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왕하오**(王皓, 王皓왕하오중국어)는 1983년 12월 15일에 태어난 중화인민공화국의 전직 탁구 선수이자 다수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이다. 그는 2009년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했으며, 2007년, 2008년, 2010년 세 차례 탁구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3회 연속 은메달을 획득하여 '영원한 은메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왕하오는 2007년 10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27개월 연속으로 ITTF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했으며, 탁구 역사상 주요 세계 대회 결승에 12차례 진출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아시아 탁구 선수권 대회, 아시안컵, 아시안 게임, 중국 전국체전 남자 단식에서 최소 한 번 이상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 말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현재는 중국 남자 탁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왕하오는 이면 타법(RPB)을 탁월한 기술로 구사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기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왕하오는 1983년 12월 15일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장춘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베이징 대학을 졸업했으며, 신장은 1.75 m, 체중은 70 kg이다. 1996년 지린성 탁구팀에 입단하며 탁구 경력을 시작했고, 1998년에는 중국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프로 선수로 전환했다.
3. 선수 경력
왕하오는 1998년 중국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여 프로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래 16년간 중국 탁구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탁구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2014년 말에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3.1. 국가대표 경력
왕하오는 1996년 지린성 탁구팀에 입단하여 탁구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1998년에는 중국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프로 선수로 전환했다. 그는 2000년대 중국 남자 탁구를 이끌었던 '트로이카' 중 한 명으로, 마린 및 왕리친 선수와 함께 탁구계의 정점에 섰다. 2007년 10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27개월 연속으로 ITTF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며 그의 강력함을 입증했다. 2010년 1월에는 마룽에게 랭킹 1위 자리를 내주었으나, 2011년 4월 다시 세계 랭킹 1위를 탈환하며 꾸준한 기량을 선보였다.
3.2. 경기 스타일 및 장비
왕하오는 펜홀더 그립을 사용하는 선수로, 특히 이면 타법(RPB, Reverse Penhold Backhand)의 선구자이자 완성형으로 불린다. 그의 경기 스타일은 셰이크핸드 전형의 백핸드 드라이브에 버금가는 강력한 회전량과 파워를 자랑하며, 테이블 양쪽에서 뛰어난 공격 및 수비 기술을 보여주었다. 펜홀더 그립의 손목 자유도가 높아 포핸드 쪽에서 많은 양의 스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프로 펜홀더 선수들과 달리, 왕하오는 서브 시 테이블 안쪽으로 매우 느리고 짧게 놓인 공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백핸드 샷에 이면 타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백핸드 전용 이면 타법 스타일은 처음에는 부적절하다고 여겨졌으며, 그가 국가대표팀에 처음 합류했을 때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하오는 이를 발전시켜 백핸드 드라이브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혁신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확립했다. 한 탁구팀 감독은 중국식 펜홀더 선수 중 백핸드로 연속해서 맞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선수는 왕하오가 유일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또한, 그는 전진에서의 안정적인 양핸드 카운터 플레이, 랠리에서의 강점, 이면 타법에서 나오는 독특한 구질의 플릭, 그리고 뛰어난 블록 기술을 겸비했다. 아시아 선수로서는 드물게 유럽 선수들처럼 횡회전 계열의 서브를 넣어 랠리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왕하오가 사용한 주요 장비는 다음과 같다.
- 블레이드: DHS 허리케인 하오 블레이드 (왕하오 전용 블레이드 N656) 또는 쿄효 N301-중국식.
- 포핸드 러버: DHS 네오 스카이라인 III 블루 스폰지 또는 국천3 블루 스폰지 40도.
- 백핸드 러버: 버터플라이 스라이버 탑시트 (브라이스 스폰지 포함) 또는 국광3 화이트 스폰지 37도.
3.3. 세계 랭킹 및 주요 수상
왕하오는 선수 경력 동안 ITTF 세계 랭킹 1위를 여러 차례 기록했다. 2004년 12월, 2007년 10월부터 2009년 7월까지, 그리고 2011년 4월부터 9월까지 세계 랭킹 1위를 유지했다. 특히 2007년 10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27개월 연속으로 세계 랭킹 1위를 지켰다. 그는 주요 세계 대회 결승에 12차례 진출하여 이 부문에서 기록을 세웠다. 2010년에는 세계 탁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4. 은퇴 및 지도자 활동
왕하오는 2014년 12월 20일 동료 탁구 선수인 하오 슈하이(Hao Shuai) 선수의 아들 백일 잔치에 참석하여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2014년 12월 23일 자신의 메타블로그를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 발표문에서 왕하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부터 은퇴를 생각했지만, 세대교체기에 중심을 잡아줄 인물이 필요하다는 대표팀 사정으로 2014년 세계대회까지 활동했다. 이제는 후배들이 완전한 자리를 잡았으므로 홀가분하게 현역 생활을 접는다"고 밝혔다. 이로써 2014년 초 은퇴했던 마린과 왕리친에 이어 왕하오까지 은퇴하면서 2000년대 중국 남자 탁구를 이끌었던 '트로이카' 세 명 모두 같은 해에 현역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왕하오는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의 변신을 선언했으며, 중국 탁구 슈퍼리그의 바위(八一) 팀에서 코치를 맡았다. 2017년 ITTF 월드 투어 독일 오픈에서는 판전둥 선수의 코치로 활동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023년부터는 중국 남자 탁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4. 주요 업적
왕하오는 선수 경력 동안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올림픽,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탁구 월드컵 등 주요 대회에서 다수의 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최정상급 선수임을 입증했다.
4.1. 올림픽
왕하오는 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3회 연속 은메달을 획득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 은메달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단식 은메달,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단식 은메달, 남자 단체전 금메달
그는 올림픽 탁구 남자부 최다 메달 기록(은메달 3개, 금메달 2개)을 보유하고 있다.
4.2.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왕하오는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총 9개의 금메달을 포함한 다수의 메달을 획득했다.
- 2003년 파리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복식 은메달, 혼합 복식 동메달
- 2004년 도하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05년 상하이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복식 금메달
- 2006년 브레멘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07년 자그레브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식 동메달, 남자 복식 은메달
- 2008년 광저우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09년 요코하마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식 금메달, 남자 복식 금메달 (파트너: 천치)
- 2010년 모스크바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11년 로테르담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식 은메달, 남자 복식 동메달
- 2012년 도르트문트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13년 파리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식 은메달
- 2014년 도쿄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체전 금메달
4.3. 월드컵
왕하오는 탁구 월드컵에서 남자 단식 3회 우승을 포함한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 2004년 항저우 월드컵: 남자 단식 동메달
- 2005년 리에주 월드컵: 남자 단식 은메달
- 2006년 파리 월드컵: 남자 단식 은메달
- 2007년 바르셀로나 월드컵: 남자 단식 금메달,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08년 리에주 월드컵: 남자 단식 금메달
- 2010년 두바이 월드컵: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10년 마그데부르크 월드컵: 남자 단식 금메달
- 2011년 마그데부르크 월드컵: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11년 파리 월드컵: 남자 단식 은메달
- 2013년 광저우 월드컵: 남자 단체전 금메달
4.4. 아시안 게임 및 아시안컵
왕하오는 아시아 지역 주요 대회에서도 다수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 아시안 게임
-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남자 단식 금메달,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남자 단식 은메달, 남자 복식 금메달
- 아시안컵
- 2005년 뉴델리 아시안컵: 남자 단식 금메달
- 2006년 고베 아시안컵: 남자 단식 금메달
- 2009년 항저우 아시안컵: 남자 단식 금메달
- 아시아 탁구 선수권 대회
- 2003년 방콕 아시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식 금메달, 남자 단체전 금메달, 남자 복식 동메달
- 2005년 제주도 아시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07년 양저우 아시아 탁구 선수권 대회: 남자 단식 금메달, 남자 단체전 금메달, 남자 복식 은메달
- 중국 전국체전
- 22001년 제9회 전국체전: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09년 제11회 전국체전: 남자 단식 금메달, 혼합 복식 금메달, 남자 단체전 금메달
- 2013년 전국체전: 남자 단식 4위, 단체전 금메달 (인민해방군 팀)
4.5. ITTF 프로 투어 및 그랜드 파이널스
왕하오는 ITTF 프로 투어 및 그랜드 파이널스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대회 | 연도 | 단식 | 복식 |
---|---|---|---|
멜버른 오픈 | 1999 | 32강 | 8강 |
하이난 오픈 | 2001 | 8강 | 8강 |
서울 오픈 | 2001 | 32강 | 8강 |
요코하마 오픈 | 2001 | 16강 | 우승 |
스코브데 오픈 | 2001 | 32강 | 16강 |
파룸 오픈 | 2001 | 우승 | 준우승 |
벨스 오픈 | 2002 | 16강 | 4강 |
카이로 오픈 | 2002 | 우승 | 4강 |
칭다오 오픈 | 2002 | 4강 | 16강 |
포트 로더데일 오픈 | 2002 | 32강 | 8강 |
마그데부르크 오픈 | 2002 | 64강 | |
아인트호벤 오픈 | 2002 | 우승 | 4강 |
크로아티아 오픈 | 2003 | 우승 | 8강 |
제주 오픈 | 2003 | 16강 | 4강 |
광저우 오픈 | 2003 | 준우승 | 준우승 |
브레멘 오픈 | 2003 | 8강 | 8강 |
오르후스 오픈 | 2003 | 8강 | 우승 |
말뫼 오픈 | 2003 | 16강 | 우승 |
아테네 오픈 | 2004 | 우승 | 준우승 |
평창 오픈 | 2004 | 준우승 | 우승 |
싱가포르 오픈 | 2004 | 16강 | 4강 |
우시 오픈 | 2004 | 준우승 | 4강 |
장춘 오픈 | 2004 | 준우승 | 우승 |
고베 오픈 | 2004 | 32강 | 4강 |
도하 오픈 | 2005 | 8강 | 우승 |
하얼빈 오픈 | 2005 | 4강 | 준우승 |
선전 오픈 | 2005 | 준우승 | 4강 |
요코하마 오픈 | 2005 | 4강 | 8강 |
벨레네 오픈 | 2005 | 우승 | 4강 |
자그레브 오픈 | 2006 | 4강 | 우승 |
도하 오픈 | 2006 | 4강 | 우승 |
쿠웨이트 시티 오픈 | 2006 | 32강 | 4강 |
쿤산 오픈 | 2006 | 4강 | 4강 |
요코하마 오픈 | 2006 | 준우승 | 우승 |
자그레브 오픈 | 2007 | 16강 | 우승 |
벨레네 오픈 | 2007 | 우승 | 8강 |
도하 오픈 | 2007 | 8강 | 8강 |
살와 컵 오픈 | 2007 | 16강 | 8강 |
지바 오픈 | 2007 | 우승 | 준우승 |
난징 오픈 | 2007 | 준우승 | 우승 |
선전 오픈 | 2007 | 우승 | 우승 |
툴루즈 오픈 | 2007 | 준우승 | 우승 |
브레멘 오픈 | 2007 | 8강 | 준우승 |
스톡홀름 오픈 | 2007 | 우승 | 우승 |
쿠웨이트 시티 오픈 | 2008 | 8강 | 우승 |
도하 오픈 | 2008 | 준우승 | 4강 |
장춘 오픈 | 2008 | 우승 | |
요코하마 오픈 | 2008 | 준우승 | |
대전 오픈 | 2008 | 4강 | 우승 |
상하이 오픈 | 2008 | 준우승 | 준우승 |
쿠웨이트 시티 오픈 | 2009 | 준우승 | 4강 |
톈진 오픈 | 2009 | 우승 | 4강 |
서울 오픈 | 2009 | 4강 | 우승 |
도하 오픈 | 2010 | 16강 | 우승 |
쿠웨이트 시티 오픈 | 2010 | 8강 | 4강 |
베를린 오픈 | 2010 | 준우승 | 4강 |
쑤저우 오픈 | 2010 | 8강 | 4강 |
벨레네 오픈 | 2011 | 4강 | 우승 |
셰필드 오픈 | 2011 | 4강 | 준우승 |
도하 오픈 | 2011 | 8강 | 4강 |
두바이 오픈 | 2011 | 우승 | 4강 |
도르트문트 오픈 | 2011 | 4강 | 준우승 |
선전 오픈 | 2011 | 4강 | 준우승 |
쑤저우 오픈 | 2011 | 16강 | 준우승 |
슈베하트 오픈 | 2011 | 16강 | 우승 |
스톡홀름 오픈 | 2011 | 준우승 | 16강 |
벨레네 오픈 | 2012 | 8강 | 준우승 |
도하 오픈 | 2012 | 준우승 | |
인천 오픈 | 2012 | 4강 | 준우승 |
상하이 오픈 | 2012 | 16강 | 우승 |
포즈난 오픈 | 2012 | 우승 | 준우승 |
쿠웨이트 시티 오픈 | 2013 | 4강 | |
도하 오픈 | 2013 | 4강 | 준우승 |
인천 오픈 | 2013 | 4강 | 8강 |
장춘 오픈 | 2013 | 준우승 | 4강 |
쑤저우 오픈 | 2013 | 16강 | |
쑤저우 오픈 | 2013 | 16강 | |
두바이 오픈 | 2013 | 8강 | |
마그데부르크 오픈 | 2014 | 16강 | 우승 |
청두 오픈 | 2014 | 8강 | 4강 |
스톡홀름 오픈 | 2014 | 4강 | 우승 |
ITTF 프로 투어 그랜드 파이널스
대회 | 연도 | 단식 | 복식 |
---|---|---|---|
스톡홀름 프로 투어 그랜드 파이널스 | 2002 | 4강 | |
광저우 프로 투어 그랜드 파이널스 | 2003 | 우승 | |
베이징 프로 투어 그랜드 파이널스 | 2004 | 4강 | 준우승 |
홍콩 프로 투어 그랜드 파이널스 | 2006 | 우승 | |
베이징 프로 투어 그랜드 파이널스 | 2007 | 준우승 | 준우승 |
마카오 프로 투어 그랜드 파이널스 | 2008 | 준우승 | |
런던 프로 투어 그랜드 파이널스 | 2011 | 4강 | 준우승 |
항저우 프로 투어 그랜드 파이널스 | 2012 | 준우승 |
5. 개인사
왕하오는 2010년에 옌 보야(Yan Boya)를 만나 2013년에 결혼했다. 같은 해에 아들 왕 루이팅(Wang Ruiting)을 얻었다. 왕하오는 자신의 아들이 탁구 선수의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6. 평가 및 영향
왕하오는 탁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특히 그의 혁신적인 경기 스타일과 올림픽에서의 독특한 서사는 탁구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1. "영원한 은메달리스트"와 올림픽 서사
왕하오는 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3회 연속 은메달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모두 결승에 진출했으나 아쉽게도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다.
-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당시 상대 전적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던 대한민국의 유승민 선수에게 패하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같은 중국의 마린 선수에게 패했다.
-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역시 같은 중국의 장지커 선수에게 패하며 3연속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러한 독특한 이력 때문에 그는 '영원한 은메달리스트(Forever Silver)'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비록 단식 금메달의 한은 풀지 못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올림픽 탁구 남자부 최다 메달 기록(은메달 3개, 금메달 2개)을 보유하고 있다.

6.2. 이면 타법의 선구자
왕하오는 이면 타법(RPB)을 발전시키고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탁구 기술 발전에 혁신적인 영향을 미쳤다. 왕하오 이전에도 마린, 류궈량 등 중국식 펜홀더를 사용하여 국제 무대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많았으나, 이들은 주로 단면 직선 쇼트 위주로 플레이하여 일본식 펜홀더 전형의 단면 타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왕하오는 이면 타법 위주의 공격 스타일을 사용해 백핸드 드라이브를 자유롭게 구사함으로써 셰이크핸드 전형의 백핸드 드라이브 못지않은 강력한 회전량과 파워를 발휘했다. 이는 펜홀더 선수들이 백핸드 약점을 보완하고 양핸드 공격을 강화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의 이러한 혁신적인 스타일은 후배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 중국의 쉬신, 홍콩의 웡춘팅 등 많은 펜홀더 선수들이 왕하오의 이면 타법을 계승하여 활약하고 있다. 그의 기술적 진보는 현대 탁구의 경기 양상과 펜홀더 전형의 진화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7. 관련 항목
- 탁구
- 펜홀더
- 이면 타법
-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
- 올림픽의 탁구 경기
- 탁구 월드컵
- 아시안 게임
- 마린 (탁구 선수)
- 왕리친
- 장지커
- 마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