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의 동시통역가, 작가로서 국제적인 경험과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독특한 시각을 형성했다. 그녀의 생애는 정치적 환경 속에서의 유년 시절, 깊이 있는 학업, 그리고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다층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1.1. 출생 및 유년 시절 (프라하 경험 포함)
요네하라 마리는 1950년 4월 29일 도쿄도 주오구의 성 누가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요네하라 이타루는 일본공산당 상임간부회 위원이자 중의원 의원이었으며, 할아버지 요네하라 쇼조는 돗토리현 의회 의장과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또한, 아버지 쪽 친척 중에는 입헌민주당 중의원 의원 아리타 요시오도 있다.
1959년 (쇼와 34년), 요네하라 마리가 오타구립 마고메 제3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 아버지가 일본공산당 대표로 각국 공산당의 이론 정보지 『평화와 사회주의의 제 문제』 편집위원으로 선임되어, 편집국이 있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로 부임하게 되면서 가족 모두 유럽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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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부터 14세까지 5년간의 소녀 시절을 프라하에서 보냈으며, 현지에 있는 소련 외무부가 직접 운영하는 외국 공산당 간부 자녀 전용의 8년제 소련 대사관 부속 학교에 다니며 러시아어로 수업을 받았다. 체코어 교육 대신 소련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러시아어라면 일본 귀국 후에도 계속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소련 학교는 약 50개국 아이들이 다니는 곳으로, 교사들은 소련 본국에서 파견되었고, 교과서도 본국에서 보내온 것을 사용하는 본격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수업은 20명이 넘으면 두 반으로 나누는 등 세심하게 진행되었으나, 처음 약 반년 동안은 교사나 학생들이 웃어도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선생님 말씀이 100퍼센트 이해되지 않는 수업에 계속 참석하는 것은 지옥이었다"고 회고했다.
1964년 (쇼와 39년) 11월, 소련 대사관 부속 학교 7학년 과정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귀국했다. 1965년 1월, 오타구립 가이즈카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했으며, 일본의 시험 방식이 객관식이나 선택형인 것에 문화 충격을 받았다. 소련 학교에서는 모든 시험이 논술형이었기 때문이다. 프라하의 봄 (1968년) 사건은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온 후 18세 때 발생했다.
1.2. 학력
1966년 4월, 묘조학원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69년 3월에 졸업했다. 같은 해 4월, 사카키바라 무용학원 민족무용과에 입학했으나 1971년 3월에 중퇴했다. 같은 해 4월, 도쿄외국어대학 외국어학부 러시아어학과에 입학했으며, 이 무렵 일본공산당에 입당했다. 1975년 3월에 도쿄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4월 시오분샤에 입사했다. 1976년 3월에 시오분샤를 퇴사하고, 같은 해 4월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노어노문학 전공 석사 과정에 진학하여 1978년 3월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3. 정치적 성향 및 활동
대학원 재학 중인 1985년 (쇼와 60년), '도쿄대 대학원 지부 이리 카즈토 사건'에 연루되어 당에서 제명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사망 시 『신문 적기』 부고란에는 당적 기록 없이 게재되었다. 훗날 2002년 5월 13일, 체포 직전의 사토 마사루에게 요네하라 마리는 "나는 공산당에 사문당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죽을까 봐 무서웠다. 공산당도 외무성도 조직은 똑같다"고 말했다. 또한 일본공산당을 떠난 후에도 "지금 사회의 구조나 모순을 설명하는 데 카를 마르크스만큼 적합한 사람은 없다.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 읽을 수 있는 사상가 중에서는 그만큼 보편적으로 세상의 구조나 모순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상가는 달리 없다"고 자주 언급했다.
1.4. 통역가 및 번역가 활동

요네하라 마리는 일소학원 (현재의 도쿄 러시아어 학원)에서 러시아어 강사로 재직했으며, 1990년까지 분카 학원 대학부 교원으로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한편 1978년경부터 통역 및 번역에 종사하기 시작하여, 1980년 러시아어통역협회 설립에 참여하여 초대 사무국장이 되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그리고 2003년부터 2006년 사망 시까지 러시아어통역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동시통역사들의 처우 개선에도 힘썼다.
1983년 (쇼와 58년)경부터는 최고 수준의 통역사로서 러시아어권 요인들의 동시통역 등으로 활약했다. 특히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는 뉴스 보도를 중심으로 구소련 및 러시아 관련 보도와 회의의 동시통역에 종사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TBS의 "우주 프로젝트" 프로그램에서 통역 그룹의 중심이 되어 소련 측과의 협상을 담당했다. TBS 특별 프로그램 『일본인 최초! 우주로』에서는 러시아어 동시통역을 맡았다. 이러한 활약으로 동시통역, 나아가 요네하라 마리의 존재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90년 1월, 소련 최고회의의 보리스 옐친 의원 (당시)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수행 통역을 맡았다. 옐친은 그녀를 "마리"라고 부르며 매우 아꼈다고 전해진다. 1992년 (헤이세이 4년)에는 동시통역을 통한 보도의 속보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여성 방송인 간담회상 (SJ상)을 수상했다.
1997년 (헤이세이 9년)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NHK 교육 텔레비전 『러시아어 회화』에서 강사로 출연했다. 2003년부터는 TBS 텔레비전의 토요일 저녁 뉴스 프로그램 『브로드캐스터』에 고정 코멘테이터로 출연했다.
1.5. 작가로서의 활동
요네하라 마리는 통역가로서의 경험과 독특한 이문화 배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학 작품을 창작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동유럽 혁명과 베를린 장벽 붕괴, 나아가 소련 해체를 통역 현장에서 직접 느끼며, 프라하의 소련 학교 시절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친했던 그리스인 리차, 루마니아인 아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보슈냐크인 야스나 등 세 명의 급우를 찾아다니며 소식을 확인한 기록인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 (2001년)로 오야 소이치 논픽션 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 니시키 마사아키는 "무서운 작품. 거침없이 써 내려갔는데도 그것이 폐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데생을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면서도 인물들이 행간에서 선명하게 솟아오른다. 질투가 날 정도로 훌륭한 묘사력이다"라고 평가했다.
1995년 (헤이세이 7년)에는 『불성실한 미녀인가 정숙한 추녀인가』 (1994년)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1997년 (헤이세이 9년)에는 『마녀의 1다스』 (1996년)로 고단샤 에세이 상을 각각 수상했다. 2003년 (헤이세이 15년)에는 장편 소설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 (2002년)으로 분카무라 두마고 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 이케자와 나쓰키는 젊은 꿈과 순수함의 상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두운 사회 속에서 노년의 올가 모리소브나의 역동성으로 "아이들은 그 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고 언급하며, "어떤 천재적인 무용가의 기구한 운명을 따라가는 동시에, 소련이라는 참으로 기묘한 나라의 실태를 그리는 소설이어서, 이 이중성이 실로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만년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담이 큰 동시통역 일에서 물러나 작가 활동에 전념했다.
1.6. 수상 경력
요네하라 마리는 그녀의 문학적, 논픽션적 기여를 인정받아 다음과 같은 주요 문학상 및 언론상을 수상했다.
- 1992년: 1991년도 일본 여성 방송인 간담회상 (SJ상)
- 1995년: 1994년도 제46회 요미우리 문학상 수필·기행상 (『불성실한 미녀인가 정숙한 추녀인가』)
- 1997년: 1997년도 제13회 고단샤 에세이 상 (『마녀의 1다스』)
- 2002년: 2002년도 제33회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
- 2003년: 2003년도 제13회 분카무라 두마고 문학상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
1.7. 개인적인 삶과 취미
요네하라 마리는 평생 미혼으로 지냈다. 그녀는 언어유희 (駄洒落다쟈레일본어)와 성적인 농담 (下ネタ시모네타일본어)을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구로야나기 데쓰코가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데쓰코의 방』에 출연했을 때, 구로야나기가 요네하라의 저서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에 나오는 동공에 관한 유명한 성적인 농담을 소개하여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녀는 또한 수많은 개와 고양이를 키우며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 그녀의 에세이에서 스스로를 칭했던 별명으로는 "카멜리아의 여인" (일본어 椿姫쓰바키히메일본어는 '카멜리아의 여인'과 '침의 여인'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며, 그녀가 음료 없이 마른 샌드위치를 한 번에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그리고 "혀가 미끄러지는 미녀" (일본어 舌禍美人젯카비진일본어은 '혀가 미끄러지는'이라는 뜻의 舌禍젯카일본어와 '미녀'라는 뜻의 美人비진일본어의 합성어로, 그녀의 냉소적인 시각을 나타내며, 月下美人겟카비진일본어, 즉 '달밤의 미녀'와 발음이 유사하다) 등이 있다.
친한 친구인 이탈리아어 동시통역사 다마루 구미코 또한 언어유희와 성적인 농담에 능했으며, 요네하라는 다마루에게 자신의 별명인 "시모네타 도지"라는 칭호를 헌정했고, 다마루는 요네하라를 "에캇테리나" (Екатери나예카테리나러시아어, 예카테리나 2세)라고 불렀다.
그녀는 일본 펜클럽의 활발한 회원이었으며 상무이사로도 활동했다. 사토 마사루는 외무성 근무 시절부터 요네하라 마리와 면식이 있었는데, 사토가 체포되기 직전 요네하라 마리는 전화로 "조직이 사람을 버릴 때는 정말 심하다. 이런 일로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격려했으며, 구금 후에는 자택으로 초대하는 등 사토가 작가로 전향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사토 마사루는 『분게이슌주』 2008년 9월 특별호에 요네하라가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로부터 관계를 강요당할 뻔했다고 들었다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요네하라는 하시모토가 총리 재임 중 모스크바를 외유할 때 통역을 맡았었다.
1.8. 가족
요네하라 마리의 아버지는 중의원 의원 요네하라 이타루이다. 할아버지는 돗토리현 의회 의장, 귀족원 의원, 돗토리 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한 요네하라 쇼조이다. 그녀의 여동생 이노우에 유리는 작가이자 극작가인 이노우에 히사시의 아내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사망 시까지 이노우에 히사시가 회장을 맡고 있던 일본 펜클럽의 상무이사였다.
2. 사상 및 철학
요네하라 마리는 사회의 작동 방식과 역사 해석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카를 마르크스에 대해 "지금 사회의 구조나 모순을 설명하는 데 카를 마르크스만큼 적합한 사람은 없다.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 읽을 수 있는 사상가 중에서는 그만큼 보편적으로 세상의 구조나 모순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상가는 달리 없다"고 평가하며, 그의 사상이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았다.
또한 그녀는 일본공산당과 외무성을 비교하며 "공산당도 외무성도 조직은 똑같다"고 말함으로써, 조직의 본질적인 속성과 개인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러한 시각은 그녀의 저술과 인터뷰 전반에 걸쳐 사회 구조와 권력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으로 이어졌다.
3. 저술 활동 및 작품
요네하라 마리는 수필, 논픽션,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녀의 작품들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담고 있으며, 특히 이문화 경험과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3.1. 주요 저서
- 『불성실한 미녀인가 정숙한 추녀인가』 (不実な美女か貞淑な醜女か일본어, 1994년)
- 『마녀의 1다스』 (魔女の1ダース일본어, 1996년)
- 『러시아는 오늘도 거친 날씨』 (ロシアは今日も荒れ模様일본어, 1998년)
- 『가세네타 & 시모네타』 (ガセネッタ&シモネッタ일본어, 2000년)
-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 (嘘つきアーニャの真っ赤な真実일본어, 2001년) - 한국어 번역본은 『프라하의 소녀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한밤의 태양』 (真夜中の太陽일본어, 2001년)
- 『인간 수컷은 키우지 않나요?』 (ヒトのオスは飼わないの?일본어, 2001년)
- 『여행자의 아침식사』 (旅行者の朝食일본어, 2002년) - 할바, 보드카 등 음식에 대한 에세이를 포함한다.
-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 (オリガ・モリソヴナの反語法일본어, 2002년)
- 『한낮의 별하늘』 (真昼の星空일본어, 2003년)
- 『팬티의 체면 샅바의 위신』 (パンツの面目ふんどしの沽券일본어, 2005년) - 한국어 번역본은 『팬티 인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필승 짧은 이야기 기술』 (必笑小咄のテクニック일본어, 2005년) - 생전 마지막 저작이다.
- 『타인의 속담 닮은꼴 - 속담 인류학』 (他諺の空似 - ことわざ人類学일본어, 2006년) - 한국어 번역본은 『속담 인류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얻어맞는 듯한 대단한 책』 (打ちのめされるようなすごい本일본어, 2006년) - 서평집으로, 그녀의 투병 생활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 『발명 마니아』 (発明マニア일본어, 2007년) - 『선데이 마이니치』에 연재된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 『평생 인간 수컷은 키우지 않으리』 (終生ヒトのオスは飼わず일본어, 2007년)
- 『요네하라 마리의 "사랑의 법칙"』 (米原万里の「愛の法則」일본어, 2007년) - 강연 기록을 엮은 것이다.
- 『심장에 털이 난 이유』 (心臓に毛が生えている理由일본어, 2008년)
- 『요네하라 마리 베스트 에세이 1・2』 (米原万里ベストエッセイ 1・2일본어, 2016년) - 첫 베스트 에세이집이다.
- 『위대하지 않은 "나"가 가장 자유롭다』 (偉くない「私」が一番自由일본어, 2016년) - 사토 마사루가 편집하고 해설을 덧붙였다.
- 『사람과 사물 6 『요네하라 마리』』 (人と物6『米原万里』일본어, 2017년) - 무인양품에서 출간한 문고판으로, 에세이 8편과 미공개 유작 '삶의 유품'을 수록했다.
3.2. 번역서
- 『혼자서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 (わたしの外国語学習法일본어, 1981년) - 롬 카토 (Lomb Kató헝가리어) 저.
3.3. 공동 저술 및 기고
- 『말을 키우다 요네하라 마리 대담집』 (言葉を育てる 米原万里対談集일본어, 2008년)
- 『마이너스 50℃의 세계 - 극한의 생활』 (マイナス50℃の世界 - 寒極の生活일본어, 1986년, 2007년) - 마이니치 초등학생 신문 편집, 세키구치 다카히로 그림.
- 『일본 명수필 별권 66 방언』 (日本の名随筆 別巻66 方言일본어, 1996년) - 「방언까지 번역할 것인가, 사투리까지 번역할 것인가」 수록.
- 『시바 씨의 오사카 사투리 - '97년판 베스트 에세이집』 (司馬サンの大阪弁 - '97年版ベスト・エッセイ集일본어, 1997년) - 「음악의 소리를 말로 표현하는 달인」 수록.
- 『목탄 좋은 날 - '99년판 베스트 에세이집』 (木炭日和 - '99年版ベスト・エッセイ集일본어, 1999년) - 「한자 가나 혼용문은 일본의 보물」 수록.
- 『우리가 살았던 20세기 - 하』 (私たちが生きた20世紀 - 下일본어, 2000년) - 「꿈을 그리며 달려나간 할아버지와 아버지」 수록.
- 『21세기에 희망을 가질 독서 안내』 (二十一世紀に希望を持つための読書案内일본어, 2000년)
- 『17세를 위한 독서 안내』 (17歳のための読서 안내일본어, 2007년) - 「진심으로 반한 상대를 설득하기는 어렵다」 수록.
- 『술은 노인의 우유이다 - 다마무라 살롱 절호조!』 (酒は老人のミルクである - 玉村サロン絶好調!일본어, 2001년) - 대담 「사랑스러운 러시아 증류 사회의 진실」 수록.
- 『어머니의 캐러멜 - 2001년판 베스트 에세이집』 (母のキャラメル - 2001年版ベスト・エッセイ集일본어, 2001년) - 「사랑의 대용품」 수록.
- 『독서의 즐거움』 (読書のたのしみ일본어, 2002년) - 「가장 고통 적은 외국어 학습법」 수록.
- 『이야기하면 알 수 있다! - 요로 다케시 대담집 신체가 말한다』 (話せばわかる! - 養老孟司対談集 身体がものをいう일본어, 2003년) - 대담 「논리의 귀에 나열의 눈」 수록.
- 『아아, 부끄러워라』 (ああ、恥ずかし일본어, 2003년) - 「내 혀가 무서워진다」 수록.
- 『그대 지금 이 쓸쓸한 밤에 깨어 있는 등불이여 - 사타카 마코토 대담집』 (君今この寂しい夜に目覚めている灯よ - 佐高信対談集일본어, 2003년) - 대담 「나라를 떠나 사는 것이 현명하다」 수록.
- 『좌담회 쇼와 문학사 제4권』 (座談会昭和文学史 第4巻일본어, 2003년) - 「고바야시 히데오 - 그 전설과 마력」 수록.
- 『그래도 나는 전쟁에 반대합니다.』 (それでも私は戦争に反対します。일본어, 2004년) - 「바그다드의 구두닦이」 수록.
- 『나, 고양이 말을 알아』 (わたし、猫語がわかるのよ일본어, 2004년) - 「하얀 넥타이의 노와」 수록.
- 『소설 50 - 당신에게 보내는 "저자로부터의 메시지"』 (小説50 - あなたへの「著者からのメッセージ」일본어, 2005년) -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에 대한 인터뷰 수록.
- 『아버지와 딸의 초상』 (父と娘の肖像일본어, 2006년) - 「사랑하는 아버지의 그 말」 수록.
- 『그날, 그 맛 - "식의 기억"으로 더듬는 쇼와사』 (あの日、あの味 - 「食の記憶」でたどる昭和史일본어, 2007년) - 「냉동 흰살 생선의 대패밥」 수록.
- 『텔레비전 뉴스는 끝나지 않는다』 (テレビニュースは終わらない일본어, 2007년) - 대담 「이라크 일본인 인질 사건에서 드러난 것」 수록.
- 『희인(稀人)이여 더욱 격렬하게, 더욱 자유롭게』 (希人よ もっと激しく、もっと自由に일본어, 2000년) - 「러시아어 통역사 요네하라 마리」 수록.
- 『숙모의 음모』 (叔母の陰謀일본어, 2004년) - 요미우리 신문에 게재된 단편 소설.
- 『선생님의 서재 - 일러스트 르포 "책"이 있는 작업실』 (センセイの書斎 - イラストルポ「本」のある仕事場일본어, 2006년) - 요네하라 마리(작가·동시통역사)의 「파일과 상자의 정보 정리술」 부분 수록.
- 『일자일회 - 지금, 뭔가 하나만, 글자를 쓴다면?』 (一字一会 - いま、何か一つだけ、字を書くとしたら?일본어, 2006년) - 『주간 금요일』 연재를 단행본화한 것으로, 요네하라 마리의 신작 에세이가 수록되었다.
3.4. 기타 언어판 저서
- 『프라하의 소녀시대』 (한국어, 2006년) -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의 번역본.
- 『마녀의 한 다스』 (한국어, 2007년)
- 『속담인류학 -- 속담으로 풀어 본 지구촌 365일』 (한국어, 2007년) - 『타인의 속담 닮은꼴 - 속담 인류학』의 번역본.
- 『팬티 인문학』 (한국어, 2010년) - 『팬티의 체면 샅바의 위신』의 번역본.
- 『요네하라 마리의 통역 현장』 (중국어, 2016년) - 『불성실한 미녀인가 정숙한 추녀인가』의 번역본.
- 『여행자의 아침식사』 (중국어, 2017년)
- 『요네하라 마리』 (중국어, 2018년) - 『사람과 사물 6 『요네하라 마리』』의 번역본.
4. 영향 및 평가
요네하라 마리는 그녀의 독특한 시각과 문체로 일본 문학과 공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번역이나 통역 경험을 넘어, 이문화 간의 오해와 소통의 어려움,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 독자와 비평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의 논픽션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에 대해 오야 소이치 논픽션 상 심사위원 니시키 마사아키는 "무서운 작품. 거침없이 써 내려갔는데도 그것이 폐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의 데생을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면서도 인물들이 행간에서 선명하게 솟아오른다. 질투가 날 정도로 훌륭한 묘사력이다"라고 극찬했다. 또한 소설 『올가 모리소브나의 반어법』에 대해 분카무라 두마고 문학상 심사위원 이케자와 나쓰키는 "젊은 꿈과 순수함의 상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두운 사회 속에서 노년의 올가 모리소브나의 역동성으로 '아이들은 그 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고 언급하며, '어떤 천재적인 무용가의 기구한 운명을 따라가는 동시에, 소련이라는 참으로 기묘한 나라의 실태를 그리는 소설이어서, 이 이중성이 실로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동시통역이라는 전문 분야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으며, 특히 페레스트로이카와 소련 해체라는 격동의 시기에 국제적인 소통의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그녀의 글은 유머와 풍자 속에 사회적, 문화적 이슈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담고 있었으며, 이는 당대의 사회 및 문화적 이슈와 상호작용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사후에도 그녀에 대한 회고와 작가론이 활발히 이어졌다. 『유리이카』 2009년 1월호는 요네하라 마리 특집으로 꾸며졌으며, 『요네하라 마리, 그리고 러시아』 (2009년), 『요네하라 마리를 말하다』 (2009년), 여동생 이노우에 유리의 회고록 『언니 요네하라 마리 추억은 식욕과 함께』 (2016년), 『요네하라 마리 한밤의 태양은 계속 빛난다』 (2017년) 등 그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여러 서적이 출간되었다.
5. 사망
요네하라 마리는 2006년 5월 25일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자택에서 56세의 나이로 난소암으로 사망했다. 2003년 10월, 난소 낭종 진단을 받고 내시경으로 적출 수술을 받았는데, 낭종으로 생각되었던 것이 난소암이었고 전이 의심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곤도 마코토의 영향을 받아 개복수술을 통한 적출, 항암제 투여, 방사선 치료를 거부하고, 이른바 민간요법으로 면역 활성화 등을 시도했다. 1년 4개월 후에는 왼쪽 서혜부 림프절로의 전이가 확인되었고, 수술을 제안받았으나 또다시 거부하고 온열 요법 등을 시도했다.
투병 과정은 요네하라 마리의 저서 『얻어맞는 듯한 대단한 책』에 상세히 실려 있다. 그녀의 사망 소식은 2006년 5월 29일에 보도되었다. 사망 당시 그녀는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에서 "발명 마니아"를, 『주간 문춘』에서 "나의 독서 일기"를 각각 연재 중이었다. 또한 생전 마지막 저작은 『필승 짧은 이야기 기술』 (2005년)이 되었다.
그녀의 묘소는 정광명사에 있으며, 계명은 "정자원 로향묘훈대사"(浄慈院露香妙薫大姉일본어)이다. 사망 후인 7월 7일에는 일본 기자 클럽에서 "요네하라 마리 씨를 보내는 모임"이 열렸으며, 사토 마사루가 추도사를 낭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