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기 생애
1.1. 출생 및 유년기
앨리 매코이스트는 1962년 9월 24일 벨스힐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이스트킬브라이드에서 성장했다. 그는 맥스웰턴 초등학교와 헌터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의 고등학교 팀 코치이자 화학 교사는 전 클라이드와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 공격수였던 아치 로버트슨으로, 매코이스트는 그의 지도와 영향력을 인정했다. 로버트슨은 매코이스트의 축구 경력이 막 시작되던 1978년에 세상을 떠났다. 매코이스트는 14~15세였을 때 알렉스 퍼거슨이 헌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신과 스티비 코완을 직접 차로 데리러 와서 세인트 미렌의 훈련에 참여시켰고, 훈련이 끝난 후에는 코완과 함께 러브 스트리트의 피시 앤 칩스 가게에 들러 식사할 수 있도록 돈을 주었다고 회상했다.
1.2. 교육 및 초기 경력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매코이스트는 국제개발부 (당시 해외 개발청) 헤어마이어스 지부에서 잠시 사무 보조원으로 일했다. 이 직업은 유연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여 그가 축구 경력과 시간을 조율할 수 있게 해주었다.
2. 선수 경력
매코이스트는 1978년 세인트 존스턴 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1년 잉글랜드의 선덜랜드 AFC로 이적했다. 2년 후 고국으로 돌아와 레인저스 FC와 계약하며 가장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냈다. 이후 킬마녹 FC에서 뛰며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다.
2.1. 클럽 경력
2.1.1. 세인트 존스턴
매코이스트는 1978년 퍼 파크 보이스 클럽에서 세인트 존스턴으로 이적하며 첫 프로 계약을 맺었다. 당시 알렉스 퍼거슨은 그가 세인트 미렌에서 뛸 만큼 뛰어나지 않다고 판단하여 이적을 거부했었다. 매코이스트는 1979년 4월 7일 레이스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3-0 승리를 거두며 세인트 존스턴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1980년 8월 덤바턴과의 경기에서 클럽에서의 첫 골을 기록했다. 1980-81 시즌에는 43경기에 출전하여 23골을 기록했는데, 이 중에는 스코티시컵 재경기에서 1-3으로 패한 레인저스를 상대로 기록한 위로골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그는 선덜랜드,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미들즈브러, 토트넘 홋스퍼 등 여러 잉글랜드 클럽의 주목을 받았다. 1981-82 시즌에는 스코티시 리그컵 5경기에서 4골을 넣었는데, 이 중에는 뮤어턴 파크에서 셀틱을 상대로 2-0 승리를 이끈 선제골도 포함되어 있었다.
2.1.2. 선덜랜드
1981년 8월, 선덜랜드의 감독 앨런 더반은 매코이스트를 영입하기 위해 40.00 만 GBP의 이적료를 지불했는데, 이는 당시 선덜랜드의 역대 최고 이적료였다. 그러나 매코이스트의 선덜랜드 생활은 대체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는 잉글랜드 1부 리그 하위권에 머물던 팀에서 65경기에 출전하여 9골만을 기록했다. 1981-82 시즌에는 노팅엄 포레스트를 상대로 첫 골을 넣었고, 사우샘프턴을 상대로 페널티 박스 외곽에서 감아차기 슈팅으로 두 번째 골을 기록하며 총 2골을 넣었다.
1982-83 시즌 개막전에서는 던디, 던펌린 애슬레틱, 그리고 전 소속팀인 세인트 존스턴을 상대로 한 3번의 프리시즌 경기에서 3골을 기록한 후, 애스턴 빌라를 상대로 3-1 승리에서 골을 넣었다. 이어서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을 상대로도 골을 기록하며 9월 중순에 이미 이전 시즌의 득점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다. 1982년 10월은 매코이스트의 선덜랜드 시절 하이라이트였는데, 노리치 시티, 사우샘프턴, 맨체스터 시티, 에버턴, 울버햄프턴 원더러스를 상대로 5경기에서 5골을 넣었다. 10월 말까지 7골을 기록했지만, 그 이후로는 선덜랜드 유니폼을 입고 더 이상 골을 넣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82-83 시즌에 닉 피커링에 이어 팀 내 득점 3위를 기록했다. 1983년 초, 앨런 더반 감독은 매코이스트에게 레인저스 FC의 존 그레이그가 그를 영입하는 데 관심을 표했다고 전했다. 매코이스트는 "더반 감독이 '가고 싶으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솔직히 답했다. 더반 감독은 '나는 3, 4개월 안에 여기 없을 것 같으니 너는 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더반 감독은 그 후 비교적 빨리 경질되었다.
2.1.3. 레인저스

1982-83 시즌이 끝난 후, 매코이스트는 18.50 만 GBP의 이적료로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레인저스에 입단했다. 매코이스트는 자신의 꿈의 이적에 대해 "존 그레이그와 토미 맥린을 칼라일의 로터리에 있는 크레스트 호텔에서 만났다. 공중전화로 손녀에게 전화했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그분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100만 파운드를 드려도 그만큼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15년간 레인저스 소속으로 뛰면서 10개의 리그 우승 메달을 포함하여 수많은 업적을 달성했다. 이는 1986-87 시즌의 우승을 시작으로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진 "나인 인 어 로우" 시기를 포함한다. 또한 스코티시컵 우승 메달 1개와 스코티시 리그컵 우승 메달 9개를 획득했다. 그는 1992년과 1993년에 두 시즌 연속으로 유럽 최다 득점자가 된 최초의 선수였으며, 1992년에는 스코틀랜드 축구 기자 협회 올해의 선수와 스코틀랜드 PFA 올해의 선수 등 스코틀랜드 축구의 가장 권위 있는 두 가지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수상했다.
매코이스트는 1983-84 시즌 개막일에 세인트 미렌을 상대로 아이브록스에서 레인저스 데뷔전을 치렀고, 그해 20골을 넣었다. 하지만 초반에는 서포터들로부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돌아보면 후회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 상황을 전혀 감당하지 못했다면, 나는 클럽에 머물지 못하고 떠났을 것이다. 당시 조크 월러스는 아마도 나를 팔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1984년 3월 리그컵 결승에서 셀틱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다음 시즌에는 18골을 기록했다. 1985-86 시즌에는 24골을 넣었다. 1986년 네덜란드를 상대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는데, 같은 해 그레이엄 수네스가 레인저스에 부임하면서 아이브록스 혁명이 시작되었다. 매코이스트는 수네스의 레인저스 시절에 대해 "그는 분명 레인저스 축구 클럽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축구 전체를 변화시켰다. 그의 첫 세 영입 중 두 명은 잉글랜드 주장 테리 버처와 잉글랜드 골키퍼 크리스 우즈였다. 모든 것이 새로운 수준으로 폭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글래스고컵 결승전에서 셀틱을 상대로 또 다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찬사를 받았다. 1987년 레인저스의 리그 우승 시즌 내내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34골을 넣었다. 1987년 9월, 매코이스트는 1986년 12월 5일 새벽 이스트킬브라이드 나이트클럽 밖에서 19세 청년을 폭행한 혐의로 해밀턴 셰리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150 GBP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테드 맥민과 이언 듀런트에게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매코이스트와 듀런트는 각각 레인저스로부터 1500 GBP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매코이스트는 1987-88 시즌에 31골을 기록했지만, 셀틱의 리그 우승을 막지는 못했다. 레인저스는 1988-89 시즌에 우승을 탈환했지만, 매코이스트는 19경기에만 출전했다. 이 우승은 "나인 인 어 로우"의 첫 우승이었지만, 매코이스트는 그 세 번의 우승 기간 동안 선발 라인업에서 들쭉날쭉했다. 1990-91 시즌에는 모 존스턴과 새로 영입된 마크 헤이트리가 선호되는 공격 조합이었고, 매코이스트가 첼트넘 페스티벌에 참석한 것이 백투백 셀틱과의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되어 수네스 감독에 의해 경기 명단에서 제외되고 기자 회견에서 사과해야 했다. 헤이트리가 첫 경기에서 퇴장당한 후 두 번째 경기에 복귀했지만, 레인저스는 두 경기 모두 득점 없이 패했고, 클럽에서의 그의 미래는 불확실해 보였다.
1991년 4월 월터 스미스가 수네스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매코이스트는 다시 주전으로 도약했다. 시즌 마지막 날, 그는 탈장에서 회복하여 팀이 리그 우승을 확정하는 데 기여했다. 다음 시즌은 사소한 부상으로 벤치에서 시작했지만, 매코이스트는 스코틀랜드 PFA 올해의 선수와 스코틀랜드 축구 기자 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수상했다. 1991-92 시즌 동안 그는 리그에서 34골을 기록하며 (존스턴은 팀을 떠났고) 헤이트리와 효과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하여 레인저스가 국내 더블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 골들로 그는 유러피언 골든 부트를 수상했는데, 이는 스코틀랜드 선수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그는 시즌 마지막 애버딘 원정 경기에서 두 번의 장거리 슈팅으로 득점하며 수상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그는 이 경기를 거의 뛸 수 없는 상태였다고 나중에 인정했는데, 전날 밤 팀 호텔에서 학생들과 술을 마셨기 때문이었다. 매코이스트는 골든 부트에 대해 "루마니아의 어떤 작은 친구가 있었는데,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9골을 넣어야 나를 이길 수 있었다고 농담조로 말했다. 그는 8골을 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드 펌 경기였던 스코티시컵 준결승전에서 유일한 골을 넣었고, 레인저스는 85분 동안 10명으로 경기를 치렀다. 이 시즌은 1992 스코티시컵 결승전의 결승골로 마무리되었다.
마크 헤이트리는 매코이스트와의 득점 파트너십에 대해 "앨리스터는 나에게 완벽한 파트너였다. 피니셔로서 그는 믿을 수 없는 골 득점자였다. 그는 나와 연계했다. 모든 골 득점자는 라인의 리더를 보고 15야드 떨어져서 오프셋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역할만 한다. 그것은 정말 좋은 파트너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1년 후인 1992-93 시즌에도 프리미어 디비전에서 같은 득점 기록을 반복했지만, 4월 포르투갈과의 스코틀랜드 대표팀 경기에서 다리가 부러져 시즌 마지막 7경기를 결장했다. 그는 1993 스코티시컵 결승전에도 불참했지만 (준결승에서 결승골을 넣어 레인저스를 진출시켰음에도), 그 시즌 전체적으로 52경기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49골을 기록했다. 6개월간의 부상 공백 후, 그는 히버니언을 상대로 한 1993년 스코티시 리그컵 결승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오버헤드 킥으로 결승골을 넣어 부상 복귀를 알렸다.
그의 출전은 다음 두 시즌 동안 다른 작은 부상과 1993년부터 1995년 사이에 고든 듀리와 브라이언 라우드루프를 포함한 새로운 영입 선수들과의 주전 경쟁으로 인해 제한되었다 (37경기 12골로 평소보다 적은 출전 및 득점). 건강을 회복한 후, 그는 1995-96 시즌에 더 규칙적으로 출전하며 16개의 리그 골을 기록했고, 올드 펌 스코티시컵 준결승전 승리에서도 골을 넣었지만 (1992년과 1998년에 그랬던 것처럼), 역시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96-97 시즌에는 10번째 프리미어 디비전 우승 메달 (나인 인 어 로우 완성)과 9번째 스코티시 리그컵 우승 (결승전에서 2골)을 차지했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으로 출전한 경기는 1998년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에게 2-1로 패한 1998 스코티시컵 결승전이었다.
레인저스에서 매코이스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355골을 기록하며 클럽의 역대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또한 그는 클럽의 리그 최다 득점 기록 (251골)과 스코티시 리그컵 최다 득점 기록 (54골)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또한 유럽 대회에서 선수 최다 득점 (21골) 기록을 가지고 있었지만, 알프레도 모렐로스에 의해 이 기록이 경신되었다. 매코이스트는 레인저스에서 581경기에 출전하여 클럽 역대 출전 기록 3위에 올라 있다. 2018년 레인저스에서의 시간을 회상하며 매코이스트는 "나의 확장된 가족은 함께 일하고, 함께 뛰고, 함께 코치하고, 함께 감독하고, 함께 일했던 친구들이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이었고, 그곳에서 뛰고, 코치하고, 감독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특권이었다. 꿈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2.1.4. 킬마녹
매코이스트는 킬마녹에서 선수 경력을 마무리했으며, 그곳에서 오랜 레인저스 팀 동료인 이언 듀런트와 함께 세 시즌을 보냈다. 1999년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또 다른 다리 골절 부상을 입은 후, 그는 셀틱과의 2001 스코티시 리그컵 결승전 패배에서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럭비 파크에서 옛 소속팀을 상대로 한 마지막 경기에서 슈테판 클로스에게 페널티킥이 막혔다. 몇 주 후 아이브록스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그의 감독 보비 윌리엄슨이 이미 팀이 크게 지고 있다는 이유로 매코이스트의 교체 출전을 불허했고, 대신 경기 종료 후 그라운드에서 서포터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38세의 나이로 2001년 5월 20일 SPL 시즌 마지막 날 셀틱과의 홈 경기였으며, 1-0 승리로 킬마녹이 다음 시즌 UEFA컵 진출 자격을 얻었다. 공교롭게도 이 경기에서 매코이스트는 교체되었고, 동료 공격수 크리스 보이드가 교체 출전하여 데뷔전을 치렀다. 보이드 역시 훗날 121골을 기록하며 에디 모리슨과 함께 킬마녹의 역대 리그 득점 2위에 오르게 되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2.2.1. 연령별 대표팀
매코이스트는 스코틀랜드 U-18 국가대표팀에서 10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아이슬란드와의 유럽 U-18 챔피언십 예선전에서 데뷔하여 19분 만에 유일한 골을 넣었다. 이후 3-1 승리를 거둔 2차전에서도 골을 넣으며 스코틀랜드의 다음 여름 유럽 U-18 챔피언십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그는 세 번째 출전인 북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3-1 승리에 기여하며 또다시 골을 넣었다. 그의 다음 세 번의 출전은 권위 있는 모나코 청소년 토너먼트에서 이루어졌는데, 서독에 1-0으로 패하고 스위스에 2-0으로 승리했으며 프랑스와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총 6경기에서 5골을 기록했다. 매코이스트는 이후 네덜란드에서 열린 4개 팀 토너먼트를 위해 스코틀랜드 세미프로팀에 선발되었지만 출전하지 못했다. 유럽 U-18 결승전에서 스코틀랜드는 오스트리아, 스페인, 그리고 디펜딩 챔피언 잉글랜드와 한 조에 편성되었다. 매코이스트는 스코틀랜드가 오스트리아와 잉글랜드를 모두 1-0으로 꺾는 데 기여하며 세 경기 모두 선발 출전했고,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는 결승골을 넣었다. 스페인과의 마지막 조별 경기는 조 순위를 결정하게 되었고, 매코이스트는 프리킥으로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이 결과로 스코틀랜드는 골 득실차로 탈락했다.
2.2.2. 성인 대표팀
매코이스트는 23세의 나이로 1986년 4월 29일 네덜란드와의 친선전에서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1990년 FIFA 월드컵 예선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본선에서는 한 경기에 선발 출전했으며 다른 조별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 출전했다. 1993년 3월, 그는 다음 월드컵의 재앙적인 예선 경기였던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다리가 부러졌는데, 스코틀랜드는 이 경기에서 5-0으로 패하며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1996년 3월 27일 오스트레일리아와의 경기에서 한 차례 주장 완장을 찼다. 이 경기에서 그는 햄던 파크에서 후반 55분 결승골을 넣어 1-0 승리를 이끌었다. 매코이스트는 주요 토너먼트에서 단 한 골을 기록했는데, UEFA 유로 1996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기록한 장거리 슈팅 골이 그것이며, 이는 그의 국가대표팀 마지막 골이기도 했다. 그는 UEFA 유로 1992의 스코틀랜드 세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지만 득점하지 못했으며, 1998년 1998년 FIFA 월드컵 직전 시즌에 16골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는 이에 대해 "정말 엄청난 실망이었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크레이그 브라운 감독이 나를 데려가지 않는다는 소식을 런던에서 듣고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큰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모든 경기에 90분씩 뛰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골이 필요했다면 아마도 내가 여전히 최고의 기회였을 것이다. 내 경력에서 가장 큰 실망은 월드컵에 가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그 이후 크레이그와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이제 그것이 실수였다고 인정한다. 그렇게 말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지만, 내가 가지 못했다는 아픔을 달래주지는 못한다"고 회상했다. 그는 1998년 여름 레인저스에서 킬마녹으로 이적한 후 스코틀랜드 대표팀에서 두 경기를 더 뛰었으며, 마지막 출전은 그해 10월 에스토니아와의 3-2 승리 경기였다. 매코이스트는 61번의 경기에서 19골을 기록하며 스코틀랜드 역대 득점 5위에 올라 있다.
3. 감독 경력
매코이스트는 2004년 자신의 전 레인저스 감독이었던 월터 스미스가 이끄는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 코칭 스태프에 합류했다. 그는 2006년 인버네스 칼레도니안 시슬의 감독직 제안을 거절했는데, 이는 글래스고 자택과 더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3.1. 레인저스

3.1.1. 수석 코치 (2007-2011)
매코이스트는 2007년 1월 월터 스미스의 수석 코치로 레인저스에 복귀했다. 2008년 스코티시컵 결승전에서 퀸 오브 더 사우스를 꺾고 우승한 후, 스미스 감독은 매코이스트가 전체 컵 대회 캠페인 동안 팀을 지휘했다고 밝혔다. 매코이스트는 "분명히 월터 감독님은 제가 감독직을 물려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계셨고, 몇 차례 스코티시컵 대회에서는 저에게 팀을 맡기셨다. 제가 준비와 훈련을 담당했지만, 물론 그분도 계셨다. 제가 팀 미팅도 하고, 그런 모든 종류의 일을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또한 같은 해 UEFA컵 결승전에서 레인저스를 이끌었으나,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게 2-0으로 패했다. 2011년 2월 22일, 그는 2011년 6월부터 새로운 레인저스 감독으로 선임될 것이 발표되었다.
3.1.2. 감독 (2011-2014)
- 2011-12 시즌**: 사업가 크레이그 와이츠는 2011년 5월 데이비드 머리 경으로부터 레인저스의 대주주 지분을 인수하며, 5년 동안 2500.00 만 GBP를 이적 자금으로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매코이스트가 레인저스 감독으로서 치른 첫 공식 경기는 2011년 7월 23일 하츠와의 홈 경기에서 1-1 무승부였다. 경기 후 매코이스트는 BBC 스코틀랜드가 올드 펌 더비 후의 폭력 사태와 경기 치안 비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잘못 전달했다고 주장하며 보도에 불만을 제기했다. BBC는 보도를 옹호했지만, 편집 방식에 대한 불만은 받아들였다. 2011년 7월 26일, BBC는 매코이스트에게 사과했고, 그는 BBC와의 언론 접촉 금지 조치를 철회했다. 2011년 4월, 매코이스트는 공격적인 구호를 외친 레인저스 서포터들을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매코이스트는 2011년 7월 26일 스웨덴의 말뫼 FF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 1차전 홈 경기에서 1-0으로 패하며 레인저스 감독으로서 첫 패배를 기록했다. 그의 첫 승리는 7월 30일 세인트 존스턴 원정에서 니키차 옐라비치와 스티븐 네이스미스의 골로 2-0으로 승리하면서 나왔다. 매코이스트의 첫 챔피언스리그 캠페인은 3차 예선 2차전 말뫼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합계 2-1로 패배하고 마지드 부게라와 스티븐 휘태커가 퇴장당하면서 조기 종료되었다. 유로파리그로 강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코이스트의 레인저스 감독으로서의 첫 유럽 대항전 캠페인은 NK 마리보르에게 두 차례 패배하며 조기 종료되었다.
매코이스트는 감독으로서 첫 SPL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시작하여 처음 5경기 만에 SPL 선두에 올랐고 단 한 골만을 허용했다. 그의 감독으로서 첫 올드 펌 경기는 아이브록스에서 셀틱을 4-2로 꺾은 경기였다. 그러나 며칠 후 스코티시 리그컵에서 폴커크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매코이스트는 2012년 2월 5일 스코티시컵 5라운드 홈 경기에서 던디 유나이티드에게 2-0으로 패하며 시즌 네 번째 컵 대회에서 탈락했다.
2월에는 한때 아치 라이벌보다 15점 앞서 선두를 달리던 중, 2012년 2월 14일 구단이 관리에 들어가면서 10점의 승점 삭감 징계를 받아 사실상 SPL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매코이스트는 승점 삭감에도 불구하고 레인저스를 2위로 시즌을 마칠 수 있었다.
- 2012-13 시즌**: 영국 국세청이 기업 자율 협약을 거부한 후, 레인저스를 운영하던 회사의 사업 및 자산은 찰스 그린이 이끄는 컨소시엄에 매각되었다. 매코이스트는 그린과의 협상 후 팀에 남기로 결정했다. 이후 구단은 스코티시 3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레인저스는 3부 리그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3부 리그로 승격했다. 그들은 스코티시 챌린지컵에서 퀸 오브 더 사우스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탈락했다. 마더웰을 리그컵에서 꺾었지만, 아이브록스에서 열린 8강전에서 인버네스 칼레도니안 시슬에게 3-0으로 패했다. 레인저스는 또한 탠너다이스에서 던디 유나이티드에게 3-0으로 패하며 스코티시컵에서도 탈락했다.
- 2013-14 시즌**: 레인저스는 스코티시 리그 원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2부 리그로 승격했는데, 이는 레인저스 역사상 115년 만에 리그 시즌 무패를 달성한 첫 번째 팀이 되었다. 그들은 또한 스코티시컵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아이브록스에서 던디 유나이티드에게 3-1로 패했다. 레인저스는 2014 스코티시 챌린지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이스터 로드에서 레이스 로버스에게 연장전 끝에 1-0으로 패했다. 그들은 스코티시 리그컵 1라운드에서 포파 애슬레틱에게 패배하며 탈락했다.
- 2014-15 시즌**: 레인저스는 스코티시 챔피언십에서 하츠에게 홈에서 2-1, 원정에서 2-0으로 패하며 뒤처졌다. 그들은 스코티시 리그컵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스코티시 챌린지컵에서 앨로어 애슬레틱에게 패배했다. 매코이스트는 2014년 12월 감독직 사임 의사를 공식적으로 통보하며 12개월의 통지 기간을 시작했다. 12월 말, 매코이스트는 레인저스 감독직에서 물러나 가드닝 리브 상태에 들어갔다. 이는 2015년 9월 매코이스트와 레인저스가 상호 합의 하에 그의 계약을 종료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4. 미디어 활동
매코이스트는 텔레비전 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96년부터 2007년까지 BBC의 어 퀘스천 오브 스포츠 팀 주장으로 활동하며 존 패럿, 프랭키 데토리, 맷 도슨과 경쟁했고, 이 쇼에서 363회 출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998년 1998년 FIFA 월드컵 스코틀랜드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된 후, 그는 BBC의 월드컵 해설팀에 합류하여 인기를 얻었다.
그는 또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BBC 스코틀랜드에서 코미디언 프레드 맥컬리와 함께 심야 토크쇼 매코이스트와 맥컬리를 공동 진행했다. 2001년, 매코이스트는 TRIC 어워드에서 올해의 스포츠 진행자상을 수상했다. 2000년, 매코이스트는 로버트 듀발과 함께 영화 영광의 순간에 출연하여 가상의 전 셀틱 선수 재키 맥퀼란 역을 맡았다. 그는 촬영 중 셀틱 유니폼 안에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어 소재가 피부에 닿지 않게 했다고 한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매코이스트는 존 모트슨과 함께 EA 스포츠의 FIFA 비디오 게임 시리즈의 해설자로 출연했다. 그들은 FIFA 06에서 클라이브 타일즐리와 앤디 그레이로 교체되었다. 매코이스트는 ITV 스포츠의 축구 중계에서 정기적인 해설자로 활동했다. 2010년에는 ESPN에서 2010년 FIFA 월드컵의 정기 공동 해설자로 마틴 타일러 또는 데릭 레이와 함께 작업했다. 매코이스트는 2018년 FIFA 월드컵 동안 ITV에서 일했으며, 그의 주 해설자 존 챔피언과의 파트너십은 여러 미디어에서 찬사를 받았다.
2017-18 시즌부터 매코이스트는 BT 스포츠의 SPFL 및 스코티시 리그컵 중계에서 스튜디오 해설가로 일하며 대럴 큐리, 크리스 서턴, 스티븐 크레이건과 정기적으로 출연했다. 2020-21 시즌부터 스카이 스포츠가 SPFL의 독점 중계권을 획득했으며, 매코이스트는 그들의 중계에서도 해설가로 계속 활동했다. 2019-20 시즌부터 그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계에서도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5. 개인 생활
평생 레인저스 팬이었던 매코이스트는 1973년 5월 5일, 10세의 나이로 첫 올드 펌 경기를 관람했다. 그 경기는 햄던 파크에서 122714명의 관중 앞에서 열린 레인저스의 3-2 스코티시컵 결승전 승리였다.
매코이스트의 첫 번째 아내는 앨리슨으로, 1981년에 만나 1990년에 결혼하여 2004년에 이혼했다. 그들 사이에는 세 아들 알렉산더, 아가일, 미첼이 있다. 그는 두 번째 아내 비비안과의 사이에 아란과 해리스 두 아들을 더 두었다. 그는 2014년 5월 뉴욕에서 비비안과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2025년 현재 그의 아들 아가일은 드럼차펠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세미프로 축구 선수이다. 1996년, 매코이스트는 음주 운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기간 동안 매코이스트는 스코틀랜드 독립에 반대하는 베터 투게더 캠페인을 지지했다. 그는 여배우 패치 켄짓과 혼외 관계를 맺었고, 이는 그의 첫 번째 아내와의 이혼 소송에서 언급되었다. 이 관계는 매코이스트가 런던에서 ITV의 축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더 프리미어십을 촬영하는 동안 기존의 우정에서 발전했다고 전해진다. 2024년 11월, 매코이스트는 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구부러지는 유전 질환인 뒤퓌트렌 구축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6. 수상 및 영예
매코이스트는 1994년 6월 10일 축구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 제국 훈장 멤버 (MBE)를 수여받았다. 2007년에는 스코틀랜드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회원이기도 하다. 매코이스트는 1996년 3월 50번째 국가대표팀 경기 출전을 기록하며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24년 생일 훈장에서 축구 및 방송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 장교 (OBE)로 임명되었다.
6.1. 선수로서의 수상
- 레인저스**
-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디비전 (10회): 1986-87, 1988-89, 1989-90, 1990-91, 1991-92, 1992-93, 1993-94, 1994-95, 1995-96, 1996-97
- 스코티시컵 (1회): 1991-92
- 스코티시 리그컵 (9회): 1983-84, 1984-85, 1986-87, 1987-88, 1988-89, 1990-91, 1992-93, 1993-94, 1996-97
- 개인**
- 유러피언 골든슈 (2회): 1991-92, 1992-93
- 유러피언컵 득점왕: 1987-88
- 발롱도르 21위: 1987
- 스코틀랜드 축구 기자 협회 올해의 선수: 1991-92
- 스코틀랜드 PFA 올해의 선수: 1991-92
- BBC 스코틀랜드 올해의 스포츠인상: 1992
- 데일리 레코드 골든 샷: 1991-92, 1992-93
-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3회): 1986, 1992, 1993
- 스코티시 풋볼 리그 2부 리그 득점왕: 1981
6.2. 감독으로서의 수상
- 레인저스**
- 스코티시 리그 원: 2013-14 (3부 리그)
- 스코티시 3부 리그: 2012-13 (4부 리그)
- 개인**
-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2011년 9월
- 스코틀랜드 풋볼 리그 이달의 감독: 2012년 12월
- 스코티시 프로페셔널 풋볼 리그 이달의 감독 (2회): 2013년 9월, 2014년 1월
6.3. 영예 및 헌액
- 대영 제국 훈장 멤버 (MBE): 1994년 (축구 공로)
- 스코틀랜드 스포츠 명예의 전당: 2007년 헌액
-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명예의 전당: 1996년 (50번째 A매치 출전)
- 레인저스 FC 명예의 전당
- 대영 제국 훈장 장교 (OBE): 2024년 (축구 및 방송 공로)
7. 경력 통계
7.1. 선수 통계
7.1.1. 클럽 성적
클럽 | 시즌 | 리그 | 국내 컵 | 리그 컵 | 대륙 대회 | 총합 | ||||||
---|---|---|---|---|---|---|---|---|---|---|---|---|
디비전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출장 | 득점 | ||
세인트 존스턴 | 1978-79 | 스코티시 1부 리그 | 4 | 0 | 0 | 0 | 0 | 0 | - | 4 | 0 | |
1979-80 | 15 | 0 | 1 | 0 | 0 | 0 | - | 16 | 0 | |||
1980-81 | 38 | 22 | 3 | 1 | 2 | 0 | - | 43 | 23 | |||
1981-82 | 0 | 0 | 0 | 0 | 5 | 4 | - | 5 | 4 | |||
총합 | 57 | 22 | 4 | 1 | 7 | 4 | 0 | 0 | 68 | 27 | ||
선덜랜드 | 1981-82 | 1부 디비전 | 28 | 2 | 3 | 0 | 1 | 0 | - | 32 | 2 | |
1982-83 | 28 | 6 | 1 | 0 | 4 | 1 | - | 33 | 7 | |||
총합 | 56 | 8 | 4 | 0 | 5 | 1 | 0 | 0 | 65 | 9 | ||
레인저스 | 1983-84 | 스코티시 프리미어 디비전 | 30 | 8 | 4 | 3 | 10 | 9 | 3 | 0 | 47 | 20 |
1984-85 | 25 | 12 | 3 | 0 | 6 | 5 | 4 | 1 | 38 | 18 | ||
1985-86 | 33 | 25 | 1 | 1 | 4 | 1 | 2 | 0 | 40 | 27 | ||
1986-87 | 44 | 34 | 1 | 0 | 5 | 2 | 6 | 2 | 56 | 38 | ||
1987-88 | 40 | 31 | 2 | 1 | 5 | 6 | 6 | 4 | 53 | 42 | ||
1988-89 | 19 | 9 | 8 | 5 | 4 | 4 | 2 | 0 | 33 | 18 | ||
1989-90 | 34 | 14 | 2 | 0 | 4 | 4 | - | 40 | 18 | |||
1990-91 | 26 | 11 | 2 | 1 | 4 | 3 | 4 | 3 | 36 | 18 | ||
1991-92 | 38 | 34 | 5 | 4 | 4 | 1 | 2 | 0 | 49 | 39 | ||
1992-93 | 34 | 34 | 4 | 5 | 5 | 8 | 9 | 2 | 52 | 49 | ||
1993-94 | 21 | 7 | 6 | 3 | 1 | 1 | - | 28 | 11 | |||
1994-95 | 9 | 1 | 0 | 0 | 0 | 0 | - | 9 | 1 | |||
1995-96 | 25 | 16 | 2 | 1 | 4 | 3 | 6 | 0 | 37 | 20 | ||
1996-97 | 25 | 10 | 3 | 1 | 3 | 3 | 6 | 6 | 37 | 20 | ||
1997-98 | 15 | 5 | 4 | 4 | 3 | 4 | 4 | 3 | 26 | 16 | ||
총합 | 418 | 251 | 47 | 29 | 62 | 54 | 54 | 21 | 581 | 355 | ||
킬마녹 | 1998-99 |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 26 | 7 | 1 | 0 | 2 | 1 | - | 29 | 8 | |
1999-2000 | 9 | 1 | 0 | 0 | 1 | 2 | 2 | 0 | 12 | 3 | ||
2000-01 | 18 | 1 | 2 | 0 | 2 | 2 | - | 22 | 3 | |||
총합 | 53 | 9 | 3 | 0 | 5 | 5 | 2 | 0 | 63 | 14 | ||
커리어 총합 | 584 | 290 | 58 | 30 | 79 | 64 | 56 | 21 | 777 | 405 |
7.1.2. 국가대표팀 성적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득점 |
---|---|---|---|
스코틀랜드 | 1986 | 2 | 0 |
1987 | 6 | 3 | |
1988 | 5 | 0 | |
1989 | 6 | 2 | |
1990 | 10 | 3 | |
1991 | 4 | 2 | |
1992 | 11 | 3 | |
1993 | 2 | 2 | |
1994 | - | ||
1995 | 3 | 2 | |
1996 | 7 | 2 | |
1997 | 3 | 0 | |
1998 | 2 | 0 | |
총합 | 61 | 19 |
:스코틀랜드의 득점이 먼저 표시되며, 점수 열은 매코이스트의 각 골 이후의 점수를 나타낸다.
번호 | 날짜 | 경기장 | 출장 | 상대팀 | 점수 | 결과 | 대회 |
---|---|---|---|---|---|---|---|
1 | 1987년 9월 9일 | 햄던 파크,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7 | 헝가리 | 1-0 | 2-0 | 친선 경기 |
2 | 2-0 | ||||||
3 | 1987년 10월 14일 | 햄던 파크,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8 | 벨기에 | 1-0 | 2-0 | UEFA 유로 1988 예선 |
4 | 1989년 4월 26일 | 햄던 파크,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15 | 키프로스 | 2-1 | 2-1 | 1990년 FIFA 월드컵 예선 |
5 | 1989년 11월 15일 | 햄던 파크,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19 | 노르웨이 | 1-0 | 1-1 | 1990년 FIFA 월드컵 예선 |
6 | 1990년 5월 16일 | 피토드리 스타디움, 애버딘, 스코틀랜드 | 21 | 이집트 | 1-2 | 1-3 | 친선 경기 |
7 | 1990년 9월 12일 | 햄던 파크,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27 | 루마니아 | 2-1 | 2-1 | UEFA 유로 1992 예선 |
8 | 1990년 11월 14일 | 바실 레프스키 국립 경기장, 소피아, 불가리아 | 29 | 불가리아 | 1-0 | 1-1 | UEFA 유로 1992 예선 |
9 | 1991년 9월 11일 | 방크도르프슈타디온, 베른, 스위스 | 32 | 스위스 | 2-2 | 2-2 | UEFA 유로 1992 예선 |
10 | 1991년 11월 13일 | 햄던 파크,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33 | 산마리노 | 4-0 | 4-0 | UEFA 유로 1992 예선 |
11 | 1992년 2월 19일 | 햄던 파크,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34 | 북아일랜드 | 1-0 | 1-0 | 친선 경기 |
12 | 1992년 5월 20일 | 바시티 스타디움, 토론토, 캐나다 | 37 | 캐나다 | 2-1 | 3-1 | 친선 경기 |
13 | 1992년 9월 9일 | 방크도르프슈타디온, 베른, 스위스 | 42 | 스위스 | 1-1 | 1-3 | 1994년 FIFA 월드컵 예선 |
14 | 1993년 2월 17일 |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45 | 몰타 | 1-0 | 3-0 | 1994년 FIFA 월드컵 예선 |
15 | 2-0 | ||||||
16 | 1995년 8월 16일 | 햄던 파크,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47 | 그리스 | 1-0 | 1-0 | UEFA 유로 1996 예선 |
17 | 1995년 11월 15일 | 햄던 파크,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49 | 산마리노 | 3-0 | 5-0 | UEFA 유로 1996 예선 |
18 | 1996년 3월 27일 | 햄던 파크, 글래스고, 스코틀랜드 | 50 | 오스트레일리아 | 1-0 | 1-0 | 친선 경기 |
19 | 1996년 6월 18일 | 빌라 파크, 버밍엄, 잉글랜드 | 54 | 스위스 | 1-0 | 1-0 | UEFA 유로 1996 |
7.2. 감독 기록
팀 | 국가 | 시작 | 종료 | 기록 | ||||
---|---|---|---|---|---|---|---|---|
경기 수 | 승 | 무 | 패 | 승률 % | ||||
레인저스 | 스코틀랜드 | 2011년 6월 1일 | 2014년 12월 21일 | 167 | 121 | 22 | 24 | 72.46 |
커리어 총합 | 167 | 121 | 22 | 24 | 72.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