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경력
어영담은 1532년에 태어나 만호로서 초기 경력을 시작했으며, 무과 급제를 통해 본격적인 관직 생활에 나섰다. 이후 여러 지방관을 역임하며 행정 및 군사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1.1. 출생 및 성장 배경
어영담은 1532년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함종 어씨이고 거주지는 경상도 함안이었다. 그의 부친은 내금위 적순부위(정7품) 겸 충무위 부사맹을 지낸 어심(魚深)이다. 그가 과거에 급제할 당시에는 모친만 생존해 있었고, 형제는 없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영담은 어려서부터 무예와 지략이 뛰어나 특별히 고흥군 점안면의 여도만호(여도만호여도만호한국어 呂島萬戶여도만호한국어)로 발탁되어 초기 경력을 쌓았다.
1.2. 교육 및 과거 급제
어영담은 1564년 식년 무과(武科)에 병과 3등(전체 11등)으로 합격하며 관직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3. 관직 생활
어영담은 1580년 12월부터 1582년 2월까지 사천현감을 지냈다. 이후 1584년 2월부터 1585년 3월까지 무장현감, 고령현감, 언양현감 등을 역임하며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 지역의 행정 및 군사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그는 바닷길을 상세히 조사하고 파악하여 선박의 출입을 원활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1591년 3월에는 광양현감으로 부임했으며, 임진왜란 발발 이전에는 창성부사를 지내는 등 다양한 군직을 수행했다.
2. 임진왜란 참전 및 공적
어영담은 임진왜란 발발과 함께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주요 해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그의 군사적 업적은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2.1. 주요 해전 참여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어영담은 광양현감으로서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 합류하여 활약했다. 그는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1594년 초의 제2차 당항포해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주요 해전에 참전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옥포해전부터 안골포해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는 중부장(중부장중부장한국어 中部將중부장한국어)으로서 총 8척의 왜선(대선 4척, 중선 2척, 소선 2척)을 격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에는 조방장(조방장조방장한국어 助防將조방장한국어)으로 재임용되어 제2차 당항포해전에서 대선 2척을 격파하는 등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2.2. 군사적 업적
어영담은 거제도, 옥포, 당항포 등지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특히 옥포해전, 합포해전, 적진포 해전에서는 총 42척의 왜선을 격파하는 데 기여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또한 6월의 당포해전과 당항포해전, 7월의 한산도해전과 안골포 해전, 9월의 부산포 해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해전을 지휘한 장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정3품 당상관인 통정(通政)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그의 물길에 대한 깊은 지식은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3. 논란 및 평가
어영담은 직무 수행 과정에서 부당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깊은 신뢰와 높은 평가를 받으며 충신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3.1. 직무 관련 논란
1593년 2월, 어영담이 웅천해전에 참전하여 광양을 비운 사이, 독운어사(독운어사독운어사한국어 督運御史독운어사한국어) 임발영이 광양현 창고에 비축된 양곡 600석을 문제 삼아 어영담의 파직을 요청했다. 이는 어영담이 백성들의 구휼을 위해 종자용 곡식과 구휼용 곡식을 따로 비축해 둔 것을 임발영이 오해하여 벌어진 일이었다. 이에 김두 등 광양 지역민 126명이 연서를 통해 어영담의 무고함을 알리고 구명 운동을 벌였다. 이순신 장군 또한 그의 결백을 주장하며 광양현감직 유지를 요청하여 한때 복직되었으나, 이후 윤두수 등에 의해 창고에 군량미를 장부 외로 저장했다는 이유로 다시 파직되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강력한 요청과 장계에 힘입어 다시 수군조방장으로 재임용될 수 있었다.
3.2. 이순신과의 관계 및 평가
이순신 장군은 어영담을 매우 신뢰하고 높이 평가했다. 어영담이 파직되었을 때 이순신은 그를 다시 조방장으로 임명하고자 조정에 요청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1594년 4월 9일, 어영담이 한산도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했을 때 이순신은 자신의 난중일기에 "어 조방장(어영담)이 세상을 떠났다. 애통함을 어찌 다 말하랴."라고 기록하며 깊은 애통함을 표현했다. 이는 이순신이 어영담의 죽음을 개인적인 비극으로 여길 만큼 그를 아끼고 의지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4. 개인사
어영담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으나, 두 아들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어영담에게는 어응해와 어응린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아들을 출산하지 못하여 대를 잇지 못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5. 대중문화 속 모습
어영담은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을 다룬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서 등장하여 그의 활약상이 재조명되고 있다.
- 드라마:
- 《불멸의 이순신》 (KBS1, 2004년~2005년, 배우: 김진태)
- 영화:
- 《난중일기》 (1978년, 배우: 윤일주)
- 《한산: 용의 출현》 (2022년, 배우: 안성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