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 및 교육
요시다 에리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태어나 요코하마시에서 성장했다. 두 살 위의 오빠의 영향으로 요코하마 시립 기타야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요코하마 시립 나카가와니시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연식 야구부의 주전 1루수로 활약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부활동에서 은퇴한 직후 경식 야구를 시작했으며, 아버지의 권유로 투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가나가와 현립 가와사키키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경식 야구부에 들어갔으나, 오른손 등 통증으로 인해 5일 만에 퇴부했다. 남자 선수들과의 체력적 차이를 느끼던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MLB 투수 팀 웨이크필드의 활약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자신도 너클볼을 익히면 남자 선수들과 같은 마운드에서 야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집 지하에 마련된 연습장에서 1년간 독학으로 너클볼을 연습했다. 이 과정에서 새끼손가락을 세우고 공에 붙이지 않는 웨이크필드 특유의 너클볼 그립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야구부 퇴부 후에는 사회인 야구 클럽 팀인 지바 열혈 메이킹(千葉熱血メイキング일본어)과 니시타마 클럽(西多摩倶楽部일본어)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2008년 9월부터는 여자 클럽 팀인 아사히 트러스트(アサヒトラスト일본어)에서 뛰었으며, 같은 해 전일본 여자 경식 클럽 야구 선수권(全日本女子硬式クラブ野球選手権일본어)에 3경기에 등판했다. 프로 입단 후에는 통신제인 야쿠시마 오조라 고등학교로 전학하여 학업을 병행했으며, KTC 주오 고등학원의 고베 캠퍼스와 요코하마 캠퍼스를 거쳐 졸업했다.
2. 야구 경력
요시다 에리는 일본과 미국 독립 리그를 오가며 활발한 프로 야구 경력을 쌓았다. 그녀의 도전은 남성 중심의 야구계에서 여성 선수의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발자취가 되었다.
2.1. 일본에서의 초기 경력
2008년 11월 간사이 독립 리그의 합동 트라이아웃에 합격한 요시다 에리는 같은 달 16일/17일 리그의 드래프트 회의에서 고베 나인 크루즈로부터 7라운드 전체 27번째 지명을 받았다. 이후 12월 2일 정식 계약을 맺고 등번호 17번을 받았다. 이로써 그녀는 일본 여자 야구 연맹(1950년~1951년) 시절 이후 처음으로 일본 프로 야구 리그에 소속된 여자 선수가 되었으며, 일본인으로서는 스즈키 게이코 이후 처음으로 남자 선수들과 한 팀에서 뛰는 여자 프로 야구 선수가 되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녀의 성공은 일본 언론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그녀는 '너클 공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2009년 3월 26일/27일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열린 간사이 독립 리그 개막전 오사카 골드 빌리케인스(大阪ゴールドビリケーンズ일본어)와의 경기에 9회말 2번째 중간 계투로 첫 등판하여 11,592명의 팬 앞에서 역사적인 데뷔를 했다. 이 경기에서 그녀는 2명의 타자를 상대하여 첫 타자는 볼넷으로 출루시켰고, 다음 타자는 삼진으로 잡았다. 2009년 시즌 동안 그녀는 선발 1경기를 포함하여 총 11경기에 등판해 11과 2/3이닝을 던지며 0승 2패, 평균자책점 4.63을 기록했다. 같은 해 10월, 그녀는 고베 나인 크루즈에서 탈퇴하며 프로 무대에서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2월에는 재팬 퓨처 베이스볼 리그의 미에 스리 애로스와 입단에 합의했지만, 미국 팀으로부터 오퍼가 있을 경우 미국을 우선하겠다는 조건이었다. 2009년 11월 24일에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상위 타자들을 상대로 1이닝을 던지는 스페셜 매치에 등판하기도 했다.
2.2. 미국 독립 리그 도전
2010년 1월 하순부터 3월 상순까지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개최된 애리조나 윈터 리그에 참가했다. 이 리그는 메이저 리그 팀의 스카우트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였다. 그녀는 이 리그에서 골든 베이스볼 리그 소속 치코 아웃로스의 눈에 띄어 정식 오퍼를 받았고, 일시 귀국 후 계약에 합의했다. 2010년 2월 12일, 애리조나 윈터 리그에서 유마 스콜피언스 소속으로 팀 캐나다를 상대로 5대 0 승리에서 4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미국에서의 첫 승리를 기록했다.
치코 아웃로스는 전 메이저 리그 올스타 게리 템플턴이 감독을 맡고 있었고, 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외야수 마이크 마셜이 팀 사장 겸 단장이었다. 2010년 3월 2일, 요시다 에리는 보스턴 레드삭스 마이너 리그 훈련 시설에서 자신의 우상인 팀 웨이크필드와 함께 훈련하는 기회를 가졌다. 4월 8일 치코 아웃로스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며, 10년 전 은퇴한 아일라 보더스 이후 미국에서 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하는 최초의 여성 선수가 되었고, 역사상 최초로 두 국가에서 프로로 뛴 여성 선수가 되었다.
그녀는 2010년 5월 7일 미국으로 건너가 치코 아웃로스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고, 이튿날부터 캠프에 참가했다. 5월 29일(일본)/30일(미국) 티후아나 시마론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공식전 첫 출장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그녀는 3이닝 동안 5안타 4실점을 기록했으나, 타석에서는 1회 1사 만루 찬스에서 145km/h의 직구를 우전 안타로 만들어내며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첫 안타와 첫 타점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사용된 그녀의 유니폼과 배트는 뉴욕주 쿠퍼스타운에 있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또한 소속 팀인 치코 아웃로스의 배려로 Justin.tv를 통해 공식 경기 영상이 중계되기도 했다. 그녀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남자 선수들과 맞서 싸우는 모습은 뉴욕 타임스 지 스포츠면에도 사진과 함께 특집 기사로 실리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 해 그녀의 공식전 기록은 8경기 선발 등판, 25과 2/3이닝 동안 0승 4패, 평균자책점 12.27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특히 34개의 피안타보다 많은 36개의 볼넷과 사구를 허용하는 등 제구가 불안정했다. 하지만 감독인 게리 템플턴은 어떤 18세 선수라도 골든 베이스볼 리그에서 고전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그녀의 직업 윤리를 칭찬했다.
2010년 7월 27일, 요시다 에리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빅토리아에서 열린 독립 골든 베이스볼 리그의 빅토리아 실스와의 경기에서 첫 원정 선발 등판을 가졌다. 이로써 그녀는 야구 역사상 세 국가(일본, 미국, 캐나다)에서 프로로 투구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2011년 2월, 그녀는 다시 애리조나 윈터 리그에 참가했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리그 종료 후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해 귀국했다. 이후 4월 11일부터 간사이 독립 리그의 효고 블루 썬더스에 연습생으로 참여했다. 6월과 7월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서머 리그에 일본 단일 팀인 "사무라이 올 재팬"의 일원으로 참가했고, 6월 27일 서머 리그에서의 첫 승리를 거뒀다. 7월 20일에는 전 소속 팀인 치코 아웃로스에 복귀했으나, 불과 8일 뒤인 7월 28일 같은 리그의 마우이 이카이카로 트레이드되었다. 8월 9일 에드먼턴 캐피털스와의 경기에서 5이닝 1피안타 호투로 리그 첫 승리를 거두며 아일라 보더스에 이어 미국 독립 리그 여성 선수로서 두 번째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마우이 이카이카가 재정난으로 8월 16일 남은 시즌 경기를 취소하고 모든 선수를 자유 계약 선수로 방출함에 따라, 요시다 에리 또한 8월 24일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2.3. 일본 독립 리그 복귀 및 이후 활동
2012년 1월 31일, 요시다 에리는 프로 데뷔 이후 3년 만에 다시 간사이 독립 리그의 효고 블루 썬더스에 입단했다. 5월 3일 기슈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첫 승리를 거두었고, 이로써 간사이 독립 리그 최초의 여성 승리 투수가 되었다. 6월부터는 다시 미국 마우이 이카이카에 소속되어 6월 9일 하와이 스타즈와의 경기에서 8회 도중까지 2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따냈다. 이 시즌 그녀는 3연승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5연패를 겪으며 제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4승 6패, 평균자책점 5.56이었다. 2012년 9월 계약 만료로 마우이를 떠나 다시 효고 블루 썬더스로 복귀했다.
2013년, 그녀는 미국 독립 리그 퍼시픽 어소시에이션의 마우이 이카이카에서 뛰며 10경기 선발 등판, 2승 4패, 평균자책점 5.98을 기록했다. 8월 17일, 퍼시픽 어소시에이션 시즌이 8월 20일경 종료됨에 따라 일본 가나자와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소속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에 입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에서는 선수와 구단 프런트(영업 담당)를 겸임하기도 했다.
2014년 시즌 동안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에서 11경기에 등판하여 0승 3패, 평균자책점 13.29를 기록했다. 2015년에는 등번호를 21번에서 49번으로 변경했다. 같은 해 6월 29일 가나자와 시민 구장에서 열린 도야마 GRN 썬더버즈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 초에 등판하여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10회 말 이시카와가 끝내기 승리를 거두면서 BC 리그 이적 후 첫 승리(BC 리그 사상 최초의 여성 선수 승리)를 기록했다.
2016년 2월 27일, 사무라이 재팬 여자 대표팀인 '마돈나 재팬'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여 일본 대표팀 입성을 위해 노력했다. 2016년 10월 21일, BC 리그의 신규 참가 구단(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 시가 유나이티드 베이스볼 클럽)에 대한 확대 드래프트에서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의 지명을 받아 이시카와가 보유권을 양도했다. 이후 2017년 시즌부터 도치기 골든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뛰게 되었다. 그러나 공식전 등판 없이 '부상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2017년 6월 9일부로 연습생 계약으로 변경되었고, 2017년 10월 27일 자유 계약으로 도치기를 퇴단했다.
2017년 11월 21일, 요시다 에리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도치기현 오야마시를 거점으로 새로 설립되는 에이젝 여자 경식 야구부의 팀 디렉터(감독)로 취임한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이 팀에서 투수와 외야수로서 선수도 겸임했다. 2018년 9월 26일, 그녀는 전 소속 리그인 BC 리그의 사무국원이었던 고마쓰바라 뎃페이와 결혼했음을 블로그를 통해 발표했다. 남편 고마쓰바라는 2020년부터 후쿠이 와일드 랩터스의 구단 사장을 역임했다. 고마쓰바라에 따르면, 두 사람의 교제는 요시다 에리가 선수로 활동했던 효고 블루 썬더스 시절에 시작되었으며, 2020년 기준으로 결혼 후에도 한 번도 동거한 적이 없다고 한다. 2020년부터는 히로하시 고주가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요시다 에리는 선수 겸 코치 역할을 맡게 되었다.
2022년 1월 10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사무국은 여성 감독인 레이첼 발코벡이 뉴욕 양키스 산하 1A 팀 감독으로 취임한 것을 기념하며 공식 웹사이트에 "야구계의 장벽을 허문 여성들"(These women broke barriers in baseball영어)이라는 특집 기사를 게재했고, 요시다 에리 또한 그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조명받았다.
2023년 6월부터 8월까지 개최된 미국 독립 리그 엠파이어 프로페셔널 베이스볼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 재도전을 위해 뛰었다. 그녀는 이 기간 동안 10경기에 등판하여 1승 0패, 평균자책점 16.20을 기록했다. 이 미국 방문에서 그녀는 18세 시절 이후 다시 한번 우상인 MLB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를 만났고, 웨이크필드는 그녀에게 "지금도 야구를 계속하는구나. 앞으로도 계속 던지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8월에 귀국하여 다시 에이젝 여자 경식 야구부로 복귀했다.
2024년 11월 1일, 그녀는 에이젝 여자 경식 야구부에서의 퇴부를 발표했다. 이후 11월 12일 가나가와현에 오빠가 설립한 야구 학원 '츠즈키 베이스'(tsuzuki BASE일본어)에서 일하게 되었음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렸다. 그녀는 이전부터 고향인 가나가와현에 여자 야구팀을 만들어서 '보답'하고 싶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히며, 이 시점에도 선수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3. 플레이 스타일
요시다 에리는 독특한 투구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2010년까지는 사이드암 투구 자세로 최고 구속 101 km/h의 직구와 약 80km/h대의 너클볼, 그리고 커브를 던졌다. 그녀의 원투 능력은 70 m에 달했으며, 50m 달리기는 8초를 기록했다.
2011년부터는 투구 폼을 스리쿼터로 변경하면서 구종도 다양화되었다. 커브, 슈트, 너클볼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게 되었으며, 이전처럼 너클볼만 던지는 투수보다는 다양한 구종을 활용하는 투수가 되었다. 이로 인해 최고 구속은 113 km/h까지 향상되었다. 2016년 2월에 개최된 사무라이 재팬 여자 대표팀 트라이아웃에서는 너클볼의 제구가 좋지 않아 직구와 커브만으로 테스트에 임하기도 했다.
4. 개인 생활
요시다 에리는 2018년 9월 26일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사무국원이자 전 후쿠이 와일드 랩터스 구단 사장이었던 고마쓰바라 뎃페이와 결혼했다. 남편 고마쓰바라는 그녀가 선수로 함께 뛰었던 효고 블루 썬더스 시절부터 교제해왔으며, 2020년 기준으로는 결혼 후에도 한 번도 동거한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의 남편 고마쓰바라 뎃페이의 여동생은 일본의 유명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고마쓰바라 미사토이다. 미사토 선수가 뇌진탕의 영향으로 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없었던 시기에, 요시다 에리가 "초조해하지 마"라고 조언해 주기도 했다.
5. 평가 및 영향
요시다 에리는 일본 야구계와 국제 야구계에서 남성 중심의 환경에 도전하며 여성 선수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6세의 나이로 일본 남자 프로 야구 팀에 지명된 최초의 여성이 되었고, 이후 일본, 미국, 캐나다 등 세 국가에서 프로로 투구한 최초의 여성 선수가 되었다. 이는 남성 중심의 야구계에서 여성 선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녀의 활약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너클 공주'라는 별명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뉴욕 타임스와 같은 주요 외신에서도 그녀의 도전이 집중 조명되었다. 2009년에는 미국의 여성 잡지인 《비너스 매거진》이 선정한 "25세 이하 주목할 만한 여성 25인"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 8월 21일에는 폭스 스포츠의 프로그램 《디스 위크 인 베이스볼》에서 그녀가 자신의 우상인 팀 웨이크필드를 만나는 모습이 특집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2022년 1월 10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공식 웹사이트에서 '야구계의 장벽을 허문 여성들' 특집 기사에 요시다 에리가 포함되어, 그녀의 역사적 공헌이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그녀는 어린 시절 팀 웨이크필드의 너클볼을 보고 야구를 계속할 용기를 얻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웨이크필드로부터 "지금도 야구를 계속하는구나. 앞으로도 계속 던지기를 바란다"는 격려를 받으며 선수로서의 여정을 이어갔다. 이러한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특히 여성 야구 선수들에게는 새로운 희망과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6. 상세 정보
6.1. 연도별 투수 성적
요시다 에리의 프로 야구 경력 동안 기록된 투수 성적은 다음과 같다.
연도 | 구단 | 등판 | 승리 | 패전 | 세이브 | 완투 | 승률 | 투구회 | 타자 | 피안타 | 피홈런 | 탈삼진 | 볼넷 | 사구 | 실점 | 자책점 | 폭투 | 보크 | 실책 | 방어율 | WHIP |
---|---|---|---|---|---|---|---|---|---|---|---|---|---|---|---|---|---|---|---|---|---|
2009 | 고베9 | 11 | 0 | 2 | 0 | 0 | .000 | 11.2 | 56 | 11 | 4 | 9 | 4 | 7 | 6 | 1 | 4.63 | 1.71 | |||
2010 | 치코 | 8 | 0 | 4 | 0 | 0 | .000 | 25.2 | 142 | 34 | 4 | 4 | 21 | 15 | 40 | 35 | 4 | 0 | 1 | 12.27 | 2.14 |
2011 | 1 | 0 | 0 | 0 | 0 | ---- | 2.0 | 15 | 2 | 0 | 0 | 5 | 2 | 3 | 2 | 0 | 0 | 0 | 9.00 | 3.50 | |
마우이 | 1 | 1 | 0 | 0 | 0 | 1.000 | 5.0 | 19 | 4 | 0 | 1 | 3 | 0 | 1 | 1 | 0 | 0 | 0 | 1.80 | 1.40 | |
'11계 | 2 | 1 | 0 | 0 | 0 | 1.000 | 7.0 | 34 | 6 | 0 | 1 | 8 | 2 | 4 | 3 | 0 | 0 | 0 | 3.86 | 2.00 | |
2012 | 효고 | 6 | 1 | 1 | 0 | 0 | .500 | 14.0 | 73 | 17 | 0 | 4 | 15 | 2 | 7 | 6 | 0 | 0 | 0 | 3.86 | 2.29 |
마우이 | 11 | 4 | 6 | 0 | 0 | .400 | 45.1 | 211 | 41 | 2 | 12 | 28 | 11 | 36 | 28 | 5 | 0 | 0 | 5.56 | 1.52 | |
2013 | 10 | 2 | 4 | 0 | 0 | .333 | 43.2 | 205 | 35 | 4 | 13 | 24 | 15 | 34 | 29 | 1 | 0 | 5.98 | 1.35 | ||
이시카와 | 4 | 0 | 3 | 0 | 0 | .000 | 14.2 | 86 | 18 | 1 | 4 | 19 | 10 | 18 | 17 | 2 | 1 | 1 | 10.43 | 2.61 | |
2014 | 11 | 0 | 3 | 0 | 0 | .000 | 21.0 | 125 | 25 | 3 | 4 | 31 | 11 | 32 | 31 | 1 | 0 | 0 | 13.29 | 2.67 | |
2015 | 8 | 1 | 0 | 0 | 0 | 1.000 | 7.0 | 52 | 18 | 0 | 3 | 10 | 1 | 22 | 19 | 5 | 0 | 1 | 24.43 | 4.00 | |
2016 | 6 | 0 | 1 | 0 | 0 | .000 | 6.1 | 46 | 13 | 2 | 4 | 10 | 5 | 16 | 11 | 1 | 0 | 1 | 15.63 | 3.63 | |
간사이: 2년 | 17 | 1 | 3 | 0 | 0 | .250 | 25.2 | 129 | 28 | 8 | 24 | 6 | 14 | 12 | 1 | 4.21 | 2.03 | ||||
GBL: 1년 | 8 | 0 | 4 | 0 | 0 | .000 | 25.2 | 142 | 34 | 4 | 4 | 21 | 15 | 40 | 35 | 4 | 0 | 1 | 12.27 | 2.14 | |
NAL: 2년 | 13 | 5 | 6 | 0 | 0 | .455 | 52.1 | 245 | 47 | 2 | 13 | 36 | 13 | 40 | 31 | 5 | 0 | 0 | 5.36 | 1.59 | |
PA: 1년 | 10 | 2 | 4 | 0 | 0 | .333 | 43.2 | 205 | 35 | 4 | 13 | 24 | 15 | 34 | 29 | 1 | 0 | 5.98 | 1.35 | ||
BCL: 4년 | 29 | 1 | 7 | 0 | 0 | .125 | 49.0 | 309 | 74 | 6 | 15 | 70 | 27 | 88 | 76 | 9 | 1 | 3 | 13.96 | 2.94 |
6.2. 등번호
- 17 (2009년, 2011년 사무라이 올 재팬)
- 3 (2010년)
- 4 (2011년, 2013년 마우이)
- 5 (2011년 마우이)
- 20 (2012년)
- 21 (2013년~2014년 이시카와 밀리언 스타즈)
- 49 (2015년~2024년)
7. 미디어 출연
- 크림 퀴즈 미라클 9 (2013년 2월 27일, TV 아사히) - 구도 기미야스 팀의 팀원 패널로 출연
- 게키레아상오 쓰레테키타 (2021년 2월 8일, TV 아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