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더스틴 엘리 화이트사이드 (Dustin Eli Whiteside더스틴 엘리 화이트사이드영어, 1979년 10월 22일 출생)는 미국의 전 야구 포수이며, 현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로빙 캐칭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신장 1.8 m (6 ft) 0.1 m (2 in), 체중 100 kg (220 lb)이며, 오른손으로 타격하고 던졌다. 화이트사이드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카고 컵스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델타 주립 대학교를 졸업한 후 2001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6라운드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었다. 오리올스 소속으로 7년간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했으며, 2005년에 9경기만 메이저리그에 출전했다. 이후 미네소타 트윈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거쳐 2009년 자이언츠에서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여 조너선 산체스의 노히트 노런 경기를 포수로 이끌었다. 2010년에는 자이언츠의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 초기 생애 및 배경
더스틴 엘리 화이트사이드는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대한 열정을 키웠으며, 학업과 스포츠를 병행하며 성장했다.
2.1. 출생 및 성장 과정
화이트사이드는 1979년 10월 22일 미시시피주 뉴 알바니에서 태어났다. 그는 할아버지 소유의 80 acre 규모 농장에서 자랐다. 화이트사이드는 W. P. 대니얼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야구와 축구를 병행했으며, 1998년에 졸업했다. 그의 회색 머리카락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는 이에 대해 "익숙해졌습니다. 빠지지 않는 한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2. 학력
고등학교 졸업 후, 화이트사이드는 델타 주립 대학교에 진학하여 3년 동안 경영학을 전공했다. 델타 주립 대학교 야구팀에서 그는 3년 연속 올-아메리칸, 걸프 사우스 컨퍼런스 올스타, 올-지역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타율 .390, 출루율 .440, 장타율 .620를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3. 드래프트
델타 주립 대학교 3학년이던 2001년, 화이트사이드는 2001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173순위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며 프로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3. 선수 경력
더스틴 엘리 화이트사이드는 2001년 프로 데뷔 이후 여러 팀을 거치며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긴 선수 생활을 보냈다.
3.1.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 (2001-2007)
화이트사이드는 2001년 싱글-A 델마바 쇼어버즈에서 마이너리그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61경기(212타석)에서 타율 .250, 53안타, 7홈런, 28타점을 기록했으며, 도루 저지율 41%를 기록했다. 홈런 부문에서는 팀 내 2위를 차지했다. 다음 시즌인 2002년에는 싱글-A 어드밴스드 프레더릭 키스와 더블-A 보위 베이삭스에서 뛰었다. 프레더릭에서 80경기(313타석)에 출전하여 타율 .259, 89안타, 8홈런, 42타점을 기록했고, 보위에서는 27경기(99타석)에서 타율 .263, 26안타, 2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두 리그를 합쳐 107경기(412타석)에서 107안타, 10홈런, 53타점을 올렸다.
2003년에는 재활 등판을 제외하고 보위에서만 뛰었다. 81경기(265타석)에서 타율 .204, 54안타, 1홈런, 23타점을 기록했으며, 수비에서는 .989의 수비율과 37%의 도루 저지율을 보였다. 2004년에도 보위에서 활약했는데, 5월 17일 애크론 에어로스전과 7월 28일 이리 시울브스전에서 각각 두 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시즌 18홈런으로 오리올스 구단 내 4위에 올랐다.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는 타율 .279를 기록했으나, 이후에는 .206로 하락했다. 90경기(297타석)에서 타율 .253, 75안타를 기록했으며, 수비율은 .986이었다. 원정 경기에서는 타율 .310을 기록한 반면, 홈 경기에서는 .187에 그쳤다. 시즌 후에는 애리조나 폴 리그의 피오리아 자벨리나스에서 18경기 동안 타율 .329, 20타점을 기록했다.
2005년, 화이트사이드는 트리플-A 오타와 링스로 승격되었고, 오리올스는 그를 지도하기 위해 베테랑 포수 살 파사노를 영입했다. 7월 4일, 헤로니모 길이 부상자 명단(DL)에 오르자 화이트사이드는 오리올스에 콜업되었다. 그는 다음 날 뉴욕 양키스와의 12대3 패배 경기에서 파사노의 수비 교체로 출전하며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나흘 뒤, 첫 메이저리그 선발 출전 경기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콧 캐시디를 상대로 타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첫 안타를 신고했다. 그는 6경기에 출전하여 두 개의 송구 실책을 범했는데, 그 중 하나는 중요한 실책이었다. 7월 19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도루 시도 시 2루에 악송구를 던져 조 마우어가 3루에서 폭투로 동점 득점을 올리게 했고, 팀은 4대3으로 패했다. 화이트사이드는 하비 로페즈가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하자 7월 25일 오타와로 다시 내려갔다. 오타와에서 95경기(317타석)에 출전하여 타율 .233, 74안타, 4홈런, 27타점을 기록했으며, 도루 저지율은 40%였다. 9월에도 다시 콜업되어 3경기에 더 출전했다. 오리올스에서 총 9경기(12타석)에 출전하여 3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2006년, 화이트사이드는 오리올스 로스터 진입에 "장거리 슛"으로 간주되었지만, 4월 1일 최종 로스터 정리 시까지 스프링 트레이닝에 남아 오타와로 보내졌다. 5월 21일 로체스터 레드 윙스와의 경기에서 4타점을 기록했고, 7월 23일부터 24일까지 노퍽 타이즈와의 경기에서 3안타 경기를 연속으로 펼쳤다. 2006년 오타와에서 92경기(315타석)에 출전하여 타율 .244, 77안타, 11홈런, 47타점을 기록했다. 홈 경기에서는 타율 .281을 기록한 반면, 원정 경기에서는 .201에 그쳤다. 2007년에는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했지만, 오리올스가 알베르토 카스티요를 영입함에 따라 3월 27일 마이너리그로 재배정되었다. 시즌을 오리올스의 트리플-A 계열팀인 노퍽 타이즈에서 시작했지만, 18경기에서 타율 .180에 그치자 5월 11일 보위로 재배정되었다. 6월 18일부터 7월 12일까지는 오른쪽 광대뼈 골절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복귀 후 7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지만, 8월 6일 뇌진탕으로 시즌 아웃되었다. 보위에서 42경기(141타석)에 출전하여 타율 .291, 41안타, 4홈런, 30타점을 기록했다. 2007년 시즌 후, 그는 자유 계약(FA)를 신청했으며, 오리올스에서 7년간 단 9경기만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3.2. 미네소타 트윈스 조직 시절 (2008)
2007년 11월 24일, 화이트사이드는 2008년 시즌을 위해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했다. 그는 인터내셔널 리그 소속 로체스터 레드 윙스에서 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167을 기록한 후, 4월 30일 라이언 조겐슨이 경기력 향상 약물 복용으로 인한 출장 정지 징계에서 복귀하면서 방출되었다.
3.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절 (2009-2012)
트윈스에서 방출된 지 5일 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화이트사이드를 영입했다. 그는 그해 남은 기간 동안 퍼시픽 코스트 리그 소속 트리플-A 프레즈노 그리즐리스에서 뛰었다. 2008년 프레즈노 소속 포수 중 가장 많은 4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38, 36안타, 2홈런, 22타점을 기록했다. 수비율은 .986이었으나, 도루 저지율은 7%에 불과했다. 로체스터와 프레즈노를 합쳐 57경기(175타석)에서 타율 .229, 40안타, 3홈런, 23타점을 기록했다.
3.3.1. 메이저리그 데뷔 및 주요 활약
2009년 시즌은 다시 프레즈노에서 시작했으며, 34경기(116타석)에서 타율 .241, 28안타, 6홈런, 24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5월 24일 파블로 산도발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자이언츠는 화이트사이드를 콜업하여 벵기 몰리나의 백업 포수 역할을 맡겼다. 이로써 그는 4년 만에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고, 내셔널 리그 팀 소속으로는 처음이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3타석 1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맷 케인은 화이트사이드에 대해 "그는 정말 대단합니다. 경기를 하지 않는 날에도 투수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공을 던졌는지, 어떤 구종이었는지 물어보며 자신의 시간을 활용하는 선수입니다. 심지어 상대 팀을 만나지 않더라도, 상대 타자들을 어떻게 아웃시켰는지 계속 파악하죠. 그는 항상 배우는 선수입니다"라고 칭찬했다.
2009년 7월 10일, 몰리나가 아내의 출산으로 인해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되자 화이트사이드가 대신 포수 마스크를 썼다. 랜디 존슨의 부상으로 선발 등판한 조너선 산체스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산체스의 노히트 노런이 더 놀라운지, 자신이 그 경기의 포수였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지 묻자 화이트사이드는 "아마 제가 포수였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겁니다"라고 답했다.
2009년 8월 5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브라이언 모엘러를 상대로 자신의 첫 메이저리그 홈런이자 만루 홈런을 터뜨리며 자이언츠의 10대6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바비 본즈, 데이브 킹맨, 브랜든 크로포드, 브라이언 달리모어와 함께 첫 홈런을 만루 홈런으로 기록한 자이언츠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해 그는 49경기(126타석)에서 29안타, 2홈런, 13타점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993의 수비율과 39%의 도루 저지율을 보였다.
3.3.2. 월드 시리즈 우승 (2010년)
2010년, 화이트사이드는 선수 경력 처음으로 스프링 트레이닝을 거쳐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합류했다. 그는 시즌 대부분 동안 산체스의 전담 포수 역할을 맡아 19번의 선발 등판 경기를 함께했다. 6월 30일 몰리나가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된 후, 버스터 포지가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하게 되면서 화이트사이드의 출전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는 자이언츠의 마지막 57경기 중 단 6경기만 선발 출전했다. 정규 시즌을 73경기 출전, 타율 .238로 마쳤다. 비록 플레이오프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는 플레이오프 기간 내내 팀 로스터에 포함되어 있었고, 자이언츠가 레인저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생애 첫 우승 타이틀을 획득했다.
3.3.3. 역할 변화 및 부상
2011년에도 화이트사이드는 백업 포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5월 25일 포지가 시즌 아웃되는 다리 부상을 당하자, 그는 크리스 스튜어트와 함께 선발 출전 시간을 나누며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6월 22일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안타(3루타 포함)와 시즌 최다인 3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5대2 승리에 기여했다. 7월 14일 샌디에이고와의 12회 연장전에서 6대2로 승리한 경기에서는 시즌 최다인 3안타를 기록했다. 8월 19일부터 8월 25일까지는 뇌진탕으로 7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82경기(213타석)에서 타율 .197, 42안타, 4홈런, 17타점을 기록했다. 수비에서는 25%의 도루 저지율을 보였다. 시즌 후 그는 논텐더 방출되어 잠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으나, 곧 자이언츠와 1년 계약을 맺고 재계약했다.
2012년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화이트사이드는 스튜어트와 백업 포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그러나 자이언츠는 결국 유망주 헥터 산체스에게 그 역할을 주기로 결정했다. 산체스는 수비를 보완하기 위해 프레즈노에서 시즌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유망한 타자였다. 스튜어트는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었고, 화이트사이드는 프레즈노로 내려갔다. 프레즈노에서 60경기(201타석)에 출전하여 타율 .224, 45안타, 1홈런, 20타점을 기록했다. 2012년 7월 18일, 헥터 산체스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화이트사이드는 프레즈노에서 콜업되어 6경기에 출전했다. 8월 1일 산체스가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하자 다시 프레즈노로 내려갔다. 이후 8월 26일 3순위 포수로 다시 콜업되었다. 2012년 자이언츠에서 12경기에 출전하여 11타석에서 1안타(타점 2루타)를 기록했다. 그는 5번의 도루 시도 중 3번을 저지했다. 이번에는 플레이오프 로스터에서 제외되었고, 자이언츠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4경기 만에 스윕하며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3.4. 이적 및 마이너리그 생활 (2012-2014)
헥터 산체스의 등장으로 인해 화이트사이드는 2012년 시즌 후 자이언츠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그는 "자이언츠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팀과 구단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선수들이 있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즐겼습니다"라고 말했다. 2012년 11월 5일, 화이트사이드는 뉴욕 양키스에 웨이버로 영입되었고, 11월 26일 메이저리그 계약 62.50 만 USD, 마이너리그 계약 20.00 만 USD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틀 후, 양키스는 앤디 페티트를 위해 화이트사이드를 지명 할당했다. 12월 3일, 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의해 웨이버로 영입되었다.
9일 후, 화이트사이드는 다시 텍사스 레인저스에 의해 웨이버로 영입되었다. 그는 2013년 1월 3일 레인저스에 의해 지명 할당되었고, 제이슨 프레이저를 위한 40인 로스터 자리를 비워주기 위해 로스터에서 제외되었다. 화이트사이드는 다음 날 웨이버를 통과하여 레인저스의 트리플-A 계열팀인 퍼시픽 코스트 리그 소속 라운드 록 익스프레스로 배정되었다.
화이트사이드는 2013년 스프링 트레이닝에 비로스터 초청 선수로 참가하여 5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2013년 시즌을 라운드 록 익스프레스에서 로빈슨 치리노스와 호세 펠릭스와 함께 포수 출전 시간을 나누며 보냈다. 익스프레스에서 67경기(225타석)에 출전하여 타율 .187, 5홈런, 25타점을 기록했다. 10월 1일, 그는 자유 계약을 신청했다.
3.5. 시카고 컵스 시절 (2014)
2013년 11월 15일, 화이트사이드는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을 받았다. 그는 존 베이커와 조지 코타라스와 백업 포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으며, 베이커가 그 역할을 맡게 되자 3월 27일 퍼시픽 코스트 리그 소속 트리플-A 아이오와 컵스로 배정되었다. 6월 3일 웰링턴 카스티요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아이오와에서 그의 계약이 선택되어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다. 화이트사이드는 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120을 기록했다. 6월 22일 카스티요가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하자 그는 지명 할당되었고, 6월 25일 아이오와 컵스로 완전히 이적되었다. 2014년 10월, 화이트사이드는 자유 계약을 선택했다.
4. 은퇴 및 지도자 경력
선수 생활을 마감한 더스틴 엘리 화이트사이드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돌아와 지도자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4.1. 선수 은퇴
2015년 오프시즌 동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으나, 2015년 1월 26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4.2. 지도자 활동
선수 은퇴 후, 화이트사이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돌아와 불펜 포수로 활동했다. 현재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로빙 캐칭 인스트럭터로 재직 중이다.
5. 통산 기록
더스틴 엘리 화이트사이드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5.1. 메이저리그 타격 기록
다음은 화이트사이드의 메이저리그 통산 타격 기록이다.
연도 | 팀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볼넷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
2005 | BAL | 9 | 12 | 12 | 1 | 3 | 0 | 0 | 0 | 3 | 1 | 0 | 0 | 0 | 0 | 0 | 0 | 0 | 2 | 1 | .250 | .250 | .250 | .500 |
2009 | SF | 49 | 134 | 127 | 15 | 29 | 6 | 1 | 2 | 43 | 13 | 0 | 0 | 0 | 0 | 4 | 1 | 3 | 30 | 4 | .228 | .269 | .339 | .607 |
2010 | 56 | 141 | 126 | 19 | 30 | 6 | 1 | 4 | 50 | 10 | 1 | 2 | 3 | 0 | 8 | 0 | 3 | 35 | 4 | .238 | .299 | .397 | .696 | |
2011 | 82 | 236 | 213 | 14 | 42 | 8 | 2 | 4 | 66 | 17 | 2 | 1 | 1 | 2 | 18 | 3 | 2 | 59 | 8 | .197 | .264 | .310 | .574 | |
2012 | 12 | 14 | 11 | 3 | 1 | 1 | 0 | 0 | 2 | 2 | 0 | 0 | 0 | 1 | 1 | 0 | 1 | 4 | 0 | .091 | .214 | .182 | .396 | |
2014 | CHC | 8 | 26 | 25 | 0 | 3 | 1 | 0 | 0 | 4 | 2 | 1 | 0 | 0 | 1 | 0 | 0 | 0 | 8 | 0 | .120 | .115 | .160 | .275 |
통산 (6년) | 216 | 563 | 514 | 52 | 108 | 22 | 4 | 10 | 168 | 45 | 4 | 3 | 4 | 4 | 31 | 4 | 9 | 138 | 17 | .210 | .265 | .327 | .592 |
- 2006년, 2007년, 2008년, 2013년에는 메이저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5.2. 마이너리그 경력
화이트사이드는 프로 경력의 상당 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2001년 싱글-A 델마바 쇼어버즈에서 시작하여, 2002년에는 싱글-A 어드밴스드 프레더릭 키스와 더블-A 보위 베이삭스에서, 2003년과 2004년에는 보위 베이삭스에서 주로 활동했다. 2005년에는 트리플-A 오타와 링스로 승격되었고, 2006년과 2007년에도 트리플-A와 더블-A를 오갔다. 2008년에는 미네소타 트윈스 산하 트리플-A 로체스터 레드 윙스에서 잠시 뛰었고,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트리플-A 프레즈노 그리즐리스에서 활동했다. 2012년에도 프레즈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으며, 2013년에는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 트리플-A 라운드 록 익스프레스에서, 2014년에는 시카고 컵스 산하 트리플-A 아이오와 컵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5.3. 등번호
화이트사이드는 프로 경력 동안 다음과 같은 등번호를 사용했다.
- 15 (2005년 시즌 중)
- 77 (2005년 시즌 중)
- 22 (2009년 ~ 2012년)
- 32 (2014년)
6. 개인사
더스틴 엘리 화이트사이드는 가족과 지역 사회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6.1. 가족 및 결혼
화이트사이드는 2004년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귀던 에이미와 결혼했다. 그들은 휘트(Whit)와 웨이크(Wake)라는 두 아들을 두고 있으며, 두 아들은 TFC 뉴 알바니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6.2. 지역 사회 활동
2010년 월드 시리즈에서 자이언츠가 우승한 후, 화이트사이드의 고향인 미시시피주 뉴 알바니에서는 "엘리 화이트사이드의 날"을 선포하고 그에게 명예 시민증을 수여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