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및 배경
에벨린 비트머슐룸프는 스위스의 유서 깊은 정치 가문에서 태어나 법률 교육을 받고 공직에 입문하기 전 변호사로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1.1. 가족 및 출생
에벨린 비트머슐룸프는 1956년 3월 16일, 스위스 그리종주 페르스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레온 슐룸프는 1979년부터 1987년까지 연방 의원을 지냈으며, 1984년에는 스위스 연방 대통령을 역임했습니다. 이로써 비트머슐룸프는 외젠 루피에 이어 아버지와 자녀가 모두 연방 의원을 지낸 두 번째 인물이자, 스위스 연방 의원에 선출된 여섯 번째 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연방 의원인 도리스 로이트하르트, 시모네타 소마루가 및 전 연방 의원 미슐린 칼미레와 함께 'SAFFA 2020' 프로젝트의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1.2. 교육 및 법조계 경력
비트머슐룸프는 취리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1981년에 법학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1990년에는 법학 박사 학위(LLD)를 받았습니다. 학위를 마친 뒤 1987년부터 1998년까지 변호사로 활동하며 법률 실무 경험을 쌓았습니다.
2. 칸톤 정치 경력
연방 정치에 진출하기 전, 에벨린 비트머슐룸프는 그리종주 내에서 지방 법원 판사 및 칸톤 정부의 구성원으로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1. 그리종주 지방 법원 및 정부
변호사 경력과 병행하여 비트머슐룸프는 1985년에 트린 지방 법원 판사로 선출되었고, 1991년부터 1997년까지는 해당 법원의 의장을 맡았습니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는 스위스 국민당의 일원으로 그리종주의 대의원(Grand Council)으로 활동했습니다. 1998년에는 그리종주 칸톤 정부의 구성원으로 선출되었는데, 이는 그리종주 칸톤 정부에 선출된 최초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2001년과 2005년에 그리종주의 주지사 역할을 수행하며 칸톤 내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3. 연방 의회 선출 및 초기 역할
비트머슐룸프는 2007년 스위스 연방 의원 선거에서 이례적인 과정을 통해 선출되었으며, 곧바로 중요한 연방부의 장관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3.1. 연방 의회 선출 과정
2007년 12월 12일 연방 의원 선거에서, 비트머슐룸프는 기독교민주인민당, 스위스 사회민주당, 그리고 스위스 녹색당 파벌에 의해 당시 연방 의원이었던 크리스토프 블로허의 대안 후보로 지명되었습니다. 1차 투표에서 그녀는 116표를 얻어 블로허의 111표를 넘어섰습니다. 2차 투표에서는 125표를 얻어 115표를 얻은 블로허를 제치고 스위스 연방의 110번째 연방 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6표는 무효표였습니다. 그녀는 2007년 12월 13일에 선출을 수락했습니다.

3.2. 사법 및 경찰부 장관
연방 의원으로 선출된 후 에벨린 비트머슐룸프는 크리스토프 블로허의 이전 직책인 연방 법무경찰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녀는 2008년 1월 1일부터 2010년 10월 31일까지 이 직책을 수행하며 스위스 법무 및 경찰 관련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4. 정당 활동 및 정치적 전환
연방 의원 선출 후, 에벨린 비트머슐룸프는 소속 정당인 스위스 국민당과의 심각한 갈등에 직면했습니다. 이 갈등은 결국 그녀의 탈당과 새로운 정당인 보수민주당 창당으로 이어져 스위스 정치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4.1. 스위스 국민당과의 갈등 및 탈당
연방 의원 선거 후, 비트머슐룸프가 당의 지지 없이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출을 수락하자, 스위스 국민당의 전국 지도부는 그녀를 당의 '배신자'로 맹렬히 비난하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선출 직후 그녀와 그녀의 동료인 사무엘 슈미트는 국민당의 의회 그룹 회의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스위스 정치에서 전례 없는 사태로, 2008년 4월 2일 국민당 전국 지도부는 비트머슐룸프에게 연방 의원직에서 즉시 사임하고 당을 떠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비트머슐룸프는 이를 거부했고, 국민당은 그녀를 출당시키도록 그리종주 지부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스위스 정당들은 법적으로 칸톤(주) 정당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국민당 전국 차원에서 그녀를 직접 출당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종주 지부는 비트머슐룸프의 편을 들었고, 이에 2008년 6월 1일 국민당 전국 지도부는 그리종주 지부를 당에서 추방했습니다.
4.2. 보수민주당 창당 및 활동
국민당의 그리종주 지부가 추방되자, 이들은 곧바로 보수민주당BDP독일어을 창당했습니다. 사무엘 슈미트가 소속되어 있던 국민당의 베른 지부 또한 이 새로운 당에 합류했습니다. 비트머슐룸프는 보수민주당의 핵심 인물이 되어 당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이 당은 2021년 중앙당과 합병되었습니다.
5. 연방 의회에서의 주요 활동
에벨린 비트머슐룸프는 연방 의원 재임 기간 동안 스위스 정부의 핵심 부처인 재무부를 이끌었으며, 부통령과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5.1. 재무부 장관
2010년 두 명의 새로운 연방 의원 선출 후의 내각 개편에 따라, 비트머슐룸프는 퇴임하는 한스-루돌프 메르츠의 후임으로 연방 재무부 장관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2010년 11월 1일부터 2015년 12월 31일까지 재무부 장관으로 재임하며 스위스의 재정 및 경제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이 시기는 국제 금융 시장의 불안정 속에서 스위스의 금융 비밀주의 종식을 상징하는 중요한 정책 변화가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5.2. 연방 부통령 및 대통령
비트머슐룸프는 2011년에 미슐린 칼미레 대통령과 함께 스위스 연방 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녀는 2011년 1월 1일부터 2011년 12월 31일까지 부통령직을 수행했습니다. 이어서 2011년 12월 14일, 그녀는 2012년의 스위스 연방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1999년 루트 드라이푸스, 2007년과 2011년의 미슐린 칼미레, 2010년의 도리스 로이트하르트에 이어 스위스의 네 번째 여성 대통령이자, 세 번째 연속 여성 대통령이었습니다. 연방 의원의 교체가 잦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녀는 당시 대통령직을 맡지 않은 연방 의원 중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한 의원이었습니다. 그녀의 대통령 임기는 2012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였으며, 이후 울리 마우러가 차기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6. 사임 및 이후 활동
2015년 스위스 총선에서 스위스 국민당이 29%가 넘는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약진하자, 에벨린 비트머슐룸프는 2015년 10월 28일 연방 의원 재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며 사임을 결정했습니다. 그녀의 후임으로는 가이 파르믈랭이 선출되었습니다. 비트머슐룸프는 2015년 12월 31일 연방 의원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습니다.
7. 저술
비트머슐룸프는 학술적인 기여도 남겼는데, 그녀의 박사 학위 논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Voraussetzungen der Konzession bei Radio und Fernsehen. (방송 및 텔레비전 사업 허가 요건) 박사 학위 논문. Helbing und Lichtenhahn, Basel 1990.
8. 평가 및 영향
에벨린 비트머슐룸프의 정치 경력은 스위스 정치 시스템에 미친 영향과 그녀의 리더십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8.1. 긍정적 평가
비트머슐룸프는 복잡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도 스위스 연방 의회에서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재무부 장관으로서 그녀의 임기는 스위스의 금융 정책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은행 비밀주의 종식'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녀는 강경한 당 노선에 반대하여 연방 의원직을 수락하고 새로운 중도 보수 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스위스 정치의 다원성과 민주적 과정을 수호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8.2. 비판 및 논란
비트머슐룸프는 스위스 국민당 지도부로부터 '배신자'라는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당의 지지 없이 연방 의원직을 수락한 그녀의 결정은 국민당을 분열시키고 새로운 정당의 탄생을 야기했으며, 이는 스위스 정치사에서 전례 없는 당내 갈등으로 기록됩니다. 이러한 정치적 행보는 그녀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소속 정당과의 불화로 인한 심한 압박을 감수해야 했던 점을 보여줍니다.
9. 개인 생활
에벨린 비트머슐룸프는 결혼했으며, 세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