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arly Life and Club Career
에데르 알레이수 지 아시스의 어린 시절 배경 정보와 함께, 그가 프로 경력을 시작한 시점부터 여러 클럽을 거쳐 활약한 과정을 상세히 다룹니다.
1.1. Birth and Youth
에데르 알레이수 지 아시스는 1957년 5월 25일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베스파시아누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으나, 일찍이 축구에 대한 재능을 보여주며 프로 선수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1.2. Club Career
에데르는 1975년 아메리카 미네이루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1976년까지 총 26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이후 1977년부터 1979년까지 그레미우에서 뛰며 47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넣었다. 그의 선수 경력 중 가장 두드러진 시기는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서의 활약으로, 1980년부터 1985년까지의 첫 번째 stint에서 79경기 27골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를 떠난 후 그는 1985년 인테르 지 리메이라를 거쳐 1986년에는 파우메이라스에서 8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1987년에는 산투스와 스포르치 헤시피에서 활약했고, 1988년에는 보타포구에서 6경기 1골을,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에서 잠시 뛰었다. 같은 해 파라과이의 세로 포르테뇨로 이적하기도 했다.
1988-1989 시즌에는 튀르키예로 건너가 말라티아스포르에서 카를루스와 세르지뉴와 함께 뛰었으며, 1989년에는 페네르바흐체에서 1경기에 출전했다. 이후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로 돌아와 19경기 2골을 추가했다. 1991년 다시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에서 9경기 3골을 기록했고, 1991년부터 1992년, 그리고 1995년에는 우니앙 상 조앙에서 뛰며 10경기 4골을 기록했다. 1993년에는 크루제이루에서 활동했다.
선수 경력 말년인 1994년부터 1995년까지 세 번째로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로 돌아와 21경기 2골을 기록하며 팀에 기여했다. 1996년에는 콘키스타 FC와 가마에서 뛰었고, 1997년 몬테스 클라루스 FC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 International Career
에데르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주요 국제대회에 참가했으며, 특히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그의 존재감을 세계적으로 알렸다.
에데르 알레이수는 1979년 5월부터 1986년 4월까지 브라질 국가대표팀 경기에 총 52번 출전했다.
2.1. 1982 FIFA World Cup
그는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지쿠, 소크라치스, 파울루 호베르투 파우캉 등과 함께 브라질의 '황금 사중주'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역대 최강의 국가대표팀으로 손꼽히는 선수단의 일원이었다.
대회 첫 경기인 소련과의 경기에서 에데르는 파울루 호베르투 파우캉의 도움을 받아 공중에 뜬 공을 약 25 yd 거리에서 강력한 힘과 정확한 조준으로 차 넣어 결승골을 기록했다. 소련의 골키퍼 리나트 다사예프는 그의 슈팅에 반응할 새도 없이 제자리에 멈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스코틀랜드와의 4대1 승리 경기에서는 슈팅을 하는 척 속임수를 쓴 뒤, 스코틀랜드의 수문장 앨런 러프의 키를 넘겨 페널티 박스 가장자리에서 군더더기 없는 득점을 성공시켰다. 아르헨티나와의 2차 조별 리그 경기에서는 약 30 yd 거리에서 직접 프리킥을 감아차 골대 위쪽을 강타했고, 이 슈팅은 지쿠의 선제골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에데르 알레이수는 1986년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이는 직전 시즌부터 지속된 기량 하락과 체력적인 문제 때문이었으며, 결정적으로 브라질 국가대표팀 연습 경기 도중 볼보이를 밀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여 대표팀에서 퇴출당했다.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86년 4월 페루와의 경기였으며, 이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며 아쉬운 마침표를 찍었다.
3. Playing Style and Characteristics
에데르 알레이수 지 아시스는 강력하고 정확한 왼발 슈팅으로 '오 카냥'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뛰어난 기술과 창의성으로 브라질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에데르는 선천적으로 왼발잡이 선수였다. 그는 주로 좌측 미드필더로 넓게 측면을 활용하며 플레이했지만, 공격수나 후방 공격수로서 자유로운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었다. 전성기에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측면 선수로서는 최상급의 주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창의적이고 탄탄한 체격을 갖추고 있었으며, 현란한 발기술과 세심한 볼 컨트롤 능력을 자랑했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매우 정확하고 강력한 왼발 감아차기였다. 그의 슈팅 중 하나는 무려 174.5 km/h에 달하는 속도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러한 파괴적인 슈팅 능력으로 팬들로부터 '대포'를 의미하는 오 카냥(O Canhão오 카냥포르투갈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왼발의 발등 안쪽이나 바깥쪽으로 공을 차서 어떤 방향으로든 공을 휘어차는 것이 가능했지만, 상대적으로 오른발은 왼발만큼 능숙하지 못했다. 페널티 박스 바깥이나 발리슛 상황에서의 슈팅 능력 외에도, 그는 프리킥 상황에서의 정확도와 세트피스 및 코너킥에서의 탁월한 볼 배급 능력, 그리고 정확한 롱 패스와 크로스 능력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4. Achievements and Honours
에데르 알레이수 지 아시스는 선수 경력 동안 다양한 팀과 개인적인 수상 기록을 남겼다.
4.1. Team Honours
에데르가 소속팀에서 획득한 주요 우승 기록은 다음과 같다.
- 그레미우
- 헤콩키스타: 1977
- 캄페오나투 가우슈: 1977, 1979
- 헤샤: 1978, 1979
- 토르네오 시우다드 데 로사리오: 1979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1980, 1981, 1982, 1983, 1985, 1995
- 투르누아 드 파리: 1982
- 트로페오 라몬 데 카란사: 1990
- 크루제이루
- 코파 두 브라지우: 1993
4.2. Individual Honours
개인적으로 수상한 상은 다음과 같다.
- 볼라 지 프라타: 1983
-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3위: 1983
5. Career Statistics
에데르 알레이수 지 아시스의 클럽 경력과 국가대표팀 경력을 통한 출장 및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
5.1. Club Statistics
클럽 경력 동안의 출장 및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 단, 모든 클럽에서의 상세한 통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클럽명 | 연도 | 출전 | 득점 |
---|---|---|---|
아메리카 미네이루 | 1975-1976 | 26 | 6 |
그레미우 | 1977-1979 | 47 | 14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1980-1985 | 79 | 27 |
파우메이라스 | 1986 | 8 | 1 |
보타포구 | 1988 | 6 | 1 |
페네르바흐체 | 1989 | 1 | 0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1989-1990 | 19 | 2 |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 1991 | 9 | 3 |
우니앙 상 조앙 | 1995 | 10 | 4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 1994-1995 | 21 | 2 |
5.2. International Statistics
국가대표팀 A매치 출장 및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득점 |
---|---|---|---|
브라질 | 1979 | 3 | 2 |
1980 | 4 | 0 | |
1981 | 12 | 0 | |
1982 | 10 | 3 | |
1983 | 11 | 3 | |
1985 | 10 | 0 | |
1986 | 2 | 0 | |
총합 | 52 | 8 |
에데르 알레이수의 국가대표팀 득점 목록
no.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득점 | 결과 | 대회 |
---|---|---|---|---|---|---|
1 | 1979년 5월 17일 | 마라카낭 경기장,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 파라과이 | - | 6-0 | 친선 경기 |
2 | 1979년 5월 31일 | 마라카낭 경기장,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 우루과이 | - | 5-1 | 친선 경기 |
3 | 1982년 5월 5일 | 카스텔랑, 상루이스, 브라질 | 포르투갈 | 2-0 | 3-1 | 친선 경기 |
4 | 1982년 6월 14일 |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경기장, 세비야, 스페인 | 소련 | 2-1 | 2-1 | 1982년 FIFA 월드컵 |
5 | 1982년 6월 18일 | 베니토 비야마린 경기장, 세비야, 스페인 | 스코틀랜드 | 3-1 | 4-1 | 1982년 FIFA 월드컵 |
6 | 1983년 4월 28일 | 마라카낭 경기장,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 | 칠레 | 2-1 | 3-2 | 친선 경기 |
7 | 1983년 9월 1일 | 세하 도라다 경기장, 고이아니아, 브라질 | 에콰도르 | 4-0 | 5-0 | 1983년 코파 아메리카 |
8 | 1983년 10월 13일 | 데펜소레스 델 차코 경기장, 아순시온, 파라과이 | 파라과이 | 1-1 | 1-1 | 1983년 코파 아메리카 |
6. Legacy and Evaluation
에데르 알레이수 지 아시스는 그의 재능과 경기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동시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행동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6.1. Positive Evaluation
에데르는 당대 최고의 왼발잡이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은 수많은 골을 만들어냈으며, 특히 O Canhão오 카냥포르투갈어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킥력은 리벨리누나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같은 브라질 축구의 전설적인 키커들과 비교될 정도였다. 그는 단순히 득점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뛰어난 창의성과 현란한 기술, 세심한 볼 컨트롤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공격 전개를 이끌었다. 1982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황금 사중주'의 핵심 멤버로서 보여준 활약은 그를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각인시켰으며, 그의 플레이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필드 위에서 예측 불가능한 플레이와 강력한 한 방으로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였다.
6.2. Criticism and Controversies
에데르 알레이수는 경기장 내외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행동과 성격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훈련에 성실히 임하기보다는 연회를 즐기는 것을 선호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이로 인해 감독 및 동료 선수들과의 불화가 잦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비효율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기복이 심한 성격, 그리고 경기 내외에서의 자제력 부족은 여러 감독들과의 마찰을 야기했다. 1986년 FIFA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서 제외된 주요 원인 중 하나도 브라질 대표팀 연습 경기 도중 볼보이를 밀치는 등 논란의 행동을 보인 것이었다. 또한,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였던 1986년 4월 페루전에서 퇴장을 당하며 아쉬운 뒷맛을 남겼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뛰어난 재능과 축구 실력은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