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알빈 페락(Albin Pelak알빈 페락보스니아어)은 1981년 4월 9일 세르비아 노비 파자르에서 태어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전 축구 선수이다. 주로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높은 활동량과 뛰어난 결정력을 바탕으로 공격형 미드필더, 우측 미드필더, 그리고 포워드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그는 특히 FK 사라예보의 재능 있는 유스 선수로 이름을 알렸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U-21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FK 사라예보 팬들에게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젤레즈니차르로 이적하여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프로 경력 동안 일본의 세레소 오사카와 크로아티아의 디나모 자그레브 등 해외 리그 진출을 시도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며, 이후 다시 보스니아 리그로 복귀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 유년기 및 초기 경력
2.1. 출생 및 배경
알빈 페락은 1981년 4월 9일에 당시 구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였던 세르비아 노비 파자르에서 태어났다.
2.2. 유스 및 아마추어 경력
페락은 1991년부터 1996년까지 크로아티아의 바르텍스 유소년 팀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1996년에 FK 사라예보의 유스 시스템에 합류하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981년/1982년생 선수들로 구성된 FK 사라예보의 매우 재능 있는 유스 팀의 핵심 일원이었다. 이 세대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스쿼드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알렌 슈코로, 제말 베르베로비치, 다미르 미르비치와 같은 많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비교적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페락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U-21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3. 클럽 경력
알빈 페락의 프로 축구 클럽 활동은 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내 리그에서 이루어졌으며, 몇 차례의 해외 이적 시도와 논란을 겪었다.
3.1. FK 사라예보에서의 활약
페락은 1999/2000 시즌에 FK 사라예보에서 프로 데뷔하여 2003년까지 활약했다. 이 시기 그는 뛰어난 활동량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언론과 서포터들의 찬사를 받으며 사라예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1999/2000 시즌에 8경기 출전, 2000/01 시즌에 35경기 출전 10골, 2001/02 시즌에 24경기 출전 1골, 2002/03 시즌에 17경기 출전 7골을 기록하며 팀의 주요 선수로 활약했다.
3.2. 해외 이적 시도 및 복귀
페락은 해외 리그 진출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2003년 2월, 그는 일본의 세레소 오사카로 완전 이적했다. 그는 팀의 핵심 선수로 기대를 받았으나, 향수병을 이유로 3개월 만인 2003년 5월에 팀을 떠나 다시 FK 사라예보로 복귀했다. 세레소 오사카에서 그는 J1리그 3경기에서 1골을 기록했으며, 이 이적으로 인해 당시 약 100.00 만 EUR에 달하는 상당한 금액을 받았다고 보도되었다.
같은 해, 그는 크로아티아의 명문 구단인 디나모 자그레브로 이적했으나, 2003/04 시즌과 2004/05 시즌 동안 공식 경기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2004년 11월 다시 FK 사라예보로 돌아왔다. 복귀 후 그는 2003/04 시즌에 20경기 4골, 2004/05 시즌에 11경기 3골, 2005/06 시즌에 12경기 4골을 추가로 기록하며 FK 사라예보에서 총 129경기 37골의 기록을 남겼다.
3.3. FK 젤레즈니차르 이적 및 논란
페락은 FK 사라예보 서포터들에게 라이벌 팀인 젤레즈니차르에서는 절대 뛰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젤레즈니차르와 계약하며 보스니아 축구계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이적은 그가 FK 사라예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 중 한 명이었던 만큼 팬들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겼다. 그는 2005/06 시즌 후반부터 2006/07 시즌까지 젤레즈니차르에서 19경기 7골을 기록한 뒤, 잠시 러시아 리그로 이적했다.
3.4. 말년 클럽 활동 및 은퇴
러시아의 즈베즈다 이르쿠츠크에서 2007년 한 시즌 동안 6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은 없었다. 이후 다시 젤레즈니차르로 복귀하여 2007/08 시즌에 11경기 3골, 2008/09 시즌에 12경기 3골을 추가로 기록했다.
2009년 4월 4일, 페락은 젤레즈니차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올림피크에 입단하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다. 그는 올림피크에서 2009/10 시즌 동안 13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4. 국가대표 경력
4.1. 대표팀 데뷔 및 주요 경기
알빈 페락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활약했다. 그는 2002년 8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2005년 10월 산마리노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가 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였다. 그는 총 2회의 국가대표팀 출전을 기록했으며, 득점은 없었다.
5. 플레이 스타일
알빈 페락은 경기장에서 높은 활동량과 뛰어난 결정력을 자랑하는 선수였다. 그는 미드필더로 분류되지만, 공격형 미드필더(톱하), 우측 미드필더, 심지어 포워드까지 다양한 공격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유연성은 팀의 전술적 다양성에 기여했다. 특히 FK 사라예보 시절에는 그의 리더십과 성실한 플레이로 팬과 언론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6. 통계
6.1. 클럽 통계
알빈 페락의 클럽 경력 통계는 다음과 같다.
클럽 기록 | 리그 | |||
---|---|---|---|---|
시즌 | 클럽 | 리그 | 출전 | 득점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리그 | |||
1999/00 | 사라예보 | 프리미어리그 | 8 | 0 |
2000/01 | 35 | 10 | ||
2001/02 | 24 | 1 | ||
2002/03 | 17 | 7 | ||
일본 | 리그 | |||
2003 | 세레소 오사카 | J1리그 | 3 | 1 |
크로아티아 | 리그 | |||
2003/04 | 디나모 자그레브 | 프르바 HNL | 0 | 0 |
2004/05 | 0 | 0 |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리그 | |||
2003/04 | 사라예보 | 프리미어리그 | 20 | 4 |
2004/05 | 11 | 3 | ||
2005/06 | 12 | 4 | ||
2005/06 | 젤레즈니차르 사라예보 | 프리미어리그 | 6 | 2 |
2006/07 | 13 | 5 | ||
러시아 | 리그 | |||
2007 | 즈베즈다 이르쿠츠크 | 퍼스트 디비전 | 6 | 0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리그 | |||
2007/08 | 젤레즈니차르 사라예보 | 프리미어리그 | 11 | 3 |
2008/09 | 12 | 3 | ||
2009/10 | 올림피크 사라예보 | 프리미어리그 | 13 | 1 |
국가별 합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182 | 43 | |
일본 | 3 | 1 | ||
크로아티아 | 0 | 0 | ||
러시아 | 6 | 0 | ||
총합 | 191 | 44 |
6.2. 국가대표 통계
알빈 페락의 국가대표팀 연도별 출전 및 득점 기록은 다음과 같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가대표팀 | ||
---|---|---|
연도 | 출전 | 득점 |
2002 | 1 | 0 |
2003 | 0 | 0 |
2004 | 0 | 0 |
2005 | 1 | 0 |
합계 | 2 | 0 |
7. 평가 및 영향
7.1. 선수로서의 평가
알빈 페락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축구계에서 유망한 재능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특히 FK 사라예보 유스팀 시절부터 뛰어난 활동량과 리더십으로 주목받았으며, U-21 국가대표팀의 주장까지 역임하며 차세대 보스니아 축구를 이끌 선수로 기대를 모았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미드필더와 포워드를 넘나들며 팀에 다양한 전술적 옵션을 제공했다. 그는 국내 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FK 사라예보 시절에는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7.2. 팬과 언론의 반응
페락의 경력에서 가장 큰 논란이자 팬들의 반응을 지배했던 사건은 FK 사라예보 팬들에게 '절대 이적하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약속한 뒤, 라이벌 팀인 젤레즈니차르로 이적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과거 FK 사라예보에서 누리던 인기를 잃고 팬들의 강한 비판에 직면했다. 언론 또한 이적의 배경과 팬들의 배신감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며 그의 선택을 주시했다. 또한, 일본의 세레소 오사카나 크로아티아의 디나모 자그레브로의 해외 이적 시도가 단기간에 실패하고 복귀한 것에 대해서도 '해외 진출 실패에도 불구하고 많은 돈을 받았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면서, 그의 선수 경력에 대한 상업적인 면모가 부각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알빈 페락에 대한 팬들과 언론의 인식을 복합적으로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