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앙투안 드니 쇼데(Antoine Denis Chaudet앙투안 드니 쇼데프랑스어)는 1763년 3월 3일 파리에서 태어나 1810년 4월 19일 같은 도시에서 사망한 프랑스의 저명한 신고전주의 조각가이자 화가이다. 그는 장바티스트 스투프와 에티엔 피에르 아드리앵 고아와 같은 스승들 밑에서 초기 미술 교육을 받았으며, 1784년에는 부조 작품인 《형제들에게 팔린 요셉》으로 로마상을 수상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 수상으로 그는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고대 조각을 연구하며 4년간 수학할 기회를 얻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후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1805년에는 프랑스 학사원의 회원이 되고 1810년에는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로 임명되는 등 중요한 직책을 역임했다. 쇼데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각상을 제작하는 등 당대 주요 인물과 관련된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중요한 예시로 평가받는다.
2. 생애 및 경력
앙투안 드니 쇼데의 생애는 파리에서의 탄생과 교육, 그리고 프랑스 미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전문 경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2.1. 유년기 및 교육
쇼데는 1763년 3월 3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으며, 당대 유명 조각가인 장바티스트 스투프와 에티엔 피에르 아드리앵 고아의 지도를 받으며 조각 기술을 연마했다. 특히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으며 실력을 쌓았고, 1784년에는 그의 부조 작품인 《형제들에게 팔린 요셉》으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상 중 하나인 로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 수상은 그에게 로마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4년간 고대 조각을 심층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는 그의 신고전주의 양식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2. 직업 경력
1789년 프랑스로 돌아온 쇼데는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아카데미는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1793년에 폐지되었다. 1801년경 그는 자신의 학생이었던 잔 엘리자베트 가비우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쇼데에게 미술을 배운 후 초상화가로 활동했다. 쇼데는 또한 피에르 프랑수아 레오나르 퐁텐과 샤를 페르시에와 같은 건축가들과 협력하여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장 라신의 전집 삽화 작업에 참여하여 주로 성경 장면을 그렸다. 1803년에는 새롭게 설립된 프랑스 학사원의 교수로 선출되었고, 1805년에는 프랑스 학사원의 정식 회원이 되었다. 1810년 2월, 그는 사망한 루이 장 프랑수아 라그레네의 뒤를 이어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 겸 학장으로 취임했으나, 불과 두 달 뒤인 1810년 4월 19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후임으로는 프랑수아 프레데리크 르모가 1810년 9월 8일에 임명되었다. 쇼데는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스케치와 필사본 노트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 예술 사조 및 작품
앙투안 드니 쇼데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대표적인 조각가로,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의 이상과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균형 잡힌 구성, 명확한 형태, 그리고 고요하고 숭고한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
3.1. 주요 조각 및 부조
쇼데의 작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 《형제들에게 팔린 요셉》 (1784): 이 부조 작품은 그에게 로마상을 안겨주었으며, 그의 초기 재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 《오이디푸스와 포르바스》 (1799): 1801년 파리 살롱에 전시되었던 이 작품은 쇼데 사후 피에르 카르텔리에와 루이 뒤파티에 의해 완성되었다. 양치기 포르바스가 버려진 아기 오이디푸스를 구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 《큐피드와 나비》 (L'Amour프랑스어, 1817): 이 작품은 쇼데 사후 피에르 카르텔리에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랑의 신 큐피드가 나비를 잡는 모습을 통해 순수하고 섬세한 감정을 표현했다.
- 《평화》 (Pax라틴어, 1800-1810년경): 평화의 여신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신고전주의의 이상적인 미를 잘 보여준다.

- 《키파리소스의 애도》 (Cyparissus mourns his stag영어): 키파리소스가 자신의 사슴을 애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 《시인 호메로스》 (The poet Homer영어):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서사 시인 호메로스를 표현한 작품이다.

- 《눈먼 벨리사리우스의 휴식》 (Blind Belisarius, resting영어, 1791): 동로마 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눈이 먼 채 휴식하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으로, 현재 릴 궁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나폴레옹 황제와 조제핀 황후의 흉상》 (1811년 전시): 나폴레옹 1세와 그의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흉상으로, 당대 최고 권력자의 모습을 담아냈다.

3.2. 나폴레옹 관련 작품
쇼데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관련된 중요한 조각상들을 제작했다. 1804년에 그는 나폴레옹 1세의 대리석 조각상을 제작했다. 이 조각상은 이후 1810년 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제레와 다른 조각가 팀에 의해 제작된 방돔 광장의 방돔 기념탑 꼭대기에 세워진 나폴레옹 상의 기초가 되었다.
쇼데가 1804년에 제작한 나폴레옹 대리석 조각상 원본은 1812년 나폴레옹에 의해 모스크바로 옮겨져 중요한 장소에 설치되었다. 이 조각상은 현재 보로디노 파노라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방돔 기념탑의 나폴레옹 상은 나폴레옹의 실각 이후 기념탑에서 철거되어 폐기되었으나, 나폴레옹 3세의 명령에 따라 1863년 오귀스트 뒤몽에 의해 복원되었다. 쇼데는 또한 도자기로 만든 나폴레옹상과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모습으로 표현된 나폴레옹상 등 다양한 형태의 나폴레옹 관련 작품을 남겼다.


4. 유산 및 평가
앙투안 드니 쇼데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신고전주의 조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 겸 학장으로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으며, 그의 지도 아래 많은 재능 있는 조각가들이 배출되었다. 비록 그의 생전에 일부 작품이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그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피에르 카르텔리에와 루이 뒤파티와 같은 예술가들이 그의 유작을 완성하여 그의 예술적 유산을 이어갔다.
그의 작품은 고대 미술의 엄격함과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스케치와 필사본 노트는 그의 예술적 탐구 과정과 창작 방법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쇼데의 작품은 현재까지도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전시되고 있으며, 신고전주의 시대의 중요한 조각가로서 그의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