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에드거 마르티네즈(Edgar Martínez영어, 1963년 1월 2일 ~ )는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코치이다. 현역 시절에는 MLB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지명타자와 3루수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에는 매리너스의 타격 코치 및 타격 어드바이저로 활동했다. 1982년 매리너스와 계약한 뒤 1987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으며, 27세가 되던 1990년이 되어서야 주전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1995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결정적인 2루타인 '더블(The Double)'을 쳐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고 시애틀 야구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2004년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기까지 18년간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서 시애틀 매리너스 한 팀에서만 뛰었다.
마르티네즈는 올스타에 7회, 실버 슬러거에 5회 선정되었으며, 타격왕 타이틀을 2회 획득했다. 그는 5,000타석 이상에서 타율 3할, 출루율 4할, 장타율 5할을 모두 기록한 18명의 MLB 선수 중 한 명이다. 그의 등번호 11번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으며,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2019년에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며 그 위상을 높였다.
2. 어린 시절과 배경
마르티네즈는 1963년 1월 2일 뉴욕 시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호세와 크리스티나 살가도 마르티네즈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두 살 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그는 푸에르토리코 도라도의 마과요라는 바리오에 사는 조부모님 손에서 자랐다. 마르티네즈는 스스로 영어와 컴퓨터 사용법을 독학했다. 11살 때 부모님이 화해하면서 형과 누나는 뉴욕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에드거는 조부모님과 함께 도라도에 남기로 결정했다.
어린 시절 마르티네즈는 1971년 월드 시리즈에서 같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로베르토 클레멘테가 경기하는 모습을 TV로 보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는 사촌인 카르멜로 마르티네즈와 함께 집 뒤뜰에서 야구를 했다. 당시 야구 스카우트들은 카르멜로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에드거는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는 푸에르토리코 미주 대학에 입학하여 경영학을 공부했다. 학업과 병행하여 준프로 야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낮에는 가구점 감독관으로, 밤에는 제너럴 일렉트릭 공장에서 일하는 두 가지 직업을 가졌다.
3. 선수 경력
마르티네즈의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경력은 여러 부침을 겪으며 시작되었으나, 결국 지명타자로서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3.1. 마이너리그 시절과 유망주
준프로 팀 감독의 제안으로 마르티네즈는 MLB 시애틀 매리너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 공장에서 밤샘 근무를 한 뒤 너무 피곤해서 방망이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할 정도였지만, 매리너스는 1982년 12월 12일 그와 계약금 4000 USD에 계약했다. 당시에는 적은 금액이었고, 푸에르토리코에서 벌고 있던 돈 때문에 계약을 거절할까도 생각했지만, 사촌 카르멜로의 설득으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마르티네즈는 1983년 A-쇼트 시즌 노스웨스트 리그의 벨링햄 매리너스 소속 3루수로 프로 데뷔를 했다. 첫 시즌 타율 .173, 홈런 0개, 안타 18개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그를 영입한 스카우트는 매리너스 단장 할 켈러를 설득하여 시즌 후 그를 애리조나 교육 리그에 배정했다. 켈러는 마르티네즈가 메이저리그에서 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최고의 유망주들에게만 주어지는 교육 리그에 그를 보내기를 꺼렸지만, 결국 그의 배정을 승인했고 마르티네즈는 이 리그에서 타율 .340을 기록하며 기량을 향상시켰다.
1984년에는 A 미드웨스트 리그의 워소 팀버스에서 타율 .303, 홈런 15개, 볼넷 84개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보였다. 1985년에는 AA 서던 리그의 채터누가 룩아웃츠와 AAA 퍼시픽 코스트 리그의 캘거리 캐논스에서 뛰었는데, 채터누가에서 111경기 타율 .258, 캘거리에서 20경기 타율 .353을 기록했다. 1986년에는 다시 채터누가로 돌아가 수비율 .960을 기록하며 모든 3루수 중 최고를 기록했다. 1987년 캘거리 소속으로 129경기에서 타율 .327, 홈런 10개, 2루타 31개를 기록하며 캘거리 팀 내에서 타율, 안타, 2루타, 출루율, 경기 수, 볼넷 부문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3.2. 메이저리그 데뷔와 초기 부진 (1987-1989)
마르티네즈는 1987년 9월 12일 3루수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으며, 첫 13경기에서 타율 .372를 기록하며 인상적인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매리너스는 짐 프레슬리를 주전 3루수로 기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르티네즈는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했다.
1988년 시즌은 캘거리에서 시작했지만, 5월 초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어 매리너스에서 4경기를 뛴 후 다시 캘거리로 돌아갔다. 캘거리에서는 타율 .363을 기록하며 퍼시픽 코스트 리그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 9월에는 다시 콜업되어 10경기에서 타율 .389를 기록했다. 두 번째 MLB 시즌이었던 1988년에는 총 14경기에서 타율 .281, 출루율 .351, 장타율 .406을 기록했다.
1989년에는 매리너스 개막전 로스터에 주전 3루수로 이름을 올렸으나, 초반에 부진한 모습을 보여 5월에 다시 캘거리로 강등되었다. 캘거리에서 32경기 동안 타율 .345를 기록했지만, 매리너스에서는 65경기에서 타율 .240에 그쳤다. 정규 시즌 후에는 푸에르토리코 리그에서 겨울 야구를 뛰며 43경기에서 타율 .424를 기록, 리그 전체 1위에 오르며 카를로스 바에르가와 함께 공동 MVP로 선정되었다. 푸에르토리코 리그에서의 성공은 그의 잠재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3.3. 돌파구와 첫 번째 타격왕 (1990-1992)
1990년, 마르티네즈는 NaN 경 USD의 1년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짐 프레슬리가 더 이상 매리너스 소속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넬 콜스가 개막전 3루수로 나섰다. 짐 르페브르 감독은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동안 "다넬 콜스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의 뒤에는 에드거 마르티네즈밖에 없다"고 언급했지만, 콜스는 매리너스의 첫 6경기에서 5개의 실책을 범했다. 이에 르페브르 감독은 콜스를 외야수로 옮기고 마르티네즈를 3루수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마르티네즈는 144경기에서 타율 .302와 출루율 .397을 기록하며 팀 내 최고 타율을 달성했다.
1991년 시즌을 앞두고 마르티네즈는 NaN 경 USD 상당의 2년 계약을 체결했다. 1991년 7월 14일 주에 첫 MLB 이 주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1991년 시즌을 타율 .307, 출루율 .405, 장타율 .452로 마쳤는데, 이는 모두 당시까지의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1992년에는 그의 첫 올스타전에 선정되었으며, 7월과 8월에 걸쳐 두 차례 MLB 이 달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시즌 동안 마르티네즈는 시애틀과 NaN 경 USD에 3년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당시 시애틀이 체결한 계약 중 가장 큰 규모였다. 1992년 시즌이 끝날 무렵, 마르티네즈는 타율 .343으로 모든 MLB 선수 중 1위를 차지하며 첫 타격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는 시애틀 프랜차이즈 역사상 첫 타격왕이자 최고 단일 시즌 타율이었다(이 기록은 이후 스즈키 이치로에 의해 경신되었다). 또한 프랭크 토마스와 함께 MLB 최다 2루타 기록(46개)을 달성했으며, 시즌 최다 2루타 팀 기록을 세웠다(이 기록은 이후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의해 경신되었다). 시즌 후 그는 3루수로서 첫 아메리칸 리그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다.
3.4. 부상과 지명타자 전환 (1993-1994)
1993년 시즌을 앞두고 밴쿠버의 BC 플레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범 경기 도중, 마르티네즈는 1루와 2루 사이 잔디의 지퍼가 풀린 이음새에 걸려 햄스트링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는 시즌 초 42경기에 결장했으며, 시즌이 끝나기 전에 두 번 더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1994년에는 시즌 첫 타석에서 상대 투수 데니스 마르티네즈가 던진 공에 오른쪽 손목을 맞고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 부상들과 1994년 MLB 파업으로 인해 그는 1993년과 1994년 시즌 동안 총 131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1994년에 89경기에 출전했는데, 이 중 65경기를 3루수로, 23경기를 지명타자로, 한 경기는 대주자로 나섰다. 이 시기 잦은 부상으로 인해 마르티네즈는 지명타자로 포지션을 전환하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선수 경력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3.5. 지명타자로서의 지배력 (1995-2001)

1995년 마르티네즈는 풀타임 지명타자로 뛰기 시작했다. 그는 6월에 이 달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타율 .402, 출루율 .537, 장타율 .761을 기록했고, 또 다시 이 주의 선수상을 받았다. 그는 또한 1995년 올스타전에 선정되었고, 11개 공격 부문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시즌 말에는 타율 .356으로 두 번째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타이틀을 획득했는데, 이는 팀 기록이었다. 또한 리그에서 121 득점, 52 2루타, 출루율 .479, OPS 1.107을 기록하며 팀 내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는 모 본과 앨버트 벨에 이어 아메리칸 리그 최우수 선수상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 해 그는 두 번째 실버 슬러거 상과 첫 번째 최우수 지명타자상을 수상했다.
1996년, 마르티네즈는 타율 .327을 기록하며 1996년 MLB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그는 시즌 중 3루수로 한 경기에 출전했다가 존 마르자노와 충돌하여 갈비뼈 4개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21경기에 결장했다. 1996년 8월 21일, 마르티네즈는 통산 1,000번째 MLB 안타를 기록했다. 1997년 MLB 올스타전에 선정되었고, 시즌 말에는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다. 그는 타율 .330으로 아메리칸 리그에서 2위를 차지했다. 매리너스는 1997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볼티모어 오리올스에게 4경기에서 패배했다. 마르티네즈는 이 시리즈에서 타율 .188에 그쳤다. 그는 두 번째 최우수 지명타자상을 수상했다. 1998년 마르티네즈는 타율 .320에 홈런 29개를 기록했다. 그는 출루율 .429로 아메리칸 리그 1위를 차지했으며, 세 번째 최우수 지명타자상을 수상했다.
1999년, 마르티네즈는 양쪽 눈이 제대로 정렬되지 않아 깊이 인식이 저하되는 사시 진단을 받았다. 1999년 시즌에는 출루율 .447로 아메리칸 리그 1위를 기록하며 타율 .337을 기록했다. 그는 8월 14일 통산 1,500번째 안타를 기록했다. 2000년에는 다섯 번째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그는 개인 단일 시즌 최다인 37개의 홈런을 기록했으며, 145 타점으로 아메리칸 리그 타점왕을 차지했다. 매리너스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며, 마르티네즈는 2000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타율 .364를 기록하며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물리쳤다. 그러나 매리너스는 2000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 패배했다. 마르티네즈는 아메리칸 리그 MVP 투표에서 6위를 차지했으며, 최우수 지명타자상을 수상했다.
2001년, 마르티네즈는 다시 올스타전에 선정되었다. 그는 타율 .306에 116 타점을 기록했으며, 이는 10번째 3할 이상 시즌(7연속)이자 6번째 100 타점 이상 시즌이었다. 시애틀은 시즌 116승을 기록하며 1906년 시카고 컵스가 세운 메이저리그 기록과 타이 기록을 세웠다. 마르티네즈는 2001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타율 .313에 홈런 2개를 기록하며 시애틀이 클리블랜드를 물리치는 데 기여했지만, 양키스에게 패배한 2001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타율 .150에 그쳤다. 그는 2001년에 실버 슬러거 상과 최우수 지명타자상을 수상했다.
3.5.1. "더블" (1995 ALDS)
q=47.5956, -122.3308|position=right
1995년 뉴욕 양키스와의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마르티네즈는 5경기 동안 타율 .571을 기록하며 18번 출루했다. 시리즈 4차전에서는 3점 홈런과 6-6 동점을 깨는 만루 홈런을 터뜨리며 11-8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에서 그가 기록한 7 타점은 단일 포스트시즌 경기 최다 타점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이 승리로 5전 3선승제 시리즈는 2승 2패 동률이 되어 5차전으로 이어졌다.
결정적인 5차전 11회말, 매리너스가 5-4로 뒤진 상황에서 마르티네즈는 잭 맥도웰을 상대로 2점 적시 2루타를 터뜨려 경기를 6-5로 승리시키며 시리즈를 3-2로 가져왔다. 이 승리로 매리너스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으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결국 6경기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패배했다. 마르티네즈는 이 2루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내 경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2루타를 기억한다. 그렇다, 그것이 내 경력을 정의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 2루타는 매리너스 팬들 사이에서 "더블(The Double)"이라는 이름으로 야구 역사에 남게 되었다. 매리너스의 1995년 포스트시즌 활약은 워싱턴 주 의회가 킹돔을 대체할 시애틀 전용 야구장 건설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필요한 대중적 지지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매리너스 감독 루 피넬라는 이를 "시애틀 야구를 구한 안타, 주루, 경기, 시리즈, 그리고 시즌"이라고 평가했다.
3.6. 선수 경력 후반과 은퇴 (2002-2004)
2002년, 마르티네즈는 다리 부상으로 인해 97경기 출전에 그쳤다. 햄스트링을 다쳐 경기 도중 교체되었고, 왼쪽 무릎 힘줄 파열로 수술을 받았다. 9월 8일까지 타율 .301을 기록했지만, 시즌 막판 슬럼프에 빠지며 최종 타율 .277로 시즌을 마쳤다. 2003년에도 마르티네즈는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렸다. 시즌 전반기에는 타율 .304를 기록하며 2003년 올스타전에 이름을 올렸다. 5월 2일, 마르티네즈는 통산 2,000번째 안타를 기록했다. 9월에는 파울 볼에 발을 맞아 발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어 시즌 종료까지 출전이 제한되었다. 그는 시즌을 타율 .294, 홈런 24개, 출루율 .403으로 마쳤다. 2003년에는 다섯 번째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는 등 통증, 다리 부상, 시력 문제로 고전했다. 매리너스 팀 전체가 부진하며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에서 밀려났고, 팀은 버키 제이콥슨에게 지명타자 출전 시간을 주기 시작했다. 2004년 8월 9일, 마르티네즈는 시즌 종료 후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르티네즈는 은퇴 결정과 시애틀에서의 경력에 대해 "힘들다, 정말 힘들다. 마음으로는 계속 뛰고 싶다. 하지만 몸이 다르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르티네즈는 2004년 시즌 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했다.
4. 선수 프로필
에드거 마르티네즈는 주로 지명타자로서 뛰었지만, 타격 능력뿐만 아니라 수비와 주루에서도 그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4.1. 타격 스타일과 타석에서의 집중력
마르티네즈는 정교한 배트 컨트롤로 타구를 그라운드 전체로 분산시키는 광각 타법과,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뛰어난 선구안을 특징으로 했다. 통산 타율은 우타자임에도 불구하고 .312라는 높은 타율을 기록했으며, 통산 출루율은 4할을 크게 넘겼다. 타석에서는 매우 끈기 있고 공을 잘 보는 타자로, 상대 투수가 자신에게 던지는 평균 투구 수가 매년 MLB 상위권에 랭크될 정도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같은 팀의 중심 타자인 켄 그리피 주니어나 알렉스 로드리게스 못지않은 타격 성적을 기록했으며, 특히 순수한 타격 능력을 나타내는 OPS에서는 매년 매우 높은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출루를 중시하는 스타일 때문에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면서도 다른 선수들의 그늘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아, 언론으로부터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저평가된 타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현역 시절에는 선구안과 더불어 중요한 순간에 빛을 발하는 뛰어난 클러치 히터로도 명성이 높았다. 1995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최종전, 2승 2패 상황에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을 건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5-4로 뒤진 11회말, 1루와 3루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마르티네즈는 잭 맥도웰로부터 좌익선상으로 역전 워크오프 2점 2루타를 날려 1루 주자 켄 그리피 주니어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 극적인 2루타는 "더블(The Double)"이라고 불리며 마르티네즈 자신도 이를 경력의 하이라이트로 꼽았다.
그는 선천적으로 오른쪽 눈에 사시가 있었기 때문에, 눈 근육을 움직이는 운동을 훈련 메뉴에 포함시켰다. 특히 경기 전에는 테니스 공에 쓰인 숫자를 읽는 훈련을 했는데, 시속 200 km/h에 가까운 속도로 배팅 머신에서 발사되는 공의 숫자를 읽으며 동체 시력을 단련했다고 알려져 있다.
마르티네즈는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 역사상 통산 출루율(.418), 출장 경기 수(2055), 2루타(514), 타점(1261), 득점(1219), 볼넷(1283) 등에서 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타율('.312'이전 수정에 따라 틀린 부분은 수정하지 않고 남겨두었습니다. 실제로는 {{cvt}}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해당 부분은 일반 텍스트로 전환하고 링크를 제거합니다.), 홈런(309), 안타(2247) 등은 구단 역대 2위 기록이다. 또한 지명타자로서 기록한 243개의 홈런은 2007년 프랭크 토마스가 경신하기 전까지 MLB 역대 1위 기록이었다. 단일 시즌 기록으로는 1996년 123개의 볼넷, 1995년 .479의 출루율이 구단 최고 기록이다. 단일 경기 기록으로는 1995년 6월 25일과 1996년 5월 11일에 기록한 3개의 2루타(타이 기록, 스즈키 이치로만이 여러 번 기록), 1992년 5월 3일의 2개의 3루타(타이 기록), 1999년 5월 17일의 5득점(타이 기록), 2004년 6월 24일의 5볼넷(타이 기록), 2004년 5월 15일의 3개 고의 4구(타이 기록), 2002년 8월 3일의 3개의 희생 플라이(타이 기록) 등이 있다.
4.2. 수비와 주루
지명타자로 전환하기 전에는 3루수로 활약했지만, 발에 대한 불안감으로 1994년부터 수비 기회가 극도로 줄어들었다.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인터리그 게임에서는 1루수로 수비를 맡기도 했다.
발 부상을 반복하기 전에는 평균 이상의 주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메이저리그 데뷔도 대주자였고, 첫 메이저리그 안타도 3루타였다. 그러나 부상 이후에는 어린 시절의 무릎 수술로 인해 무리할 수 없게 되어 전력 질주하는 기회가 제한되었고, 매우 발이 느려졌다. 이로 인해 같은 팀의 느린 주자였던 존 올러루드와 함께 스즈키 이치로에게 "각역정차"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주루 실수는 매우 적었고, 주력에 비해 도루를 시도하는 횟수는 많았다.
5. 코치 경력
2015년 6월 20일, 마르티네즈는 매리너스의 타격 코치로 고용되어 하워드 존슨을 대신했다. 마르티네즈가 코치로 부임한 94경기 동안 팀의 공격력은 존슨이 코치했던 68경기 동안의 타율 .233과 경기당 3.4 득점에서 타율 .260과 경기당 4.6 득점으로 향상되었다. 제리 디포토 단장은 시즌 후 로이드 매클렌돈 감독을 해고했지만, 마르티네즈는 유임시켰다.
마르티네즈는 2018년 시즌 말까지 매리너스의 타격 코치를 맡았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에 2018년 시즌 후 타격 코치에서 매리너스 구단의 타격 어드바이저 역할로 이동했다.
2024년 8월 22일, 재럿 드하트가 해고된 후 매리너스는 마르티네즈가 시즌 남은 기간 동안 팀의 타격 코치를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11월 25일, 마르티네즈는 케빈 자이처에게 타격 코치 자리를 넘겨주었지만, 구단의 타격 프로그램 총괄을 계속 맡으며 매리너스에 잔류할 예정이다.
6. 개인 생활과 자선 활동
마르티네즈는 홀리 비엘러를 블라인드 데이트에서 만났고, 1992년 10월에 결혼했다. 그들은 워싱턴 주 커클랜드에 거주하며 세 자녀(알렉스, 테사, 재클린)를 두고 있다. 마르티네즈는 2005년 설립된 플라자 은행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으로, 이 은행은 워싱턴 주 최초의 히스패닉계 은행이었다.
마르티네즈와 그의 아내 홀리는 시애틀 아동 병원에 시간과 돈을 기부했으며, 여기에는 그의 은퇴를 기념하여 매리너스가 설립한 '근육병 연구를 위한 에드거 마르티네즈 기금'과 T-모바일 파크에서 열리는 '아동 병원 연례 위싱 웰 나이트'가 포함된다. 마르티네즈는 또한 '부모 근육병 프로젝트', 오버레이크 병원 메디컬 센터, 메이크 어 위시 재단, '위싱 스타 재단', 유나이티드 웨이, 에스페란자, '페이지 어헤드 아동 문해 프로그램', 빅 브라더스 빅 시스터스, 보이스 앤 걸스 클럽, 그리고 매리너스 케어를 지원해 왔다. 그의 이러한 공헌으로 인해 2007년 6월 20일, 마르티네즈는 아이다호 보이시에서 열린 세계 스포츠 인도주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6년, 마르티네즈는 '이미지소스'의 두 임원과 함께 기업 상품 분야의 '브랜디드 솔루션즈'를 공동 설립했다. 그는 2010년 이 회사를 이미지소스에 매각했다. 2013년 시즌을 위해 매리너스는 마르티네즈, 현지 셰프 이든 스토웰, 바텐더 아누 압테와 협력하여 T-모바일 파크에 "에드거스 칸티나"를 만들었다.
7. 유산과 영예
에드거 마르티네즈는 야구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지명타자 포지션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의 업적은 수많은 영예와 기념 활동으로 기려지고 있다.
7.1. 야구와 지명타자 역할에 미친 영향
명예의 전당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는 자신이 상대하기 두려웠던 선수가 있느냐는 질문에 두려워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말하겠다. 힘든 상황에서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유일한 선수는 에드거 마르티네즈였다. 그 이유는 그를 아웃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웃음) 그를 아웃시킬 수 없었다. 어떻게 공을 던지든 상관없이 그를 아웃시킬 수 없었다. 오, 이런, 그는 내 번호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가져갔다. 그는 나에게서 모든 것을 얻어냈다"라고 말했다. 마르티네즈는 리베라를 상대로 19타수 11안타, 타율 .579를 기록했다. 역시 명예의 전당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즈 (친척 관계는 아님)도 에드거 마르티네즈를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타자 중 한 명으로 꼽았는데, 페드로는 에드거가 타석에서 매우 침착하고 "다른 누구라도 지워버릴 만한 투구를 파울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마르티네즈가 활약하기 전까지 지명타자는 좋은 타자가 드물었고, 지명타자의 이미지를 바꾼 선수로 평가받는다. 마르티네즈의 은퇴 후, MLB는 그를 기리기 위해 최우수 지명타자상을 "에드거 마르티네즈 상"으로 개칭했다. 또한, 마르티네즈가 매리너스에서 타격 코치로 지도했던 폴 몰리터 역시 최우수 지명타자상 수상 경력이 있는데, 이 개칭으로 인해 제자의 이름을 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7.2. 팀 및 리그 영예
2003년 9월 9일, 세이프코 필드에서 경기 전 행사로 마르티네즈는 히스패닉 헤리티지 야구 박물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4년 10월, 그의 은퇴 후 세이프코 필드 인근 시애틀 사우스 애틀랜틱 거리(워싱턴 주도 제519호선)의 일부 구간이 "에드거 마르티네즈 드라이브 사우스"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그의 은퇴식에서는 매리너스 구단이 예술가 미셸 러시워스가 그린 "높은 발차기 타격 자세"를 특징으로 하는 초상화를 그에게 선물했다. 2005년에는 팬 투표를 통해 '라티노 레전드 팀'의 3루수로 선정되었다.
그가 은퇴한 이후 매리너스 구단은 그의 등번호 11번을 다른 선수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구단 방침에 따라 2010년 그가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후보 자격을 처음 얻을 때까지는 정식으로 영구 결번될 자격이 없었다. 매리너스는 2007년 6월 2일 마르티네즈를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으며, 2017년 8월 12일 그의 등번호 1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이로써 마르티네즈는 켄 그리피 주니어에 이어 매리너스 역사상 두 번째 영구 결번 선수가 되었다.
푸에르토리코 도라도의 이길라르 지역에는 마르티네즈의 이름을 딴 스페인어 '콤플레호 데포르티보 에드거 마르티네즈'(Complejo Deportivo Edgar Martinez스페인어) 스포츠 단지가 건설되었다.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와 허리케인 어마로 인해 구조적 손상을 입었지만, NaN 경 USD의 복구 작업을 거쳐 2021년에 완공되었다. 이 단지에는 야구장, 육상 트랙, 농구 코트, 체육관 등이 있으며 학교 스포츠 대회가 열린다.
7.3.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0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을 처음 얻었을 때, 헌액에 필요한 득표율 75% 중 마르티네즈는 36.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일부 스포츠 작가들은 그의 타격 기록이 지명타자로서의 단일한 경력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보았지만, 다른 이들은 클로저와 같이 팀 승리에 한 이닝만 기여하고 타격이나 주루 등 다른 경기 측면에 관여하지 않는 전문 포지션과 비교하며 이를 반박했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마르티네즈가 자신이 "아웃시킬 수 없는 유일한 타자"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018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그의 9번째 후보 자격 연도에 마르티네즈의 득표율은 70.4%로 증가했다. 2019년 투표는 미국 야구 기자 협회 투표에서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으며, 그는 85.4%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켄 그리피 주니어에 이어 매리너스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두 번째 선수이자, 레드 러핑, 조 메드윅, 랠프 카이너, 짐 라이스, 팀 레인스에 이어 마지막 자격 연도에 선정된 여섯 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는 첫 번째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선정된 마리아노 리베라와 사후에 첫 번째 투표에서 선정된 로이 할러데이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2021년에는 시애틀의 T-모바일 파크 외부에 마르티네즈의 동상이 설치되었다.
8. 경력 통계
8.1. 타격 및 수비 통계
연도 | 팀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실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1987 | SEA | 13 | 46 | 43 | 6 | 16 | 5 | 2 | 0 | 25 | 5 | 0 | 0 | 2 | 1 | .372 | .413 | .581 | .994 |
1988 | 14 | 38 | 32 | 0 | 9 | 4 | 0 | 0 | 13 | 5 | 0 | 0 | 4 | 0 | .281 | .351 | .406 | .758 | |
1989 | 65 | 196 | 171 | 20 | 41 | 5 | 0 | 2 | 52 | 20 | 2 | 1 | 17 | 3 | .240 | .314 | .304 | .619 | |
1990 | 144 | 570 | 487 | 71 | 147 | 27 | 2 | 11 | 211 | 49 | 1 | 4 | 74 | 5 | .302 | .397 | .433 | .830 | |
1991 | 150 | 642 | 544 | 98 | 167 | 35 | 1 | 14 | 246 | 52 | 0 | 3 | 84 | 9 | .307 | .405 | .452 | .857 | |
1992 | 135 | 592 | 528 | 100 | 181 | 46 | 3 | 18 | 287 | 73 | 14 | 4 | 54 | 2 | '.343' | .404 | .544 | .948 | |
1993 | 42 | 165 | 135 | 20 | 32 | 7 | 0 | 4 | 51 | 13 | 0 | 0 | 28 | 1 | .237 | .366 | .378 | .744 | |
1994 | 89 | 387 | 326 | 47 | 93 | 23 | 1 | 13 | 157 | 51 | 6 | 2 | 53 | 3 | .285 | .387 | .482 | .869 | |
1995 | 145 | 639 | 511 | 121 | 182 | 52 | 0 | 29 | 321 | 113 | 4 | 3 | 116 | 19 | '.356' | '.479' | .628 | 1.107 | |
1996 | 139 | 634 | 499 | 121 | 163 | 52 | 2 | 26 | 297 | 103 | 3 | 3 | 123 | 12 | .327 | .464 | .595 | 1.059 | |
1997 | 155 | 678 | 542 | 104 | 179 | 35 | 1 | 28 | 300 | 108 | 2 | 4 | 119 | 11 | .330 | .456 | .554 | 1.009 | |
1998 | 154 | 672 | 556 | 86 | 179 | 46 | 1 | 29 | 314 | 102 | 1 | 1 | 106 | 4 | .322 | '.429' | .565 | .993 | |
1999 | 142 | 608 | 502 | 86 | 169 | 35 | 1 | 24 | 278 | 86 | 7 | 2 | 97 | 6 | .337 | '.447' | .554 | 1.001 | |
2000 | 153 | 665 | 556 | 100 | 180 | 31 | 0 | 37 | 322 | 145 | 3 | 0 | 96 | 8 | .324 | .423 | .579 | 1.002 | |
2001 | 132 | 581 | 470 | 80 | 144 | 40 | 1 | 23 | 255 | 116 | 4 | 1 | 93 | 9 | .306 | .423 | .543 | .966 | |
2002 | 97 | 407 | 328 | 42 | 91 | 23 | 0 | 15 | 159 | 59 | 1 | 1 | 67 | 8 | .277 | .403 | .485 | .888 | |
2003 | 145 | 603 | 497 | 72 | 146 | 25 | 0 | 24 | 243 | 98 | 0 | 1 | 92 | 7 | .294 | .406 | .489 | .895 | |
2004 | 141 | 549 | 486 | 45 | 128 | 23 | 0 | 12 | 187 | 63 | 1 | 0 | 58 | 10 | .263 | .342 | .385 | .727 | |
MLB 통산 (18년) | 2055 | 8672 | 7213 | 1219 | 2247 | 514 | 15 | 309 | 3718 | 1261 | 49 | 30 | 1283 | 113 | '.312' | '.418' | .515 | .933 |
년도 | 팀 | 1루수 | 3루수 | ||||||||||
---|---|---|---|---|---|---|---|---|---|---|---|---|---|
경기 | 자살 | 도움 | 실책 | 병살 | 수비율 | 경기 | 자살 | 도움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1987 | SEA | - | 12 | 13 | 19 | 0 | 1 | 1.000 | |||||
1988 | - | 13 | 5 | 8 | 1 | 1 | .929 | ||||||
1989 | - | 61 | 40 | 72 | 6 | 9 | .949 | ||||||
1990 | - | 143 | 89 | 259 | 16 | 27 | .928 | ||||||
1991 | - | 144 | 84 | 299 | 15 | 25 | .962 | ||||||
1992 | 2 | 16 | 2 | 0 | 1 | 1.000 | 103 | 72 | 209 | 17 | 24 | .943 | |
1993 | - | 16 | 5 | 11 | 2 | 1 | .889 | ||||||
1994 | - | 64 | 44 | 128 | 9 | 13 | .950 | ||||||
1995 | 3 | 29 | 1 | 1 | 0 | .968 | 4 | 1 | 3 | 1 | 0 | .800 | |
1996 | 4 | 28 | 1 | 1 | 3 | .967 | 2 | 1 | 0 | 0 | 0 | 1.000 | |
1997 | 7 | 86 | 4 | 1 | 5 | .986 | 1 | 0 | 0 | 0 | 0 | ---- | |
1998 | 4 | 22 | 6 | 0 | 3 | 1.000 | - | ||||||
1999 | 5 | 29 | 2 | 0 | 2 | 1.000 | - | ||||||
2000 | 2 | 12 | 1 | 0 | 3 | 1.000 | - | ||||||
2001 | 1 | 8 | 0 | 0 | 0 | 1.000 | - | ||||||
2004 | - | 1 | 0 | 0 | 0 | 0 | ---- | ||||||
MLB 통산 | 28 | 212 | 17 | 3 | 17 | .987 | 564 | 354 | 1008 | 78 | 90 | .946 |
8.2. 타이틀과 수상
- 타격왕: 2회 (1992년, 1995년)
- 타점왕: 1회 (2000년)
- 실버 슬러거 상: 5회
- 3루수 부문: 1회 (1992년)
- 지명타자 부문: 4회 (1995년, 1997년, 2001년, 2003년)
- 최우수 지명타자상: 5회 (1995년, 1997년, 1998년, 2000년, 2001년)
-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1회 (2004년)
-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 MVP: 2회 (1992년, 1995년)
- 월간 MVP: 5회 (1992년 7월·8월, 1995년 6월, 2000년 5월, 2003년 5월)
- 이 주의 선수: 7회
8.3. 기록과 업적
- MLB 올스타전 선정: 7회 (1992년, 1995년 ~ 1997년, 2000년 ~ 2001년, 2003년)
- 스포팅뉴스 올해의 팀: 4회 (1992년, 1995년, 1997년, 2001년)
- MLB 기록:
- 단일 시즌 지명타자 타율: .356 (1995년)
-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 기록:
- 통산 기록:
- 최다 경기: 2055경기
- 최다 타석: 8672타석
- 최다 타수: 7213타수
- 최다 득점: 1219득점
- 최다 2루타: 514개
- 최다 타점: 1261타점
- 최다 루타: 3718루타
- 최다 장타: 838개
- 최다 볼넷: 1283개
- 최다 희생플라이: 77개
- 최다 사구: 89개
- 최다 병살타: 190개
- 최고 출루율: .418
- 단일 시즌 기록:
- 최다 볼넷: 123개 (1996년)
- 최고 출루율: .479 (1995년)
- 단일 경기 기록:
- 최다 2루타: 3개 (1995년 6월 25일, 1996년 5월 11일) - 타이 기록
- 최다 3루타: 2개 (1992년 5월 3일) - 타이 기록
- 최다 득점: 5득점 (1999년 5월 17일) - 타이 기록
- 최다 볼넷: 5개 (2004년 6월 24일) - 타이 기록
- 최다 고의 4구: 3개 (2004년 5월 15일) - 타이 기록
- 최다 희생플라이: 3개 (2002년 8월 3일) - 타이 기록
- 통산 기록:
- 등번호: 11 (1987년 ~ 2004년, 2015년 ~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