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및 경력
아리스토데무스는 기원전 4세기의 헬레니즘 시대에 살았던 인물로, 안티고노스 1세 모노프탈모스의 충실한 측근이자 실무자로서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1. 출신 배경
아리스토데무스는 이오니아의 고대 그리스 도시인 밀레투스 출신이다. 그의 삶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제국이 분열되던 기원전 4세기 후반의 격동적인 디아도코이 전쟁 시기에 속한다.
1.2. 안티고노스 1세 치하에서의 활동
아리스토데무스의 경력은 안티고노스 1세 모노프탈모스에 대한 봉사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안티고노스의 가장 신뢰받는 조언자이자 대리인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1.2.1. 초기 외교 및 군사 임무
아리스토데무스는 기원전 319년에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그는 안티파테르의 사망 소식을 안티고노스에게 전했으며, 이와 함께 폴리페르콘이 섭정의 지위를 계승했다는 소식도 보고했다.
기원전 314년, 안티고노스는 그를 펠로폰네소스반도로 파견하며 1,000 탈란트의 자금을 지원했다. 이 임무의 목적은 폴리페르콘과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와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가능한 한 많은 용병을 모집하여 카산드로스에 대항하는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1.2.2. 그리스에서의 활동
펠로폰네소스반도에 도착한 아리스토데무스는 라코니아에서 스파르타인들로부터 용병 모집 허가를 얻어 펠로폰네소스반도에서 8,000명의 병력을 성공적으로 모집했다. 그는 폴리페르콘과 알렉산드로스 부자와의 우정을 확고히 했고, 폴리페르콘은 반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카산드로스와 동맹을 맺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안티고노스의 장군과 동맹군에 대항하여 함대를 파견했고, 카산드로스는 펠로폰네소스반도에서 상당한 영토를 정복했다. 카산드로스가 떠난 후, 아리스토데무스와 알렉산드로스는 처음에는 도시들이 카산드로스의 수비대를 추방하고 독립을 되찾도록 설득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곧 카산드로스에게 배신하고 펠로폰네소스반도에서 카산드로스 군대의 총사령관 직위를 보상으로 받았다.
기원전 313년, 아리스토데무스는 아이톨리아인들을 설득하여 안티고노스 편에 서도록 유도했고, 그들로부터 많은 용병을 모집한 후 펠로폰네소스반도로 돌아왔다. 그는 킬리니 (Cyllene)와 엘리스를 포위하고 있던 알렉산드로스를 공격하여 포위를 풀게 했다. 이어서 아카이아의 파트라이와 뒤메를 포함한 여러 도시들의 자치권을 회복시켰다. 아이기온 또한 안티고노스 편에 서게 했으나, 이곳에서는 병사들의 약탈을 막지 못했다. 뒤메를 두고 알렉산드로스와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며, 한때 알렉산드로스의 손에 넘어갔다가 알렉산드로스가 떠난 후 아리스토데무스 군대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고, 알렉산드로스 지지자들은 숙청되었다.
기원전 312년, 아리스토데무스는 안티고노스의 조카들인 폴레마이오스와 텔레스포로스로부터 증원군을 받았다. 이들은 함대를 이끌고 펠로폰네소스반도로 항해했다. 폴레마이오스의 지휘 아래, 이들은 테르모필레 남쪽의 모든 그리스 지역을 (아테네를 제외하고) 안티고노스의 통제하에 두었다. 이에 카산드로스는 폴레마이오스와 협상을 시작했고, 아리스토데무스는 이 협상에 참여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또한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와의 협상에도 파견되어, 기원전 311년 평화 조약이 체결되는 데 기여했다.
기원전 307년, 아리스토데무스는 데메트리오스의 아테네 해방을 위한 원정에 동행했다. 데메트리오스가 피레아스를 점령한 후, 아리스토데무스는 아테네로 파견되어 카산드로스의 동맹이자 아테네의 참주였던 팔레론의 데메트리오스와 협상했다. 이 협상 결과 카산드로스의 병력은 아테네에서 철수했고, 데메트리오스는 아테네 민주정의 복원을 선포할 수 있었다.
1.2.3. 아시아에서의 활동
안티고노스가 데메트리오스에게 키프로스에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군대에 대항하여 항해하도록 명령했을 때, 아리스토데무스도 그와 동행했다. 그는 키프로스 살라미스 근처에서 벌어진 대규모 해전에 참전했으며, 이 해전에서 데메트리오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함대를 전멸시키고 섬을 점령했다.
아리스토데무스는 이 승전 소식을 오론테스 강변의 안티고네이아에 있는 안티고노스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안티고노스를 왕으로 추대하는 정교한 연극을 펼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리스토데무스는 배에서 홀로 내려와 자신이 가져온 소식에 대해 어떤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천천히 왕궁으로 나아갔고, 그 뒤로 많은 군중이 모였다. 걱정스러운 안티고노스를 궁전 문에서 만난 그는 큰 소리로 "만세, 안티고노스 폐하!"라고 외치며 위대한 승리를 묘사했다. 이에 열광한 모인 군중은 안티고노스를 왕으로 선포했다.
1.3. 밀레투스로의 복귀
안티고네이아에서의 중요한 순간 이후, 아리스토데무스는 그의 고향인 밀레투스로 돌아와 고위직에 올랐다.
2. 평가 및 비판
아리스토데무스는 플루타르코스에 의해 '최고의 아첨꾼'(arch-flatterer)으로 묘사되었다. 플루타르코스는 데메트리오스의 전기를 통해 아리스토데무스가 안티고노스의 승전 소식을 전할 때 의도적으로 안티고노스를 애태우며 극적인 연출을 한 일화를 소개하며, 그가 모든 신하들 중에서도 아첨에 능했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평가는 그의 외교적 수완과 정치적 기민함이 때로는 아첨과 결부되어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안티고노스의 가장 신뢰받는 인물 중 하나였으며, 중요한 군사 및 외교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안티고노스 왕국의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3. 사료 및 연구
아리스토데무스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주요 역사적 사료는 디오도로스 시쿨루스의 『역사 총서』(Bibliotheca Historica)와 플루타르코스의 『대비 열전』(Parallel Lives) 중 특히 『데메트리오스』 편이다. 이들 사료는 그의 초기 임무, 그리스에서의 군사 및 외교 활동, 그리고 안티고노스 1세의 왕 즉위 선포에서의 결정적인 역할 등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현대 역사가들은 이들 고대 사료를 바탕으로 아리스토데무스의 역할을 디아도코이 전쟁이라는 더 넓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 있다.