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왕리청 9단은 바둑 기사로서의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그의 생애는 대만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의 프로 활동에 이르기까지 바둑에 대한 깊은 헌신으로 특징지어진다.
1.1. 출생 및 성장 배경
왕리청은 1958년 11월 7일 타이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바둑에 재능을 보이며 일찍이 프로 바둑 기사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1.2. 일본 이주 및 프로 입단
1971년 13세의 나이로 일본에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바둑 수련에 매진했다. 이듬해인 1972년 14세의 나이로 프로 바둑 기사로 입단하며 기재를 인정받았다. 그의 사범은 카노 요시노리였다. 1988년에는 최고 단수인 9단으로 승단하며 일본 바둑계의 정상급 기사로 자리매김했다.
2. 주요 활동 및 업적
왕리청은 일본 바둑계에서 수많은 국내외 타이틀을 획득하며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특히 2000년대 초반에는 일본 7대 타이틀 중 세 개를 동시에 보유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2.1. 프로 경력 전개
왕리청은 1972년 프로 입단 이후 꾸준히 기량을 발전시켜 1988년 9단으로 승단했다. 그는 1981년 제6기 신인왕전 우승을 시작으로 주요 국내 기전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1983년 제14기 신예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1994년에는 제1기 아콤배에서 우승했고, 명인전 리그에 진입하여 이후 5년 연속 리그에 재적했으며, 혼인보 리그에는 1986년 이래 6회 진출하는 등 꾸준히 최고 수준의 기량을 유지했다.
그는 1995년 제43회 왕좌전에서 조치훈 9단을 꺾고 첫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다. 1997년에는 제44기 NHK배에서 우승했으며, 1998년에는 제2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우승하며 첫 국제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 왕좌전에서 다시 우승했고, 기성전 최고기사 결정전에 통산 7회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0년에는 제2회 춘란배에서 우승하며 두 번째 국제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했고, 같은 해 제24회 기성전에서 조치훈 9단을 꺾고 우승하며 일본 바둑계의 최강자 중 한 명으로 입지를 굳혔다. 2001년에는 제25회 기성전에서 조선진 9단을 상대로 우승을 차지하며 타이틀을 방어했고, 십단전에서도 우승하며 겹경사를 누렸다. 2002년에는 제26회 기성전에서 류시훈 9단을 꺾고 3연패를 달성했다.
2003년에는 제27회 기성전에서 야마시타 케이고 9단에게 아쉽게 준우승했지만, 여전히 주요 대회에서 활약했다. 같은 해 제16회 후지쯔배 8강에 진출했으며, 제2회 CSK배 바둑아시아대항전에서는 대만 대표로 참가했다. 2005년에는 제1회 중환배에서 박영훈 9단에게 준우승을 기록했다. 왕리청은 프로 경력 동안 총 21개의 우승 타이틀과 23개의 준우승을 기록하며 일본 바둑 역사상 총 타이틀 수에서 공동 10위에 올라 있다.
2.2. 주요 국내 타이틀
왕리청은 일본 바둑계의 주요 국내 타이틀에서 다수의 우승과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래는 그의 주요 국내 타이틀 전적이다.
타이틀 | 우승 | 준우승 |
---|---|---|
기성 | 3 (2000-2002) | 1 (2003) |
명인 | 1 (1998) | |
혼인보 | 1 (1998) | |
십단 | 4 (2001-2004) | 2 (1996, 2005) |
왕좌 | 4 (1995, 1998-2000) | 2 (1996, 2001) |
아콤배 | 1 (1994) | 1 (2001) |
NHK배 | 1 (1997) | 2 (1988, 2003) |
신인왕전 | 1 (1981) | 1 (1986) |
NEC컵 | 3 (1989, 1998, 2002) | |
학성전 | 4 (1989, 1993, 1999, 2000) | 1 (1990) |
하야고 선수권 | 2 (1992, 1997) | |
신예전 | 1 (1983) | |
총리배 | 1 (1980) | |
총계 | 19 | 18 |
2.3. 주요 국제 타이틀
왕리청은 국제 무대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세계 바둑계에 이름을 알렸다.
타이틀 | 우승 | 준우승 |
---|---|---|
LG배 | 1 (1998) | |
춘란배 | 1 (2000) | 1 (2001) |
후지쯔배 | 2 (1992, 1997) | |
중환배 | 1 (2004) | |
총계 | 2 | 4 |
또한 대륙별 기전인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는 1997년에 준우승을 기록했다.
2.4. 국제 기전 성적
왕리청은 다양한 국제 바둑 기전에 참가하여 다음과 같은 성적을 기록했다.
기전 | 1988 | 1989 |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
잉씨배 | 16강 | - | 24강 | - | 24강 | - | 16강 | - | 불참 | - | 불참 | ||||||||||
후지쯔배 | 불참 | 불참 | 8강 | 3위 | 준우승 | 16강 | 불참 | 불참 | 불참 | 준우승 | 8강 | 불참 | 불참 | 16강 | 16강 | 8강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16강 |
동양증권배 | 불참 | 불참 | 불참 | - | 불참 | 불참 | 8강 | 불참 | - | 16강 | 불참 | 중지 | - | ||||||||
삼성화재배 | - | 16강 | 32강 | 불참 | 16강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
LG배 | - | 24강 | 우승 | 16강 | 8강 | 4강 | 16강 | 16강 | 24강 | 16강 | 32강 | 불참 | 불참 | 불참 | |||||||
춘란배 | - | 8강 | 우승 | 준우승 | - | 16강 | - | 24강 | - | 불참 | - | 불참 | |||||||||
도요타배 | - | 8강 | - | 불참 | - | 불참 | - | 불참 | |||||||||||||
중환배 | - | 준우승 | 8강 | - | 16강 | 중지 | |||||||||||||||
TV아시아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4강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준우승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4강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농심배 | - | 불참 | 불참 | 0:1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불참 |
- 각 기전의 성적 표기: 우승 (우승), 준우승 (준우승), 3위 (3위), 4강 (4강), 8강 (8강), 16강 (16강), 24강 (24강), 32강 (32강), 불참 (×), 중지 (기전 중단).
3. 개인 생활
왕리청은 개인 생활에서도 바둑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의 딸인 오케이(王景怡왕징이중국어)는 프로 2단 기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인 왕징훙(王景弘왕징훙중국어)과 조카인 장정핑(張正平장정핑중국어), 장위안룽(張淵龍장위안룽중국어) 또한 프로 바둑 기사이다.
4. 평가 및 영향
왕리청은 일본 바둑계에서 오랜 기간 정상급 기사로 활약하며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기성, 십단, 왕좌 등 일본의 주요 7대 타이틀 중 세 개를 석권하며 그랜드슬램에 근접한 성과를 보였다. 국제적으로도 LG배와 춘란배에서 우승하며 세계 바둑의 강자임을 입증했다. 그의 꾸준한 활약과 다수의 타이틀 획득은 일본 바둑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후학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일본 바둑 역사상 총 타이틀 수에서 1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그의 업적은 일본 바둑사에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5. 관련 항목
- 바둑
- 일본기원
- 조치훈
- 야마시타 케이고
- 박영훈
- 류시훈
- 조선진
- 9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