에 데뷔하며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는 놀라운 선방을 연이어 선보이며 J2리그에 참가한 알비렉스 니가타의 개막 7연승에 크게 기여했다. 니가타에서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두 시즌 동안 활동했으며, 노자와 요스케와 키데라 고이치와 같은 실력 있는 골키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 44경기에 출전했다. 2000년에는 조인(Join)과 도요펫 니가타의 광고 모델로도 출연하여 니가타 지역에서 유명 인사로 인정받았다.
3.3.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1년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복귀한 요시하라 신야는 시즌 중반인 8월에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완전 이적했다. 초기에는 우라가미 다케시의 백업 선수였으나, 2002년 J2리그 43라운드부터 주전으로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에는 리그 전 경기인 44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골키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2004년에는 41경기에 출전했으며, 특히 J2리그 8라운드 요코하마 FC전부터 14라운드 쇼난 벨마레전까지 총 7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의 활약은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J2리그 우승과 5년 만의 J1리그 복귀에 크게 기여하며 팀에 없어서는 안 될 골키퍼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 시즌에는 전 시즌부터 이어진 오른쪽 발목 부상으로 인해 개막전부터 3라운드까지는 시모카와 세이고의 백업으로 벤치에 앉았다. 4라운드 도쿄 베르디전부터 경기에 출전했으나, 13라운드 주빌로 이와타전부터 다시 백업으로 전환되었다.
2006년 시즌 초반에는 아이자와 다카시의 백업으로 지냈으나, 9월 17일 J1리그 23라운드 주빌로 이와타전과 9월 23일 24라운드 감바 오사카전에서 팀이 각각 8실점하며 패배하자, 25라운드 산프레체 히로시마전부터 다시 주전으로 복귀했다. 그는 6승 2무 2패의 기록을 남기며 팀의 수비를 안정시켰다.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이 해 J1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며 2007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하는 데 요시하라 신야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8년, 도쿄 베르디에서의 임대 생활을 마치고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복귀했으나, 반복되는 부상과 나고야 그램퍼스에서 이적해 온 가와시마 에이지가 주전 골키퍼로 자리 잡으면서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그는 J리그컵 예선 리그 6라운드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전에서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3.4. 도쿄 베르디 (임대)
2007년, 요시하라 신야는 도쿄 베르디로 임대 이적했다. 시즌 초반 다카기 요시나리의 백업으로 시작했으나, 팀의 연패가 이어지자 4월 29일 J2리그 12라운드 미토 홀리호크전부터 출전 기회를 얻었다. 다음 경기에서 팀의 7연패를 저지하며 부진했던 팀의 수비 라인을 재정비하는 데 기여했다. 주전 골키퍼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듯했으나, 7월 1일 J2리그 25라운드 사간 도스전에서 경기 중 부상을 당해 왼쪽 무릎 후방 십자인대 손상 진단을 받았다. 이 부상으로 인해 그는 9주간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었고, 남은 시즌 동안 출전하지 못했다. 9월에 열린 42라운드부터는 백업으로 복귀했다. 도쿄 베르디는 이 해 J2리그에서 2위를 차지하며 3년 만에 J1리그로 승격했다. 시즌 종료 후 그는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복귀했다.
3.5. 주빌로 이와타 (임대)
2009년, 요시하라 신야는 주빌로 이와타로 시즌 임대 이적했다. 처음에는 일본 대표팀 골키퍼인 가와구치 요시카쓰와 핫타 나오키에 이은 제3 골키퍼로 여겨졌다. 그러나 26라운드 교토 상가 FC전에서 가와구치 요시카쓰가 부상으로 결장하고 핫타 나오키가 대신 출전하면서, 요시하라 신야는 27라운드 FC 도쿄전부터 벤치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10월 30일 열린 천황배 3라운드 가노야 체육대학과의 경기에서는 핫타 나오키의 부상으로 인해 연장전부터 교체 출전하여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또한 핫타 나오키가 신종 인플루엔자로 결장한 J1리그 최종 라운드 비셀 고베전에도 출전했다.
3.6. 가시와 레이솔
2010년, 요시하라 신야는 가시와 레이솔로 완전 이적했다. 그는 스가노 다카노리의 백업 골키퍼로 활동했으나, 사타구니 통증 증후군(Groin Pain Syndrome)을 앓게 되었다. 결국 그는 팀에 직접 계약 해지를 요청했고, 2010년 FIFA 월드컵 종료 후인 7월 14일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4. 선수 특징 및 강점
요시하라 신야는 키 185 cm, 체중 76 kg의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풀 시즌을 소화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할 때 투입되어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보기 드문 '슈퍼 서브' 골키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또한 한국어 회화에 능통했다.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정대세와는 항상 한국어로 대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한국어 능력은 다른 한국인 선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이근호는 주빌로 이와타에서 활동할 당시 요시하라 신야 덕분에 팀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또한 가시와 레이솔 재적 중에는 입원으로 인해 경기에 동행할 수 없었던 박동혁 선수의 통역 대리를 맡기도 했다.
5. 대표 및 선발 경력
요시하라 신야는 선수 경력 중 여러 차례 대표팀 및 선발팀에 포함되었다.
- 1994년: 간토 유스 선발
- 1995년: 간토 유스 선발, 동일본 대표 동서 대항전 출전, 이바라키현 국체 선발
- 1996년: U-18 일본 대표팀 후보, 이바라키현 국체 선발
6. 은퇴 후 활동
프로 축구 선수 은퇴 후, 요시하라 신야는 다양한 사회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도요타 관련 기업의 집행 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글로벌 에이전시 코퍼레이션(Global Agency Corporation영어)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서 건설업을 운영하고 있다.
7. 개인 생활
요시하라 신야는 유명한 바둑 전문 기사이자 히카루의 바둑 만화 및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통해 바둑 보급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요시하라 유카리 (결혼 전 성은 우메자와 유카리)와 결혼했다.
8. 통계
요시하라 신야의 프로 선수로서의 공식 경기 출전 및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
클럽 성적 | 리그 | 컵 | 리그컵 | 총합 | |||||||
---|---|---|---|---|---|---|---|---|---|---|---|
시즌 | 클럽 | 리그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출전 | 득점 | |
일본 | 리그 | 천황배 | J리그컵 | 총합 | |||||||
1997 | 요코하마M | J | 0 | 0 | 0 | 0 | 0 | 0 | 0 | 0 | |
1998 | 0 | 0 | 0 | 0 | 0 | 0 | 0 | 0 | |||
1999 | 니가타 | J2 | 22 | 0 | 2 | 0 | 3 | 0 | 27 | 0 | |
2000 | 22 | 0 | 0 | 0 | 0 | 0 | 22 | 0 | |||
2001 | 요코하마FM | J1 | 0 | 0 | 0 | 0 | - | 0 | 0 | ||
가와사키 | J2 | 0 | 0 | 0 | 0 | 2 | 0 | 2 | 0 | ||
2002 | 2 | 0 | - | 5 | 0 | 7 | 0 | ||||
2003 | 44 | 0 | - | 4 | 0 | 48 | 0 | ||||
2004 | 41 | 0 | - | 1 | 0 | 42 | 0 | ||||
2005 | J1 | 9 | 0 | 2 | 0 | 0 | 0 | 11 | 0 | ||
2006 | 10 | 0 | 1 | 0 | 2 | 0 | 13 | 0 | |||
2007 | 도쿄V | J2 | 13 | 0 | - | 1 | 0 | 14 | 0 | ||
2008 | 가와사키 | J1 | 0 | 0 | 1 | 0 | 0 | 0 | 1 | 0 | |
2009 | 이와타 | J1 | 1 | 0 | 0 | 0 | 1 | 0 | 2 | 0 | |
2010 | 가시와 | J2 | 0 | 0 | - | - | 0 | 0 | |||
J1리그 통산 | 20 | 0 | 4 | 0 | 3 | 0 | 27 | 0 | |||
J2리그 통산 | 142 | 0 | 2 | 0 | 16 | 0 | 160 | 0 | |||
총 통산 | 162 | 0 | 6 | 0 | 19 | 0 | 187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