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아마추어 경력
아마야 소이치로는 후쿠이현 사바에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
1.1. 유년기 및 학창 시절
아마야 소이치로는 1983년 11월 8일, 후쿠이현 사바에시에서 태어났다. 사바에시립 도바 초등학교와 사바에시립 주오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에는 후쿠이현립 후쿠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야구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1.2. 프로 입단 전 야구 경력
후쿠이 상업고등학교 시절, 아마야는 뛰어난 타격 센스와 준족으로 인해 '호쿠리쿠의 이치로'라고 불리며 주목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는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후쿠이 대회 결승전에서 우쓰미 데쓰야와 이케카즈 이치 등이 소속된 쓰루가케히 고등학교를 연장 10회 접전 끝에 3 대 2로 꺾고 고시엔 대회 출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고시엔 대회에서는 7번 우익수로 출전했으나 첫 경기에서 패했다. 당시 팀 동료 중에는 1학년 선배인 야마기시 미노루가 있었다.
이듬해인 고등학교 3학년 봄에는 봄 고시엔에 3번 타자로 출전하여 1회전에서 1홈런과 3안타, 1이닝 2도루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여름 고시엔 대회에도 출전하며 고교 3년 동안 총 세 차례 연속으로 고시엔 무대를 밟았다. 50 m를 6.0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과 뛰어난 선구안, 날카로운 스윙이 인정받아, 2001년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부터 9순위로 지명되어 입단했다. 등번호는 69번으로 결정되었으며, 후쿠이 상업고등학교 출신으로는 동료였던 요코야마 류지 이후 7년 만에 프로에 입단한 선수가 되었다.
2. 프로 경력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긴 프로 경력을 보냈다.
2.1.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의 프로 데뷔 이후 아마야 소이치로는 꾸준히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켰고, 특히 2008년부터 1군 주전으로 도약하여 팀의 중요한 일원이 되었다.
2.1.1. 초기 활동 및 2군 리그 활약 (2002년 ~ 2006년)
프로 1년차인 2002년에는 2군 리그에서 40타수 2안타, 타율 0.050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8개의 볼넷을 골라내고 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출루 능력과 주루 능력을 보여주었다.
2003년에는 타격이 크게 향상되어 2군 리그에서 1번 타자를 맡았다. 한때 타율이 4할을 넘어서며 전반기에는 2군 수위타자를 독주하기도 했다. 후반기에 약점인 바깥쪽 변화구에 공략당하며 타율이 떨어졌지만, 최종적으로 2군에서 타율 0.266, 6홈런, 27도루를 기록하며 웨스턴 리그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많은 사사구로 인해 출루율은 3할 5푼을 넘겼다.
2004년, 전년도 오프시즌부터 시도했던 '한발 타법'(一本足打法일본어)을 그만두고 원래의 '스리 아시 타법'(すり足打法일본어)으로 돌아가는 등 타격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으로 1군 스프링 캠프에 참가했으나, 시범 경기에서 타율 0.133으로 부진했다. 8월 20일, 프로 3년 만에 처음으로 1군에 승격했으나 2타수 무안타, 도루 0개로 부진하여 8월 30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재승격 후 10월 3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프로 첫 선발 출장했으며, 첫 타석에서 프로 첫 안타를 기록했고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로 2루에 진루하는 등 빠른 발을 과시했다. 웨스턴 리그에서는 2위와 20개 차이로 42도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빠른 발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005년, 전년도 오프 시즌에 왼발 인대를 다쳤고, 스프링 캠프에서는 염좌를 입어 개막을 2군에서 시작했다. 6월 14일 웨스턴 리그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 2루 도루를 시도하다 슬라이딩 시 오른 어깨를 탈구하는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으로 인해 1군 출장은 2경기에 그쳤다.
2006년, 5월에 1군에 승격했지만 약 한 달 만에 2군으로 돌아갔다. 주로 대주자로 출루했으나 도루는 0개였고, 8타수 무안타로 타격에서도 어필하지 못했다. 반면 2군에서는 최고 출루율인 0.366과 24도루로 통산 세 번째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빠른 발에 비해 좀처럼 7할을 넘지 않던 도루 성공률은 86%를 기록하며 개인 최고 성적을 남겨 도루 기술도 향상되었다. 그러나 2군 타율 0.252는 프로 1년차를 제외하고는 개인 최저 성적이며 홈런 없이 시즌을 마쳤다.
2.1.2. 1군 주전 도약 및 주요 활약 (2007년 ~ 2012년)
2007년, 등번호를 49번으로 변경했다. 4월 28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프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5월 들어 한때 1군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등 크게 도약하는 듯했으나, 견제구에 귀루하는 과정에서 왼 어깨를 다쳐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후 1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20경기 출장에 그쳤다.
2008년, 스프링 캠프에서 마티 브라운 감독으로부터 "재능, 타격 센스, 스피드가 매력적이다. 꼭 쓰고 싶다"는 극찬을 받았다. 3월 28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개막전에서 1번 중견수로 첫 개막 선발 출장을 기록했다. 4월 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 연장 10회에 상대 투수 나스노 다쿠미로부터 개인 첫 끝내기 안타를 터뜨렸고, 4월 중순에는 수위타자에 오르는 등 약점으로 지적되던 타격이 크게 향상되었다. 또한, 전년도까지 잦은 실책이 눈에 띄던 외야 수비도 본래의 넓은 수비 범위가 살아나면서 아카마쓰 마사토와 함께 철벽의 외야를 형성했다. 최종적으로 규정 타석에 3타석 부족했으나, 타율은 0.263으로 하락했음에도 개인 최다인 135경기에 출전하며 비약적인 시즌을 보냈다. 4월 5일 요코하마전에서의 끝내기 안타 후 히어로 인터뷰에서는 "맛있는 술을 마시고 내일도 야구장에 와주세요!"라는 독특한 발언으로 팬들을 열광시켰고, 이튿날 4월 6일 요코하마전에서도 하세가와 마사유키와 함께 히어로 인터뷰에 나와 "내일은 월요일이라 출근하셔야 하니 술은 적당히 드세요"라고 말해 유머러스함을 보였다.
2009년, 4월 3일 개막전에서 8번 우익수로 출전했다. 4월에는 부진했으나 5월부터 컨디션을 회복하여 3번 타자로 기용되었고, 팀 타율이 2할대 초반으로 침체된 가운데 타율 0.400를 기록하며 분전했다. 그러나 5월 13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파울 타구를 치다가 오른손 유구골이 골절되어 장기 이탈하게 되었다. 하지만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 49일 만에 2군 실전 복귀를 했고, 7월 1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 "3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1군에 복귀했다. 골절의 영향으로 94경기 출장에 그쳤고,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개인 첫 타율 3할, 5홈런, 41타점을 기록했다.
2010년, 시범 경기에서 타율 3위인 0.396를 기록하며 3번 중견수로 발탁되었으나, 시즌이 시작되자 타율 1할대 후반에서 2할대 초반을 오가는 심각한 타격 부진에 빠졌다. 이로 인해 타격 호조를 보이던 아카마쓰와 히로세 준에게 선발 자리를 빼앗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후반기에는 다소 회복했으나 전반기의 부진이 영향을 미쳐 타율 0.245로 성적이 떨어졌다. 4월 28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는 팀에서 쇼다 고조(1989년 10월 15일 주니치전에서 1경기 6도루 기록) 이후 21년 만에 한 경기 4도루를 기록했다. 8월 2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연장 11회에는 상대 투수 노마구치 다카히코로부터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터뜨리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으나, 아카마쓰와 좌우 투수에 따라 병용되는 등 완전한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8월 22일 요코하마전에서는 8회초 브렛 하퍼가 사이토 유키로부터 때려낸 중견수 방면의 홈런성 타구를 약 1.8 m 높이의 펜스를 달려 올라가면서 몸을 젖히는 자세로 호수비(일명 '홈런 캐치')를 펼쳤다. 당시 사이토는 홈런을 맞았다고 생각했기에 아마야가 공을 잡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이와 비슷한 대단한 플레이를 8월 4일 요코하마전에서 동료 아카마쓰도 보여주었기에 (당시 투수 역시 사이토였으며, 타자는 무라타 슈이치) 아마야는 이를 "매우 의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22일 새벽 닛폰 TV의 스포츠 뉴스에서 아카마쓰의 플레이가 특집으로 다뤄졌을 때, 마쓰다 스타디움에 전시된 아마야가 펜스에 기어 올라가 홈런 캐치하는 모습을 본뜬 '격돌! 아마야군' 인형이 소개되었는데, 불과 하루 만에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후에 펜스 바로 아래에 후마키라의 베이프 광고가 있었기에, 해당 회사로부터 아마야에게 베이프, 약용 핸드솝 등이 보내졌음이 홍보 담당 히가 도시미쓰의 블로그를 통해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아카마쓰도 펜스에 광고를 게재했던 다카키 베이커리로부터 빵 선물 세트를 받았다.
2011년, 개막 초부터 타격 부진을 겪으며 5월에는 타율 1할대로 침체되었고 결국 2군으로 내려가는 경험을 했다. 6월에 1군 복귀 후에는 회복하는 듯했으나, 여름 이후 다시 컨디션이 떨어지면서 대타나 대주자, 수비 요원으로의 기용이 많아졌고, 타율 0.210이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12월 27일에는 히로시마 홈 TV 아나운서인 쓰보야마 카나코와 결혼했다고 발표했다.
2012년, 부진으로 인해 개막을 2군에서 시작했으며, 5월이 되어서야 1군에 승격했다. 6월에 걸쳐 점차 컨디션을 끌어올렸고, 6월에는 1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월간 타율 0.373를 기록하며 한때 타율을 0.327까지 끌어올렸다. 6월 중순부터 1번 타자로 고정 기용되었고, 같은 달 17일 세이부전에서는 세이부 돔에서 기시 다카유키로부터 초회 선두 타자 초구 홈런을 때려내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 타격 호조를 보이던 4번 타자 이와모토 다카히로와 함께 팀의 3위 도약에 기여했다. 7월까지는 타율 3할대를 유지했으나 8월 이후 컨디션이 떨어졌고, 타순도 5번이나 7번으로 내려가거나 상대 좌완 투수가 선발일 경우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8월 25일 한신전에서 팀 20년 만의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을 기록했고, 9월 2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는 9회말에 역전 끝내기 안타(기록상으로는 안타와 외야수 실책)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타율 0.264로 시즌을 마쳤으나, 지난 2년보다 좋은 성적을 남겼다.
2.1.3. 부상과 부진 (2013년 ~ 2017년)
2013년, 시즌 내내 1군과 2군을 오가는 날들이 이어졌고, 주전으로 자리 잡은 이후 가장 적은 34경기 출장에 그쳤다. 또한, 프로 5년차인 2006년 이후 7년 만에 시즌 무홈런에 그쳤고, 타율 0.208로 타격 부진에 빠졌다. 2군에서는 75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9, 3홈런을 기록했다.
2014년, 팀이 8연패에 빠져있던 6월 14일, 개막 이후 좌타 우익수로 1군에 동행하던 마쓰야마 류헤이가 전날 세이부전에서 왼쪽 무릎 부상을 당함에 따라 시즌 첫 1군 등록이 이루어졌다. 그날 지바 롯데 마린스전에서 1번 우익수로 선발 복귀하여 첫 타석부터 안타를 쳤고, 6월 15일에는 2년 만에 선두 타자 홈런을 터뜨려 팀을 연패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후에도 7월 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과 8월 20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전에서도 선두 타자 홈런을 기록했다. 8월 이후에는 도바야시 쇼타나 스즈키 세이야, 복귀한 마쓰야마 등에게 선발 자리를 빼앗겼으나, 좌타 대타로서 대타 타율 0.333, 대타 출루율 0.440의 성적을 남겼다.
2015년, 전년도보다 출장 경기 수가 줄어들어 30경기, 타율 0.214, 2타점, 3도루를 기록했다. 5월 21일 등록 말소된 이후에는 더 이상 1군에 출장하지 못했다. 또한, 4월 7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서 1점 리드 상황의 9회에 좌익수 수비 요원으로 기용되었으나, 가메이 요시유키가 때려낸 좌익수 방면 플라이를 바람의 영향으로 놓쳐 2루 진루를 허용했고, 이후 이바타 히로카즈의 적시타로 2루 주자가 홈을 밟아 동점을 허용하며 팀은 결국 패배했다. 이 시즌에는 수비에서의 실책도 눈에 띄었다.
2016년, 개막 1군 로스터에 들었다. 2번째 경기에서 7번 우익수로 출전하여 3번째 타석에서 결승 적시타를 터뜨리며 팀의 시즌 첫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에도 선발 출장 기회를 얻어 결승타를 기록하는 등 활약했으나, 호조가 오래가지 못하고 6월 5일 등록 말소되었다. 이후에도 1군과 2군을 오가는 시즌이 되었고, 55경기 출장에 그쳤다. 대타로 30차례 기용(24타수)되었으나 단 1개의 안타도 치지 못하는 등, 3개의 결승타를 터뜨린 개막 후 호조기를 제외하고는 타격 부진에 시달려 타율 0.175로 시즌을 마쳤다.
2017년, 56경기에 출장했으며 타율 0.189를 기록했다. 2017년 팀이 리그 2연패를 달성했을 때, 기쿠치 료스케가 전년도 우승 헹가래 도중 장난을 친 것을 듣고 아마야도 우에모토 다카시에게 비슷한 장난을 쳤다. 인터뷰에서 "이런 행동을 할 나이는 아니지만, 이 정도의 여유를 상대 팀에게 보여줘야죠"라고 코멘트했다.
2.1.4. 은퇴 및 현역 말년 (2018년)
2018년 9월 27일, 구단으로부터 현역 은퇴가 발표되었다. 10월 4일,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은퇴 경기가 치러졌다. 이 경기에서 1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하여 1회말 스가노 도모유키와 상대했으나 포수 땅볼로 물러나 현역 마지막 타석을 마쳤다.
3. 선수 특징 및 플레이 스타일
아마야 소이치로는 뛰어난 타격 센스와 준족, 그리고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외야수였다. 타석에 들어설 때는 작은 목소리로 "센터 (돌려보내기), 센터..."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타격 스타일을 유지하려 했다고 한다. 발이 빨라 병살타가 적었고, 일정 이상의 장타력도 겸비하여 다양한 타순을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성을 가진 타자였다. 선구안이 좋아서 2008년과 2010년 시즌 타율이 2할 5푼 전후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3할을 크게 넘는 출루율을 기록했다.

1군에 정착한 2008년에는 주로 좌익수와 중견수로 기용되었으며, 외야에서 가장 강한 어깨를 요구하는 우익수로는 거의 출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외야가 넓고 우익수 라인을 벗어난 타구가 곧바로 3루타로 연결될 수 있는 마쓰다 스타디움으로 본거지가 바뀌면서 2009년에는 수비 범위를 중시한 코칭스태프의 의향에 따라 우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그는 예전부터 좋은 선수들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모방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스파이크는 아카호시 노리히로 (전 한신 타이거스), 글러브는 동료인 히로세 준의 모델을 착용했다고 언급했다. 오카다 유키후미 (당시 지바 롯데 마린스)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외야 수비의 비결을 설명할 때, 참고한 선수로 아마야의 이름을 언급하며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4. 개인 생활
아마야 소이치로는 2011년 12월 27일 히로시마 홈 TV 아나운서인 쓰보야마 카나코와 결혼했다. 모델로 활동하는 카나와는 같은 마을 출신으로 소꿉친구이지만, 아마야 본인은 그녀를 "모델이라기보다는 그냥 친구"라고 말했다고 2008년 9월 9일 주고쿠 신문 석간에 실렸다. 또한, 산프레체 히로시마 소속이었던 마키노 도모아키와 친분이 있어, 실제로 히로시마 애슬리트 매거진 (2009년 2월호)에서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5. 은퇴 후 활동
프로 야구 선수 은퇴 후 아마야 소이치로는 야구 해설가로 전향하여 활발한 미디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5.1. 야구 해설가 활동
2018년 12월 11일 방송된 RCC 뉴스6 스포츠 코너에 RCC 야구 해설가로 출연하며 첫 해설가 데뷔를 마쳤다. 2019년부터는 중국방송의 야구 해설가로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
5.2. 방송 출연
야구 해설 이외에도 다양한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 RCC 뉴스6 (2018년 12월 ~ 2019년, RCC TV) 스포츠 코너
- 베리 카프! RCC 카프 나이터/카프 데이 게임 중계 (2019년 ~ , RCC 라디오)
- S☆1 BASEBALL (2019년 ~ , RCC TV) 로컬 중계는 상기 라디오와 동일한 프로그램명으로 방송된다.
- 이마나마! 월요일 코너 카치카치! TV 헤드슬라이 아마야의 "사인 모으는 여행 2020" (2020년 1월 6일 ~ , RCC TV)
- 이마나마! 시리즈 "가르쳐줘! 아마야상!" (2020년 2월 11일 ~ , RCC TV)
- 코너 "코이진 레스토랑 당신의 최애를 알려주세요" (2021년 6월 28일 ~ )
- 소레 키케! 스포콘! (2020년 ~ , RCC 라디오) 히로시마 도요 카프 투수 코치로 취임한 요코야마 류지의 후임으로 수요일에 출연하고 있다.
- 히로시마 광역 도시권 매력 발신 모토나리. 이백만일심 (2021년) 가신 (리포터)
- 경계를 넘어 두근두근! 아마야 소이치로가 WISH Match에서 이종 경기 대결! (2022년 7월 ~ , RCC TV)
6. 수상 및 기록
6.1. 수상
- 스카파! 드라마틱 사요나라상: 1회 (2010년)
- '조지아 혼'상 선정 위원 특별상: 1회 (2010년)
- '조지아 혼'상: 1회 (2010년 제11회)
6.2. 개인 기록
- 첫 출장: 2004년 8월 20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2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8회말 노무라 겐지로의 대주자로 출장
- 첫 타석: 2004년 8월 21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3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9회말 미사와 고이치로부터 2루 땅볼
- 첫 선발 출장: 2004년 10월 3일, 대 한신 타이거스 27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2번 중견수로 선발 출장
- 첫 안타: 상동, 1회말 스기야마 나오히사로부터 중전 안타
- 첫 도루: 2004년 10월 6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4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6회말 2루 도루 (투수: 가와무라 다케시, 포수: 아이카와 료지)
- 첫 타점: 2004년 10월 7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25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6회말 오카모토 신야로부터 좌중간 적시 3루타
- 첫 홈런: 2007년 4월 28일, 대 한신 타이거스 4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5회말 스기야마 나오히사로부터 우월 2점 홈런
- 첫 끝내기 안타: 2008년 4월 5일, 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2차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연장 10회 나스노 다쿠미로부터
7. 등번호
- 69 (2002년 ~ 2006년)
- 49 (2007년 ~ 2018년)
8. 통산 성적
8.1. 연도별 타격 성적
연도 | 소속 | 경기 | 타석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루타 | 타점 | 도루 | 도루 실패 | 희생번트 | 희생플라이 | 볼넷 | 고의사구 | 사구 | 삼진 | 병살타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
2004년 | 히로시마 | 10 | 12 | 11 | 1 | 2 | 0 | 1 | 0 | 4 | 1 | 1 | 2 | 0 | 0 | 1 | 0 | 0 | 4 | 0 | 0.182 | 0.250 | 0.364 | 0.614 |
2005년 | 2 | 2 | 2 | 0 | 0 | 0 | 0 | 0 | 0 | 0 | 1 | 0 | 0 | 0 | 0 | 0 | 0 | 1 | 0 | 0.000 | 0.000 | 0.000 | 0.000 | |
2006년 | 17 | 9 | 8 | 3 | 0 | 0 | 0 | 0 | 0 | 0 | 0 | 1 | 0 | 0 | 0 | 0 | 1 | 4 | 0 | 0.000 | 0.111 | 0.000 | 0.111 | |
2007년 | 20 | 39 | 31 | 6 | 8 | 0 | 0 | 1 | 11 | 2 | 2 | 2 | 2 | 0 | 5 | 0 | 1 | 7 | 0 | 0.258 | 0.378 | 0.355 | 0.733 | |
2008년 | 135 | 443 | 392 | 49 | 103 | 8 | 1 | 4 | 125 | 24 | 13 | 9 | 11 | 2 | 34 | 0 | 4 | 76 | 2 | 0.263 | 0.326 | 0.319 | 0.645 | |
2009년 | 94 | 361 | 317 | 35 | 95 | 14 | 7 | 5 | 138 | 41 | 12 | 10 | 6 | 5 | 31 | 0 | 2 | 62 | 4 | 0.300 | 0.361 | 0.435 | 0.796 | |
2010년 | 123 | 382 | 335 | 46 | 82 | 11 | 2 | 6 | 115 | 35 | 18 | 10 | 1 | 3 | 37 | 0 | 6 | 72 | 3 | 0.245 | 0.328 | 0.343 | 0.671 | |
2011년 | 100 | 187 | 167 | 15 | 35 | 6 | 3 | 1 | 50 | 12 | 8 | 2 | 3 | 0 | 14 | 0 | 3 | 33 | 2 | 0.210 | 0.283 | 0.299 | 0.582 | |
2012년 | 108 | 397 | 359 | 44 | 95 | 21 | 0 | 6 | 134 | 25 | 12 | 9 | 2 | 1 | 32 | 0 | 3 | 64 | 3 | 0.265 | 0.329 | 0.373 | 0.702 | |
2013년 | 34 | 62 | 53 | 5 | 11 | 1 | 0 | 0 | 12 | 1 | 3 | 1 | 0 | 0 | 9 | 0 | 0 | 15 | 0 | 0.208 | 0.323 | 0.226 | 0.549 | |
2014년 | 59 | 128 | 111 | 20 | 35 | 4 | 2 | 3 | 52 | 6 | 4 | 3 | 0 | 0 | 16 | 2 | 1 | 27 | 0 | 0.315 | 0.405 | 0.468 | 0.875 | |
2015년 | 30 | 34 | 28 | 1 | 6 | 0 | 0 | 0 | 6 | 2 | 3 | 4 | 0 | 0 | 6 | 0 | 0 | 7 | 1 | 0.214 | 0.353 | 0.214 | 0.567 | |
2016년 | 55 | 96 | 80 | 12 | 14 | 2 | 0 | 1 | 19 | 8 | 3 | 0 | 0 | 1 | 13 | 0 | 2 | 16 | 1 | 0.175 | 0.302 | 0.238 | 0.540 | |
2017년 | 56 | 45 | 37 | 6 | 7 | 1 | 0 | 0 | 8 | 2 | 1 | 0 | 4 | 0 | 3 | 0 | 1 | 17 | 0 | 0.189 | 0.268 | 0.216 | 0.485 | |
2018년 | 1 | 1 | 1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0 | 0.000 | 0.000 | 0.000 | |
NPB: 15년 | 844 | 2198 | 1932 | 243 | 493 | 68 | 16 | 27 | 674 | 159 | 81 | 53 | 29 | 12 | 201 | 2 | 24 | 405 | 16 | 0.255 | 0.331 | 0.349 | 0.680 |
8.2. 연도별 수비 성적
연도 | 구단 | 외야 | |||||
---|---|---|---|---|---|---|---|
경기 | 척살 | 보살 | 실책 | 병살 | 수비율 | ||
2004년 | 히로시마 | 8 | 4 | 0 | 0 | 0 | 1.000 |
2005년 | 1 | 1 | 0 | 0 | 0 | 1.000 | |
2006년 | 8 | 5 | 0 | 0 | 0 | 1.000 | |
2007년 | 10 | 7 | 0 | 1 | 0 | 0.875 | |
2008년 | 127 | 184 | 5 | 3 | 1 | 0.984 | |
2009년 | 91 | 156 | 4 | 6 | 1 | 0.964 | |
2010년 | 93 | 176 | 6 | 4 | 1 | 0.978 | |
2011년 | 76 | 83 | 3 | 0 | 2 | 1.000 | |
2012년 | 99 | 171 | 2 | 0 | 1 | 1.000 | |
2013년 | 23 | 21 | 1 | 0 | 1 | 1.000 | |
2014년 | 41 | 44 | 2 | 1 | 0 | 0.979 | |
2015년 | 20 | 15 | 0 | 0 | 0 | 1.000 | |
2016년 | 33 | 24 | 1 | 2 | 0 | 0.926 | |
2017년 | 33 | 17 | 0 | 0 | 0 | 1.000 | |
2018년 | 1 | 1 | 0 | 0 | 0 | 1.000 | |
통산 | 664 | 909 | 24 | 17 | 7 | 0.9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